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ght of meaning

임길실展 / LIMKILSIL / 林吉實 / painting   2020_0617 ▶ 2020_0623

임길실_의미의 무게 1-3(weight of meaning1-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가이아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7-1 Tel. +82.(0)2.733.3373 www.galerie-gaia.net

실재(reality)가 된 연기 ● 예술작품에 임할 때 작가들은 자신을 한번 돌아본다고 한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떠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선보이고자 부단히 노력한다고 한다. 이러한 예술가의 심리를 본다면 이번 임길실 작가의 작품은 그가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 내면의 본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작품에 임했는지가 잘 보여준다. ● 특히, 이번에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연기'라는 주제 아래 개념성이 강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연기처럼 사라지고 연기 속에서 비추는 형태의 아른거림은 예전에 작가가 추구했던 아카데믹한 시스템에 비례하고 규범화된 작품을 표현하던 패턴에서 벗어난 예술이 라고 할 수 있다. '연기'는 요동치는 작가 내면에서 솟아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여기서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표현(express)은 자신의 내면을 밀어낸다는 의미로써 기나긴 세월 동안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존재를 연기를 통해 작가의 주관적 심정을 고백하고, 주체적 본질을 깊이 있게 사색하게 한다.

임길실_의미의 무게 3-1(weight of meaning3-1)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9
임길실_의미의 무게 3-2(weight of meaning3-2)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9

'연기(緣起)'는 본질을 드러내는 조형언어 ●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리히터의 작품은 그의 말대로 전통적인 예술 언어로 복귀하지 않고 구상성이 배제된 추상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리히터가 추구하는 불확정성은 임길실 작가의 '연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느낄 수 없고, 볼 수 없는 예술 언어 안에서 어떤 현실을 가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데리다가 말하는 초월적 의미의 기의가 아닌 무한 반복적 기표로 나타내듯, 실제와 다른 안갯속에서 모습을 감추며 미끄러져 내려가듯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작가만의 독특한 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형태와는 다른 감춰진 표상적 이미지인 연기는 실재와 실제가 서로 닮아있는 본질적 존재로 남아있다. 연기론(緣起論)에서 연기적 상호관계로 존재하는 유기체는 그물망과 본질적인 관계망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연기적 상호관계는 서로 다른 요소들의 공존과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연기 작품은 임길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형상이 차이로 이루어진 관계망 속으로 자기 스스로와 관계하면서 새로운 주체적 존재가 되어, 연기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존재와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연기를 자신의 본질적 실체로 해석하고 있다. 연기는 인연이 시작되고 일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시작은 시작점에서 어떠한 대상까지 선을 긋는 행위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주체와 주체, 주체와 타자와 연결하는 현상으로, 임길실 작가의 작업은 자신을 연기에 투영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 자체가 자신의 삶과 세계를 사유하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창조적 행위인 것이다.

임길실_의미의 무게6-3(weight of meaning6-3)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9

'연기(緣起)' 스스로 움직이는 실재 ● 이러한 연기적 텍스트를 통해 작가가 전개하고자 하는 예술적 사유는 자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문제에 대하여 천착하려는 것이다. 연기라는 개념의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주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비-은폐'적 실천으로, 현 존재와 연관하여 연기라는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자신을 성찰하고 그 의미와 근원을 찾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서 자신과 닮은 다른 새로운 존재로서 현전하고 있다. 이 현전이야말로 자신의 삶과 세계를 닮아있는 연기라는 시각적 언어로서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미적 대상으로 다가온다. ● 그리고 작가 자신도 자신의 본래 실재와 마주하면서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여정의 길을 보게 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임길실 작가는 연기의 변화무쌍한 형태나 연기 속을 빛이 투과되면서 드러나는 신비함에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왜일까? 작품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반대 개념인 자유롭지 못한 것, 규범적인 생활에서 오는 억압을 작품 안에서 새로운 자신의 존재와 귀결된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새로운 존재, 자신과 닮았지만 자유로움을 가진 타자를 '연기(緣起)'에서 발견하기를 임길실 작가는 바랬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의 현 존재에 대하여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자 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지점은 연기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사라지지만 존재했던 사실은 영속적으로 남는 것이다. 여기서 영속적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관계하여 존재함으로써 끝이 없는 영속적 존재로서 남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기는 사라지고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임길실 작가의 연기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살아서 움직이는 자신의 본질을 사유하는 존재적 상징의 요소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연기의 결과물이다.

임길실_의미의 무게8-1(weight of meaning8-1)_캔버스에 유채_116.8×116.8cm_2020

'연기(緣起)' 자유가 되다. ● 우리가 잘 알기로는, 연기는 공기 중에서 어떠한 것에도 통제를 받지 않고 부유(浮遊)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연기는 작품에서도 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작품 앞에서 연기를 보노라면 흐릿함 속에 자유로운 어떤 존재의 형상을 어렴풋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임길실 작가가 찾고자 했던 본질의 실체이며, 우리가 늘 마음속으로 가졌던 탈-규범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연기는 자연스럽게 형태가 변형되고 움직인다. 작가의 사유가 실체가 된 조형언어는 그가 가졌던 질문의 답이 실타래가 되어 풀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깊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상대를 대할 때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이러한 연기의 형상을 목도하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자유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고,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날들이 많다. 그러나 연기를 표현하고 있자면 작가는 자유함을 발견하게 되고 너그러워지며 포용력이 넘쳐서 스스로 세상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자가 되어버린다. 임길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리히터가 추구했던 불확정 속에 있는 영원함과 생명력을 발견하게 되며,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창의적 자유자의 작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이봉욱

임길실_의미의 무게7-3(weight of meaning7-3)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9
임길실_의미의 무게5-3-2(weight of meaning5-3-2)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0

의미의 무게에 관하여 ● 만약 어떤 의미가 실재적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그 무게를 우리가 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될까? 만약 모든 비물질적인 것들의 의미를 측량할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들의 본질에 한층 더 다가가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나의 작품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연기는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시각과 후각, 드물게 촉각, 청각, 또는 미각을 통해 인식될 뿐 물리적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조건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일시적인 현상과도 같은 우리의 삶의 모습과 연기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잴 수는 없겠지만 그 의미의 무게는 누구나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의미의 무게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역설적이다. ■ 임길실

Vol.20200617a | 임길실展 / LIMKILSIL / 林吉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