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선정적인 검정 윤곽선

김쎌_김원규_인세인박_최경태_최나리展   2020_0609 ▶ 2020_0721 / 일,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갤러리 유진목공소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 갤러리 유진목공소 디렉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사전예약시 휴관일이나 시간 무관하게 관람가능

갤러리 유진목공소 GALLERY EUGENE CARPENTERSHOP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89-2번지 1층 www.facebook.com/gallery.eugene.carpentershop

『정직하고 선정적인 검정 윤곽선』은 상이한 미적 지향과 경력의 미술가 다섯을 '윤곽선'이라는 단순한 미적 요소로 묶은 기획전이다. 정직한 직설화법과 에로티즘을 암암리에 함의하는 윤곽선 작업을 선별했다. 이중 최연장자 최경태(1957)는 2001년 음화사건에 연루되어 법정에 선 보기 드문 화가였고 그 후로 성표현을 기획하는 전시에 단골로 초대된 상징적 인물이다. 최경태는 그림에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았다. 회화적 표현이 지배하는 그림을 제작해왔다. 그런데 그의 수장고에서 나는 윤곽선이 쓰인 예외적인 소품 회화 한 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와는 세대 차이가 큰 후배 작가 넷을 윤곽선을 매개로 연결시켜, 정직하고 선정적인 지점을 살펴보는 전시다.

최경태_예술_캔버스에 유채_24×33cm_2005

윤곽선은 만화와 캐리커쳐에서 두루 쓰이는 도구다. 윤곽선은 대중 시각예술의 전반에서 마침표 역할을 한다. 재현 대상의 양감 명암 원근감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제쳐두고, 인상 깊은 정체성을 입히려면 재현 대상의 테두리를 따라 검정 선을 긋기만 하면 해결된다. 그것이 윤곽선이 지닌 독보적인 힘이자 미학이다. ● 윤곽선이 문법으로 적용되는 대중 시각예술의 하위장르는 만화다. 만화라는 용어는 에도 시대 풍속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1814년 작품집 『호쿠사이만가北齋漫?』에서 처음 쓰였고, 당시 그 용어는 회화보다 가볍게 그리는 그림을 통칭하는데 쓰였다고 하니, 회화보다 낮은 위계에 둔 점에선 오늘날의 통념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판화를 지배하는 강인한 인상은 선명한 윤곽선에서 비롯된다. ● 윤곽선은 순수 회화와 대중 시각예술 사이의 길항 관계 속에서 존재해 왔다. 대상이 지닌 명암 질감 원근감 따위를 전부 무시하는 윤곽선의 단순한 재현 기술은 순수 회화 진영에선 거의 쓰이지 않았고, 윤곽선 묘사를 낯잡아 평하는 분위기까지 미술계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 대중 시각예술계에서조차 윤곽선 묘사의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화법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써왔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윤곽선으로 규정된 2차원 애니메이션의 경직된 화면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양감과 동선을 제시하면서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고,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애니메이션의 국제 기준으로 만들었다.

최나리_Two tickets, please-Mato's ticket1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1×117cm_2017
최나리_orgasm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20

미술판에서 검정 윤곽선을 독점한 장르는 팝아트 계열인데 이는 팝아트가 대중문화를 주제로 삼는 과정에서, 대중 시각예술의 문법인 윤곽선을 피해갈 수 없어서 선택한 것에 가깝다고 하겠다. 한편 작가가 본인의 작업을 팝아트라 표방하지 않더라도 검정 윤곽선과 색면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화단에서 그의 작업이 팝아트로 분류되는 일은 매우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 2차원에서 3차원 질감으로 도약하는 재현기술이 시각예술계의 전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시각예술의 고전적인 재현 문법인 윤곽선의 효과는 유효하고 독보적이며 현재진행형이다. ● 검정 윤곽선은 재현 대상의 특징과 주제를 도드라지게 부풀리며, 보는 이에겐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우회하지 않는 직설화법이다. 이처럼 높은 호소력 덕에 만화나 팝아트라는 고정된 시장을 넘어 순수 회화 진영의 일각에서도 윤곽선은 차츰 널리 소환되고 있다. 섹스어필같은 본능적 욕구는 윤곽선이 가세하며 밑줄 긋듯 부각되기 마련이다. 설령 섹스어필을 표방하지 않은 표현물에서조차 '섹스어필임직 한' 어떤 암시가 남는 법이며, 보는 이마저도 그런 암시를 읽는다. ● 『정직하고 선정적인 검정 윤곽선』에 초대된 김쎌은 그녀의 예명 '김쎌'로부터 8종류의 쎌Cell 시리즈를 내놨는데, 이 전시에선 그 중 E-Cell 연작에서 출품작을 골랐다. 순정만화 속 소녀의 눈망울을 모티프로 동일한 패턴을 벽지처럼 반복한 화면은 균질한 안정감과 소녀 취향 감성과 묘한 육감적 잔상을 남긴다. 김쎌은 2012년엔 K-Cell 연작에서 20대인 그녀 자신의 인체를 사진에 담기도 했는데, 시대의 유행처럼 번진 자기애적 셀피를 차용한 작업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알몸을 과시적인 창작의 도구로 전용한 보기 드문 여성 작가의 사례였다. 자궁경부암 3기말 판정으로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날부터 시작한 김쎌의 유튜브에는 4기암 투병일기와 주문 제작으로 초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 일지를 올리고 있다. 유튜브 개설한지 1년도 되지 않아 구독자 7천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김원규_Intuitive feeling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45cm_2019
김원규_Intuitive feeling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45cm_2019

비키니 탑을 터뜨릴 듯 풍만한 젊은 여성의 가슴을 만화적 설정으로 부풀린 김원규의 시리즈물은 Intuitive Feelings란 제목의 연작 중 하나다. 목의 윗부분과 가슴의 아랫부분을 도려내고 부풀어 오른 가슴을 앙증맞게 원포인트로 강조해서 욕망에 정직하되 팝아트풍 애교로 중화시킨 소품이다. 아마도 '직감' 정도로 번역될 Intuitive Feelings 연작 속엔 만화 캐릭터 얼굴의 부분이나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계란의 부분을 옮긴 작업도 보인다. 그는 대상이나 사건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떼어와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연작을 만들어왔다. 양손으로 중간을 가른 호빵이나, 프라이팬 위에서 둥그렇게 강조된 계란 노란자 부위나 입으로 무는 순간 흘러내린 햄버거 소스를 그린 그림들은 모두 생각하기에 따라 성적 메타포로 풀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원규는 간결하고 아슬아슬하게 성적 메타포를 좁다란 화면 위에 옮겨오면서 강한 임팩터를 담았다. ● 인세인박은 예명에 사용된 의미(Insane:미친, 제 정신이 아닌)의 값을 할 만큼, 한국 사회의 검열 문화에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력을 현실 전시장에서 구현한 보기 드문 작가다. 요 몇 년 사이 공동체 정서로까지 발전한 성표현에 대한 검열의 정반대편에 그의 작업 연보가 놓여있다. 회화와 기성인쇄물을 재가공한 프린트물과 기성품을 재활용한 설치물 그리고 비디오아트까지 매체를 전방위로 사용하면서 상상력의 최전선을 넓혀왔다. 인세인박의 제작 노하우는 '발견하기'에 있다. 대량 생산된 기성품을 본래의 문맥에서 떼어와서, 자신의 색채를 입힌 인쇄물이나 설치물의 형태로 변형시켜서 내놓았다. 이 전시에는 구시대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저화질을 차용해서 정사 장면을 끊임없이 깨지는 화면 속에 재생하는 비디오 아트를 선보인다. 성교의 내밀한 클로즈업 장면이 해상도가 흩어지는 영상에 담기면서, 보는 이의 선정적인 욕망과 그것을 검열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검열 정서를 동시에 풍자하는 것 같다.

인세인박_The Man with a Flower_단채널 영상_00:02:29_2017
인세인박_Assology_단채널 영상_00:01:16_2017

최경태는 한국 화단에서 성표현에 관한한 전설적인 생존 작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자, 성표현물과 검열 사이의 갈등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명사다. 그는 2001년 자신의 일곱 번째 개인전 『여고생: 포르노그라피 2』(갤러리 보다, 2001)에 내놓은 작품 때문에 정식재판까지 받았고 출품작 31점이 압류 소각되는 수모도 겪었다. 이 사건 이후 최경태는 성 표현을 주제로 내건 기획전에 단골로 초대되는 작가가 됐다. 최경태의 이전과 이후로 그를 닮은 행보를 보인 작가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찾는다면 이번 전시에 함께 초대된 인세인박 정도랄까. 최경태의 작업 연보에서 드로잉 장르를 빼면 회화 장르에서 윤곽선이 사용된 바는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그의 수장고에서 과거의 작업들을 살피던 중 나는 2005년 제작된 소품 한 점을 발견했다. 붉은 단색조 배경 위에 가느다란 검정 윤곽선으로 치마가 들린 채 엎드린 여학생을 묘사한 소품이었다. 최경태의 윤곽선 회화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이 소품 한 점과 나의 제안으로 2020년 새로 제작한 윤곽선 회화 소품을 이 전시에 비교 대상으로 내놓기로 했다. 2020년 신작은 소품인데도 불구하고 거칠고 단순하게 완성된 모양새인데, 이는 현재 최경태의 상황을 투영한다고 해석하면 될 것이다. ● 최나리는 이번 전시에 초대된 다섯 작가 중에서 유일한 코리안팝 아티스트에 속한다. 최나리의 종래 작업 연보는 색면과 윤곽선이 선점하는 팝아트 풍이고, 마요와 마토라는 남녀 캐릭터를 자기 브랜드로 가진 점에서도 전형적인 팝아트 계열이다. 어느 지문에선가 작업을 추동하는 모티프로 욕망을 지목한 그녀의 작가노트를 본 기억이 떠올라서 이번 기획과 맞닿을 거라 판단했다. 이목구비가 지워진 최나리의 인물은 벌거벗은 채로 화면에 출현하지만, 팝아트 특유의 앙증맞은 캐릭터와 화려한 색채의 화풍 때문에 모종의 욕망을 읽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팝아트 특유의 발랄한 화풍이 내면 깊숙한 욕망을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했다. 이번 기획전을 위해 초대 작가들 중 내가 신작을 제안한 건 최경태와 최나리 둘 뿐이다. 최경태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본의 아니게 투영한 작업을 내놨다. 최나리에겐 기존에 반복해온 그녀의 브랜드에서 한시적으로 일탈하는 작업을 제안했다. 최나리는 신작 3점 만들었다. 인체의 부분을 요약적으로 묘사한 2점은 기존의 그녀의 인물 캐릭터와 설명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성적 메타포를 간결하게 암시했다. 종래 여성 캐릭터 마토를 등장시키되 배경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마무리한 또 한 점의 신작은 여자의 망사 치마 패턴과 기하학 패턴의 배경이 교감하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김쎌_E.cell#9_종이에 혼합재료_73×103cm_2012
김쌜_E.cell#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30cm_2014

불과 4~5년 전부터, 이 사회의 문화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허구적 표현물에까지 경직되고 엄격한 잣대를 앞세워 여론몰이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검열의 명분으로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을 앞세우는 게 정당한 유행처럼 되었다. 허구적 표현물을 향한 이런 집단적 문화 퇴행은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되고 있다. 갤러리 유진목공소의 6월 기획전 『정직하고 선정적인 검정 윤곽선』은 세대와 연령을 초월해서 앙증맞고 귀여운 도상을 제조하는 윤곽선의 호소력을 역이용해서 윤곽선의 직설화법이 사용된 악의 없는 상상력을 주시하려고 기획되었다. 작품 속 윤곽선은 최근 한국사회의 자기검열의 시류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자, 우리 안의 정직하고 선정적인 욕망의 지표다. ■ 반이정

황소영의 갤러리 요가 클래스가 전시 기간 중, 일반인의 신청을 받아 갤러리 내부에서 진행된다. (월 3만원. 목 15:30~16:30 / 토 13:00~14:00 / 문의: 01098936672)

1.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30년째 운영 중인 유진목공소 옆에 자리한 화랑으로, 2019년 12월에 개관한 이래 2020년 초『서울신문』『국민일보』등 일간지와 여러 매체에 현역 미술평론가가 디렉터로 참여해서, "과거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 순간 잊혀진 중견 작가나 주목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조명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로까지 연계하는 화랑"을 표방하는 보기 드문 미술 갤러리로 소개된 바 있다.

2. 14세부터 55년간 줄곧 목수로 일한 윤대오 사장이 아들 윤종현과 운영 중인 유진목공소는 KBS-TV 교양프로 「낭독의 발견」 2010년 방송 등 대중매체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3. 목공소로 유명했던 홍은동 문짝거리에 재개발 바람이 일면서 목공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와중에 현재 남은 목공소 두 곳 중 한곳이 유진목공소다. 이곳은 '전통창호'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목공소다. 2019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방한한 첫날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배경으로 선 만찬장 상춘재의 전통 문창살 99짝의 교체를 담당한 목공소가 유진목공소다.

4.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운영한다. 반이정(1970) 디렉터/공동대표 ● 미술평론가.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한겨레」 「경향신문」등에 미술 칼럼과 시사 칼럼을 연재했다. 「교통방송」 「교육방송」 「KBS」 라디오에 미술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송은미술상 등의 미술상 심사위원과 많은 미술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 선발 심사위원을 지냈다.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예술판독기』 『사물판독기』 외에 여러 책을 썼다. 유튜브 채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를 운영하며, 네이버 파워블로거에 선정됐다. 이민재(1967) 매니저/공동대표 ● 前 중학교 과학 교사.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현대미술의 이해』 『모마 포토그래피』같은 시각예술 전문서적과, 물리학자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 같은 과학서를 번역했다. 윤종현(1983) 공동대표 ●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5년여를 충무로 영화계에서 『얼굴 없는 미녀』 『효자동 이발사』『거울 속으로』등에 조명팀으로 참여했고, 그후 수행자가 되기 위해 해인사와 불국사에서 1년 반여 행자 생활을 하다가 하산했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아버지 목수 윤대오 사장과 유진목공소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평생 미술 작가로 존재하길 꿈꾼다.

5. 갤러리 유진목공소가 기획하는 전시의 지향점은 왕성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덧 잊힌 듯한 중년작가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일과, 진가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미술가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갤러리의 지정학적 위치에 걸맞게 목공의 미학과 홍은동 목공거리의 역사를 주목하는 전시도 계획 중이다. ■ 갤러리 유진목공소

Vol.20200609c | 정직하고 선정적인 검정 윤곽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