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경계 Topos-Line

김유석_김하나_이정훈_전지현展   2020_0912 ▶ 2020_1006 / 일,월,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20_0912_토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육태석(상원미술관 큐레이터)

관람료 / 성인 2,000원 / 청소년,어린이 1,000원 65세 이상, 3세 미만, 국가유공자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30am~05:30pm / 입장마감_05: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상원미술관 Imageroot, Sangwon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평창31길 27 1전시실 Tel. +82.(0)2.396.3185(내선 201) www.imageroot.co.kr

유토피아(utopia)(理想鄕) 1) 는 플라톤의 『국가(Politeia;國家)』에서 나오는 「이상 국가」를 근본으로 형성된 명사로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이상적인 꿈의 실현이 가능한 시간적·공간적 연속선을 이어주는 개념의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명저 『유토피아』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상적 국가로서의 고유명사로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 속에서 개혁과 극복, 해결방안 모색 등을 갈망하는 과정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공간의 경계 Topos-Line展_상원미술관_2020
공간의 경계 Topos-Line展_상원미술관_2020

한편 디스토피아(dystopia) 2) , 혹은 반유토피아(또는 역(逆)유토피아)는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멋진 신세계』(1932)와, 조지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Nineteen Eighty-Four)』(1949)'에서 세계관으로 등장한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론'의 오랜 계보 속에서 20세기의 계산 가능성이나 일의적인 원칙에 기초하여 균일한 질서로서 구축된 '유토피아'가 교묘하게 합리성을 교란시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삶과 자생적 질서를 부정하는 역설적 모습을 비판하는 시각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과학과 미디어의 발달은 곧 국가적 통제가 되어가고 미디어를 무기로 삼아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의 모습은 기존 사회보다 물질적 풍요가 있으나, 자유가 제한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며 '디스토피아'라는 명칭이 형성되었다. ● 서로 반의어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어 'topia'는 라틴어인 'topos'(topos : 장소, 토지, 별자리와 같은 현실적 공간의 의미)에서 유래된다. 이 'topos'에 토마스 모어가 '없는(ou-)'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를 결합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 공간이라는 의미를 만들고, 동시에 '좋은(eu-)'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부여하여 유토피아(理想鄕)라는 명칭을 만들어 내었고, 조지오웰은 dys- : 변질(變質), 이상(異常), 곤란(困難), 악화(惡化), 불량(不良)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eu-의 반대말을 포함하여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내었다. ●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주관세계에 존재해 오던 단어이다. 현실에서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실체를 확인한 인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인간의 언어체계에 살아있는 단어로 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우리가 유토(uto)와 디스토(dysto)의 사이쯤 어딘가에 존재하는 'topos'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환희로 우리는 유토(uto)에 도달 할 수 있고, 작은 불안으로 우리는 디스토(dysto)에 추락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예술의 쾌(快)와 불쾌(不快)가 인간을 중독 시키는 것이다.

공간의 경계 Topos-Line展_상원미술관_2020

이 두 부류의 공간은 현실이고 서로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고 있으나 그들이 느끼는 이념은 서로 상반된다. 세상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순차적으로 교체되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한 공간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세계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과연 현시대의 사회적 현상을 근거로 미래를 유추해 본다면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는 것인가? 아마 이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풀어 나가야 할 문제이며 명쾌한 해답을 도출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 본 전시는 작가들이 현재 펼쳐진 사회 현상을 관찰하여,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고 부조리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연출하지만 작품을 경계선상에서 올려놓은 상태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 것인지 관람객 판단에 맡기는 전시이다. 전시 타이틀을 Topos-Line (공간의 경계)라 칭한 것은 작가들의 작품 메시지에 따라 경계를 나눈다는 의미보다, 전시의 참여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주관적 해석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중 하나의 주제로 선정하여 작가들에게 오직 하나의 영역만을 선택하게 하여 제한된 작품제작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의 관점을 자유롭게 해방하여 유연하게 선택하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동일한 공간과 현상 속에서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공존하며, 결과적으로 작가의 시점과 선택을 존중하여 작품 창작을 하게끔 하는 것이고 본 전시의 출품작가들 역시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목도하고 이를 이미지화하여 담론을 형성한다. 이에 대한 topos(공간)의 정의를 판단하는 Line(경계) 위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기려 한다.

김유석_데카르트 잠수부 Cartesian Divers_ 수조, 펌프, 아두이노 등_150×40×40cm_2020
김유석_데카르트 잠수부 Cartesian Divers_ 수조, 펌프, 아두이노 등_150×40×40cm_2020_부분

김유석"유토피아, 디스토피아는 인간이 바라본 미래의 두 종류이다. 양면성을 지니는 두 세계관은 사실 모든 인간들에게는 다른 잣대로 표현되어 그것이 합쳐져 현재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논의하고 진화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러한 과정자체도 이미 동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평행상태가 서로에 의해 전복되고 다시 회귀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체(시스템)의 외형과 잠수부의 외형을 동일하게 하여 세계 안의 세계, 프랙탈과 같은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였다." (작가노트 중)

김유석_식물로봇_아두이노, 센서, 3D 프린팅, LED 등_가변설치_2019

김유석 작가는 기존 부력의 원리와 보일의 법칙이 적용된 '데카르트 잠수부'를 모티브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 기체의 온도가 일정하면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기반으로 제작된 '데카르트의 잠수부'는 용기의 부피가 변화에 따라, 내부 압력이 변하고 잠수부안의 공기방울의 기압이 높아져, 더 많은 물이 잠수부 안을 채우게 되고, 그로인해 잠수부는 가라앉는 효과를 가시적으로 연출한다. 법칙에 따라 평행상태가 이루어지고 부서지는 현상을 통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란 세계관이 깨어지고, 다시 평행상태를 이루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양면성을 지니는 두 세계관은 사실 모든 인간들에게는 다른 잣대로 표현되었을 뿐이지 그 세계관 본질은 동일하다. 마치 '데카르트 잠수부'를 구성하는 용기를 'topos'라는 공통적 요소로 대입한다면, 용기에 가해지는 압력은 인간들의 개념과 관점에 의해 선택되는 과정으로 동기화 할 수 있다. ● 결국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은 세계관이 부여되는 공간은 백지화로 고정되어 있고, 순리에 의해 순차적으로 세계관이 부여되고 발생하는 것이 아닌, 그 공간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판단과 해석에 의해 선택되어 존재하는 세계관이라는 의미를 작품을 통해 연출하였다.

김하나_플라스틱 정원_조화, 패트병 등_가변설치_2020

김하나"과학문명은 인류의 풍요와 안녕을 목적으로만 발전하여 왔다. 인위적 창조물 생산과 무분별한 개발, 자원의 채굴 등 발전을 위한 활동량이 상승될수록 자연환경은 오염되고 생태계의 훼손은 점차 가속화되어 파괴되고 사라져 간다. 이런 현상의 문제점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인지하고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근본적 행위인 물질적 풍요 유지를 위한 현 시스템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자연환경은 지속적인 데미지에 의해 소멸될 것이며, 인류는 비록 생태계 정점에 위치하나 테두리 안에 소속된 존재로서 소멸 과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고, 또한 가장 먼저 그 대상으로 적용될 것이다." (작가노트 중)

김하나_플라스틱 유기체_아크릴판, 전선 등_65×43.5×16cm_2020

김하나 작가의 작품세계에는 지구라는 공간을 무기체가 아닌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로 규정하며, 생명이 가지고 있는 진화 유전자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고 회복하며, 자생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해석한. '가이아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판단할 수 있다. ● 작품 주요소재인 플라스틱 오브제에서 피어나는 꽃과 식물은 먼 미래 환경에 맞춰 진화된 새로운 생명을 대변하며, 이는 인류가 풍요를 위해 무분별하게 양산한 부산물에 의해 환경이 오염된다 하더라도 지구가 완전 소멸(죽음)하지 않아 공간이 존재하는 한 자연은 아주 느리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여, 새롭게 재구축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 반면, 이론의 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 진화 과정에서 인류는 필히 배제되고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지구를 생명인 유기체로 가정한다면, 해로운 바이러스가 신체에 침투했을 때 그것을 몰아내기 위한 항체가 생성되고, 향후 동일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내성이 생긴다. 즉, 인류와 바이러스를 동일하게 대입 시키면, 환경 진화와 재구축 과정에 오염 원인인 인류는 제거 대상이 되고, 내성이 발생하여 다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구성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플라스틱과 같이 인류가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 부산물들은 마치 홍역이나 수두를 앓고 난 후의 흉터처럼 인류가 지구에 존재했던 흔적으로서 남게 될 것이다.

김하나_나무_빨래건조대, 비닐봉지_170×70×70cm_2020

인류의 풍요를 위해 형성된 물질적 유토피아와 환경의 오염과 파괴로 형성된 디스토피아 두 세계관이 동 시대에 발현되어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대립 과정의 지속적으로 유지될수록 점점 되돌릴 수 없는 결말로 치닫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은 원인 제공자인 인류에게 있으며, 더 이상의 지구 환경의 독선적인 점유가 아닌 타 종들과의 공존과 보존의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에 대해 인류는 현 상황에 놓여진 Topos-line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연출하였다.

이정훈_dissymmetry complex_액자, 거울, 사진, 테이블 등_가변설치_2020

이정훈"사진과 거울, 오브제를 통해, 두 세계관에 대한 상반되었으나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두 가지 시각을 보여주는 설치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박제된 세상은 현실의 일부분을 포함한 그 자체로 복제물이지만, 또한 마치 지향하거나, 지양해야할 상징적 대상으로의 위치를 가진다. 거울에 반사된 현실과 사진, 반사되어 보이는 사진의 이미지는 엄밀히는 모두 지나간 시간으로써 이미 사라진 의미이자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작가노트 중)

이정훈_dissymmetry complex_액자, 거울, 사진, 테이블 등_가변설치_2020
이정훈_dissymmetry complex_액자, 거울, 사진, 테이블 등_가변설치_2020

이정훈 작가는 보드리아르의 시뮬라시옹적 세계관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마주보는 형태에 대입하여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그저 역사의 진행에 따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지향하는바가 각각 달라지고 변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함께 시간을 나아가는 동반 여행자 같은 관계로의 연출로 보여진다. ● 사진과 거울 같은 오브제의 역할은 서로가 같은 무게로 시소의 반대편에 자리하면서도, 그 의미가 완전한 대척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에서 작품의 균형은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대칭성에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는 완벽한 거울 같은 데칼코마니보다, 일부 불일치의 대칭이 주는 조형성에 기대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형태가 서로 아주 작은 것들에 기인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작가는 우리가 나아가고 싶은 유토피아 역시 결국 우리가 도달하면, 거울속의 나처럼 디스토피아가 함께 마주하고 있을 것이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절대로 서로 닿을 수 없는 비슷하고 밀접한 두 가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전지현_흐름 & 묶다

전지현"우리는 태어나고 삶을 사는 동안 많은 경험을 갖고 그것들이 축적되며 나중에 이르러 사라지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작용(영향)을 하며 생을 살아간다.) 그러한 흐름은 세상의 순리처럼 자연스럽다. 작업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 생을 살아가면서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순환적 기능이며 우리가 공존하는 세계를 이롭게 이룬다고 생각한다. ● 담아냄과 쏟아냄은 물질의 성질을 다루는 작업이다. 직사각형의 삼베천을 폭이 좁은 반원형으로 천장에 매달아 그 위로 페인트를 붓는다. 무게감을 갖고 있는 페인트는 담아낼 수 있는 형태의 삼베천 위로 쏟아진다. 기울여 설치된 삼베 위에 두꺼운 물감이 흐르며, 성글하게 짜인 조직 사이로 얇은 물감의 선들이 함께 밖으로 쏟아진다. 페인트 줄기는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튀어 소리가 발생한다. 모두 쏟아진 페인트는 물감의 양에 의한 밀려남과 여러 색이 혼합되어 우연성을 가진 형상으로 바닥에 자리 잡게 된다." (작가노트 중)

전지현_묶다_종이에 수채_34×24cm_2020

전지현 작가가 정의한 이상향적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부여된 인위적인 명칭일 뿐이며, 공간 그 자체는 생성과 소멸이 순환하는 자연 법칙만이 존재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또한 순환 법칙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라는 메세지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였다. ● 담아내고 쏟아내는 과정 중 어떤 행위가 유토피아고, 디스토피아인지 명확히 지정하지 않으나, 두 세계관과 같이 서로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현상은 시류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복돼 이어져 왔으며, 그 과정이 지속 반복 과정에서 상반된 이념이 동시간대 함께 이뤄지는 현상을 가시적으로 표현했다. ● 작품에서 '쏟다'는 '담다'의 행위의 연출과정 중 시전자의 의도적 판단과 선택은 최초 페인트를 천 오브제에 부어지는 과정까지이며, 이후 중력과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 바닥에 쏟아진 페인트의 형태와 색채는 의도할 수 없는 우연적 결과이다. 액션페인팅 장르같이 최종 결과 이미지 연출에 중점을 두고 페인트의 드롭 과정에 인위적 개입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작가의 고의적 의도이며, 바닥에 표현된 페인팅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페인트가 쏟아지고 담아내는 그 과정의 순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전지현_흐름_철, 삼베, 페인트_가변설치_2020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세계관 구축을 위한 준비와 출발점은 시전자의 몫이지만 결과가 나오는 과정은 자연적인 시류에 편승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결과는 관찰자 뿐 아니라 시전자 조차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자연적인 순환의 반복적이 형태로 공존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그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편승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어 그 결과가 어떻든 결과에 인위적 개입이 아닌 겸허한 수용과 포괄하는 자세를 가져야 다음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공존하는 세계를 이롭게 이룬다는 의미를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 육태석

* 각주 1) 네이버 두산백과 '유토피아' 참조    ▶ 네이버 두산백과 2) 네이버 두산백과 및 21세기 정치학대사전 '디스토피아' 참조    ▶ 네이버 두산백과    ▶ 네이버 21세기 정치학대사전

Vol.20200913e | 공간의 경계 Topos-Lin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