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

김호민_장석준_이경희_허수빈展   2020_0801 ▶ 2020_08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태평동 2110번지 전시장은 코로나19의 확산 예방과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생활방역 지침을 따랐으며, 이후 온라인 전시를 함께 진행합니다.

주최,주관,기획 /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후원 / 성남시_성남문화재단_성남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태평동 2110번지 2110, Taepyeong-dong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남문로143번길 3 (태평동 2110번지) 1,2층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은 성남의 원형인 광주대단지 시절 성남시 수정구, 중원구 일대에서 일어났던 주민 생존권 투쟁의 역사를 모티브로 김호민, 장석준, 이경희, 허수빈 등 4인의 시각 예술인이 태평동 빈집 2110번지를 활용하여 미디어작업으로 구현한 현장미술 전시이다. ● '선 이주, 후 개발'의 정책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남 원도심 특유의 좁고 가파른 골목과 붉은 벽돌건물의 스무 평 주택 단지를 무대로, 다른 한편에선 대단지 아파트 개발 계획에 따라 서민들의 이주가 반복되는 도심 환경 속에서 도시의 역사가 안고 있는 현실과 모순, 복수의 타자들과 형성해온 유기적 삶의 모습들, 자본화된 개발정책이나 제도적 장치 안에 남겨진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를 땅이라는 근원적 주제에 담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성남의 선주민인 광주대단지 이주민들의 주체적 기억과 사회적 집단기억의 심층으로부터 추출된 삶과 시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광주대단지사건이 갖는 장소적 가치를 오늘의 시점과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가의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파사드 뒤에서 바라본 장면 (광주대단지사건 당시의 주민과 현재의 주민 모습이 겹쳐 있다.)_ 사진(촬영_김동현)_2020

특히 태평동 빈집 2110번지를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하여 개인과 공동체를 둘러싼 삶의 이야기, 땅의 서사가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서 펼쳐지며, 주민 인터뷰, 실시간 영상, 현장 설치 및 해체, 증강현실 등 다양한 미디어예술로 마을 주민과 함께한다. 이를 통해 공간의 점유와 해체, 정주와 이주, 객관적 기록과 예술적 번역 사이의 문맥을 현장의 감각으로 더듬어볼 수 있도록 하며, 김호민, 장석준, 이경희, 허수빈 작가가 초대하는 고유한 방의 사유를 제안한다. 아울러 모든 전시의 과정을 영상으로 구현하여 전시장의 QR코드와 미디어 플랫폼인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대면 시대의 관객과 더불어 성남의 과거와 현재를 시민의 눈으로 조망할 수 있다.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주민 인터뷰 (자신의 영상 앞에 마주앉은 이순예 할머니)_ 단채널 영상(촬영_남지웅 감독)_빈집 1층에 모니터 설치_2020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주민 인터뷰_ 단채널 영상(제공_문승욱 감독)_빈집 1층에 모니터 설치_2020

광주대단지사건 ● 1960년대 이후 정부와 서울시는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된 도시 빈민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으로 서울의 판자촌 철거민들에게 도시기반 시설과 분양권 제공 조건을 내세워 13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구 이동을 감행했다. 그러나 당시 광주대단지에는 약속과 달리 생계 수단을 이어갈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생존을 위협당한 이주민들이 1971년 8월 10일 '성남출장소'에 집결하여 정부를 향해 지역 내 토지불하 가격 인하, 취득세 감면, 세금부과 연기, 긴급 구호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폭력시위로 확대된 것이 바로 광주대단지사건이다. 따라서 광주대단지사건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양산된 도시 서민들이 생존권 위협에 직면하여 자발적으로 정부에 대항한 최초의 민중 봉기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성남시의 전신인 성남출장소의 업무 및 단지 관할권을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넘기는 등 오늘날 성남시 탄생의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오픈스페이스 블록스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참여 작가 인터뷰_ 빈집 입구에 모니터, 영상(제작_황성빈 영상감독)_2020 장석준_모든 것들 위에 땅-광주 대단지 아카이브_고보조명 설치_2020

집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집이 / 집에 없다 / 집이 집을 나갔다 // 윗목이 방을 나가자 / 마루가 밖으로 나가자 /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 마당이 마당 밖으로 나가자 잔치가 사라졌다 // 그러는 사이 / 죽음이 집을 나갔다 / 죽음이 집 밖으로 나가 죽었다 / 집이 집을 나가자 / 죽음이 도처에서 / 저 혼자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문재, 「집이 집에 없다」 중에서)

들머리, 8월의 하늘 ●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2110번지에 다녀왔다. 빈집을 예술로 채우려는 기획이 궁금했고, 다 채운 뒤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7월 말과 8월 초순은 코로나로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공동체는 위기에 빠졌다. 49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동체는 늘 위기다. ● 버려두어 낡아 빠진 집은 폐허였다. 이미 오래전에 숨을 내려놓은 탓인지 한 모금의 산 기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남긴 흔적과 자취조차도 의미를 상실했다. 그 집의 몸은 앙상하게 마른 뼈만 남은 꼴이어서 마치 시간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아찔하고 애달팠다. ● 기획자, 예술가들과 빈집의 몸을 더듬었다. 텅 비었으되, 고스란히 남아서 마지막 증언을 들려주는 방들은 헐거웠다. 증언은 말이 되지 못한 채 흩어졌으나 예술가들은 그렇게 흩어진 것들을 꿰매어서 상상을 키우고 있었다. 귀로 듣는 상상은 실체가 없는데도 눈에 보였다. 너무나 선명해서 등골이 오싹했다. 집은 예술의 힘으로 마지막 숨의 온기를 틔우는 중이었다. 마치 이승에 말 한 마디 꼭 남기겠다는 듯이. ● 빈집의 상상을 머리에 달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 듯 수운(水雲 崔濟愚) 선생의 말씀이 일어섰다.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이여 지피소서. 청하고 비오니 맑고 밝은 신령이여 크게 지피소서(至氣今至 願爲大降)". 그 집, 마지막 '온숨'의 불씨에서 한울모심(侍天主)의 큰 조화가 엿보인 탓일 게다. 1860년 4월 5일, 수운 선생은 경주 용담골에서 하늘의 도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내내 한울님을 붙잡고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진리를 묻고 또 물었다. 동학이 서는 날이었다. 거대한 문명전환의 불씨요, 혁명의 '얼빛'인 동학!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은 떠밀리고 쫓겨난 조선 민중을 살리는 생명의 불씨였다. 온숨의 얼빛이었다. 그 불씨와 얼빛이 태평동의 한 빈집에서 지피고 있는 중이다. ● 빈집의 시간은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사건의 현장으로 내달렸다. 영구집권을 꿈꾸는 박정희의 심장에 내리꽂은 최초의 민란이 터지던 그 날. 3만에서 5만으로 불붙은 대단지 주민들의 분노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소리가 하늘로 치솟아 찌르니 8월 한 더위도 꼼짝 못하고 먹장구름을 몰고 와 비를 쏟아냈다. '아뿔싸! 이대로 뒀다간 큰일을 내겠구나!' 화들짝 놀란 정부는 온갖 거짓말로 분노를 가라앉히더니, 서둘러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체제를 수립해 버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하며 전태일이 분신한 지 1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 태평동의 집들은 그 때 들어섰다. 집의 역사는 그러니 오롯이 성남시사(城南市史)이고, 한국현대사일 것이다. 동학혁명의 그림자는 너무 멀어서 먼 일이라면, 4․19혁명은 불과 10년이었고, 전태일의 목숨은 주민들의 목숨과 다르지 않았다. 그 산 목숨의 찢어지는 외침으로 기둥이 섰고 벽이 섰으며, 구들에 불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집들이 반세기를 넘지 못하고 시나브로 스러지는 중이다. 예술가들은 희미해서 멀어진 것들을 불러 세웠다. 여전히 목숨이 위태로운 재개발지의 철거와 꺼진 구들의 불씨를 살폈다. 사람들이 깃들어서 품고 삭였던 분노와 회한과 가난의 세월을 채굴했다. ● 작품이 들어 찬 방들은 숨찼다. 문지방에 눌러 붙은 먼지가 걷히고 사람들의 발자국이 쌓였다. 벽으로 스몄던 세월의 그림자가 온전한 말로 되살아났고, 집터의 흔적들이 떠올라서 도시의 역사를 증언했다. 한 때는 사람의 몸과 더불어 따듯했던 구들이 실체를 드러냈고, 민란의 장면들은 빛의 벽화로 새겨졌다. 집은 50년 역사로 활활 거렸다. 집에 불어넣는 예술가들의 미학은 싱싱했고 뜨거웠다. 이곳에 위기 따위는 없었다. 공동체는 늘 위기였으니, 그 위기의 장면들에서 미래를 다시 세우면 되는 일이었다.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은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면서 미래를 밝히는 기획이요, 사건이었다.

김호민_Memories_한지에 수묵채색, LED_155×105cm_2020
김호민_검정 구두, 검정 고무신_한지에 채색, LED_45×81cm×2_2020

김호민, 기억하는 몸 ● 그의 작품들은 광주대단지사건의 장면들을 몽타주한 것이다. 특히 「Memories」는 몇 개의 장면을 하나의 화면에 오버랩해서 대단지사건의 역사적 실체는 물론,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적 화두를 키울 수 있도록 장치했다. ● 화면의 맨 위는 광주대단지 입구에 세웠던 거대한 입간판이다. 그 아래는 버스를 탈취해서 서울로 향하는 분노한 주민들과 기공식(起工式)에서 일군의 권력자들이 테이프 컷팅하는 장면이다. 국책사업의 기공식이 늘 그렇듯 광주대단지사업을 알리는 거대한 입간판도 유토피아적인 문장을 내 걸었다. 앉은뱅이 십자가 모양의 가로 구조물에는 "환영, 약진광주대단지"를 썼고, 양쪽 기둥에는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반공"(왼쪽), "우리는 광주대단지에 뿌리를 심는다. 방첩"(오른쪽)을 썼다. 가운데 기둥의 머리에 서울시 행정로고가 박혔고, 아래는 줄줄이 "사업개요/ 토지 350만평/ 이주 75000세대/ 인구 35만명/ 투자 56억원/ 사업완료 1973년/ 서울특별시"라고 썼다. ● 가운데 기둥 십자(十字) 바로 밑에서 양쪽 끝으로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려가는 모양이 딱 지붕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교회나 성당의 지붕 구조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을 어떤 '희생'의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리라. 예수사건의 핵심이 민중해방과 구원에 있었듯이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는 장면은 죽음을 각오하고 '생존권투쟁'에 나선 주민들의 숭고한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 버스 헤드라이트 사이에는 "배고푸다 직장달라"를 내 걸었고, 지붕으로 올라간 주민들은 "이간정책 쓰지말라, 단지시민 안속는다"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치켜들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처럼 그들도 수많은 민중들과 더불어 서울로 진군하는 중이다. 그런데 관객은 불현 듯 그 장면이 사라지면서 텅 빈 화면 아래로 기공식 테이프를 자르는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LED조명을 화면 뒤에 넣어서 의도적으로 이 두 장면이 겹치고 사라지도록 해 놓았다. 1971년 3월 20일, "광주대단지 제1공업단지 준공 및 '71주요사업 종합 기공식"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백두진 국무총리, 양택식 서울시장, 남봉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현지주민과 업계 대표 3만 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선거를 앞둔 전시성 준공식과 기공식이 끝나자 대단지는 잊혀 졌고, 사건에 연루된 22명의 주민들만 감옥에 갇혔다. ● 작가는 「Memories」의 양쪽 벽에 「검정구두」와 「검정고무신」을 배치했다. 「검정구두」는 기공식에 참석한 권력자들이고, 「검정고무신」은 1972년 1월 29일 공판정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대단지 사건의 주역들이다(이 사진은 당시 경향신문 머릿기사로 실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 소장본이다). 수묵으로 그린 그림들은 검은 방에서 희미한 빛무리로 반짝였다. ● 그의 작품들은 기억과 망각을 교차시킨다. 검은 방이 망각의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작품들은 그 망각의 공간에서 투쟁하는 기억들이다. 권력은 끊임없이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지우고 삭제했다. 기억투쟁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기억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무리 밖으로 밀려난 민중들의 몫이요, 성숙한 시민들의 몫이다. 먹그림을 바늘로 뚫어서 빛의 회화로 탄생시킨 작품들은 그러므로 '기억'이라는 '몸'의 실체일 것이다.

장석준_모든 것들 위에 땅-광주대단지 아카이브_빈집에 빔 프로젝터_2020
장석준_모든 것들 위에 땅-한 뼘 터 광주대단지_AR 증강현실_2020

장석준, 두 개의 실존 ● 그는 벌거벗은 대지를 올가미 씌웠다. 나대지는 헐벗은 땅이다.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집이 없으니 집을 벗은 땅이다. 광주대단지는 그런 나대지에서 시작됐다. 나지(裸地)였고 대지(垈地)였으나 비어서 참혹한 땅이었다. 맨땅이요, 그저 집터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사람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다. 기둥하나 없이 칼바람으로 깃들었다. ● 땅은 있으되, 정주할 수 없는 삶의 모습에서 그는 "문명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을 모두 흡수한 파괴적인 도시 진영의 생존 단면"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도시 진영'에는 사람은 없고 어두운 그림자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떠밀려서 살았고 이곳저곳을 흘렀다. 자본이 뭉쳐서 도시의 꼴이 갖춰질 때까지도 사람들은 그 도시의 온전한 시민이 되지 못했다. 생존하는 것은 도시였다. 땅이었다. 그러므로 선주민의 생존투쟁은 끝이 없었다. ● 그가 증강현실로 구현한 광주대단지는 '생존 단면'의 나대지로 등장한다.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 땅들을 올가미 툴(Lasso Tool)로 추출한 장면들은 겹겹이 성남시의 역사였다. 역사의 단층이었다. 사람들이 흘러와 처음 삶을 일군 단층의 맨 밑바닥이었다. 그러니 그가 보여주는 땅들은 성남시의 원형(archetype, 原型)일 것이다. ● 대단지사건 49년의 역사에서 이 원형의 해석은 아주 중요하다. 나대지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에 다름 아니다. 권력자들은 도시의 빈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비탈진 산의 나무를 잘라 나대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대지로 내몰린 대단지 주민들은 싸워서 땅을 쟁취했고 그곳에 도시를 세웠다. 태평동은 가난했으나 거기에 깃들어서 수십 년을 산 사람들은 당당했고 힘찼다. 그들의 삶이 지금의 성남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한국현대사 최초의 민란'이 타블라 라사에 새겨질 성남시의 원형이다. ● 「모든 것들 위에 땅_광주대단지사건 아카이브」는 숱한 나대지의 맨얼굴이다. 그는 빈집의 좁다란 거실에 나대지의 장면들을 띄운다. 집이 집에 없는 순간들의 나대지는 쓸쓸하다. 올가미 툴로 잘라서 보여주는 땅들은 "굴레에 갇힌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라는 작가의 말과 적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모든 것들 위에 땅_한 뼘 터_광주대단지」는 다르다. 3D로 스캔한 나대지는 AR 증강현실로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것은 모든 관람자들의 스마트폰에서 발현된다. 집 안 곳곳에서 출몰하는 증강현실의 나대지는 '나'의 한 뼘 터이다. 그는 말한다. "나대지를 선택하여 터를 만드는 순간은 모든 것이 채워진 도시의 현재 공간을 비우는 일종의 제스처(gesture)이며 삶의 터전인 대지의 원형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이 「모든 것들 위에 땅_ 한 뼘 터」의 층위는 한정된 용적에 중층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수직 구조이자 동시대 도시 생태계의 유기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 증강현실의 나대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을 하나로 뚫는다. 그때의 땅이 지금의 도시에 출몰한다. 없이 있는 땅들이 눈앞에 떠서 도시 탄생의 시원을 드러낸다. 질문한다. 스스로 답을 찾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나의 도시라는, 나의 대지라는 인식이 들어찬다. "내가 있다."는 자각이 첫 질문을 감싼다. '나'의 실존과 도시의 실존이 하나로 마주하고 화해한다. 두 개의 실존이 부둥켜안는다.

이경희_성남 땅_태평 4동 빈집 내 땅 파기(현장 작업 과정)_120×120cm_2020
이경희_성남 땅_태평 4동 빈집 내 땅 파기 작업 및 과정을 담은 영상_120×120cm_2020

이경희, 불씨의 고고학 ● 그 집의 작은 마당은 편안했다. 멍석하나 펼칠 수 없는 비좁은 마당이 환했다. 그 마당에서 집의 왼편을 끼고 돌면 그늘진 뒷골목 안쪽에 두 평 남짓의 셋방이 있었다. 그늘이 깊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이 산 시간도 그랬으리라,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갑자기 귀가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처음 찾은 날은 마당에서 곧장 1층 현관으로 들어가 뚫린 벽으로 그 방의 안쪽을 살폈고, 두 번째 찾은 날은 뒷길로 들어가 방에 홀로 서 있었다. 기획자의 안내와 작가의 설명이 귀에 꽂히는 동안에도 방은 내게로 오지 않았다. 힘이 들었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순식간에 빠져 나간 것 같았고, 그래서인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방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순간 장석준의 '두 실존'과 김호민의 '기억하는 몸'이 생각을 엄습했다. 몸을 휘감아 돌면서 만화경처럼 무언가 눈앞에 펼쳐졌다. ● "공기가 흉흉했다. 그 흉흉한 공기가 저기압을 불러 왔음 직했다.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 전단이 살포되고 벽보가 나붙었다. 시간이 되면 가슴에 달기로 한 노란 리본이 나뉘어졌다. 그는 방안에서 꼼짝도 않으면서 밖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을 예감케 하는 분위기였다."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중에서) ● 집의 뒷골목은 시공의 블랙홀이었다. 마당에서 셋방으로 가는 그 짧은 순간은 49년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셋방의 풍경은 흉흉했던 대단지의 시간을 현존으로 불러냈다. 1971년 8월 10일의 하루가 고스란히 2020년 8월의 하루로 건너와 있었다. 방안에 꼼짝도 않고 서서 무언가 심상찮게 벌어지고 있는 발굴 현장을 감지했던 그 순간, 나는 '그'와 마주쳤다. 시공의 이쪽저쪽을 가파르게 오갔던 몸은 현기증으로 멀미가 났다. ● 이경희는 그 방에서 구들장의 시간을 채굴했다. 안쪽 벽을 뚫어서 창도 만들었는데, 환한 마당의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가로 막힌 둑이 뚫리자 빛이 범람했다. 셋방의 숨통이 터졌다. 그렇게 쏟아지는 빛들이 방구들로 스며서 불씨로 타올랐다. 120x120cm로 파고 들어간 구들은 나대지에 세웠던 집의 시간으로 고스란했다. 「성남 땅」은 그것으로 '성남 땅'의 실체였다. 이 작은 땅의 깊이에서 한 도시의 벌거벗은 몸이 생짜로 드러났다. ● "오늘은 비도 오고, 작업보다는 그동안 어질러 놓은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파 내려간 역순으로 흙과 스티로폼, 시멘트, 장판, 나무와 종이가 담긴다. 이 모든 것을 우선 종류별로 나누어 담아놓았다. 뜯겨 나간 바닥 일부를 그냥 처분해버리기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일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노트, 2020년 7월 22일) ● 집의 구들은 심장이어서 아궁이 불씨가 죽으면 구들도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빈집의 보일러는 이미 오래전에 식어서 차가웠다. 그는 방구들을 해부했고, 밑으로 파고들어 뜨거운 보일러의 기운을 찾아 헤맸다. 나는 그가 파고 들어가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니체의 『아침놀』을 떠올렸다. 그는 뚫고 들어가며,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었다.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지만 가차 없이 전진했다. 오랫동안 빛과 온기를 맛보지 못하면서도 한마디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결국 아침놀을 보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은폐되어 있으며, 수수께끼 같은 일을 감수한 이유다.(『아침놀』 책세상, 2004, 서문 참조)

허수빈_목격(빈집 설치 과정)_목재망루, 썬팅 된 창문, 축소모형 야경세트, LED_가변크기_2020
허수빈_목격_목재망루, 썬팅 된 창문, 축소모형 야경세트, LED_가변크기_2020

허수빈, 삼신(三神)의 망루 ● 그의 구상은 3개의 계단에서 비롯되었다. 2층 안방의 문지방을 가로막되, 3계단을 올라 거울창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안쪽 방은 어두워서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나는/관객은 얼굴을 거울에 대고 거울의 안쪽을 실눈으로 살펴야 한다. 계단 망루에서 은밀하게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안쪽을 보는 행위는 어쭙잖았다. 뻘쭘해서 곧장 내려와 거실을 어슬렁거렸다. ● 거실에는 낡은 '만만 공판장' 간판이 걸려 있었다. 재개발지에서 떼 온 간판은 그 집의 거실에서 형광등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으나, 현실이 아니었다. 주인이 떠나서 텅 비어버린 공판장은 간판의 역할 따위를 요구하지 않았다. 불을 켜고 장소를 알려도 찾아올 이 없는 현실은 비현실이었다. 그 비현실의 간판이 거실로 와서 도시 재개발의 현실을 토하고 있었다. 꿋꿋하게 등을 밝히며 현실의 '비현실감'을 외치고 있었다. ● 삼신(三神)은 우리 땅을 마련하는 세 신이다. 환인 환웅 환검이다. 『삼국유사』가 그 세 신을 알렸다.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신사기(神事記)』는 시공을 초월한 삼신일체의 '한얼'로 그 신을 기록하고 있다. 또 삼신은 생명줄을 이어주는 신의 이름이다. 이 신은 집에 깃들어서 아기를 낳고 키우고 보살핀다. 신령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안택(安宅)을 할 때는 성주상 아래에 삼신상을 차린다. 불교의 불신(佛身)도 삼신이 있으나, 허수빈의 삼신은 땅과 생명의 신령을 뜻하겠다. ● 다시, 계단을 오른다. 삼신의 망루에 올라선다. 거울창 너머로 풍경을 엿본다. 실눈으로 가만히 응시하면 안쪽의 작은 집들이 들어온다. 삼신이 마련한 땅에 지었던 다가구 주택들이 어렴풋하다. 삼신이 점지한 사람들로 북적였을 집들이다. 그런데 그 뿐이다. 집들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서 떠오를 줄 모른다.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저 안쪽의 삶은 산 것이 아닌 듯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 닿지 못하듯이 저쪽도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한다. 망루에서 목격하는 저 심연의 풍경은 안타깝다. ● 그는 계단 옆에 큐알(QR) 코드를 붙여 두었다. 스마트폰으로 연결하니 철거당한/당하는 신흥2동의 풍경이 실시간으로 호출된다. 반세기조차 견디지 못하고 뽑혀버린 집들의 뿌리가 참혹하다. 두 세대 혹은 세 세대의 삶이 눅진했을 집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CCTV 카메라에 걸려서 스마트폰에 뜬 그 현실이 지금 성남의 현실이었다. 이 빈집의 현실이었다. 숨을 죽이며 카메라 안쪽을 보다가 거울창과 마주했을 때, 거기, 얼굴이 있었다. ● "가만히 몰입하여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제작된 모형들은 크기와 거리를 가늠 할 수 없게 변해버려 실제 풍경처럼 인식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인적 없는 그 어두운 골목에서 혹은 공원 가로등 밑에서 이제부터 벌어질 이 시대의 도시개발이 가져오는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게 될 것이다." (작가노트)

오픈스페이스 블록스_만만공판장_버려진 혹은 수집된 간판(앞뒤)_빈집에 설치_2020 '만만공판장' 간판 수집 현장(태평2동 마을 언덕)_2020

집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일까? 그 집을 두 번째 찾았을 때, 작품들은 집의 곳곳에 걸려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집은 어느 새 활기를 되찾았고, 어딘가 모르게 훈훈했다. 집의 주인들이 금방이라도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는 현관에 오래 앉아서 이순예 할머니가 들려주는 태평동 1761번지 집의 내력을 들었다. 그 집의 내력에는 할머니가 살아 온 삶의 무늬가 촘촘했다. 무늬를 타고 흐르는 기억의 편린(片鱗)이 집안 곳곳에 있었다. 시간은 무색했다. 사실, 이젠, 집이 집에 없었으므로.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展_태평동 2110번지_2020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은 집을 묻는다. 도시를 묻는다. 사람을 묻는다. 시간을 묻고 역사를 묻는다. 그 물음이 하도 많아서 답을 찾지 못했다. 묻어서 묻는 것인지, 물어서 묻는 것인지도 헷갈렸다. 그런데도 쉼 없이 어떤 물음들이 안에서 켜지는 걸 보면, 이 전시가 갖는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전시(展示)는 망각을 향해 돌진하는 전시(戰時)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히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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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804f |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