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드러내다 Disclose a flow

원병훈展 / WONBYEONGHUN / 元炳訓 / painting   2020_0624 ▶ 2020_0629

원병훈_200527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120×17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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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병훈 홈페이지_www.onebing.co.kr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인영갤러리 INYOU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3-4 (경운동 66-3번지) 인영아트센터 2층 Tel. +82.(0)2.722.8877 www.inyoungart.co.kr www.facebook.com/InyoungGallery

동양고전에 이르길 '모든 존재형상은 기氣의 취산聚散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모든 것들은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만들어 지는데, 흩어져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흐르다가 다시 모여서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히면 일부는 흙으로, 일부는 물로, 또는 보이지 않는 기로 바뀌어 흐르다 취합되어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서양의 원자론과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다. 물을 가열하면 증발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고 다른 원자와 어떤 식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물질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 내 작품에서의 선line은 이러한 기氣의 상징이다. 선은 그림에서 최소단위의 조형요소이며 어떤 식으로 취합되느냐에 따라 사실적인 형상을 보이기도 하고 추상적인 선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선들은 어떠한 질서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상이나 지구가 되기도 한다.

원병훈_180926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18
원병훈_180225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190×120cm_2018

이렇듯 기는 활동운화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낸다. 새싹은 나무가 되고 꽃은 져서 그 자리에 열매를 만든다. 이런 변화를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설명한다. 상常은 항상 그대로인 것, 항상 동일한 것으로 불변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제행무상이 세상의 본체이고 세상의 도를 깨우친다는 것은 이러한 무상함을 통찰하는 것이라 말한다.

원병훈_200523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116.8×80.3cm_2020
원병훈_200531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116.8×80.3cm_2020

나의 작업은 선을 이용하여 이런 변화하는 흐름을 드러냄에 그 목적이 있다.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 외부와 독립되어 구분되는 개체가 아닌 선의 흐름으로 임시로 만들어진 듯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마치 점토와 같이 엉겨 붙어 있는 상태가 아닌 금방이라도 흩어 질 듯한 모래알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캡슐 안에 물질 같은 상태가 아닌 외부와 끊임없이 관계하며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상태를 의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찍은 풍경은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켜 놓은 것일 뿐 실제의 풍경은 시간에 의해 계속 그 모습을 달리한다. 물론 사람이 변화를 인지하기에는 느린 속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은 보존을 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산화되어가고 있으며, 지구의 모습도 몇 억년에 걸친 끊임없는 활동으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고착된 이미지로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처음 생겨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이다. 이러한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나는 선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착된 이미지가 아닌 변화중인 상태의 이미지를 의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시간성을 표현하기보다 그 너머에 무상함라는 본질 자체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 또한 물리적 변화 뿐 아니라 무상함은 정신적인 영역에도 적용된다. 이념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관념들도 영원히 고착화 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시대와 사람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어 적용되기도 하고, 대립항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상보적으로 관계하며 세계를 만들어 가는 등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自我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은 자아에 대해 분석하고 정의하는데, 그것에 집착하여 잘못된 견해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자아는 외부적인 요인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 되어 지고 외부세계는 본질은 변화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나의 모습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한다. 제행무상의 세계 속에서 정의내리고 고착화 시키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성향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원병훈_200603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80.3×116.8cm_2020
원병훈_200604_디지털드로잉 후 피그먼트 프린트_80.3×116.8cm_2020

이렇듯 우리가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뿐 아니라 외부의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내 일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함이란 비관적 회의론이 아니다. 영원할거란 생각에서 비롯된 집착이 그릇된 관점를 만들어내는데, 거기에서 벗어나 삶과 세상을 좀 더 겸허하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또한 변화하는 순간의 찰나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마치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보다 몇 일만에 져버리는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 원병훈

Vol.20200624a | 원병훈展 / WONBYEONGHUN / 元炳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