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동사 Pure Verb

손정은展 / SHONJEUNGEUN / 孫廷銀 / drawing.sculpture   2020_0722 ▶ 2020_0804

손정은_살 빛_혼합재료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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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은 블로그_blog.naver.com/madamshon

초대일시 / 2020_0722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제이콥 1212 GALLERY JACOB 1212 서울 종로구 북촌로 25 B1

나는 생각했다. / 신은 외롭고 권태로워서 홀로 흙을 주무르고 가지고 놀다가 / 어느 날 문득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어서 벗 삼고 싶었을 거라고 / 그리고 천지를 창조한 이후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 인간을 만들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우주를 인식하고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라고.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시인은 펜을 들어 /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첫 행을 쓴다. /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 ● 나는 하얀 종이를 한 장 앞에 두고 /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숨죽이는 절대적인 공백 속에 첫 번째 붓질을 시작한다. / 붉은 핏방울, / 그것은 생명의 첫 걸음. / 스며드는 살 빛. 후각과 촉각과 청각의 진동과 / 이미지가 육화되는 뒤엉킴 속에서 온갖 종류의 생물학적 변동이 교차한다. / 입이 눈이 되고, 눈이 귀가 되고, 귀가 골반뼈로 변했다가 다시 발 뒤꿈치 어딘가로 사라지는, / 감각의 metamorphosis / 향하는 곳이 정해져있지 않고 움직임만 남아있는 순간. / 목적어가 없는 순결한 자동사의 세계. ● 순간의 긴장감 속에서 / 나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조물주의 희열에 다가갔다가, / 다시 뒤로 물러나 심연을 들여다보는 해부학자의 눈을 가진다. / 손을 떼어야 할 때. 그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 내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 그 속에서 나는 숨겨진 세계의 비밀을 엿보고, 우주의 신비에 경탄한다. ● 죽어가는 선한 새 한 마리와 / 막 변태를 시작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곤충. / 소화기관이 지은 죄악들. 분노에 찬 목젖의 외침들. / 입을 벌리고 잦아드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무거운 심장 속에서 / 뒤를 돌아보아 돌로 굳어버린 오리는 붉은 땀을 흘린다. ● 이제 이미지는 스스로 시가 되어 노래를 부른다. / 조물주의 창조물인 인간이 작은 신이 되어 선과 악, 구원과 파멸의 갈림길 속에서 매 순간 선택을 해나가는 것처럼, / 나의 이미지들은 상승하고 하강하는 움직임 속에서 / 새로운 세계를 점쳐주는 훌륭한 인도자가 된다. ● 그리고 나는 다시 하얀 종이를 꺼내고 /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천지가 창조되는 최초의 그 시간인 것처럼. / 순결한 동사를 향해 / 호흡.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나는 언제인가부터 나의 창작이 깃털처럼 가볍되 심연처럼 깊어지기를 소망했다. 완결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기를. 매일 매일이 새로운 실험이자 첫 만남이기를. 그렇게 나는 드로잉을 시도하게 되었다. 드로잉은 창작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시작되고, 형태, 구성, 의미라는 예술작품의 완성을 향해 가는 의도 대신, 그저 하얀 공백의 화면 위에서 움직이고 존재한다. 나는 그러한 창작과정이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한다. "순간"과 "현재"만이 있는 존재 방식. 동일한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견고한 의미는 묘비명에 가깝고, 분석은 상상력에 대한 사망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반면 순간과 현재에 충실한 드로잉의 존재방식은 우리의 몸의 감각, 혹은 노래와도 같다.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드로잉을 통해 간혹 시 비슷한 글을 쓰기도 하는데, 시를 사랑하지만 감히 스스로를 시인이라 할 수 없으니, 글로 또 다른 드로잉을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것은 이미지가 자율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상상의 운동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표현에 따르면 "시적 상상력"의 세계일 것이다. 시적 상상력이란 본질적으로 동사(verb)의 세계이다. 즉 고정되고 갇혀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매번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로 재탄생한다. 나는 어떤 이미지에 대해 "이것은 식물로 변하고 있는 고기덩어리 같군"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상상을 짧은 단어로 기록하고, 다른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건 로드킬 당한 새의 눈물 같은데" 하고 그에 대한 문장을 쓴다. 이렇게 쓰여진 단어나 문장들이 어떠한 논리적 연관성 없이 연결되다 보면 드로잉과 같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손정은_드로잉 연작_종이에 수채_2020

입체는 최근 하고 있는 수채 드로잉이 조각이 될 때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데, 순간의 우연성과 손에 의한 촉각적 감각이 이미지를 육화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주무르고 매만지는 등의 행위를 통해 형상을 빚는 것은 조각이라는 매체 안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창작과정이다. 무(無)의 상태에서, 단지 손의 움직임에 의해 물질을 다른 무언가로 바꾼다는 것. 이것은 예술가의 손과 창작물 사이에 벌어지는 신비로운 변화(transformation) 과정에 대한 관심이다. 나는 드로잉과 마찬가지로 몸의 감각과 시간의 흔적이 조각이라는 덩어리로 남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물론 작가의 손에 대한 것은 현대미술 방법론이 나오기 이전의 전통적인 조각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오브제의 조합과 재배치를 통해 주제접근을 했던 과거의 작업 성향을 고려해본다면, 몸의 감각을 사물에 집어넣으며 물질을 육화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변화의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손으로 빚고, 두들기고, 쓰다듬고, 쥐어뜯고, 다독이는 조각의 방법론은 평소 나의 주제적 관심사인 성(聖)과 폭력, 사랑과 에로티즘의 문제에 대한 관심사와도 연결된다. ■ 손정은

Vol.20200722f | 손정은展 / SHONJEUNGEUN / 孫廷銀 / draw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