달빛이 가장 고요했던, 그곳.

전희경展 / JEIKEI_JEONHEEKYOUNG / 全姬京 / painting   2020_0605 ▶ 2020_0623 / 일,월요일 휴관

전희경_바람에 대한 연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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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인스타그램_instagram.com/jeikei_jeonheekyoung

초대일시 / 2020_060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달빛이 가장 고요했던, 그곳에서 나는, 살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 달은, 우리를 보고, 우리는 달을 본다. 저 우주에서 우리로부터 유일하게 가장 가까운 행성. 지구처럼 둥글고, 지구를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가 가서 발자국을 남기며 걸을 수 있는,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지구 밖, 우주에 떠 있는 땅이다. 가장 가까우면서 우주라고 하는 먼 거리. 사람이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처럼. 내가 당신을 볼 수 있는 거리다. 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보는 당신은 객관적이다. 당신이 가장 당신 다울 때, 지구는 우주의 질서를 가장 확실하게 이해할 때였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전희경 작가의 붓질은 시작된다.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려졌으면 하는 곳을 그리는 그의 붓질. 적어도, 한번쯤 가봤어야 할 곳. 그곳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전희경_내게 흐르는 바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20
전희경_널찍한 들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20
전희경_미래의 어느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20

추상은, 단순하게 미술 표현의 한 장르처럼 여겨질 수는 없는 의미다. 밤 하늘에 떠 있는 저 별들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처럼, 그냥 빛나고 있는 것이 저 별이었을까. 그렇게, 고흐는 그 밤에 그저 빛나는 별을 왜 바라봐야 했을까. 추상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하는 것.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 36억만년을 거쳐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기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추상은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의식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개념 중 하나다. 따라서 추상은, 예술적 장르를 구분하는 명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자 할 때, 꼭 필요한 정신활동을 위한 동사다.

전희경_이른 새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41cm_2020
전희경_깊은 새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41cm_2020
전희경_고요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60cm_2020

해서, 전희경의 추상에는 시가 있고, 편안하고 한번쯤 떠올려 봤을 그런 풍경이 있다. 셀 수도 없이 떠올렸던 그의 생각 속의 풍경들. 아무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가봤을 것 같은 그런 풍경들과 그 풍경이 읊어주고 있는, 산과 바람과 구름과 물이 써놓은 시를 들을 수 있는 풍경. 내가 갈 수 있는 곳, 내가 갈 수 없는 곳, 표표히 달빛 내려 비춰진 곳. 달빛은 자신의 빛으로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다. 단지 전희경 작가의 추상으로 떠올려진 풍경이지만, 혹, 달빛은 가 봤을지도 모를 그 곳. 어느 노시인은,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물처럼 떠있고 싶어했고, 우리는 현실과 이성적 판단을 버리고 달빛처럼 그의 풍경 위를 떠다니고 싶다. 색은, 단순히 시각으로만 느껴지고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시각으로 얻어진 색의 정보는, 가장 먼저 우리의 기억으로 흘러 들어오고, 다른 감각으로부터 기억으로 흘러 들어 온 다른 감각 정보들과 섞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색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드는 깊은 단서가 된다. 짙은 연기 냄새와 함께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 주는 색,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색,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색. 아련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색. 색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과 어우러지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직관적 감정을 건드린다.

전희경_미래의 어느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20
전희경_미래의 어느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20
전희경_미래의 어느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20

전희경의 색은, 붓질과 밀접하게 만들어진다. 물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역시, 색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붓이다. 하지만, 그 붓으로 어떻게 색의 이야기를 지어내느냐 하는 것은 소설가들의 문체가 서로 다르고, 가수들만의 독특한 음색이 있는 것과 같다. 사실적인 재현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다 다른 붓질과 색을 갖는다. 하물며, 색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추상작가들에게 붓과 색의 관계는, 그리는 행위의 전부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붓으로 떠내는 물감과 물의 농도, 캔버스 위에서의 속도, 누르는 힘, 붓질의 방향, 순간 팔레트에서 떠내게 되는 색 그 자체 등. 전희경의 색은 이 모든 것들이 다 접목되어 있다. 저 먼 달빛이 비추는 풍경이 떠오르고, 한 호흡으로, 한 획을 긋고, 또 떠올리고.. 그렇게 조화롭게 구성되는 전희경의 풍경은 산과 바다 바람과 계절이면서 편안하고, 깊은 시 같은 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임대식

Vol.20200606c | 전희경展 / JEIKEI_JEONHEEKYOUNG / 全姬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