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군산군도 遊古群山群島

조인호展 / CHOINHO / 趙寅浩 / painting   2020_0917 ▶ 2020_1127 / 일,월,공휴일 휴관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관리도(串里島) 만물상_순지에 수묵_130×19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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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재)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23 (서초동 1449-12번지) 한원빌딩 B1 Tel. +82.(0)2.588.5642 www.hanwon.org

(재)한원미술관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지향하고, 자신만의 독자적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매년 작품 활동과 전시를 지원해왔다. 작가 선정의 주안점은 성실성과 실험성, 참신함을 갖춘 작업에 비중을 두었고, 확고한 신념으로 창작활동에 일관하는 작가를 선정하였다. 조인호는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삶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상 속 풍경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의 진경을 묘사한 그의 산수풍경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심미적 감흥을 전달한다. 그는 각박한 현대 사회의 질서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색하고자 한국의 명소를 누비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겼다. 이러한 조인호의 작품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한눈에 포착된 카메라 속 경치가 아니라 작가 개인의 실제적 체험을 따라 이동하는 산수풍경으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가 이동하는 시공간의 발자취를 답습하는 산수유람을 선사한다.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관리도(串里島) 천공굴(쇠코바위)_순지에 수묵_130×190cm_2020

우리는 산수(山水)란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아마도 대개는 한지 위에 먹으로 스며든 아련한 산들의 겹들과 이들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의 곡선이 펼쳐지는 화면을 떠올릴 것이다. 알게 모르게 산, 바다, 강, 나무, 하늘 등의 자연적 요소가 어우러진 산수의 이미지는 시대를 거슬러 고정된 이미지로 우리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각인되었을 것이다. 중국 북송시대에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언급하는 산수는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정신풍경'이라고 했다. 즉 산수풍경의 미적 관조와 작가의 철학적 가치관이 결합한 이미지이다.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대장도(大長島) 01_순지에 수묵_54.5×32.5cm_2019

"보리밥에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마음껏 놀고 있노라/ 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까닭이 있겠느냐" 위의 시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윤선도가 지은 「만흥(漫興)」시조의 일부이다. 제목인 「만흥」은 흥겨움이 마음에 가득 찼다는 뜻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저절로 생기는 흥취를 뜻한다. 이처럼 자연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자 풍경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풍류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치열하고 바쁜 도심의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많아지면서 마음 한편에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을 가지는 우리의 모습들로부터 물음을 자아낸다. 자연을 즐기고 동화되는 삶 그리고 이러한 삶을 표방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대장도(大長島) 02_순지에 수묵_48×130cm_2019

'나'라는 존재를 찾아 떠나는 성찰의 여행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며 나 자신을 찾으려는 여행을 떠난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한다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개념을 역설했다. (이승훈.「자연환경을 통한 긍정심리학 정신의 구현: 긍정 성격」 『한국심리학회지:일반』, 제34권 제2호, 2015. p.517.참조) 바이오필리아는 생명체를 일컫는 바이오(Bio)와 공감이나 교감,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la)가 합쳐진 단어로, 인간은 자연환경 속에 놓일 때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환경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대장도(大長島) 04_순지에 수묵_160×130cm_2019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무녀도(巫女島) 01_순지에 수묵_54.5×32.5cm_2019

조인호는 여러 차례 개인전을 통해 주제와 내용, 형식에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이전 작업은 큰 변화 없이 체험을 통해 항상 고민하는 사유에 대한 미학적 소고의 성격을 지닌다. 자연경관, 소리, 공기 등 자연이 지닌 다양한 감각적 경험 요소들을 바탕으로 '나'라는 존재적 가치를 성찰한다. 그는 작업의 주제와 부합하는 지명을 가진 장소를 탐색하고, 직접 현장 답사를 통해 영감을 얻은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인 작업을 구상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실제의 풍경이지만 나 자신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성에 대해 깊숙이 파고들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진정한 '나'를 찾는 수행의 과정을 담는다. 그러한 여정 속에서 그는 이정표를 찾듯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선택한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택한 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그리고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나 자신과 소통한다. 특히 『俗離속리, 離俗리속』(2016), 『청풍淸風』(2017)처럼 전시제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장소의 지명과 경험의 소회를 통해 전시의 의미와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단순히 전시의 마침표가 아닌, 삶의 유현한 질서가 숨어있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나 자신의 존재성과 철학을 탐닉하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듯 하다.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선유도(仙遊島) 남악산(南岳山) 01_순지에 수묵_30×99cm_2019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몽돌해안_선면에 수묵_27×54cm_2020

이번 전시에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여정을 선보인다. 이곳은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위치한 60여 개의 유·무인도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다. '신선이 노닐던 섬' 즉 '무릉도원'이라고 불렸던 선유도가 대표적이고, 그 외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수려한 해변과 어촌풍경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작가는 발길과 시선이 닿는 고군산군도의 풍광을 여백의 표현과 세밀한 묵선으로 담담히 그려내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이번 신작들은 고군산군도의 풍경들로 작가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시선, 감정, 깨달음 등을 복합적으로 내포하여 전시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조인호_고군산군도전도(古群山群島全圖)_순지에 수묵_190×780cm_2020

조인호는 대상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삼원법(三遠法)과 산점투시법(散點透視法)을 구사한다. 그의 작업에는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며 시간의 경과와 공간의 이동 경로에 따라 관찰과 사유가 점철된 감각적 경험을 공유한다. 대상을 한 공간 안에,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출현할 수 없기에 서로 연관된 대상들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게 함으로써, 역동적인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가장 극명하게 각인된 구역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또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덧보인다. 전통 산수화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전통적인 관념구도와 사실적인 구도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즉흥적, 우연적 효과와 함께 먹의 깊이감을 더한다. 가로길이 7m가 넘는 대작인 「고군산군도전도」는 동양화의 전통적 조형원리를 계승하면서 안정된 화면구성과 생기가 감도는 필묵법을 통해 파노라마 형식으로 전개된다. 무심히 보면 여느 수묵산수화와 다르게 보이지 않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섬의 능선과 암벽, 바위들은 가늘고 뾰족한 묵선들이 집적되어 만들어낸 형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재료와 표현방법의 한계를 탈피하여 한국화의 조형적 확장을 추구한다. 그동안 유지해왔던 작업방식에서 벗어나, 섬이 담고 있는 겹과 결들을 기록한 과정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 다양한 회화적 방식을 실험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변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풍경 속에 함께 녹여낸 조인호의 산수는 보는 이에게 자연스레 풍류를 권한다. 관람객은 실제 풍경 속에서 이동하는 듯 간접적으로 작가의 시선을 빌려 작품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조인호_유고군산군도(遊古群山群島)-20200413_선면에 수묵_27×54cm_2020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관심을 두고 있는 세속적인 욕망을 떨쳐버리고자 자연을 찾는다. 물욕, 명예욕, 권력에 대한 천착 등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탈피하여 무욕, 무소유적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작가의 정신세계가 투영되어 새로운 풍경으로 재탄생 된다. 조인호의 작업은 '보아 가는' 그림이다. 고군산군도는 계절, 시간, 시점 등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모습을 띤다. 상이한 시점이 얽혀 마치 관람객으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산수풍경을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작가의 감정을 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나'의 존재를 장소에 투영시켜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시각적 차원을 넘어 공감각적인 영역으로 확장하여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설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인호는 '유(遊)'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동시대 예술로서 현대 수묵산수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며 깊은 공감대를 얻고자 한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여유와 다채로운 향연을 만끽하며, 자유를 찾아 아름다운 동행을 권해본다. ■ 전승용

Vol.20200917a | 조인호展 / CHOINHO / 趙寅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