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기억

김연수展 / KIMYEONSOO / 金娟秀 / painting   2020_0703 ▶ 2020_0719 / 월요일 휴관

김연수_바람을 보는 산_캔버스에 유채_145×10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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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홈페이지_www.flachware.de/yeonsoo-ki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www.instagram.com/_innsinn_

초록 풍경, 기억으로부터 ● 기억은, 지속되는 시간의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우리의 정체성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고. 또한, 기억은 다양한 감각 정보의 재구성으로서, 그 재구성의 주체는 정보가 만들어 내는 우리의 감정이다. 결국, 기억은 객관적인 감각정보를 주관적인 감정을 중심으로 버무려 놓은 일종의 지속적인 시간의 기록들이다. ● 관념산수는, 이렇게 우리의 기억에 많이 의존하여 그려왔던 산수화의 일종이었다. 거기서 기억에 의존했다는 말을 좀 더 깊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삶을 대하는 정신적 성찰에서 비롯되는 산수가 관념산수였다. 물론, 실경, 진경 산수 역시, 나름의 정신적 성찰이 반영되었지만, 온전히 정신적 성찰에서 비롯되어 온 것이 관념산수였다. 참고로, 실경산수는, 정확한 지리적 산세를 파악하기 위한 실용적인 기능이 강했고, 진경산수는, 우리 자연의 실제적인 산수에 화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담아 왔던 산수화였다. ● 김연수 작가의 초록풍경은, 관념산수를 현대회화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이미 본 풍경.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풍경. 다시 말해, 이미 본 풍경과 그 풍경이 자극한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다시 떠오른 풍경을 그린다. 관념산수가 도교의 무위자연을 이론적, 철학적 배경으로 가장 이상적인 산수를 통해, 그리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들의 정신적 성찰과 심신 수련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면, 김연수의 초록풍경은, 어딘가 우리의 감정을 안정시켜줄 수 있을 법한 각각의 기억 속. 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 준다.

김연수_바람 없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106×145cm_2020
김연수_안개 낀 초록들판_캔버스에 유채_106×145cm__2020

자연과 그 자연의 변화를 통한 감정의 자화상.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풍경은, 바람이 만드는 경치다. 바람이 없는 자연은,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꽃과 나무들은 씨를 뿌릴 수 없으며, 새는 날 수 없다. 구름은 흐르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좀 비약을 하자면, 바람은 지구의 숨이고, 바람이 없는 건 지구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 같은. 작가는 이런 바람이 만드는 미묘한 변화들을 감정과 함께 기억에 담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그 기억들을 시각화 하는, 감정의 자화상인 셈이다. ● 김연수 작가는, 많은 부분, 산수화의 준법에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찾는다. 이상적인 산수를 그리기 위해 붓을 놀리는 방법. 그것이 준법이다. 산을 그리는, 물을 그리는, 안개를 그리는, 사람을 그리는, 무위자연사상과 그 가치를 잘 표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산수를 그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한 준법으로부터 마른 붓을 비비고, 색을 번지게 하고, 찍고, 복식 호흡을 하듯 긋고, 색의 흔적이 남을 수 있게 돌리는 등. 그 만의 회화적 언어가 만들어 진다. 그 회화적 언어로 그려진, 작가의 기억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있을 나만의 풍경이기도 하다.

김연수_나주의 봄_캔버스에 유채_70×90cm_2020
김연수_나주의 봄_캔버스에 유채_27×35cm_2020

무위자연은 도교의 중심사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는 덕목이다. 무위는 일부러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즉,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지닌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지켜내는 것. 보기엔 그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 쉽게 말해, 자연처럼,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낙엽이 지고, 때가 되면 그 낙엽을 뚫고 새싹이 오르고…,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과하지 않게, 의도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따라서 무위를 명확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 자연인 것이다. ● 김연수의 초록풍경은 무위를 실현하고 있는 자연을, 이상적인 산수를 그려냈던, 관념산수처럼 자신의 감정이 가장 평안했을, 그때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 자체로 평온해 질 수 있는 그런 풍경. 하루를 돌아 보면, 뭔가 답답하고 잊고 싶은 장면들이 늘 떠오른다. 그리고 언제나 그 답답한 일들에는 누군가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 과하게, 너무 내 욕심만 채우려 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그런 반성이라도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들었으면 어땠을까. 초록이 가득한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듯이. 과하지 않게, 욕심도 없이. ■ 임대식

김연수_산 드로잉_캔버스에 유채_16×23cm_2020
김연수_산 드로잉_캔버스에 유채_16×23cm_2020

나는 초록을 담은 자연을 그린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혼합색인 초록은 온도감에서는 중성색에 속하므로 강렬한 느낌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이 들고, 심리적으로는 스트레스와 격한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본능적으로 초록의 자연을 추구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는 사회에 있으면서 과도한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인한 지침을 본능적으로 균형 잡기 위해서는 아닐까. ● 이동을 하며 스쳐지나간 자연풍경들은 지친 나의 감정들과 뒤엉켜 나의 기억 속에 멋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기억 속의 하늘, 산, 그리고 바다들은 다양한 색과 붓질을 통해 나의 감정들로 필터링되어진 채 풍경화가 된다. 내가 객관적인 자연풍경을 그릴 수 없음은, 그들을 마주했을 때, 순간의 감정이 이미 보고 있는 자연풍경에 이입이 되어 머릿속에 입력되기 때문이다. 안개나 바람 그리고 날씨에 따르는 하늘의 색, 그 색에 따라 달라지는 산과 바다의 색들은 나의 감정들을 형용화하는 요소로 적용된다. 안개, 바람등과 만나면서 부분적으로 뿌옇게 흐려지기도 하고 지워지면서 몽환적이거나 멍한 느낌을 극대화 시키듯이 말이다. ● 그렇듯 나의 풍경화들은 자연과 날씨를 빌려 표현하는 감정의 자화상이 된다. ■ 김연수

Vol.20200703d | 김연수展 / KIMYEONSOO / 金娟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