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Shades

이병호展 / LEEBYUNGHO / 李炳虎 / sculpture.installation   2020_0917 ▶ 2020_1025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이병호_Three Shades展_스페이스 소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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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예술경영지원센터_예비 전속작가제 지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37(서교동)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스페이스 소는 9월 17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병호 개인전 『Three Shades』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7년 개인전 『인체측정Anthropometry』을 통해 발표하고 이후 꾸준히 발전시키며 여러 전시를 통해 선보여 온 '인체측정'의 2020년 신작을 소개하는 스페이스 소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 스페이스 소

이병호_Three Shades展_스페이스 소_2020
이병호_Three Shades展_스페이스 소_2020

무제 (상자 속의 육체) - 1. 세 망령의 징후와 쪼개진 육체 ● 세 망령(Three Shades)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그것의 현존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그 말의 이미지가 상기(想起)시키듯, 이 불확실한(shade) 존재의 반복적(three) 출현이 불러일으키는 참된 경험은 (애초에 표면이라고 말해도 좋을) 그늘에 가려진 모호한 육체의 현존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이고, 그것은 볼 수 없음을 가졌다. 로댕의 「세 망령」(1880)은 마치 상자 속에 있는 육체처럼 꼼짝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아 보이나, 축 늘어진 기이한 육체를 덮고 있는 저 그림자의 파동이 형상의 기원을 깨우려는 듯 그 표면에 부딪쳐 출렁인다.-「세 망령」은 마치 직육면체의 대리석이나 그와 같은 물질적 원형으로부터 출현한 것처럼, 해부학적 사실의 왜곡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체 윤곽을 감싼 육면체의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인 구조와 그러한 육체를 가진 인간 형상을 완전하게 중첩해 놓지 않았는가. 옆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진 그(들)의 머리에서부터 목으로 이어진 수평의 선과 어깨에서부터 힘 없이 늘어진 팔을 지나 다리로 내려오는 수직의 선들을 보라.- 「아담」(1880)은 그 형상의 기원이 이미 지연된 육체로서 재건(再建)된 것임을 알린다. 말하자면, 인간 형태에 대응하는 추상적 직육면체의 상자 속에 들어있는 형상으로서의 근원적인 부재(죽음)와 흙에서 만들어진 불확실함의 현존(창조)을 나타내면서, 알려진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1511-1512)를 이 형상의 또 다른 기원으로 볼 때, 왼쪽 팔에 신의 손을 가진 아담의 육체는 강렬한 분절-자신을 창조한 신의 손을 절단-과 접합-자신이 응시하던 신의 손을 소유-을 통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형상으로 존재함을 밝힌다.

이병호_Bust_조각에 아크릴채색_40×16×14cm_2020

「세 망령」은, 아마도 이 육체가 끝없는 소멸/죽음과 생성/창조의 연속에서 스스로 형태의 지연을 반복함으로써, 현존하는 부재 혹은 공백 혹은 기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돕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참조와 복제, 해체와 절단, 접합과 배열의 반복적 시도들이 역설적이게도 불가능한 미완의 육체에 대한 비판적 현존을 더욱 강화시키면서, 모든 육체 속에 깃들어 있는 형상의 (역사적) 기원과 관련된 징후들을 살피게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병호의 전시 『Three Shades』는 로댕이 조각의 관습 안에서 형상의 기원을 둘러싸고 탐구했던 재인식의 실천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또한 수없이 갱신되어 온 자기 자신의 조각(적 형상들)에 대한 작은 역사에도 다리를 놓는다. 예컨대, 「Following Adam's pose」(2020)와 「Two Shades」(2020)는 서로 별개의 상이한 자리에서 산산조각 난, 심지어 그 파열과 절단이 스스로의 형상을 비판적으로 구축하고 접합하는 "세 망령"의 징후를 과도한 가시성의 경험 안에 밀어 넣은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징후적 존재에 대하여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즉 가시성에 대한 초과를 경험하게 하면서 말이다.

이병호_Torso_조각에 컬러 석고_40×110×35cm_2020

「Two Shades」에는 뚜렷한 두 개의 형상이 존재한다. 뚜렷하다는 것은 먼 기원으로부터 재건된 어떤 형상에 대한 강렬한 인식을 말하는 것으로, 저 육체를 감싸고 있는 숱한 기원으로서의 시간과 장소의 복잡한 얽힘을, 참된 기억으로 존재하는 저 육체의 현존을 (단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도무지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형상이 얕게 매장되어 있는데, 두 망령 밑에서 제 육체를 열어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고 단단한 육면체 속의 쪼개진 형상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Boy in the Box」(2011)의 유령처럼, 다시 깨어난, 그것과의 비밀스러운 닮음을 드러낸다. 「Two Shades」는 그것을 둘러싼 직육면체의 상자를 실제로 가지고 있다. 열린 상자, 열린 몸, 「Two Shades」가 우리 앞에 현현(顯現)하는 방식이다. 이병호는 「Statue X」(2019)를 보관해 온 상자를 열어 그것을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채로 그 기울어진 「Statue X」를 받침대 삼아 새로운 형상을 접합했다. 그것이 「Two Shades」에 대해 내가 과거를 기억하는, 알아보는 바다.

이병호_Following Adam's Pose_폴리우레탄, 나무, 와이어, 철, 석고_235×285×240cm2020

2. 주물 속 새로운 인간 형상 ● 「Statue X」는, 이병호가 『Le Vide, 空의 영역』(2016)부터 본격적으로 탐구해 온 형상의 기원과 관련해서, 일련의 징후를 재건하여 나타내는 존재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이미 존재했던 것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음을 예견하는, 지연과 유보의 형상으로서 덮개에 가린 어떤 묵시(默示)가 드러나려는, 그 순간의 강렬함. 이병호는 『Le Vide, 空의 영역』 보다 조금 앞서 세 개의 인체 형상으로 구성된 「Taxidummian」(2016) 시리즈를 제작하였고, 같은 해에 「Anthropometric Torso」(2016), 「Triptych」(2016), 「Two Figures」(2016) 등을 제작해 개인전 『Le Vide, 空의 영역』에서 일련의 조각적 함의를 확장시켜 보여줬다. 이때, 그는 「Taxidummian」을 몸통만 남기고 절단하여 다른 이름을 붙여서 재사용하거나 혹은 살아있는 인체로 직접 주형을 만들어 다수의 주물로 떠낸 후에 그 동일한 것들을 쪼개 여러 형상을 만드는데 활용했다. 이에 대하여, 『Le Vide, 空의 영역』에서는 "공백"의 화두를 내세워 주형의 내부에 맞닿는 주물의 표면과 주형이 보유하고 있는 공백으로서의 조각 표면의 내부를 탐구했다. 결과적으로 공백/내부의 영역에 잠재해 있는 형상에 대한 다수성의 논리와, 그가 참조했던 이브 클라인의 인체 측정 퍼포먼스가 동일한 원형이자 살아있는 몸에서 다수의 형상을 (재현없이) 캐스팅했던 역설적 함의를 자신의 작업에 가져와 공유했다. ● 이후, 『Anthropometry』(2017)부터는 본격적으로 살아있는 인체 캐스팅 방식으로만 주물을 떠내 다수의 연작 가운데 「Anthropometry-Walking woman」(2017) 같은 "콜라주 된 몸"의 형상을 전시했다. 그러한 제작 방식은 『Statue X Statue』(2018)에서 또 다른 「Anthropometry」(2018)와 「Statue X」(2018)로 이어져 맥락을 한층 강화시켜 놓았으며, 동명의 「Anthropometry」(2019)에 이르러서는 같은 주형을 사용한 인체 주물들로 일련의 의미심장한 군상을 제작했다. 같은 해에는 2016년에 만든 「Two Figures」를 가져다 「Statue X」(2019)를 만들었고, 그것이 「Two Shades」에서 내가 기억하고 알아본 바로 그 형상이다. 다시, 「Two Shades」는 이번 전시에서 「Statue X」와 새로운 인체 형상의 접합을 보여줌으로써, 이병호의 인체 주물 작업이 참조적으로 갱신해 온 조각의 시간성과 원형 및 형상의 기원 문제를 역동적으로 엮어 새롭게 환기시킨다. 적어도 2016년부터 5년간 지속해 온 "Anthropometry"와 "Statue" 중심의 연작에서 이병호가 모색했던 (반)조각적 시도들은, 조각에 대한 매우 다양한 참조와 갱신을 불러와 비판적 형상으로서 자기 형상의 기원 및 원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파열시켜 그 산산조각 난 형상의 더미들 속에서 새롭게 생성된 그 내부, 즉 깊숙한 상자 안에 매립되었던 형상에 대한 (조각난) 기억을 다시 발굴하는 것이다. 결국 그 내부의 혹은 덩어리의 쪼개짐이 그늘에 가려진 그 형상의 예측 불가능한 표면에 이르도록 말이다. ● 그는 내내 조각에서의 주물 방식을 작업에 활용해 왔는데, 거기서 파생된 조각적 특징들을 하나의 변수 삼아 변형 혹은 제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부각되어 발생하는 "조각적인 사건들"에 몰두해 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작업으로의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전, 이병호는 한동안 실리콘 조각에 대한 실험에 집중했었다. 이때에는 인체를 직접 재현하거나 살아있는 인체를 그대로 주물 뜨는 방식에서 형태의 견고하고 완전한 윤곽선과 조각의 표면 및 내부의 관계를 비롯해 조각의 양감 문제를 재고해 보는 태도로 드러났다. 그러던 것이 보다 급진적으로 조각의 내부, 즉 조각의 형태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내부 영역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면서, 일련의 조형적 알리바이로 채택된 박제 기술을 참조하여 「Taxidummian」을 제작하게 됐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미세한 (조각적) 변수들을 재설정하며 현재에 이른 이병호의 작업을 오랜 기간 꾸준히 봐온 나는, 『Three Shades』가 포괄하는 인간 형상의 (반)조각적 가능성을 다시 살핀다. 그의 작업은 변수를 재설정하는 순간 다른 맥락의 논의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의 기존 작업을 재인식하고 재참조하는 과정에서도 작동하며 동시에 그가 스스로 수행하는 개별적인 작업의 과정에서도 분명히 의도된 지점일 것이라 가늠해 본다. ● 그는 『Three Shades』에서 로댕에 대한 참조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Following Adam's pose」와 「Two Shades」의 관계 안에서 더욱 구체적인 암시로 드러나면서, 그가 참조해 온 로댕의 인체 주물 작업에 있어서 되풀이되는 반복적 시도에 대한 알리바이를 재구성한다. 두 망령은, 우리 눈 앞에 드러난 두 개의 육체는, (형상의 기원에 있어서) 지연된 육체로서의 「아담」과 동일한 주형에서 출현한 「세 망령」의 조각적 갱신을 환기시킨다. 말하자면, 로댕이 애초에 소조로 만든 인간 형태, (만약 그것이 형상의 기원이라면,) 그것을 주조할 때 발생하는 절단, 해체, 봉합, 지연 등의 필연적인 사건들을 조각적 환영을 지켜내기 위해 은폐하지 않고 (반조각적인) 그것으로 조각적 사건을 현존으로 가져왔듯, 이병호는 그 사건의 발생을 지속시킨다. 로댕은 소조의 주조 기법에 내재된 복제 기술과 절단 및 접합을 통해 총체적이며 동일한 원형의 형태를 수호하는 조각적 관습을 비틀어 그 역설적 행위가 초래하는 조각적 경험을 환기시키며, (조각에 대한) 일련의 변증법적인 사건을 만들어냈다. 이병호는 그 사건에 뛰어들어, 또 다른 참조적인 시각에서 주물 속 새로운 인간 형상의 계보를 상상하며 조각가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병호_Three Shades展_스페이스 소_2020

3. 비틀어진 표면과 형상의 갈라짐 ● 지난 해에 나는 아홉 점의 인체 형상으로 구성된 「Anthropometry」(2019)를 보고 나서 로댕의 「지옥문」(1880-1917)을 경유하며 그에게 작업에 대한 인상을 말했고, 몇 달 전에는 그가 거의 완성된 「Following Adam's pose」와 「Two Shades」를 앞에 두고 그의 작업실에서 로댕의 "아바티(abattis)" 이미지를 내게 보여주면서 이 쪼개진 육체(들)에 대하여 아직 할 말이 남아있음을 알아채게 했다. 그와 희미한 말을 주고 받을 때, 그의 작업실 선반에는 「Anthropometry-Walking woman」의 다리인 것 같은 검은 형상이 덮개에 싸여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뒤로는, 의자처럼 생긴 받침대 한가운데 꼬챙이 같은 긴 막대를 고정시켜 놓고 그 끝에 인체의 형상을 거의 허공에 띄워 놓은 것처럼 꽂아 놓아 도통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체의 주물이 왜곡된 형태로 시야에 들어왔다. 「Torso」(2020)라고 이름 붙인 이 작업에 "color plaster on sculpture"라는 상세 설명을 붙인 이병호는, 회화의 재료를 "oil on canvas"로 표기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참조해 일련의 작업에 대한 재료 표기를 달리하여 조각의 "표면"으로 시선의 응시를 유도함으로써 비틀어진 인체의 주조된 형상에 대하여 그 안(형상의 내부)과 밖(형상의 표면)의 관계를 묻는다. 비틀어진 형상으로서 「Bust」(2020) 연작 또한 그 물음 사이를 지난다. 결국, 우리가 조각(적 형상)을 지각하는 것은 끝없이 생성되고 변형되고 소멸되는 힘을 한시적인 형태로 붙들어 놓고자 하는 조각의 저 견고한 표면에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비틀어진 형상의 한시적인 조각 표면에 아크릴 물감(acrylic on sculpture)을 칠해 놓은 새로운 형태로서의 두상처럼. ● 로댕은 그의 시대에 조각의 확고한 윤곽선을 되레 지연시키기 위해, 주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조각적 흔적을 지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흔적으로 조각적 환영 뒤에 오랜 시간 가려져 있던 새로운 인체 형상(의 가능성)을 복구/갱신함으로써, 반-조각적 실체의 조각적 현존을 불러 올 수 있었을 테다. 세 망령의 현존처럼. 한편, 이병호는, 이미 자신의 시대를 초과해 버린 로댕의 조각적 유산을 제 손에 쥐고 그 망령에 사로잡혀 있던 조각적 상상을 다시 망상하는 일에 한참 몰두해 있다. 요컨대, 로댕이 조각의 표면을 윤곽선에 비추어 인식했던 것에서 그것의 알리바이처럼 붙잡아 놓았던 몇몇 (반)조각적 사건들을, 그는 그의 가설대로 조각의 표면을 그 내부와의 관계에서 재인식하는데 가져다가 전유해 사건의 알리바이에 대한 재구성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이병호는 주조의 흔적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쪼개진 육체 더미로서의 아바티에 주목해, (로댕이 했던 대로) 쪼개진 육체들의 이접을 통해 윤곽선/표면을 지움으로써 형상을 지연시키는 대신 (더 급진적으로 더 작고 더 알아볼 수 없게) 쪼개어진 육체의 공백/내부를 드러냄으로써 갈라진 표면을 비틀어 형상을 지연시킨다. 그것은 추상과 구상, 육면체의 상자와 인간 형상 사이의 경계를 끝없이 왕래한다. ● 2016년부터 시작해 "인체 측정(anthropometry)"과 "조각상(statue)"으로 대표되던 일련의 인체 형상 작업은, 본격적으로 조형적 실험을 매개하던 변수들이 조정되면서 그의 조각적 상상의 함의를 보다 구체화 했다. 그는 살아있는 인체를 직접 캐스팅하여 (형상의 기원으로 삼을 법한) 주형을 얻어내고 그것으로부터 다수의 주물을 주조해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형상 출현 이전의) 추상적이고 물질적인 조각적 원형으로 재인식하여 그 덩어리, 즉 동일한 것으로 꽉 찬 순수한 형태를 수없이 조각내 갈라진 형상, 지연된 형상, 유보된 형상의 조각적 현존을 감행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재현하지 않는, 무제의 "물질"로서 현존하는 인간 형상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말이다. ■ 안소연

Vol.20200919b | 이병호展 / LEEBYUNGHO / 李炳虎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