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회화의 태도 Untitled: Frame of Painting

이강욱展 / LEEKANGWOOK / 李康旭 / painting   2020_0910 ▶ 2020_1107 / 월요일 휴관

이강욱_Untitled-12037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200cm_201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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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사전예약제)_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Tel. +82.(0)2.534.2033 laheengallery.com

회화로서의 태도 ● 이강욱 작가의 회화는 태도를 갖는다. 이 태도는 작가 개인의 태도가 작품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 시공간에 독립적으로 현존하게 될 회화 그 자체가 가질 수 있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미술재료가 캔버스에 닿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다. 이강욱 작가가 그림에 대한 학술적인 맥락을 수집하는 과정은 작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행위가 가지는 의의를 과거 선인이 연구하고 경험한 논문에서 발견하고 입증하는 절차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 현재까지 연대별 시리즈를 살펴보면, 실제 체세포를 확대하고 물리적인 크기 개념을 해체하여 새로운 시각의 지평을 소개한 'Another World’(1998-2000), 상대적인 거리에 따라 보이지 않던 시공간을 발견하여 드로잉 선, 쌀알 유닛, 비즈 등 다양한 구성요소로 실험한 'Invisible Space’(2001~2010), 도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을 이용하여 우주적 관점으로 확장함으로써 온전히 회화에 몰두했던 'Untitled’(2011~2014) 시리즈가 있다. 이후 'Gesture’(2015~) 시리즈는 작가의 회화에 들어가 있는 여러 시그니처 필치를 화면 속 레이어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흰색’으로 귀결되는 일종의 톤(tone)을 선보인다.

이강욱_Untitled-12037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200cm_2012
이강욱_Untitled-15038_캔버스에 혼합재료_80×130cm_2012

이번 전시 『무제: 회화의 태도』에서 다시 선보이는 'Untitled’ 시리즈는 이강욱 작가가 그 이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태도의 종합을 보여주는 작업으로서 충분히 재조명될 수 있겠다. 당시 이 작업을 기점으로 작가는 비로소 작품 주제를 자신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강욱 작가 고유의 회화적 제스처(gestural brush)를 자각하고 'Gesture’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Untitled’ 시리즈 이전 작업은 인간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과 세포 분화 현상과 같이 너무 작은 나머지 사람이 미처 알아차릴 수 없는 미시적 관점 사이에서, 크기와 거리의 괴리감을 과학기술을 이용한 마이크로 단위의 다양한 미립자 형태를 발견하고 실제로 이것을 화면에 확대해 그렸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학학적 형태와 자율 드로잉과 같은 곡선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추상화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대상과 실제 대상이 지닌 세포의 형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린 상대적으로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 작업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강욱_Untitled-12044_캔버스에 혼합재료_97×162cm_2012
이강욱_Untitled-140233_캔버스에 혼합재료_95×160cm_2015

이강욱 작가는 이렇게 생물학이나 물리학을 실제 연구함으로써 실존을 물리적으로 입증하고 시지각의 범위에 따른 공간의 확장을 회화를 통해 예술적으로 제안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 자체가 학술적인 근거가 되고 회화가 스스로 현존하고 자위할 수 있는 객관적인 논리가 되었다. 반면, 'Untitled’ 시리즈는 실존해 있는 대상 너머에 있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이강욱 작가가 발견한 학술적 내용에 근거하는데, 자연과학에서 철학으로 장르 이동한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강욱 작가는 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 '우파니샤드(Upaniṣad)’에서 주요 철학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Untitled’ 시리즈의 주요 참조점으로 삼는다. 이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점, 선, 면으로 설정된 도형을 구성요소로 하여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다. ● 우파니샤드 철학은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우주의 최고 원리를 일컫는 브라만(Brahman)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ātman)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사상을 말한다. 사실 기원전 800년 경에 어느 개인이 품었을 인류의 숙명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은 현재 이강욱 작가 개인에게도 이어지는 인문학적 물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00년경에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밝힌 바 있는, 변화하는 세계에 부여한 조화를 일컫는 '로고스(logos)’와 '만물은 하나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처럼 말이다.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으며,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역설적인 진리의 세계가 결국 작은 생명체와 방대한 우주에도 동일한 질서의 원리로 구동한다는 것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탐구하고 있다.

이강욱_Untitled-15035_캔버스에 혼합재료_95×160cm_2015
이강욱_Untitled-12020_캔버스에 혼합재료_80×130cm_2012
이강욱_Untitled-12014_캔버스에 혼합재료_80×130cm_2012

그래서 이강욱 작가의 'Untitled’ 시리즈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분기점에 해당한다. 그 이전 시리즈가 하나의 대상을 탐구했다면, 'Untitled’ 시리즈는 대상과 그 대상을 둘러싼 세계를 관계 맺는 것으로 변화한다. 'Untitled’ 시리즈에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기본 도형들이 밀도 있게 밑작업을 마친 흰 캔버스에 다양한 레이어를 만든다. 희미한 면과 선명한 선 그리고 조밀한 점까지 느슨하고도 팽팽한 균형감을 유지한채 느껴지는 원근감과 리듬감은 무중력의 세계를 캔버스가 대체하듯 우주적 시점을 떠올리게 한다. 시각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대상을 질량과 무게 등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실존에 대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이강욱 작가가 대상을 딛고 우주를 거쳐 다시 내면으로 진입하는 절차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연구 과제에 대한 결론이나 방향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무목적적으로 그린 실험작 -현재까지 발표하지 않은- 을 통해 어떤 단서를 짚어가며 나아가고 있었을 것 같다. ● 결국 작품은 스스로 발견하고자 한 진리를 향해 나아간 행방에서 작품 자체가 표상의 근거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강욱 작가는 존재, 실존에 대한 깨달음의 지점에서 진리로 부표를 만들며 다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의 연구 논문이 그 다음 탐구에 대한 탄탄한 레퍼런스가 되듯이, 'Untitled’ 시리즈가 'Gesture’ 시리즈로 우회하는 지표를 만들어 주었다. 이강욱 작가가 우파니샤드 철학을 통해 인간 개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절대적인 원리로 존재하는 우주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실로 인류가 존립하는 이유를 깨닫는 과정을 대변한다. 또한 'Untitled’ 시리즈는 이강욱 작가가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삼 소회할 수 있는 'Gesture’로 진입하는 계기가 된 작업이며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어떤 논리나 개념을 만들려는 의지를 담은 태도가 소강된 상태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이강욱 작가의 회화는 어떤 논리나 학문을 딛고서야 존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회화가 '회화로서의 태도’를 온전히 유지한 채 독립해 있기 때문이다. ■ 박정원

Vol.20200910b | 이강욱展 / LEEKANGWOOK / 李康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