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학 - 심화

김용남展 / KIMYONGNAM / 金鏞男 / painting   2020_0626 ▶︎ 2020_0709

김용남_천자문_화선지에 먹_135×880cm_2020

초대일시 / 2020_0626_금요일_06:00pm

2020 당진 이 시대의 작가展

주최,주관 / 당진문화재단_당진문예의전당

관람시간 / 10:00am~06:00pm 유튜브 '당진문화재단' 채널을 통해 온라인 전시감상물이 게재됩니다.

당진문예의전당 DANGJIN CULTURE & ART CENTER 충남 당진시 무수동2길 25-21 전시관 Tel. +82.(0)41.350.2911~4 www.dangjinart.go.kr

「2020 당진 이시대의 작가展 -다원 김용남」 -삶의 미학 -심화(心畵)- ● 어릴 적 묵향에 이끌려 조부모님의 서예에 대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붓을 잡게 된 김용남 작가는 당진지역 뿐만 아니라 국내 서예화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추적인 서예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당진에서 지역 서예 발전을 위해 후진 양성과 갤러리 운영을 함께 도맡아 하면서 끝없는 열정과 현대 서예연구발전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 2020 당진 이시대의 작가전은 지역 미술발전에 공헌한바 크며 현재와 미래의 미술을 조망해 보고자 시대를 빛낸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하는 것으로 작가 역량과 무게감만큼 이번 전시에 선정된 김용남 작가에 대한 관심과 시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1,000년이 훌쩍 넘는 한국 서예사 속에서 서예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 즈음에 현대 서예의 방향과 성격을 조심스럽게 모색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 국내 서예인구가 500만 여명에 이르고 서예를 전통적이고 정적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서예를 현대적으로 '시대 정신화'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 서예에 근간을 두면서 현대적인 조형으로 확장된 개념 작업의 서예가 요구되고 다양한 이념과 개념들이 여러 담론으로 현대서예의 방향과 감각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것은 서예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김용남_천자문_화선지에 먹_210×500cm_2020
김용남_靜中_화선지에 먹_70×70cm_2020

이번 당진 이시대의 작가전에 선정된 김용남 작가의 전시 주제는 '삶의 미학-심화(心畵)'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험적·파격적 서예작품을 선보이고 구조적인 서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확장시켜 나간 작업도 병행하여 재료의 확장은 물론 평면과 입체·설치 등을 통해 문자 이외의 소재들도 적극적으로 서예에 도입하고 있다. 특히, 천자문을 전서, 예서, 초서체로 써 본 것 외에 작업과정 중 나온 파지를 긴 나무막대에 이어 붙여 제작한 '서림(書林)-글숲'이라는 설치작품은 작품과정속의 흔적을 숲으로 끌어들인 설치 작품으로 서예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엿 볼 수 있다. ● 느리지만 고요하게 천천히 서법을 거역하지 않고 감각화 하고 있는 김용남 작가는 자신만의 삶의 미학으로 독창적 서예표현에 주목하고, 자유분방한 필획으로 타 장르와 소통·융합하며 예술적 생명력을 높이고 있다. 앞으로도 그에게서 서예발전의 다양화, 개성화, 예술적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서예의 확장 가능성을 엿본다. ■ 정규돈

김용남_空_화선지에 먹_70×70cm_2020

작가노트 ●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요즘, 힘든 역경을 이겨 내기위해 오늘도 묵향에 젖어봅니다. 맑게 비치는 어릴 적 시골마을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는 천자문 읽는 소리, 은은한 묵향을 풍기시며 차분한 모습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시던 조부님을 떠올리는 추억들은 붓을 잡게 된 동기이며 초등시절 습자시간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친구들의 관심속에서 자연스럽게 붓을 가까이 하게 되어 지금의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선인들은 글씨는 마음의 그림(書心畵)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낸 그림이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書如其人)이다 그리고 심수상응(心手相應)해야 한다' 라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모자란 듯, 진실이 담긴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의 밭을 갈며 흑백의 아름다움을 문자를 통해 찾으려 애써보았습니다. 이번전시에서 전서, 예서, 초서체로 천자문등을 써보았고 당진지역인적문화유산인 송익필, 심훈, 윤곤강시인등과 같은 문학인들의 작품일부를 전서, 예서, 해서, 행초서, 한글 궁서체, 판본체, 서간체 등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서림'이라는 작품은 어렸을 적, 습자한 파지를 친정아버지께서 불쏘시개로 쓰시며 "먼저보다 좀 좋아졌더라" 평가해주시던 오래전 추억을 생각하며 작품 준비 과정에서 나온 파지와 나무를 이용해 書林(글숲)이라는 주제로 나무에 붙이는, 작품과정속의 흔적을 숲으로 끌어들인 작업입니다. 자연의 숲속으로 들어가 보면 많은 여백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숲의 모습을 심상에 두고 지면에서 느껴지는 질감을 자연 속으로 들여와 보았습니다. 묵향의 작업들이 갈 길이 먼 느림의 미학이지만 서예를 통해 예술적 삶을 추구하게 하는 나의 삶의 미학입니다. ■ 다원 김용남

김용남_時中_화선지에 먹_63×68cm_2020

득어망전(得魚亡筌)과 무욕(無慾)의 향연(饗筵)하나. ●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봄날을 지나,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항상 그 몸이 깨끗이 하라(處染常淨)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산하(山河)는 철 따라 신록에서 녹음으로 바뀌어 아름다운데, 온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로 국민들의 걱정은 태산 같다. 더욱 정치권은 올바른 정책이나 시정(施政)을 통해 국민의 많은 지지를 얻도록 상대당과 끊임없이 선의(善意)의 경쟁을 해야 하나,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는 진영논리의 험악한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부디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잘하는 일에는 칭찬하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이들이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여 이를 실천할 의지를 국민들에게서 보이는 것이 정치인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김용남_나의 강산이여_화선지에 먹_70×130cm_2020
김용남_和_화선지에 먹_70×120cm_2020

둘. ● 우리는 모든 사유(思惟)와 행위가 전통이나 그 시대의 흐름에 맞닿아 있을 때에 우리 삶의 정체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복귀(復歸)나 정체(停滯)가 아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변화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예술가(藝術家)는 편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는 일상이라는 단순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이고, 일상 속에서 포함되어 있는 각종 모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변화는 곧 생명인 것이다. ● 더욱 서예의 역사는 오래되어 지금까지 축적된 창작 실천의 결과물과 이론의 집적(集積) 역시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이러한 서예발전 과정에 따른 사고(思考)의 확장은 동양 문명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현상과 본질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간들의 숙려(熟慮)는 급기야 서예 자체에 일정한 사상성(思想性)을 부여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또한 재료 자체에 대한 의미의 부여와, 이를 통해 특정한 사유(思惟)를 개진(改進)하는 것은 아마 서예가 유일할 것이다. ● 이처럼 서예는 오랜 발전 과정을 거쳐 동양 예술의 근간(根幹)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昨今)의 현실은 근대 이후 서구문물(西歐文物)의 무분별한 유입과 서구 중심적 가치의 횡행으로 서예가 침체와 부진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서예의 발전과정에서 전통의 고답적인 경직된 인식에 매몰되어 근대 이후 변화가 상실되었다는 점도 서예가 지난 시대에 머물게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초대전을 갖는 작가는 현실을 이기는 용감한 서예가요 변화를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그는 전통의 기저(基底)에서 변화를 지상명제(至上命題)로 여기며, 서예의 정체성을 꾸준히 쫓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뿐만 아니라 철학 등의 일상이 차원(次元)을 넘어 다른 차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다. 그렇다고 그는 덮어 놓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과거와 단절된 현대는 맹목적 몸짓에 불과하여 어떠한 방향이나 목적, 가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이러할 경우에는 계속적인 대체(代替)만 있을 뿐, 연속성이나 성숙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원은 진솔한 체험이 결여된 채, 선정적인 외관(外觀)만을 중시하는 표피적이고 인위적 것을 배제(排除)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성숙하지도 않은 채, 걷잡을 수 없이 빨리 표출해 내는 현대서예 사조(思潮)를 배격(排擊)하며 진정한 작가정신을 추구한다.

김용남_無爲_화선지에 먹_70×130cm_2020

셋. ● 아래는 다원(茶園) 김용남(金鏞男)의 이번 전시작품을 간단히 둘로 나누어 정리하여 보겠다. ● 첫째. 임서(臨書)작업의 완성이다. ● "처음에는 터럭만큼의 오차지만 나중에는 천리나 벌어진다.(毫釐之次,懸隔千里)"라는 말이 있다. 서예에서도 먼저 가장 기초적인 임서(臨書)를 충실히 해야 한다. 임서를 통하여 필획(筆劃)의 거리감각과 필묵(筆墨)처리, 결구(結構) 등을 익혀 문자를 거의 완벽하게 써 낼 수 있게 된다. 특히 형임(形臨), 의임(意臨), 배임(背臨) 중에서 가장 초보단계인 '형임'은 가장 공을 들려야 하는 단계로 적어도 십 년 정도는 이를 겪어야 한다. ● 이처럼 서예의 기본기는 땀 흘리지 않고는 체득할 수 없다. 더욱 이번 전시는 그에게 서예란 이론이나 사고(思考)실험의 도구가 아닌 삶에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실천이었다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그래서 "서예는 그저 삶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다원의 서예작업(書藝作業)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서예를 접한 후 가장 기본적으로 내리는 판단인 '잘 썼네', '못 썼네'와 같은 기초적인 판단마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즉, 전통서예에는 다양한 서풍(書風)이 존재하는 만큼 잘 쓴다는 것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추구한 바를 감상자(鑑賞者)에게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완성도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 서예를 발상(發想)과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단계는 다원의 학습기이자 서예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의 준비기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후 그의 작업은 일변(一變)하여 보다 정제된 표현으로 표출되었다. 특히 오체천자문(五體千字文)이라는 특정한 소재에 천착(穿鑿)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작업을 개별화함과 동시에 문자가 지니고 있는 조형적 특성을 극대화 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화선지 위에 필묵(筆墨)의 단순한 얼개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천자문이라는 특정한 소재를 수용하지만 이미 서예 특유의 심미적 조건, 즉 정신적인 경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둘째. 득어망전(得魚亡筌)의 실천이다. ●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는 '득어망전'은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이를 이루기 위하여 했던 일들을 잊어버림을 이른다. 서예 역시 충실한 기법의 습득 등의 임서과정을 거쳤다면 이젠 형상(形象) 등에 메이지 말고 자신만의 창의(創意)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得意亡形)는 말이다. ● 서예는 현상(現象) 너머에 자리하는 본질을 관조(觀照)하는 관념(觀念)의 세계이다. 이는 문자의 형상을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사변(思辨)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작업은 임서에서 비롯하여 점차 순수한 서예의 심미(審美)로 변화하는 추이(推移)를 보여 준다. ● 다원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일상(日常)에서 서예와 함께하였다. 이젠 법첩(法帖)을 임모하는 등 문자의 구상(具象) 단계를 넘어서서 추상(抽象)의 단계를 시도(試圖)하고 있다. 집필(執筆)과 용묵(用墨)에서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게 사용하며 필묵(筆墨)에 대한 자신의 고찰을 작업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유로운 순수한 필묵의 멋을 느낄 수 있게 함이다. 더욱 이번 전시에서 보인 다원의 작품은 그를 서예의 그윽하고 오묘한 세계로 인도하는 도구이자 수단이 되었다. 문자의 형상은 해체되어 공간을 부유(浮遊)하면서 더욱 자유로워지게 하여 추상의 단계로 접어들게 하였다. 이는 문자의 형상과 결구의 부담감에서 벗어남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그래서 필묵 특유의 그윽하고 은근하며 함축적인 표현을 더욱 심화시켜주고 있다. ● 결과적으로 볼 때, 그는 선지(宣紙)위에 선(線)과 면(面)의 다양한 변화의 모습과 새로운 재료의 사용으로 문자의 형상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추구하는 신선한 세계의 표출이다, 또한 전통적인 기존의 서예를 어떻게 현대적인 미(美)로 승화(昇華)시키고, 조화(調和)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결과이다. 아울러 그윽하고 은은한 무욕(無慾)의 필묵을 향한 현재 진행형이다.

김용남_파도를 모으는 섬_화선지에 먹_68×32cm_2020

넷. ● 서예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소통이다. 종적으로 관련된 역사와 횡적으로 연결된 현재 세상과의 소통이다. 아울러 서예는 동양예술 전통의 실체이자 본령(本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서예의 위상(位相)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다. 디지털로 대변(代辯)되는 현대문명의 상황은 독점적이고 수직적인 보편성의 구조에서 탈피하여 지역적 특수성과 차별성을 중시하는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렇듯 오늘날 서예가 처한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 다원은 충청남도 당진(唐津)을 무대로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서예가이자 교육자이다. 10여년 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의 서예교육강사과정 등을 거치며 학문과 서예를 겸하여 왔다. 또한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분의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다. 아울러 개인전을 비롯한 그룹전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며 현재 여러 곳에 출강하고 있다. ● 다원과 천학비재(淺學菲才)인 필자와의 동학 인연은 어연 15·6년을 이어오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필묵으로 일관(一貫)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그의 존재가 반갑기 그지없다. 그간의 인연(因緣)에 행복을 더하며 두서없는 글로 찬사를 보낸다. 부디 무한대의 정보와 스마트폰 속에서 간혹 잃어버린 소박한 희망을 다원의 작품에서 기억해 내길 바란다. (2020년 6월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總長 李永徹 두손모음) ■ 이영철

김용남_심화_화선지에 먹_70×130cm_2020

온라인 전시감상 프로젝트 'Gallery at Home' 코로나 19로 인해, 전시장을 찾기 어려운 관람객을 위해 전시장 투어 및 아티스트&큐레이터 토크, 전시연계 공연프로그램 '일월무' 등의 영상물을 유튜브 "당진문화재단" 채널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과 관람 바랍니다.

Vol.20200630e | 김용남展 / KIMYONGNAM / 金鏞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