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의 한 가운데서 예술의 길을 묻다-작업 作業

Seeking passage of Art upon Pandemic-Art Work展   2020_0707 ▶ 2020_0920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0_0707_화요일_04:00pm

참여작가 구본주_김명숙_김승영_김창열_나혜석 안창홍_오귀원_이응노_이진우_장욱진 조성묵_최상철_홍순명_황재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전시실 2~4 Tel. +82.(0)2.880.9504 www.snumoa.org

미술가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 미술가의 작업은 여타의 작업과 무엇이 다른가? 이 전시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구촌을 휩쓰는 작금의 판데믹(pandemic) 상황이 이 주제를 매우 특별한 것으로 복귀시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열 네 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각자 상이한 경험들 속에서 자신들이 마주했던 세계와 치열한 교전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의 세계 내 경험에서 오는 태도와 그로 인한 예술작업의 속성으로 자신들을 재빠르게 당대적 흐름에 편승시키거나 영웅으로 자처하는 것을 더디거나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더딤이나 지연으로 인해 그들은 예술작업자(art worker)로 머물 수 있었고, 다음 세대와 세기의 기억에 편입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 예술의 새로운 규범(international art canon)이 될 만한 충분히 보편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예술가와 작업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숙_원숭이2(푸른원숭이)_종이에 혼합재료_240×320cm_2017
김승영_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6
김창열_회귀 199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48×333cm_1993

'머릿속 예술'과 작업 사이 ●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1933~2005)의 1969년 기획전 제목은 『당신의 머릿속에 거하라: 태도가 예술이 될 때(작품-콘셉트-과정-상황-정보)』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거하는 것만으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1968년 약 15만 달러의 후원금으로 기획된-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와 홍보회사 루더핀이 후원자였다-, 제만의 전시가 '머릿속'과 '태도'에 초점을 맞춘 것은 20세기 후반의 미술사에서 결정적인 행보였다.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에서 발원한 탈-오브제, 비물질 예술, 곧 '머릿속' 예술에 가속도가 붙었다. 태도만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건 예술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그 가장 큰 성과 두 가지는 생산량의 조절과 선전이 용이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바야흐로 도래할 글로벌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었다. ● 작업(作業. art work)은 태도에서 오지만, 태도가 예술인 것은 아니다. 태도는 "어떤 일이나 상황, 대상에 대해 생각하거나 느끼고, 행동을 결정하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그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작업'이라는 존재론적 번역과 물리적-또는 신체적- 구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는 이 결정적인 과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과소평가의 산물이다.

나혜석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63.5×50cm_1928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안창홍_화가의 심장 2_FRP와 알루미늄에 아크릴채색_150×138×138cm_2019
오귀원_공든탑_나무에 아크릴, 금박_225×80×80cm_2008

뒤샹에서 제만까지가 미적 규범화 된 시대에. 작가에게 작업이란 여전히, 그리고 대체 무엇인가? 『작업』展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작업』전은 조형이 개념의 유희로, 신체적 경험이 머릿속 계산으로, 형태와 색채가 태도로 쪼그라들고 홀쭉해진 역사에 대한 질문이다. 작업이 누락되거나 쇠락해온 예술의 역사, 뒤샹의 결정적 행보로부터 잭슨 폴락과 도널드 저드, 존 케이지와 조셉 코수스와 빌 비올라를 스쳐온, 마치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린 것처럼 과정 없는 결실들이 쏟아져 내렸던 시간대에 대한 재인식의 요구이다. ● 머릿속 예술이라는 도식의 기원은 사뭇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천상의 계단에서 만났던 천사들 가운데, 하프나 바이올린 대신 붓이나 나이프, 해머를 들고 있는 경우를 본적이 있던가? 이젤 앞에 서있거나 돌을 깨는 천사 말이다. 물질과 질료, 3차원적인 것들, 신체 혐오증을 동반하는 태곳적 플라토니즘은 오히려 지난 20세기에 만개했다. 신체노동이 수치스러운 것이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작업도 벗어나야 할 족쇄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문명의 거의 모든 ● 전선에서 신체와 신체노동을 포함하는 3차원 물질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예술을 비롯한 깨달음과 창조의 기관들이 점점 더 우리의 신체기관을 떠나갔다. 하지만, 작업이라는 수행적 과정을 동반하는 예술이 덜 정신적이거나 수준이 낮은 것처럼 간주되는 것은 그런 20세기가 자행해온 집단재학습의 산물일 뿐이다.

이진우_19-AC-29_캔버스에 한지와 혼합재료_279×420cm_2019
장욱진_닭과 아이_캔버스에 유채_41×32cm_1990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제공
조성묵_빵의 진화_폴리우레탄_가변크기_2008~9

작업, '뒤 늦은 자'의 더딘 예술 ● 저자의 죽음, 독자의 약진, 아이폰과 컴퓨터 화면이 일상을 조건화하는 상황에서, 작업(art work)의 의미를 묻는 것은 퇴행적인 인상마저 풍기리라. 적어도 지구촌을 휩쓰는 작금의 판데믹(pandemic) 상황이 이 주제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복권시키기 전까지는 적잖게 그러했다. 하지만,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문명의 산물들이 아니라. 한낱 바이러스로 인해, 질문하고 답을 도출하는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열에 시달리는 것이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신체라는 점을 새삼 마주하게 되면서다. 그렇다! 바이러스는 사변이 아니라 기관지를 통해 체내로 침투하고, 폐 세포를 공격한다. 삶과 죽음도 거의 전적으로 신체적 사건이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기호나 해석, 관점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이다. 굶주림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영혼은 신체와 첨예하게 결부되어 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결코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앙리 포시옹(Henri Focillon)이 말했을 때, 그건 비단 예술에만 국한된 성찰이 아니었던 셈이다. ● 같은 맥락에서 수백만 개의 색채를 구현하는 전자 팔레트의 등장, 물감을 개거나 나무를 깎는 신체 경험을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기술로 대체해야 할 것인가도 예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문제요, 삶의 예술의 문제다. A.R.과 V.R. M.R.(mix reality) 같은 시각기술로부터 열리게 될 미래가 기회일지 위기일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다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자문하도록 호출되었다는, 지극히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한 사실이다. 『작업』展이 예술작업, 또는 작업으로서의 예술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맥락이다.

최상철_無物-18-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181.8cm_2018
홍순명_다이아몬드 포레버-세실로즈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17
황재형_풍선껌Ⅱ_캔버스에 머리카락과 채색안료_162.2×130.3cm_2010~4

작업의 미덕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속성 하나가 우리의 옷깃을 잡아끈다. 이 자리에 초대된 열 네 명의 작가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그것은, 그것-작업의 속성-이 당대의 흐름에 편입되기에 유리한 형태로 영악하게 탈바꿈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최소한 매우 더디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인생의 한 때나 더 긴 시기 동안, 서구적 시각에 기대온 국내 미술 장에서 비주류, 타자로 분류되는 경험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이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소외를 견디면서였다. ● 하지만 작업으로부터 오는 역설적인 느림과 더딤, 그로 인한 고유한 지연으로 인해, 예술은 비로소 다음 세대와 시대에 영감을 주는 드문 행위 영역에 속하는 특권을 지니게 된다. 『작업』展에 초대된 작가들의 더딘 행보, '뒤 늦은 작업'에는 포스트 판데믹 시대가 요구하게 될, 어떤 필연적인 역할(integral role)을 하게 될 유산, 국제 예술의 새로운 규범(international art canon)이 될 만한 정신적 자산들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 심상용

연계 프로그램 작가와의 대화 - 2020.09.04(금) 15:00-17:00 - 2020.09.11(금) 15:00-17:00 큐레이터와의 전시 관람 - 2020.07.29(수) 14:00-15:00 - 2020.08.26(수) 14:0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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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707e | 판데믹의 한 가운데서 예술의 길을 묻다-작업 作業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