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들

백요섭展 / BAEKJOSEPH / 白耀攝 / painting   2020_0915 ▶ 2020_0927

백요섭_60일의 흔적, 60개의 단서들(60-37)_은색 포일지에 프로타쥬_30×3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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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요섭 블로그_josephbaek.egloos.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대전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9월 20일까지 휴관입니다. 전시 재개는 추후 대전시 조치에 따라 결정될 예정입니다.

입주예술가 프로젝트 3 결과보고展

주최,주관 / 대전문화재단_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후원 / 대전광역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Artist Residency TEMI 대전시 중구 보문로199번길 37-1 (대흥동 326-475번지) Tel. +82.(0)42.253.9810~3 www.temi.or.kr www.facebook.com/temiart

대전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시각예술레지던시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는 7기 입주예술가 백요섭의 전시 『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들』을 9월 15일(화)부터 9월 27일(일)까지 개최한다. 올해 2월부터 입주하여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백요섭 작가는 대전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용문동 1,2,3 구역 일대에서 수집한 흔적을 모티브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 백요섭 작가는 도시개발로 쉽게 쓸려 나가버리는 삶의 터전과 이로 인해 겪고 있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들을 미술언어로 표현한다. 60일간 용문동 일대에서 채집한 프로타쥬(문질러 피사물의 무늬가 베껴지는 기법)와 회화, 드로잉, 영상 등을 선보인다. ● 전시는 회화 작품의 '변신', 프로타쥬와 오브제 작업 '흔적', 그리고 드로잉, 청사진, 회화를 선보이는 '순간' 3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전시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1층과 지하에서 열릴 예정이며,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시간당 20명, 체온 측정 후 입장 가능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며, 전시기간 중 휴관일은 없으며 무료전시이다. ■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백요섭_절정이 지나간 거주지철문(용문동1,2,3구역 철거빌라)20-34_2020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나 동네의 모습이 아직도 그곳에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행운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 세상 앞에 홀로선 우리는 현실 속의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유년시절을 품은 따뜻했던 그곳은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 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 삶의 터전들이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가 헛됨을 우리는 안다. 가까운 과거의 흔적조차 복고 영화나 음반, 미술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일상을 함께 했던,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던 그 집과 골목길, 그 동네의 풍경은 도시재개발의 가속화에 의해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주거의 형태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급선회하면서 주택과 가게들의 수평적 공간은 고층건물 속으로 수직적인 공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밥 짓는 냄새로 뒤덮이고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집안 소음이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시끌벅적하던 구불구불한 옛 골목길은 이제 매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사이로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아파트의 보급으로 그물망처럼 형성된 좁은 골목길과 세간 밖으로 삐져나온 살림살이의 풍경 역시 이제는 도시 관광의 가이드에서나 찾아볼 진기한 풍경 혹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되었다.

백요섭_절정이 지나간 맨션에 바닥에서 수집한 나뭇잎 (용문동1,2,3구역 철거빌라)20-34_유리병, 오브제_12×7×7cm_2020
백요섭_절정이 지나간 주택 대문에서 프로타주(용문동1,2,3구역)20-50_ 은색 포일지에 프로타쥬_30×30cm_2020

대전은 2000년대 이후 대대적인 신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터전을 일군 지역민들의 소외와 갈등, 거대자본으로 공공문화지역이 흡수되는 현상을 보면서 개발의 의미와 주거문화에 대한 성찰이 제기되는 가운데, 개발에 반대하는 인문학자, 건축가, 문화연구자들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공간의 의미, 오래된 공간들에 대한 문화사적 재검토와 미학적 제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으로 인식한 시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 시대는 궁핍이 아니라 모든 것의 과잉이 포화상태에 이른 나머지 '잉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땅덩어리 때문인지, 한국사회에서는 유난히 도시개발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전 사회적인 이슈로 작동해왔다. 항상성이 유지 되어야 할 삶의 터전마저도 이윤이 지배하는 시장의 주요 품목으로 간주되면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는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변화의 와중에 놓여 있다. 방향이 이미 설정되어 있는 변화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로 대두된 한국사회에서, 공간은 오랜 시간이 축적되고 삶의 문화가 고이는 장소라기보다는 매순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 백요섭

백요섭_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 20-7_캔버스에 유채_130.3×489.6cm_2020_부분
백요섭_휩쓸린 순간의 조각들(용문동1,2,3구역에서 캐스팅하여 제작)_ 시멘트, 우레탄폼, 나무_153×41cm, 121×41cm_2020 백요섭_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 20-45,46,51,50,47_ 캔버스에 유채_40.9×53cm×5_2020
백요섭_휩쓸린 순간의 조각들(용문동1,2,3구역에서 캐스팅하여 제작)_ 시멘트, 우레탄폼, 나무_153×41cm, 121×41cm_2020
백요섭_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 20-7_캔버스에 유채_130.3×489.6cm_2020

관계에 의한 변화의 여정1. 백요섭, 그는 지금 한 가정을 이루고 있고, 한때 인테리어를 했지만 강의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열정적인 예술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에 맞지 않게 묵묵히 주어진 삶을 한편에서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다른 한편 창작에서는 느린 감성의 태도로서 세상을 관조하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예술가의 삶도 그렇듯 순수한 창작에 온전히 전념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체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이 땅에서 지탱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관계 짓기'다. '너-나-우리-세계'라는 관계 속에서 작가적 삶은 스스로 개척해야 하며 보편적인 삶과는 사뭇 다른 자기만의 '틀'(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정해진 사회라는 보편성에 자기만의 틀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주체적인 예술 범주는 의외성을 낳으며, 이 현상으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이 발휘된다. 예술의 언어는 사회적 관계에서 또한 개별화된 주체의 인식에서 그 정체성을 형성해나가야 하며, 그것이 차별화된 예술적 가치로서 인정되기까지 수많은 실험과 논의 그리고 담론의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백요섭 작가는 미완의 상태인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자기만의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백요섭_흔적으로 남은 시간들에 대한 실험_캔버스에 유채_244×122.5cm×7_2020
백요섭_흔적으로 남은 시간들은____이다._플라스틱 시트지_가변크기_2020
백요섭_흔적으로 남은 시간들에 대한 실험_ 캔버스에 유채_244×122.5cm×7_2020_부분
백요섭_60일의 흔적, 60개의 단서들_은색 포일지에 프로타쥬_30×30cm×60_2020

2. 예술 안에서 백요섭의 관계 짓기는 재생공간과의 네트워크 진행 시 발생한 프로젝트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왔던 지역에서 자본의 사회 구조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소멸-생성'과정을 목격하고, 여기서 부서지고 파편화된 흔적들을 보면서 망각된 기억이 현재로 소환되는 현상과 감정을 느낀다. 또한, 그는 먼저 감각적으로 선행되었던 추상회화의 명분을 작가가 직접 현장에서 프로젝트 진행상 일어나는 관심 부분의 자료조사, 기록, 분석 그리고 거기서 체험되는 폐허의 공간 부피, 냄새, 흔적, 빛과 공기의 흐름 등을 통해 왜 추상으로 그려내는지의 명료함과 이유를 찾게 된다. 또 하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동행자들과 워크숍에서 만났던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멸하거나 잃어버린 흔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고 어떻게 실행할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그곳에서 느끼고 찾았던 흔적과 편린들이 그림으로서 추상의 빛과 색과 결로 표현되거나, 은박지위에 프로타주 형식으로 기호화되거나, 현장에서 발견된 오브제로서 미적 가치를 부여받거나, 기록의 의미로써 사진 및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표현의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2018년부터 시행했던 두 개의 프로젝트는 그가 고민했던 회화가 한계에 부딪혔던 것을 회복시키는 계기로 작가에게 관계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작가는 예술이라는 추상성이 현대 사회에서 양산된 다양한 인문학적인 것들과의 관계를 지어 경우의 수를 실험하고 경험해야 자양분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요섭_변신(용문동1,2,3구역에서 채집한 버려진 가구를 재가공)_ 나무 유리_143×112×55cm_2020
백요섭_60일의 흔적, 60개의 단서들_ 은색 포일지에 프로타쥬_30×30cm×60_2020_부분
백요섭_쉽게 부셔진 삶의 흔적들_용문동1,2,3구역에서 수집한 파편의 일부 유리병, 철_15×5×5cm, 8×7×7cm_2020

3. 작가는 2010년부터 2015년 초까지 대상을 재현하는 기법 위주의 1차원적인 구상회화를 그렸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고민을 하였고, 이후 2015년 하반기부터 1년간 저곳이 아닌 이곳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출퇴근하며 자연의 환경과 풍경을 보거나, 속도로 감지되는 시간의 변주를 체감하거나, 그리고 여러 책을 들여다보며 사색하거나, 심지어 어릴 적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회귀본능으로서의 감성을 느끼는, 그야말로 3~4차원적 경험을 하며 창작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작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회화적 의미를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에서 체험(프로젝트)된 사유를 통해 내밀한 조형적 언어가 형성된다는 실마리를 보여줬다. ● 그러한 두 관점은 회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사유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한다. 회화란 의미를 재서술된 공간 경험과 그 안에서 체험한 미시적 언어로서 타인이 정의할 수 없는 자기만의 조형적 언어를 엮어내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의 회화는 매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감정을 하나의 픽셀 단위의 언어로 가정하고, 이를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붓질의 행위로 인해 인식의 흔적이 드러난다. 표면 안으로는 언어가 은밀하게 내재하며, 표면 밖으로는 자연의 빛이 다채로운 색채로서 표현되고 동시에 다양한 기하학 형태로 변주된다. 아직 회화로서의 존재감이 서 있지 않지만, 그의 내밀한 조형 언어는 변화된 태도의 잔영에 대한 결과물로 홀로서기를 위한 땅 밑의 지지체를 이루고 있으며, 느림의 미학에 반영하듯 언젠가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레이어의 상호작용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백요섭_변신(용문동1,2,3구역에서 채집한 버려진가구를 재가공)_ 나무 유리_158×143×55cm_2020
백요섭_60일의 흔적, 60개의 단서들_영상, 사운드_00:05:29_2020

4. 삶의 본능에서 욕망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예술의 범주는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술가들의 욕망은 계속 질주하고 있다. 그 욕망은 '관계'라는 의미 안에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그중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싼 자연, 사물, 공간 등과의 관계 미학은 예술의 현상학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백요섭 작가의 경우도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람과 공간 관계에서 파생되는 현상, 즉 기억 저편에 싸인 복잡 미묘한 것들은 본인도 알 수 없는 미궁에 시작된 것이다. ● 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역과 환경이 갖는 열악함 속에서도 그의 쉼 없는 생각과 열정 그리고 시행착오까지도 긍정의 힘으로 대처하는 능력에 인생의 선배로서 격려를 보낸다. 하지만, 미술 현장의 시스템은 쉽지 않다. 창작과 비평의 관계에서도 작가의 욕망은 현재와 다른 미래를 생성시키려는 분열적 욕망에 부딪히게 된다. 사유와 경험의 지경을 넓혀 변화된 언어들에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자의식의 되돌이표가 그가 추구하려는 자신의 이름과 작업과 삶이 서로 맞닿아 있는 그런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 이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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