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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랩대전 ARTLAB DAEJEON
관람시간 / 10:00am~06:00pm 마지막주 수요일 08:00pm까지 / 종료 30분전까지 입장마감 월요일 휴관 (다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이응노미술관 LEEUNGNO MUSEUM 대전 서구 둔산대로 157(만년동 396번지) 신수장고 M2 프로젝트 룸 Tel. +82.(0)42.611.9802 www.leeungnomuseum.or.kr
미술, 사회, 정치, 그리고 인간 ● '정치적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라는 단어가 있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속명과 종명으로 구성된 이명법(二名法)을 고안했다. 린네는 그의 저서 『자연의 계통』에서 지금의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규정했는데,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후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등 인간에 대한 다양한 학명이 등장했는데, 이중 하나가 바로 '호모 폴리티쿠스'다. 인간을 특징지을 때 등장하는 '정치'는 실제로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사전적 의미로 '정치'는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사전에서는 국가의 의미로 확장시켰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물리적이거나 법 등 제도에 의한 강제적 해결이 아닌, 이해 당사자간의 토의나 대화 등의 상호작용으로 해결하는 고도의 기술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사람 둘이 모이면 필요하고 발생하는 기술이 '정치'라고도 할 게다. 이렇듯 인간 사이에서 정치적 기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그리고 인간이 많을수록, 각각의 이익에 집중할수록, 이 정치라는 행위는 더욱 고난이의 기술을 요하게 되고, 그 와중에 수렁으로 빠지기도 한다. 수많은 인간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 이정성의 작업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첫 출발선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작업 초기부터 이정성은 일관되게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사회 속에서 등장하는 정치는 곧 권력과 연결이 된다. 2014년 개최한 첫 개인전 「우아한 세계」에서 작가는 "현대사회에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부조리 및 일방적인 공권력, 폭력, 이에 대립하는 대중들의 저항을 다룬다."라고 밝혔다. 공권력의 폭력을 비판했던 레온 골럽(Leon Golub)에 영향을 받은 당시의 작가는 그보다 더 표현주의적인 붓 터치로 수많은 군상을 그려냈다. 수많은 군중이 둘러싼 가운데, 사자가 사냥한 얼룩말을 옆에 두고 포효하는 장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나 세월호 사태 등 역사와 사회 속 저항과 부조리를 건든다. 작가의 이에 대한 관심은 2017년 개최한 「일상이 역사가 될 때」에서도 계속 된다. 현실의 상황을 왜곡하는 매스미디어와 언론에 대한 풍자를 기록, 보존의 성격을 띤 청사진이라는 매체를 해체, 재구성함으로써 강조한다. 이렇듯 이정성은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대해 자신만의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다. 그가 관심을 드러내는 현대사회 속 권력의 부조리, 폭력이나 매스미디어의 악영향에 저항하는 대중은 결국 인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모여 힘을 모으고 그 힘은 저항의 원동력이 된다. 작가에게 대규모 군집 작업이 많은 이유다. ● 이번 작업은 지난번 '청사진'이라는 청색 작업에 이어 붉은 색으로 전개된다. '레드(Red)'는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레드 콤플렉스', '붉은 악마' 등 우리 현대사 속에서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번 작업을 단군신화에서 출발한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의미의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 작가는 '홍'의 의미를 '넓은(弘)'이라는 의미에서 '붉은(紅)'이라는 의미로 치환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붉은 인간', '레드 사피엔스(Red Sapiens)'다. '홍익인간'이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면, 지금까지 천착했던 작업의 흐름과 절묘하게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과거 작업이 사회의 부조리, 정치권력의 폭력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었다면, 이번 「레드 사피엔스」 시리즈는 이들에 대한 근원부터 파고든다. 흡사 인간의 시초를 찾아가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 7. 26. ~ 1999. 3. 7.)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뤽 베송(Luc Besson, 1959. 3. 18. ~ )의 영화 「루시(LUCY)」처럼. ● 앞에서 이야기한 인간의 학명과 마찬가지로, 작가 또한 '레드 사피엔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레드는 어리숙하고 방향성을 잃은, 미성숙의 의미다. 우리가 속된 말로 '핏덩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레드 사피엔스'는 '생각하지만 미성숙한 인간'을 뜻한다. 「레드 사피엔스」 시리즈는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스토리와 결합된 그들의 탄생부터 사회를 이루고,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일련의 작업 속에서 내러티브 화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세 가지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드로잉, 유화, 오브제 작업이다. 과거 「우아한 세계」나 「청사진」 시리즈와는 다른 화면을 드러낸다. 특히 표현주의적 붓질에서 좀 더 단순화된 화면과 원색의 색감이 눈에 띈다. 드로잉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강렬한 붉은 색의 인물과 검은 색 계열의 배경이었다. 눈과 입만 존재하는 레드 사피엔스의 무표정과 군상의 몰개성이 인상 깊었다. 유화 작업은 「레드 사피엔스」의 역사과 사건을 보여준다. 단군신화 속 곰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레드 사피엔스의 탄생을 보여주는 「거기」, 뒤집어진 방주 위에서 구조를 외치는 「아포리아」, 레드 사피엔스의 저항 앞에 감시와 통제를 감행하는 카모플라주로 위장한 감시탑이 위치해 있는 「빌딩」 등은 탄생 이후 미성숙하지만 호기심이 있는, 혹은 불안 속에 방향성을 잃은 레드 사피엔스의 여러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화적인 스토리 외에도 20대,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화면 속에 적고 마르탱 파주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레드 사피엔스를 통해 국내 사회와 정치를 통렬히 풍자하고 있는 「이름」이라는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평면 작업뿐 아니라 오브제 작업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바로 레드 사피엔스의 유골이다. 작가는 강가에 있는 돌을 수집해 이를 쪼개고 붉은 페인트를 칠해 발굴된 레드 사피엔스의 유골을 재현한다. 흡사 이사야마 하지메의 만화 『진격의 거인』과 비슷한 형상이다. 퇴행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진격의 거인'과 과거 신화의 세계와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는 '레드 사피엔스'에서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 직관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레드 사피엔스」 시리즈는 결국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와 그 사회를 휘감고 있는 정치, 권력의 문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작가는 초기부터 사회, 정치, 권력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이 거대 담론 속에서 항상 중심은 바로 인간이었다. 이를 이번 「레드 사피엔스」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그 근원을 풍자적으로 비틀어내는 것이다. 이번에는 과거 좀더 젊은 시절의 작가가 열정적으로 뿜어낸 작업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좀더 관조적이고 냉소적일 수도 있는 시선을 드러낸다. 빨간 인간들은 일종의 캐릭터화되어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불안을 드러내는 군상으로 표현된다. ● 이러한 하나의 무리화된 레드 사피엔스에 대해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모이거나 해체하는 과정은 인류의 생존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왔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수없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국가와 집단, 그리고 외톨이를 만들었다." 결국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와 권력, 개인의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정성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군집화된 사회, 공동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공동체와 그 극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것이 원래 무엇이냐는 질문의 한복판에 놓인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사회가 분열하고, 문화적 투쟁이 선동되고, 민족 국가가 몰락하고, 정체성이 과도하면서도 동시에 해체되는 시기에는 점점 더 파괴력이 커진다. 우리는 공동체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픽션은 사람을 죽이는 이유다. … 그런데 공동체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을 집단이나 사회와 구별 짓는 것은 무엇인가? 장뤼크 낭시(Jean Luc Nancy)에 의하면 공동체는 공동의 신화에 의해 생겨난다. … 낭시는 '공동체'가 여러모로 의심스런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유기체적인 운명 공동체의 개념은 정치적으로 반동적일 뿐만 아니라,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주춧돌이기도 하다. 신화에 근거를 두는 공동체의 환상은 낭만주의에서 되살아난 이래로, 나치즘 신화의 나락에서도, 민족주의적 인종관에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신화 자체의 총체적 파산 속에서도 실현되었다. …" (히토 슈타이얼 지음, 안규철 옮김,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워크룸 프레스, 2019), pp. 132-135.) 그리고 결국 신화를 중단하고 공동체가 아닌 개인들의 '나타남'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한다. (히토 슈타이얼 지음, 안규철 옮김, 앞의 책, p. 136.) ● 작가는 필자와 글을 위한 인터뷰에서 '생존'을 강조했다. 과거 조직화되고 이익화된 정치권력과 대중의 저항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이제 개개인의 생존이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레드 사이언스'의 신화는 더 나은 사회와 정치를 위한 개개인의 이해가 중요해짐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간(red sapiens)이라는 피조물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감정, 행동, 사건 등을 통해서 이 시대는 무엇을 만들어야 되고, 인간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지를 모색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정형화되고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빨간 외모를 가지고 획일적으로 행동하는 레드 사피엔스의 스토리는 역설적으로 각각의 개인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정성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우리 각자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생존이 아닐까. 결국 인간이 꽃보다, 사회보다, 정치보다, 권력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 류동현
Vol.20200804e | 이정성展 / LEEJUNGSUNG / 李政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