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밤 × 다져진 땅

윤종석展 / YOONJONGSEOK / 尹鍾錫 / painting   2020_0806 ▶ 2020_0823

윤종석_밤마실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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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주최 / 도로시(圖路時)×아터테인

관람시간 / 화,수요일_03:00pm~08:00pm / 목~토요일_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공휴일 휴관 화,수요일 06:00pm~08:00pm 예약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www.instagram.com/dorossysalon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이외 모든 시간 전화예약 환영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윤종석 YOON Jong Seok은 '주사기 화가'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주사기를 이용하여 가녀린 바늘 끝에서 나오는 물감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 수없이 많은 점들을 겹치고 또 겹쳐져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또 수없이 많은 선들을 포개고 포개서 또 역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윤종석의 작업은, 그의 작품은, 오래 전 그와 함께 일했던 큐레이터의 말처럼 "그 단정함과 치밀함에 숨이 막힐 정도"다. 조형에 대한 감각과 재능은 물론,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내야 하는 은근과 끈기, 나아가 성실함과 꼼꼼함이 수반되어야 하는 작업이 바로 윤종석의 페인팅 painting, 주사기 그림이다. ● 그런 윤종석의 드로잉 drawing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여름, 롯데월드타워 애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렸던 그의 개인전 『Plis - 주름』에서였다. 옷을 접어 만든 형상이나 천으로 덮어 숨겨진 이미지들을 다채로운 색점으로 표현한 그의 기존 유명작들은 물론, 단색 혹은 두서너 색으로 보다 단순하고 감각적으로 작업한 초창기 점작업과 새롭게 시작한 부드럽고 깊은 색감의 선작업들이 어우러지며 윤종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전시장 입구에, 페인팅과는 꽤 다른 (사실 처음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다!), 오묘하게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거친 느낌의, 꽤나 매력적인, 그의 드로잉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 것 같지 않은 잘 짜여진 촘촘한 점작업을 하던 그가,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작업한 느낌의 선작업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흥미로왔는데,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느낌이 강한 거친 선과 면 몇 개로 쓱쓱 그린 그의 드로잉이라니. 한 작가가 이렇게 다른 태도로 작업을 할 수도 있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후였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드로잉만을 모아 하는 전시를 슬그머니 제안한 것이.

윤종석_다섯 개의 달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_지혜로운 삶의 자세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드로잉 drawing이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을 기대할까. 사전적 의미로 드로잉은 주로 선으로 그린 그림, 색채(色彩, color)보다는 선(線, line)적인 것을 위주로 그린 그림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드로잉은 사전 준비가 없이, '곧바로' 그린 그림이다. 회화 painting에 비하면 즉흥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드로잉은 거칠고, 무엇보다도 '날 것'이다. 연필 하나 들고, 펜 하나 들고, 혹은 붓으로 그릴 수도 있지만, 보이는대로 혹은 생각나는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 가는 대로 그리는 것, 그것이 드로잉이다. 그렇게 선으로 그린 것만으로 끝내기도 하고, 때로는 색을 칠하기도 한다. 고전적으로 드로잉은 페인팅(회화)를 위한 밑그림이고 준비과정이었다 (프랑스어로는 데생 dessin 이라고도 하는데,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위한 도면을 데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드로잉은 때로 또다른 하나의 미술 작품의 형식으로, 그 자체로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흘륭한 미술작품이란, 그림이란 눈에 보이듯 현실을 잘 재현해 낸 것이었지만, 그래서 드로잉은 상대적으로 덜 완성된, 그저 페인팅을 준비하기 위한 밑그림으로만 생각되었지만 이제 모든 방법과 형식의 시각예술을 즐기고 있는 오늘, 무엇보다도 작업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우리에게,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닌 즉흥적이고 날 것인 드로잉은, 그래서 작가의 내면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무엇보다도 무의식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드로잉은 제법 흥미롭고 또 매력적이다. ● 윤종석은 드로잉으로 자신의 날들 days을, 일상을 기록하고 채집한다고 말한다. 매일매일 작가가 보는 것들 중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남겨두고 싶은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기록들 중에서 그날그날 작가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들을 다시 드로잉으로 옮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나눈 대화에서 그는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드로잉을 안그렸다고 했다. 드로잉과 글을 모아 작은 책(『낯익은 일상, 낯선 드로잉』, 도서출판 문장, 2006)까지 냈던 그가, 그 이후에는 한동안 드로잉을 잘 안그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동안 작업을 안했던가? 아니다, 오히려 그 기간동안 윤종석은 주사기 작가로 명성을 날렸고, 많은 수의 페인팅 작품을 발표하며 사랑 받았다. 많은 드로잉 작업 없이 말이다. 그러니까, 윤종석에게 드로잉은 그저 단순히 페인팅을 보조하는 밑그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드로잉과 페인팅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쪽은 직관적이며 거칠고, 다른 한쪽은 '치밀하고 단정'하다. 작가의 말처럼, 그래서 드로잉은 작가의 감정을, 마음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윤종석의 드로잉은 특히 그렇다.

윤종석_구르는 새집 (팔레 드 도쿄)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_사냥의 기술 4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26×36cm_2019

표현하는 형식과 태도는 조금 다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드로잉이나 페인팅이나 모두 같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 온 동료이자 친구인 김민기 학예사(대전시립미술관)는 최근 그의 작업을 논하며, 윤종석은 "눈 앞에 보이는 현실과 눈 앞에 보이지 않는 현실 너머의 다른 세계를 동시에 응시"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그랬다. 작업에 대하여 물어볼 때면 그는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며 보이는 것이 실체가 맞는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지, 실재와 실체, 실존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고, 찾는다고 쉼없이 반복했다. 실존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문제로 넘어오고, 작가는 그렇게 하루하루 켜켜이 쌓이는 시간과 나날을 무수한 점과 선을 켜켜이 쌓아올려 표현했다. 페인팅에서는 그가 겹겹이 찍고 긋는 점과 선의 레이어가 시간이고, 그의 드로잉에서는 그 드로잉을 그리기까지 그가 무수히 찍어 모아 쌓아 둔 사진(이미지)이 그가 겪고 쌓아 올린 시간이다. 틈 날 때마다 찍어 쌓아 둔 이 사진들 중에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문득 달라 보이는 이미지를 골라 그렸다는 그의 거칠지만 자유롭고 솔직 담백한 드로잉들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내면을, 의식의 흐름을, 그가 소비하고 보내고 있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는 중요한 것 같았지만 또 한때는 중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사건, 풍경, 사물, 감정들이 '보이는 것 그리고/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눈과 마음을 통해 36x26cm의 화면 안에 때로는 빼곡한 색면으로, 때로는 아주 간단한 선 몇개로 표현되는 것이다. 페인팅에서는 그가 겪고 고민한 겹겹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면, 드로잉에서는 그가 겪고 고민한 겹겹의 시간을 바탕으로 오히려 레이어 하나짜리의 심플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무거운 줄 알았는데, 어찌 보니 꽤 가볍게도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시간이었다. 윤종석이 말하는 '새털같이 가벼운 나날들"이 이것일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하지 않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했던.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보이는. 어두운 밤이라 안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오히려 어두워서 더 잘 보일 수도 있는. 가벼움과 무거움, 밝음과 어둠, 낮과 밤은 모두 함께이면서도 또 따로인 것들이다. 양면이지만 이면인 것들. 밝고 가볍다고만 생각했던 낮은 오히려 어둡고 무겁고, 어둡고 무겁다고만 생각했던 밤은 어쩌면 밝고 가벼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드로잉을 통해 『가벼운 밤 Light Night』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 "치밀하고 단정한" 페인팅을 하는 작가가 지난 해 6개월여 기간 동안 자신의 리듬과 감정선을 따라 다소 거칠지만 솔직하고 자유롭게 하루하루 켜켜이 쌓아 올려 그려낸 삼백여 장의 드로잉 중에서, 새털같은 나날들만큼 『가벼운 밤』을 이야기하는 작품 오십 여 점을 골랐다. 주사기 바늘 끝에 가려 좀처럼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손맛'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작업들이 담백하게 우리의 하루하루를 또 다른 방식으로 쌓아올리게 해준다. 별 것 아닌 것을 특별하게 만들고, 특별한 것을 가볍게 만들어 내는 매력을 뿜어내는 그의 드로잉 안에서 그가 켜켜이 쌓은 시간과, 내가 켜켜이 쌓은 시간이 맞닿을 그 순간, 『가벼운 밤』을 맘껏 즐겨보자. ■ 임은신

윤종석_네가 들여다 보이는 길가의 방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_순간의 순간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_떠날때는 미련없이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일상, 이중의 분산과 중첩 ● 일상의 기록. 쇼셜네트워크를 위한 개인 단말기의 과격하리만치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에게 일상은 언제든지 이미지로 기록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일상은 단지, 기억 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 할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기록된 일상은, 왠지 아련하고 막연한 기억으로 인한 로맨스가 결여된 듯 하다. 일상이란 말 그대로, 매일 반복되는 삶의 한 토대이자 기억의 용량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반복의 메커니즘이다. ● 다양한 경험들의 일반화 혹은 범주화로 인해 타인과 자기 자신과의 이해와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은, 오감의 경험들을 분산과 중첩이라고 하는 이중적 개념들로 현실에 반영하게 된다. 쉽게 말해, 어제 내가 겪었던 하루의 경험들이 오늘 내가 겪고 있는 하루의 경험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는 것. 내가 미래를 알 수는 없겠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겠다는 믿음과 그로 인해, 내가 취하고자 하는 행동에 대해 자기 점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준과 정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일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신호들에 대한 이해의 틀로서 분산이고 중첩이다. 요컨대, 일상의 경험들은 언제나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인가 다를 것 같은 기대 뿐 아니라 늘 다른 무엇인가가 벌어진다는 것. 중첩되면서도 언제나 다른 무엇인가로 분산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을 살 수 있는 이유인 듯도 싶다.

윤종석_연상작용 (David Hockney)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_끝없는 욕망_종이에 오일 파스텔과 연필_36×26cm_2019

윤종석 작가의 일상은, 기록되었다기 보다 기억되었다가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매 순간 버릇처럼 전화기에 담았으니, 일상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엔 이것을 기록해야만 하는 목적의식이 없다. 말 그대로, 무의식. 오감이 흐르는 대로 하루의 경험들이 무의식적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그가 남기고자 했던 그것들은, 그렇게 기억되었던 일상이었던 것 같다. ● 누구나 겪었을 일상이 나에게만 특별해 지는 순간. 혹은, 역사적으로 전세계인들이 동시에 겪었을 그 일상이 다시 반복되고, 중첩되는 그 날. 윤종석 작가는 그날의 경험들을 다시 기억하고,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이든, 역사적이든 중첩된 일상들을 쌓는 작업을 하게 된다. 드로잉으로는 매일매일 분산되는 일상을 문학적으로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 만 번 찍어 그리는 주사기의 점으로 중첩되는 역사적인 그날을 그린다. 그것이 상당히 슬프고 위험했던 그날이었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그 날, 그 일상을 겪었어야만 했고 그것으로, 지금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 윤종석 작가는 그의 화면에 늘, 두 가지 이상의 감춰진 의미를 담아왔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정신세계도 그렇지만, 언제나 우리는 다양한 자기 욕구 실현으로부터 혼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물론, 그 혼란에는 반성과 성찰이라고 하는 자기 검열로 기본적인 도덕성과 윤리적 사회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누군가 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면서도 그 구조 속으로 서슴없이 뛰어들게 되는 삶. 거기서 드러나는 다양한 현실의 의미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일상의 순간들을 기억했고, 직접적이지만, 지극히 시처럼, 소설처럼 드로잉했다. 그의 중첩되는 일상과 분산되는 일상의 무게만큼, 우리의 일상 역시, 매일은 분산되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살았던 그 날, 그 일상이 역사적인 순간과 중첩될 수 있음에 대해. ■ 임대식

Vol.20200806c | 윤종석展 / YOONJONGSEOK / 尹鍾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