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ning Hexahedra / 빛나는 육면체들

임현정展 / HYUN J LIM / 林賢貞 / video.performance.installation   2020_0929 ▶ 2020_1014 / 월요일 휴관

임현정_The Full Armor_단채널 비디오_00:08:00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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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홈페이지_www.hjlim.net 임현정 페이스북_www.facebook.com/arthjlim

퍼포먼스 / 2020_0929_화요일_05:00pm

대구예술발전소 10기 입주작가 개인展

후원 / 대구문화재단_대구예술발전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사전관람신청 필수

대구예술발전소 DAEGU ART FACTORY 대구시 중구 달성로22길 31-12 (수창동 58-2번지) 2층 Tel. +82.(0)53.430.1225~8 www.daeguartfactory.kr

빛의 중력: 충만한 오이코노미아(οικονομία) ● 하늘은 땅의 표면에서 시작한다.(장-뤽 낭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이영선 옮김, 갈무리, 2012, p.41.; 낭시는 누군가 천문학자에게 "하늘은 땅의 표면에서 시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대지 위의 모든 곳은 바로 하늘이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프랑스어에서 두 가지 복수 형태를 가지는데, le ciel이라고 쓰는 '하늘'의 복수 형태를 les ciels와 les cieux로 쓴다. 전자는 일반적 의미의 복수 하늘이지만, 후자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치 '하늘'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우리도 "하늘에 계신(…)"처럼 하늘을 다른 세상, 저승, 천국의 의미로 쓴다. '하늘'은 다른 의미로 영적인 공간인 것이다. 하늘이 땅의 표면에서 시작하고, 우리가 땅을 딛고 하늘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하늘이 다른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 있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일상 공간과 영적인 공간의 겹침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물리적 용어로 하늘과 상징적 용어로 하늘은 그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하늘을 두 의미 모두에 사용하는 것은 어떤 겹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그렇게 사용한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 임현정의 작업은 이 공간에 있다. 땅을 딛고 하늘에서 사는 공간, 중력이 작용하는 빛의 공간, 빛의 이끌림이 느껴지는 공간.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감지하지 못했던 영성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임현정은 자신이 경험했던 영적인 어떤 것을 시각화하려고 시도한다.

임현정_빛나는 육면체들_종이에 연필, 아크릴채색_42×57.8cm×4_2020
임현정_빛나는 육면체들_종이에 연필, 아크릴채색_21×29.7cm×4_2020

구원, 새로운 시작 ● 임현정의 작업은 작업 자체만으로 쉽게 독해되지 않는다. 간혹 제목을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 까닭은 작가가 다루고 있는 것이 작가가 감지했던—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던— 어떤 영적인 경험을 작업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작가의 근작은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보통의 기독교 작업에서 클리셰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십자가 형상이나 기독교 상징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작품 제목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전신갑주", "구원"(「전신갑주-OO」, 2020,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2020/2016), 혹은 "그 나라", "빛나는"(「그 나라 사람들」,2016, 「빛나는 OO」,2020) 정도의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를 통해서 기독교적인 체취가 느껴질 뿐이다. 그의 작업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묻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로 추측된다. —이전에는 인간의 부조리함, 원죄에 더 치중했으며, 무의식적인 불편함이 퍼포먼스, 영상, 드로잉의 주제가 되었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 연작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16년이고, 「차단된 지붕」, 「방문자들」, 「위기의 방문자들」, 「그 나라 사람들」 등의 육면체 형상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더불어 이 즈음에 하얀 색조의 대형 캔버스 작업인 「Blossom」(2017), 「White Blossom」(2017)을 그렸고, 영상작업 「보물섬」(2018)에서는 마지막에 성경의 요한계시록 21장 4절로 끝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임현정 작가의 주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나 영상 작업의 경우, 2018년 이전 작업의 마지막은 형상들이 검은 화면으로 스며드는 듯 끝났지만, 2018년 이후 작업에서는 하얀 화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검은 화면은 빛이 있기 이전의 어둠을 떠올리게 하며 심리적인 경험이나 사회적 현상에서 느끼는 어떤 불편함, 인간의 나약함, 욕망 등을 어둠 속에 감추는 느낌을 준다. 반면, 밝은 빛이 부각되는 마지막 화면은 감추는 것이 아닌, 승화되는 느낌으로, 구원, 새로운 생성, 새로운 시작에 기대가 스며 있다.

임현정_퍼포먼스를 위한 오브제들_혼합매체_가변설치 및 착용_2020

그러할 수밖에 없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이코노미아'가 부정될 수는 없습니다 all' ou tēn oikonomian anairēsei"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논박』, p.48.) 주목할 부분은 육면체의 등장이다. 201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육면체는 지금까지 몸으로 표현했던 작가의 퍼포먼스 작업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무척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임현정의 2007년 석사 논문 「상상의 공간으로서의 몸」을 떠올리면 그가 오래전부터 몸과 공간을 겹쳐서 사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몸은 공간으로 등장하고 여러 신화 등에서 몸은 영혼이 존재하는 공간, 동굴, 집, 그릇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 성경에서도 [영혼의] '집'으로 비유"된다고 한다. 그리고 "육면체는 집이라는 공간을 가장 단순화한 형태"라는 말도 덧붙인다(작가의 말). 따라서 '몸=집=육면체'의 공식이 성립된다. 육면체는 집이며,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빛나는 육면체들」(2020)은 각기 다른 몸(영혼)이 모여 이룬 공동체를 보여주는 작업으로, "빛나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동체성의 회복에 대한 작가의 열망이 묻어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 육면체 작업은 그 제목을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드러낸다. "빛나는"뿐만 아니라(「빛나는 육면체들」), "방문자"(「방문자들」, 「위기의 방문자들」), "그 나라"(「그 나라 사람들」) 등의 단어들이 육면체 작업에 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외부로부터의 방문(혹은 침입)과 내부적인 조화를 구축한 객체의 연합("빛나는")에 대한 서사를 만든다. 작가의 종교적 성향과 집으로서의 몸을 생각할 때, 이 서사의 중심에는 예수(신)에 의한 신비로운 구원 계획인 '오이코노미아'(οικονομία, ojikonomiva)가 놓여 있다. —신약성경에서 총 9회 등장하는 오이코노미아는 세상을 창조하고 뜻을 세워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신)의 모든 계획을 의미한다.— '경륜'(經綸)을 의미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가 어원이며, '집을 짓다'는 의미의 '오이코도메오' 또한 오이코스에서 파생되어, 오이코노미아를 '집'과 그 집을 '세우는 일'과 관련된 단어로 본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신비로운 구원 계획을 집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과 연관시키는데, 이것은 임현정이 작업에서 (몸으로서) 집에 방문자들 받아들임으로써—혹은 몰아냄으로써— 집을 세워가는 서사(구원 계획 실행)와 집을 세운 자들이 연합하는 서사(공동체성 회복)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오이코노미아', 즉 하나님의 계획, 구원 계획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계획으로, 작가의 「빛나는 육면체들」은 구원 계획의 실행, 다시 말해서 몸으로서의 집이 보여줄 필연적인 모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임현정_Color Crush_관객참여형 퍼포먼스_00:20:00_2020 (첫 번째 프로젝트)

모든 관객은 이미 퍼포머다 ● 이러한 기독교적 성향은 퍼포먼스와 영상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이번에 실행하려고 했던—하지만 코로나19로 실행하지 못했던— '영혼의 생명에 관한 트릴로지(3부작) 프로젝트' 중 하나는 성경 에베소서 6장 14, 15절—"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이 모티프였다. 퍼포먼스에 착용하기로 되어 있던 「전신갑주-OO」 연작—OO는 흉배, 신발, 검, 헬멧, 방패, 허리띠다—으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색채가 강력하게 읽힌다. 그렇다고 퍼포먼스에 종교적 클리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임현정의 퍼포먼스를 흐르는 큰 맥락은 형상적인 몸의 확장과 부자연스러움, 불편함을 경험함으로써 몸이 지닌 감각의 확장이다. 그는 확장된 몸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함으로써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행동했던 몸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느끼고, 그 반응에 직면하면서 다른 사유와 시야를 열어가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다른 사유와 시야는 그동안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의식적 충동, 심리적인 욕망, 사회적인 불편함 등을 인식하는, 혹은 인식시키는 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 치유의 과정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이런 형상적, 감각적으로 확장한 몸을 통한 퍼포먼스는 지금까지 작가가 주요 행위자로 등장했었다. 하지만 '영혼의 생명에 관한 트릴로지 프로젝트'에서는 행위자가 관객이 되는 모두의 퍼포먼스로 변화된다. 그 중 첫 번째는 러시아에서 실연한 「Color Crush」(2020)였다. —총 네 파트로 구성, 1) 오브제를 머리에 쓰고 걷기, 움직이기 등의 행위, 2) 오브제를 머리에 쓰고, 박수를 치거나 소리 내기, 3) 오브제를 머리에 쓰고 댄스 음악에 맞춰 춤추기, 4) 쓰고 있던 오브제들을 제자리에 두고 참여자 모두 껴안거나 악수하기— 작가는 자신이 퍼포먼스를 통해 느꼈던 감각, 직면했던 다른 반응을 관객과 공유하길 원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해방된 관객』에서 이렇게 말한다. "퍼포먼스는 제3의 것이다. 누구도 그 소유자가 아니고 누구도 그 의미를 소유하지 못하는 퍼포먼스는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끼어 있으며,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전달, 원인과 결과의 동일성을 모조리 멀리하는 제3의 것이다."(p.27) 퍼포먼스는 이미 제3의 것이다. 임현정은 제3의 것인 퍼포먼스를 더욱더 관객을 향해 밀고 나간다. 이것이 모두의 퍼포먼스라 할 수 있는 '영혼의 생명에 관한 트릴로지 프로젝트'다. 일상적인 것 속에 존재하는 비 일상성을 발견하는 것, 불완전성을 경험하는 것, 이러한 발견과 경험을 통해 "빛나는 육면체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구원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모두의 퍼포먼스 심연에 흐른다. 그는 무딘 일상에 파묻혀 인식되지 못한 영적 분위기를 물질적 작업과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땅을 딛고 '하늘'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사유와 감각은 물리적 공간과 영적 공간이 겹쳐진 곳에서 떠돈다. 임현정의 작업은 우리의 시야를 물리적 공간 너머의 영적 공간까지 넓혀준다. ■ 안진국

임현정_Shinning Hexahedra / 빛나는 육면체들展_대구예술발전소_2020
임현정_Shinning Hexahedra / 빛나는 육면체들展_대구예술발전소_2020

2020년 초. 올해는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혼의 생명'에 관한 주제로 세 가지 관객참여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었는데, 다행히, 2월에 했던 첫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완료하였다. 모든 관객은 퍼포머가 되기도 하고, 관객이 되기도 했다.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주체와 객체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함께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불청객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게 되면서, 주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관객참여 퍼포먼스에 대한 계획은 약간 수정하게 되었다. ● 이번 프로젝트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 및 드로잉 전시를 한다. 제목은 『빛나는 육면체들(Shinning Hexahedra)』이다. 오래전부터 영혼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특히 영혼의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여러 문학과 신화 등에서는 영혼을 담는 공간, 즉 몸은 종종 집으로 비유하기도 했는데, 집을 가장 단순화한 형태라고 하면 육면체가 떠오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집의 형태들이 있지만, 이 시대, 여기의 집들은 육면체가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살아있는 영혼, 그 영원함"이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키워드이다. ● 4층과 5층은 입주 작가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어둑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런웨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인트 조명이 복도 중간에 들어와 꽤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4층 복도 끝에서부터 5층까지 퍼포먼스를 하는데, 복도 중간에 놓인 오브제를 착용하며 긴 복도를 걷는다. 드로잉, 설치 작품 등이 전시되어있는 5층 커뮤니티룸(전시장)에서 퍼포먼스는 마무리된다. 5층 복도의 끝에는 영상작품이 설치된다. ● 생각보다 바이러스가 쉽게 잡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참여형 퍼포먼스도 머지않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임현정

Vol.20200929c | 임현정展 / HYUN J LIM / 林賢貞 / video.performanc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