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앞에 두고

정인희展 / JUNGINHEE / 鄭仁喜 / painting   2020_0622 ▶︎ 2020_0718

정인희_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앞에 두고展_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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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0 유망작가 릴레이展 2

주최 / (재)행복북구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어울아트센터 대구시 북구 구암로 47(관음동 1372번지) 갤러리 명봉 Tel. +82.(0)53.320.5120 www.hbcf.or.kr

팬데믹 때문에 미뤄지다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 정인희 작가의 전시다. 작가가 제주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 전시가 벌어지는 대구 북구 어울아트센터와 물리적인, 또 인지적인 거리가 있는 탓에 아무도 그의 신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점은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지만, 어느 범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작업을 완성해 간 작가에겐 잘 된 점도 있다. 화가 정인희에게 있어 미적 실현은 한 점의 작품 단위로 완결되는 경우가 많다.

정인희_젖은 책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91×240cm_2020
정인희_책더미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91×182cm_2020

정인희 작가의 그림에는 미묘한 감정의 선이 있다. 이 선은 방향이라고 해야 하나, 각도와 구도를 잡는 조형성으로 드러난다. 작품 하나를 계획하는 단계에 이 선들은 절대적인 형식이 된다. 물론 대놓고 드러나는 형식이 다름 아니라 금속 표면 위에 물감과 펜의 잉크가 올라가는 회화의 변형이란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다. 작가 본인의 감정을 정리하는 기능을 맡은 선들은 많은 추상단색화 작업에서와 같이, 강제적이며 권위로 채워진 나머지, 본인이 왜 그걸 긋고 있는지 이따금 깜빡 잊는 라인들과는 다르다. 작가는 감각에서 비롯된 즉흥적인 구도의 형식 속에 더 자잘한 선과 색면 그리고 글자가 내용을 채운다. 그 내용이란 작가가 접하는 일상의 삶, 그리고 주변 사람과의 대화, 문학과 미술과 음악과 영화 감상을 통한 삶의 대리 체험 같은 거다. 또 다른 게 있나?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감정이 일렁이는 저장탱크의 게이지 눈금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작가는 그 원료를 뽑아서 그림에 옮긴다.

정인희_성산일출봉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91×80cm_2020
정인희_빨강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46×38cm_2020

내가 보기에, 정인희 작가에게 지난 몇 년은 조형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극적인 진전이 있던 시기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매끄럽게 채색하여 색·점·선·면 네 가지를 발랄하게 배치하던 놀이는 작가 유년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작가 앞에 펼쳐진 긴 삶에서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음영이 곧 글자들이다. 글자와 단어와 문장과 문단으로 짜인 텍스트 이전에 검은 펜 자국으로 밀집된 이미지가 화면 속에 펼쳐졌다. 알 듯 모를 듯한 글 내용에 내가 무슨 토를 달 수 없다. 딴 평론가나 큐레이터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매 작품 밑에 정보 캡션으로 각주처럼 설명을 남기는 것도 어색하고, 도록 출판물에 그 내용을 미주처럼 달 수 있는 사람도 그 작가적 생애를 반려하는 필자나 작가 본인이지, 우리는 아니다. 암호는 그냥 그렇게 남더라도 괜찮다.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그 문자들은 일종의 기호에 가깝다. 그래서 그 그림들은 실용성보다 심미성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디자인과 같다.

정인희_구름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50×80cm_2020
정인희_젖은 책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73×61cm_2020

그 모든 원리 때문에, 정인희의 회화는 경쾌하다. 괜히 있는 체하거나, 고의적으로 정서를 걸리적거리게 하는 게 거의 없는 그림이다. 하지만 그래서 작가가 속으로 품은 모험심이나 투쟁심이 드러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조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조신함은 그림 가운데 있는 산뜻한 색의 단일체가 어느 정도 풀어준다. 어느 정도의 장난기와 대담함이 뭉쳐져 오벨리스크처럼 확 솟은 그 색면체는 우리로 하여금 심각한 판단을 중지하라고 한다. 이건 작품에 들어간 거친 노고와 집중력까지 묻어버리는 겸손함이기도 하다.

정인희_한라산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91×80cm_2020
정인희_바람_함석에 아크릴채색, 에폭시, 텍스트 드로잉_65×81cm_2020

이런 형식의 회화가 대부분 비슷한데, 멀리서 보면 낱낱의 작품에 담긴 의미를 확인할 수 없다. 감상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둘러싼 양식미를 먼저 즐긴 다음에, 가까이 다가서서 앞선 문단에서 내가 밝힌 것처럼 세세한 부분을 살피며 궁금증을 풀어갈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성공적인 전시를 이끄는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참신한 제목이 포함된 전시 소식을 널리 알리는 기획의 솜씨가 있어야 될 것 같다. 그 다음은 그렇게 장소를 찾아온 관객이 유리벽 너머 벽면에 설치된 작품으로 시선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은 작품 앞에서 선 관객을 붙잡아 두는 그림의 내재적 구성미다.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않는다. 작가도 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아포리즘처럼 마음을 콕 찌르는 단순한 문장이 들어가기도 하고, 아예 집합적인 패턴으로 제시되는 다크 사이드가 있다. 바로 이 것. 조형의 그림자 격인 이 어두운 묘법을 작가는 발전시켜 왔다. 또 앞으로 그렇게 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불충분함, 삐뚤삐뚤함, 거침, 불안정성, 이와 같은 완벽하지 않음을 완벽히 재현한 역설이다. ■ 윤규홍

정인희_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앞에 두고展_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_2020

몇 해 전 사는 곳을 제주로 이사하면서 나의 생활에는 크고 미세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그리려고 하는 대상은 이전보다 명확해졌고 나는 그 대상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자연의 모습이든 사물의 모습이든 그것들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아내기 보다는 어떠한 해답도 감정의 동요도 얻으려 하지 않고 바라보기. 그것이 최근 내가 작업하는 방식에 있어 가장 크게 바뀐 지점이다. ● 다음은 환기하기. 내게 자연의 모습은 묘사할 대상이기보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말 상대다. 그 말을 나는 그리기를 통해 실행한다. 내 자신의 감정과 진폭을 자연에 보태고 싶은 욕구, 그런 것이 내 마음속에 있음을 느낀다. 해서 나의 작업은 '관성적인 묘사' 보다는 '내가 바라는 꿈의 환기'에 가깝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인간이다. ● 마지막으로 쓰기. 이것은 감각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 같다. 어떤 형식에 '갇히지' 않고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는' 것이 지금 내 작업의 목표이고 또한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다. ■ 정인희

Vol.20200622c | 정인희展 / JUNGINHEE / 鄭仁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