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畵歌 감각기억 Sensory Memory

권세진_진희란 2인展   2020_0611 ▶︎ 2020_0731 / 일,월,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재)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23 (서초동 1449-12번지) 한원빌딩 B1 Tel. +82.(0)2.588.5642 www.hanwon.org

(재)한원미술관의 중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된 화가(畵歌)전은 한국화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정통성을 기반으로 작업의 완성도와 실험정신을 갖춘 전도유망한 젊은 한국화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작가를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주목한 점은 작업에 대한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 등 이들이 지니는 무한한 잠재력과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새로운 실험과 도전 그리고 작업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고민의 흔적들이 신작을 통해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을 했다. 오늘날의 회화는 매체의 다양성과 표현방식, 탈 장르화가 심화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본연의 순수성과 본질적인 의미를 성찰한다. 그중에서도 현대 한국화는 회화의 전통적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며, 동시대의 담론과 다각적인 조형언어로 재해석되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하는 화가전은 이러한 회화의 변주 속에서 다변화를 꾀하는 현대 한국화의 현주소와 향후 10년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 『감각기억 Sensory Memory』은 미시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환기하는 심리적 잔상을 은유한다. 미셸·로버트 루트번스타인(Michele·Robert Root-Bernstein) 부부가 쓴 저서 『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에서 관찰에 대해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예리한 관찰자는 모든 종류의 감각 정보를 활용하며,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이다."라고 서술했다.1) 결국 관찰의 목적은 기존과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감각적 경험과 지각을 바탕으로 대상을 파악한다면 접근 방식에 따라 장소와 사물의 풍경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곧 거시적 안목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권세진, 진희란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개별적 감정과 경험, 기억 등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그들이 재현해낸 풍경은 기억의 잔상 속에서 의미와 상징성을 탐색하는데 몰두하며, 작가 자신은 혹은 자신과 연결된 다양한 상황들을 스크랩하듯 경험된 시간이 내재하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권세진은 사진을 통해서 기억 속의 감정과 시간성을 표현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개인적 관심사와 경험의 관찰에서 재발견된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이를 디지털 편집 과정을 거쳐 정사각형 크기의 조각으로 해체한 뒤 다시 하나의 이미지로 재조합한 '조각그림'을 그린다. 진희란은 전통채색화 기법에 기반하여 주로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조감도(鳥瞰圖)의 시선으로 산을 오르내린 여정에서 채집된 이야기를 회화로 기록한다.

권세진_작은 연못_종이에 먹, 과슈_130.3×193.9cm_2019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낡은 책 사이에 끼워진 사진 한 장은 수많은 상황을 기억하며 잠시 잊고 있었던, 스쳐 지나간 기억을 소환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그의 저서 『밝은 방(Camera Lucida)』에서 수용자의 주체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사진의 기능에 대하여 서로 다른 유형을 소개한다. 하나는 스투디움(Studium)으로 지적 즐거움을 주는 정보로서의 사진이고, 또 하나는 푼크툼(Punctum)으로 화살처럼 장면을 떠나 '나'를 찌르며 감성적 즐거움을 주는 사진이다. 즉 우리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정서적 울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보통 하나의 사진에 공존하게 되는데, 이 책은 푼크툼의 현상학적 탐색으로 간주한다.2)

권세진_대림역 6번 출구_캔버스, 종이에 먹_181.8×227.3cm_2018

권세진은 일상의 틈에서 마주한 사소한 풍경과 기억을 수집하고 전통적 화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특유의 시각적 접근법으로 도식화된 풍경을 그린다. 사진은 그의 작업에서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도구이자 작업을 이루는 중추적인 매체로서 작용한다. 사진은 시간과 상호 작용하기에, 그 교차점에는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상기된다. 사진을 중심으로 시작된 일련의 작업들을 시기별로 정리해보면, 「흐려진 풍경」(2014) 시리즈는 작가의 유년기 시절 졸업앨범을 통해 기억으로만 존재했던 환영을 수집한다. 선명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탈색이 되듯, 종이에 아크릴 물감을 묽게 만들어 여러 겹 칠하는 작업과정을 거쳐 붓질의 흔적들을 통해 흐릿해진 기억과 마주한다. 전통채색화 기법을 응용한 「겹-풍경」(2016) 시리즈는 하천 주변에 조성된 길을 따라 발견한 돌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종이에 먹을 칠하고 부분적으로 겹겹이 쌓인 먹을 지워나가며, 다시 그 안에 색을 채우는 방식으로 종이에 안료가 흡수되는 강도와 번짐의 정도에 따라 밀도 있는 화면을 선보인다.

권세진_바다를 구성하는 741개의 드로잉_종이에 먹_190×390cm, 각 10×10cm×741_2020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조각그림」(2017) 시리즈는 작가가 매일 작업실을 지나가면서 보는 일상의 풍경을 포착하여 내면의 감성을 투영한 작업이다. 권세진은 자신이 처한 작업환경을 계기로 하루의 작업량을 미리 정하여, 매일 일상의 일부처럼 규칙적인 작업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이루어 나간다. 한 작품이 완성하기까지의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은 사실 녹록지 않다. 그는 수십 장에 달하는 작업량을 제약된 시간 내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종이의 크기를 10×10cm의 규격으로 고안하였다. 디지털 편집으로 그리드(Grid) 된 사진은 다시 종이에 옮기는 과정에서 먹으로 채워진다. 이때, 우연히 발생한 먹의 흔적은 정적인 순간이 동적으로 변해가는 시각적 변화를 일으키며 번짐과 겹침의 과정을 거쳐, 한국화 특유의 깊고 묵직한 농담을 구현한다. 이렇게 그려진 여러 장의 조각그림은 한 장 마다 시간의 단층을 드러내며 순간이 아닌 회화가 가지는 지속성을 담고 있다.

권세진_island drawing 2020-2_종이에 먹, 과슈_45.5×60.6cm_2020

권세진은 일상적인 오브제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형태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잘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island drawing 2020」은 「겹-풍경」(2016)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그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관조적 태도로 평범한 서울 도심의 하천 풍경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마치 작은 산수처럼 보이는 형상들로 탈바꿈시킨다. 그렇게 그가 도림천(道林川)3) 주변의 수풀 사이에서 발견한 풍경들은 시적인 은유나 사색이 담긴 새로운 형상의 내러티브로 전개된다.

진희란_백록담_순지에 수묵담채_90×192cm_2018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는 극명하다. 자연을 관망하거나 그 기운을 누리고자 하는 것. 진희란은 전통산수화의 명맥을 잇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산천을 진경(眞景)으로 그려내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산수화는 실재의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하지만 동시에 상상된 자연을 구현한다. 최초의 산수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종병(宗炳, 375~443)의 『화산수서(畵山水序)』에서는 과거 유람했던 명산을 그려 감상하는 것은 산수를 통해서 불교적 수련을 위한 것으로 즉, 마음속에 일었던 고양된 정신의 감흥을 다시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4) 이렇듯, 우리 옛 선조들은 산수를 즐기는 방법으로 자연을 찾아 산과 물에 직접 임하기도 하고 글과 그림을 통해 방안에 누워서 그림 속에 펼쳐진 맑고 시원한 자연 속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내면 정신을 해탈하고자 했다.

진희란_동관노고_순지에 수묵담채_80×120cm_2020

진희란은 산수화를 해석하는 태도와 형식, 그리고 작업에 대한 의미와 방향성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산의 감각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조형적 개념을 '담경(談景, 이야기가 있는 산수)'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산을 경험하며 내가 직접 보았던 것, 책이나 지나가는 사람이 전해준 그 지리에 관한 전설, 현장을 보고 떠오르는 추상, 산에 어우러진 산장과 법당 등의 사람들이 오간 흔적 등을 그려 산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한다."(작가노트 발췌, 2020). 그의 작업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마치 산속 일대를 거닐고 있는 듯하다. 작업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생동감은 아마도 답사를 통한 곳곳의 절경들을 채집해 옮긴 덕분일 것이다. 진희란은 북한산을 비롯한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우리나라의 명산을 오르내리며 그때의 시간과 함께 부유했던 다양한 감각과 감정들을 수집한다. 그는 당시의 현장성을 감각하고 기억하되, 스케치해온 풍경과 그곳에서 받은 여러 감흥을 회상하며 정리된 기억을 재구성한다. 화면에 옮겨진 풍경들은 장소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문학적 참모습, 미적 가치, 일화나 체험 등이 복합된 기억의 집합체이다. 즉 산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사유를 통해 작가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어 관념적이면서도 현실감 넘치게 구현된다.

진희란_뱀사골길_순지에 수묵담채_145.5×193cm_2020
진희란_뱀사골6경_순지에 수묵담채_75×33cm×6_2020

이번 전시에서는 지리산을 답사한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 실재와 기억 속의 풍경이 공존하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지리산 뱀사골의 높게 솟은 산봉우리와 거친 암벽, 그리고 수직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거친 협곡의 풍경들을 그린 「뱀사골길」(2020)은 산자락 아래 드리운 운무를 사이에 두고 기암괴석의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등산객들이 계곡을 끼고 길게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모습, 비탈진 바위계곡 아래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은 당시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듯하다. 이처럼 진희란의 산수는 사람과 자연 사이의 정신적 소통의 매개체로서 우리가 지각하고 이해하는 주관적인 풍경으로 치환된다.

진희란_개천천왕봉_순지에 수묵담채_130×193cm_2019

위에서 살펴본 두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하는 감성적 이미지들을 매체의 특성과 회화적 표현을 통해 작업의 완성도를 구축하는 데 부단히 노력해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잊힌 감성을 끌어내기 위해 때때로 과거를 소환한다. 현재에 소환되는 기억의 풍경들은 시간의 지층으로부터 파생된 소재들이다. 작가들의 시선과 정서와 감각이 포함된, 그렇기에 그 장소 안에 있는 작가를 느끼게 하는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두 작가의 감성이 내재된 우리의 풍경일 것이다. 끝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일상과 어떤 시공간적 거리감을 가졌는지 그 간극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대해 본다. ■ 전승용

* 각주 1) 이 책은 수년간의 연구와 조사를 걸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창조적인 사고를 위한 13가지 실천적인 비결을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13가지 생각도구에는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있다. ● 미셸 루트번스타인(Michele Root-Bernstein), 로버트 루트번스타인(Robert Root-Bernstein), 박종성 옮김, 『생각의 탄생-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Sparks of Genius : The Thirteen Thinking Tools of the World's Most Creative People)』, 에코의 서재, 2007, p.57.참조. 2) 김지현, 조재경.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푼크툼(Punctum) 표현방법 연구」『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제23권1호, 2017. p.139. 3)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구로구의 서울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부근에서 안양천으로 합류하는 약 14km의 지방하천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주요 역들이 하천을 따라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4) 조송식, 『산수화의 미학』, 아카넷, 2015, pp.105-107.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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