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소리 : KP Project

2020_1009 ▶ 2020_1023

김병호_ADAM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2×55cm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입장마감_06:30pm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 KT&G Sangsangmadang Chuncheon Art Gallery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399번길 25(삼천동 223-2번지) Tel. 070.7586.0550/0552 www.sangsangmadang.com

과잉의 풍경과 목록 ● 사진에 들러붙은 과잉의 현상이 낯선 것은 아닐 것이다. "눈보라처럼 몰아치는 사진의 쇄도. [...] 넘실대는 사진의 범람"!1) 1927년, 넘쳐나는 사진의 과잉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자연재해의 위협에 빗댄다. 주체를 위협하던 격렬한 불안은 이제 길들어져 무감한데, 그때 무감해진 과잉은 잉여의 메커니즘을 또렷이 반영한다. 이를테면, 쉴 새 없이 이미지를 생산하는, 민주화된/대중화한, 모바일-카메라는 사진을 이진수로 분해하여 내재한 저장소에 채우고 이와 연동된 서버에 쌓는다. 이미지는 잉여로 쉽게 만들어져 삭제되고 가상(假像)의 공간에 저장되어 영원히 떠돌며, 재해의 불안보다 객체화된 소비의 흐름으로 도착된다. 어쩌면 아카이브의 구성체로서 이미지의 과잉은 역사적 의미의 생성을 이끄는 틈새나 결핍을 메워 사진 그 자체를 시공간 연속체로 표상하도록 목록화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여기 풍경 사진을 목록화한 『풍경의 소리』는, 이와는 다른, 과잉의 영향들 아래 놓여 있다고 말해야겠다. 첫째, 전시는 되풀이하는 풍경의 이미지들(바다, 자갈, 하늘, 산, 탄광)로, 익숙한 코드(자연과 역사의 균열)의 반복으로, 목록과 카달로그의 예시처럼 보인다. 목록은 물리적으로 무한한 잉여를 암시하는데, 궤적을 남기는 연속적 재현 방식을 목록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풍경의 소리』는 목록이라는 연쇄를 통과하여 '강원'을 표상하는 시공간 연속체로서, 잉여의 패턴을 확증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틈새나 결핍도 없다면, '강원도의 힘'이라는 의미 생성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둘째, 전시성(e×hibitionality)을 의식했을 사진 이미지들은 하나의 (실제이면서 관념인) '강원'을 풍경이나 지형으로, 즉 유사 아카이브로 목록화하여 배열한 것처럼 보인다. 이 유사(pseudo)-아카이브의 가치는 오직 (전시장과 같은) 문화경제의 공간에서 확증된다. 만약 풍경이 어디서나 넘쳐나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지속할 수 없을 것인데, 문화경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은 미적 가치 위계 내부에 자리매김된 위치에 따라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2) 그렇다면 이들 풍경의 목록은 유사(類似)-연속적인 재현 방식으로 더는 가치 혁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대면해야 할 것이다. 그 대면에서 피어나는 질문은 과잉의 잔해물로서 목록에 등록되는 사진 이미지가 보증하는 미적 가치들과 미학적 의미 작용들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다. 셋째, 사진 매체의 존재론적 물음이 매체의 '기술적 혹은 물질적 지지구조'를 향한 자기증명의 순수성에 매몰되더라도3), 사진 이미지는 언제나/여전히 끈질기게 흔적과 표상의 관계 사이에서 그 존재를 증명한다. 흔적의 표상이 과잉되었을 때, 과잉과 맺는 재현의 관계는 과잉을 용인하는 담론 공간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오늘날 과잉과 포화의 매체로서 사진에 수반되는 것은 문화자본에 용해되어 생성되는 담론 공간이다. 그 같은 위상학은 매체의 내적 구조와 '신화적' 구조에 재귀적으로 반향 하는 관습들 사이의 물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어떤 풍경인가가 아니라 그 공간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그렇다. 달리 말하자면, 『풍경의 소리』는 목록을 담은 유사-아카이브로서 캐비넷인가, 이 전시는 (시공간) 기록 장치인가, 운운하는 물음이 그렇다. ● 이 글로 이 물음들-목록 연속체, 과잉의 의미작용, 목록이라는 기이한 것-에 모두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능한 이 세 가지 질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풍경의 소리』의 과잉과 목록에 관해 말하려 한다.

김영석_2020.5.5.예쁜영기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119cm_2020
방병상_그리운금강산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50cm_2020
심상만_Deep Fog #0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100cm_2020
이진수_지금풍경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20

풍경 이미지들의 유사-아카이브로서『풍경의 소리』는, 4개의 섹션을 범주화한다.4) '은유와 표상'(김병호[a], 김영석[b], 방병상[c]), '기억과 시간'(심상만[d], 이진수[e]), '경계'(김전기[f], 박노철[g]), '기록'(원정상[h], 전제훈[i]). 이들 범주는 다시 풍경이라는 목록으로 통합되고 있다. 사진들은 대체로 풍경을 낭만주의의 은유로써 '스냅' 하거나 지질학적으로 연구하거나 대지에 내려앉은 역사의 흔적으로 기록하거나, 풍경으로 지정학적 경계를 반성하는 이미지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거칠더라도 이들 풍경을 묘사하자면, a. 음영의 포토그램이 (식물의 잎처럼 보이는) 풍경의 파편을 몽타주하고, 그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우연을 환유로 구상하려는 심상을 호출한다. 심상의 풍경은 빛과 사물의 역학 속에서 흔적으로 정착한 이미지의 시간으로 수렴된다. b. 가로막힌/가로지른 해변이, (사진가의 말로 추측건대,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라는 김훈의) '풍경과 상처'의 관계로 재편성되어있다. 이때 상처를 경유하는 풍경의 이미지는 표상이면서 재현은 아니거나, 재현이면서 표상은 아니게 된다. 이미지의 주체는 이 균열, 즉 외부와 내부의 균열이 맞닿은 풍경을 부정(조소)하지만 동시에 그 균열에 타협을 제안한다. 가로막힘과 가로지름의 풍경을. c. 금강산의 이미지는 신화적 세계의 표상이다. 신화와 현실의 거리를 기술의 힘으로 매개해, (작가의 표현대로) '비현실적 풍경'을 재현한다. 이때, 스테레오타입으로 승인된 이미지가 표상하는 것은 문화 속에서 압축된 풍경이다. d. 물과 안개는 '강원도의 힘'(김승옥의 '무진의 힘'이라 불러도 좋다)에 속하는 것이지만, 풍경을 절단하는 것으로, 내면(혹은 기억)에 닿아 있는 자리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자리는 변방의 풍경이기도 하다. e. 나란한 일회적 풍경들이 있다. 일회적인 풍경이 인식되는 장소는, (작가가 진술한 대로,) 처음 보았을 풍경과 처음부터 보지 못할 풍경의 대칭점에 있다. 일종의 짝힘(couples)으로서 두 장의 풍경 이미지는 상보적 관계항으로, 영원(永遠) 속에서 존재할 '사이' 풍경을 오버랩하려 한다.f. 풍경이 증언으로 걸러내졌다. 그러나 코드 없는 증언의 이미지는 어떤 것도 말하지 못한 채 풍경으로 남고 있는데, 이때 이미지가 증언하는 것은 (파도와 새장, 과거와 미래 같은) 인접 불가능한 것들의 근접 풍경이다. g. 풍경은 흔적을 담는다. 만약 흔적이 불편하다면 이는 과거를 환유하는 이미지와 미래를 은유하는 이미지의 경계에 어른거리는 사소한 우울 탓이다. 그러므로 이 풍경은 먼 (시간적) 이국의 풍경이면서 거기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h. '분절된 풍경'은, 범주에 따르면 기록에 속한다. 이미지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무한한 지연과 유예의 풍경이다. 벽에 가로막혀있거나 흙무더기가 에워싸 중심에 도달하지 못하는, 장소와 장소 사이의 막이 풍경이다. 이 막은 이질적인 배치 사이의 관계의 환유이기도 하다. i. 풍경은 부감으로 탄전의 계곡과 시간을 조망한다. 사이 공간을 강조하는 두 장의 풍경 이미지는 크기와 앵글을 약간 달리하여 동일한 자리를 보여주는데, 그 반복과 차이의 거리만큼 회상을 풍경화 한다.

김전기_The Bunker_C 프린트_100×125cm_2019
박노철_불편한 진실의 흔적 #0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76cm_2020
전제훈_탄전풍경 #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5×50cm_2019
원정상_분절된 풍경 #0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0×100cm_2020

분절한 풍경을 범주로 통합하더라도, 이 사진 이미지들이 풍경의 목록 속에서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과잉의 예인지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들 이미지는 기법보다는 테마에, 거리보다는 위치에, 공간보다는 자리에 특권을 부여하며 풍경을 말한다. 풍경이 과잉으로 전면화될 때, 이들 풍경 이미지는 실물에 가 닿기보다는 어떤 상대적인 배열을 명확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 목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같은 집합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 기반이며, 설령 그런 집합이 원래 불가능하였더라도 그런 근접성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이다.5) ● 비균질적인 묶음, '풍경'으로 엮인 이 시퀀스는 대체로 두 가지 풍경에 공통으로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째, "강원도의 힘"이라 불리는 헤테로토피아의 풍경이 있다. 나는 강원도의 힘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을 다만 반복하여 주체를 불러들이는 힘으로 부르든, 주체를 게워내는 힘으로 부르든, 전시장을 경영할 힘이자 의지로 의식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편, 이들 목록은 자연 풍경의 바탕에 깔아놓은 내면의 풍경을 재생한다. 이들 사진이 '강원'을 총체적으로 표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내면의 웅성거림 만큼 풍경의 목록은 과잉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풍경은, 이 목록이 의도하는 통일적 의도로서, 풍경과 문화가 상호 작용하여 어떤 장소에 내려앉은 잔상체를 포착하고 재현하기 위한 지속적 탐구로서 전면화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 묶음에서 풍경은 축소된 것이 아닌 변형된(transformed) 풍경일 것이다. ● 풍경이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은 더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6) 인식틀로서 풍경은 문화적 윤곽으로 그 기원을 함몰하였다. 문학의 풍경이 그렇다. 풍경 이전의 풍경이 내면에 굴절되고 매몰되고, 도착된 내면이 풍경이라는 표면에 덮여있다. 사진이미지의 풍경도 그러한데, 그때 담론 공간은 문학의 그것과는 달라 보인다. 의미에 저항하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이미지라는 신화와 '진실'과 관계하는 윤리적 명성과,7) 이미지의 문화담론 공간이 서로 교통하여 안과 밖은 굴절하고 반사하여, 풍경사진의 이미지의 표면은 내면과 더불어 자꾸 미끄러진다. 그 점에서 '다시-보여주기'(re-presentation)라는 상호텍스트성을 특질로 하는 사진이미지로서도, 풍경은 여전히 바라보기에 성가신 것이다. 어쩌면, 풍경이 외부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내면적 인간에 의해 도착적으로 발견되었다는 기원의 탈신비화와, 문화는 풍경을 "경유해서만 인지되고 해석된다"는 점을 둘러싸고 여기 사진가들은 일종의 내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풍경의 소리』는 과잉의 목록에 문화의 잡음(noise)을 깔고 있다. 여기, 음향효과는 과잉의 목록이 가동하는 현상학이기도 하다. 그것은 강원이라는 너무나 상투적인 풍경, 그리고 풍경이라는 또 하나의 상투성이 과잉으로 헐거워짐을 보충하는 힘(vector)이다. 목록이 조화로운 완성과 종결을 상기시킨다고 할 때,8) 그것은 비균질적인 것들의 상호 참조적인 재현기능을 수행한다. 『풍경의 소리』는 사진 매체의 지지체를 둘러싼 긴장 또는 형식과 내용 간의 구조적 긴장에서 벗어나, 참조로서 경영되는 목록이라는 제3의 항을 통해, 사진 예술의 존재론을 둘러싼 대립항을 빗겨 나간다. 전시의 목록이 지시하는 것은 어떤 미학적 주제라기보다는 문화의 조직 체계를 다루는 보편 원리이다. 『풍경의 소리』의 목록은 '강원도의 힘'이라는 주제를 꾀하기 위한 내기로서 과잉을 구성하였다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는 과잉의 예시이다. ■ 김광희

* 각주 1) Siegfried Kracauer, "Photography," in The Mass Ornament: Weimar Essay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2) 보리스 그로이스, 「혁신전략들」, 『새로움에 대하여』 (현실문화, 2017) 3) 로잘린드 클라우스, 『북해에서의 항해』 (현실문화연구, 2017) 4) 이 글에서, 작품의 배치는 중요한 분석 대상일 테지만, 이 글은 전시에 앞서 작성되었다. 5) 미셀 푸코, 「서문」,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6) 가라타니 고진, 「한국어판 서문」,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민음사, 1997) 7) 롤랑 바르트, 「사진의 메세지」, 『이미지와 글스기』 (세계사, 1993) 8) 움베르트 에코, 『궁극의 리스트』 (열린책들, 2010)

Vol.20200916b | 풍경의 소리 : KP Proje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