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共-産 sym-poiesis

유비호_이능재_이원호_이윤석_조은용展   2020_0810 ▶ 2020_0925 / 일,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_부천시_부천문화재단 주최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기획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ALTERNATIVE SPACE ARTFORUM RHEE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조마루로105번길 8-73(상동 567-9번지) Tel. +82.(0)32.666.5858 artforum.co.kr

'공-산 (共-産, sym-poiesis)'의 미래로 접속하며. ● 두어 해 전부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유행처럼 휩쓴 패러디가 있다. 두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인공지능 로봇의 이미지를 게시하고, 여기에 인간을 질책하는 투의 문구를 적어두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디가 웃음을 유발하는 소재로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와 사이보그 인간, AI와 로봇 등이 우리들 일상에 이미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예증한다. 인공지능이 새 시대의 패러다임으로서 전 국민의 뇌리를 스치게 되었던 대표적인 계기로는 지난 2016년의 '알파고 쇼크'를 꼽을 수 있겠다. 반상 (盤上)을 호령하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3연패 후 1승을 거두었던 이 사건은 여러 의미에서 지구촌에 충격을 던졌다.

유비호_공조탈출(公租脫出,Mutual Escape)_퍼포먼스, 워크샵 기록물_2010~1

AI가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아득한 불안감은 단연 주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고도로 발달한 자동 기계와 이것이 인간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공상은 기실 알고 보면 고전고대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가령 『일리아드』에 따르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황금으로 만든 소녀들을 조수로 두었는데,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과 똑같이 보이고 이해력과 음성, 힘도 가졌으며 신들로부터 지식과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고대판 AI'인 셈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일 모든 도구가 우리의 명령을 받거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제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면, 조수나 노예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계 문명의 발달이 가져올 지각 변동을 정확히 예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AI의 전망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만이 우세한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인간과 AI 사이의 공존을 꾀하고자 하는 의식도 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바로 이러한 AI의 발전과 이 기술을 토대로 하는 4차 산업 혁명의 여명기에서, 대안공간 아트포럼리는 예술 및 예술가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의 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와 같은 시도는 지난 2017년에 아트포럼리가 기획한 『거의 딥러닝 프로젝트』에서 처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이 현대미술과 이미지에 대해 자기학습을 하게 될 경우, 기술시대의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지 의문을 제기하며 추진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인문사회학과 예술의 교류를 추진한 프로젝트 『파도타는 키잡이』를 통해 4차 산업 시대를 둘러싼 이슈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능재_Jetzt hier 2020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20

요점은 기계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앞서 언급한 알파고와 미래영화에 나오는 최첨단 기계들은 '스스로 최적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사이버네틱스 (인공두뇌학) 학문을 모태로 한다. 사이버네틱스는 1948년 미국의 수학자 위너 (Norbert Wiener)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키잡이 (舵手)'를 뜻하는 그리스어 'kybernetes'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토록 절묘한 어원이 암시하듯이 오늘날의 기계와 사이버네틱스의 유기체인 사이보그는 스스로 학습하는 존재다. 말인즉, 오늘날 우리 인간과 사이보그 사이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해졌다. 따라서 인간은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이자 기계 접합체'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4차 산업 시대의 예술에 접근하고자 했던 아트포럼리의 장기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주체의 입장에서 기계를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예술가 스스로가 기계와 묶여진 사이보그로서 작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2019년 아트포럼리가 진행했던 4차 예술 프로젝트가 『우리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을 달게 된 것은 이러한 존재론적인 전환을 향한 응집력을 보여준다. 인간의 독립적인 정체성에 의문을 표하는 이 글귀는, 서구 근대주의의 모순을 폭로했던 라투르 (Bruno Latour, 1947~)의 저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원호_적절할 때까지Ⅱ_2채널 영상_00:20:00_2019

이질적인 복수의 종 (species)들이 한데 뒤섞여 모여 사는 세상. 이제 예술은 혼종적인 것들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담론을 생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공생의 길은 인간과 전혀 다른 종으로부터 배워야만 실현 가능하며, 한층 획기적인 관점의 변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동등한 행위소'인 종들이 우연히 조우할 때에 형성되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뒤집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인간만이 차지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믿어왔던 주체의 자리에 기계, 가축, 바이러스, 세포 등을 배치하는 것이다. 환언하자면 여타의 복수 종들과 상호의존하며 공생하는 '객체'로서 인간 존재를 정의하는 사유가 필요하다. 2020년, 대안공간 아트포럼리가 새롭게 추구해 나갈 키워드로 '객체 지향'을 내세우게 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윤석_안녕(安寧)_퍼포먼스, 무대재료_가변크기_2020

하지만 인간-비인간을 나누어 왔던 장구한 대분할의 벽을 부수고 인간 이성의 월권을 자인하는 패러다임이란 단기간에 확립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아트포럼리는 객체의 시야를 틔울 수 있는 제일보를 내딛기 위해, 먼저 이 세계를 '공-산'의 산물로 바라보고자 한다. 공-산은 페미니스트 과학사가인 해러웨이 (Donna Haraway, 1944~)가 주창한 개념이다. 그 옛날 마르크스는 모든 계급과 소유 법칙이 철폐된 '공산' 사회를 꿈꾸었지만, 사실 인간과 비인간은 어느 누구도 서로를 독점적으로 소유한 역사가 없이 상호의존의 관계로 성실하게 말려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공-산이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적 공생 관계를 지향하는 공-산의 사유는 인간과 자연, 공간, 인공물, 기술 등이 불분명한 경계로 가깝게 연결되는 4차 산업의 시대에서, 삶의 지표를 설정하는 준거틀이 된다.

조은용_달구경 가자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0

전술하였듯이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엇갈린 명암을 안고 이미 목전에 당두하였다. 하지만 결말은 아직 열려있다. 공-산의 드라마를 이끌어갈 객체들이 과연 누구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이 객체들은 느닷없이 서로와 맞닥뜨리며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수의 종들이 자유롭게 유영하며 씨줄과 날줄을 엮어내는 패턴은 머릿속을 갖가지 몽상으로 가득 채우는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재료가 된다. 우리의 몸을 당장 생물학적으로 따져 보아도 상상의 보고 (寶庫)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몸을 구성하는 전체 세포들 중에서 단 10 퍼센트의 세포들만이 인간의 게놈으로 채워져 있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세균과 원생생물의 게놈 유전자를 갖는 까닭이다. 결국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도 보증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세포들이 친밀하게 살고 또 서로를 잡아먹는 군체이자 소행성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하이브리드로서 함께 살아가는 패턴을 잘 직조해내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낯선 미래를 앞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이질적인 연결망을 창출해낼 것인가? 사이보그이자 행위소, 객체로서의 예술가들이 공-산의 미래를 둘러싼 나름의 고민을 담아낸 이번 전시와 함께, 상호의존과 공생의 토양 위에 세워질 세계에 대해 향후 더욱 깊은 공명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 조은영

Vol.20200810b | 공-산 共-産 sym-poiesi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