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oxical Landscape

신경철展 / SHINKYUNGCHUL / 申炅澈 / painting   2020_1003 ▶ 2020_1017 / 일요일 휴관

신경철_Paradoxical Landscape展_쿤스트 포럼 베를린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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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100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쿤스트 포럼 베를린 Kunst Forum Berlin John-Schehr-Straße 1 10407 Berlin, Germany Tel. +49 (0)30.39711151 kimgo.de

역설적 풍경 ● 흐릿한 형태로 암시되는 숲과 호수의 풍경. 기억은 자동차나 열차의 평면 차창에 반사된 모습으로 캔버스를 채운다. 이렇듯 신경철 작가의 '역설적 풍경'은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 일렁이며 나타난다. 첫눈에는 이런 형태는 마모를 통해 얻어진 결과인 듯 보이는데, 맨 위 표면은 그 아래에 위치한 다른 소재를 들추려는 듯 벗겨져 있다. 캔버스가 대지라면 풍경은 조형이다. 붓질로 만들어낸 반복되는 능선은 들판에 그어낸 골과 같은 모습이며, 이렇듯 캔버스의 절대적 평면을 압도하는 질감의 향연이 펼쳐진다.

신경철_T-HERE-102,T-HERE-92_리넨에 아크릴채색_ 193.9×112.1cm×4_2018

다른 첫 인상은 시각적 대체물로 찍은 사진과 비슷한데, 자연의 영원성에 대한 인식이 갑작스레 압도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는 자동차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얼룩진 풍경에 카메라를 대고 찍은, 장소 그 자체 보다는 느낌을 담아낸 종류의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카메라 메커니즘으로 담아낸 세상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많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촉촉한 눈은 보는 이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 사진기 렌즈는 필름 또는 이미지 센서 앞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기술적 이미지의 파괴적 평면성은,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다차원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평면성과 다차원성을 크게 대비시킨다. 자연은 결코 평면일 수 없지만, 그 평면성이 자연을 대리하고 심지어 대체해버린다.

신경철_T-HERE-97,T-HERE-102_리넨에 아크릴채색_ 130.3×80.3cm×2_2016

신경철 작가의 회화는 존 버거(John Berger)가 오래 전 주장한 공유지 인클로저(the enclosure of the commons)와 토지의 사적 소유와 함께 등장한 일반적 풍경화에 대한 예리한 역설이다. 토지는 법적 계약의 대상으로 축소되고, 서류 위에 그어진 선으로 남는다. 신경철 풍경화는 이런 식으로 부호화되고 비자연화된 영역이다. 즉, 작가의 풍경화가 상기시키는 대지는 화면과 거울의 표면 또는, 셀룰로이드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 상의 풍경이다. 초산업사회의 풍경이며, 이 사회에서 대지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사유(私有) 코드가 지배하는 기기가 모든 이미지를 생산한다.

신경철_T-HERE-104_리넨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6

또한 이는 헤겔적 풍경화이다. 이 풍경화는 길들여진 공간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한, 부드럽게 교체될 수 있는 균일한 파스텔 톤의 (음)원판으로 나타난다. 빛나는 색조의 사각형은 향수를 자아내는듯 프린트된 그림자와 램프 같은 벽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은 부재와 부정을 통해 자연을 암시한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우리는 교환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생각하고 분석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교환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집으로 가고 생각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즉 풍경은 더이상 사유의 주제가 아니고 성찰과 반성의 맥락이 된다.

신경철_T-HERE-2058_리넨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20
신경철_T-HERE-2054_리넨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20

이러한 이미지들은 양가적 성질을 갖는다. 마치 사진이 의도한 대상을 재현하지 못하지는 못하면서 비어 있기는 고집스레 거부하는 것과 같다. 이미지 기술은 이미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관심이 적고, 하나의 이미지가 생산되는 것에 더 관심을 둔다. 하지만 이런 성질은 초기 사진에서 그러했듯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미지를 해방시킨다. 우연성이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그 누가 제아무리 재빠르게 행동 한대도 그려낼 수 없는 그 순간, 그래서 기계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부서져 평평해지는 시간은, 우리 인간이 마치 행성의 역사처럼, 지질학과 병합되는 생물학처럼 느리고 무거운 존재임을 폭로한다.

신경철_T-HERE-27#6_리넨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19

신경철 작가의 풍경화는 과거에서 다시 솟아난 풍경이다. 이제 막 꾼 꿈에서의 정경이며, 다양한 기억과 무의식이나 데이터 분석 기능들로 빈틈없이 채워진 정경이다. 완전하지 않은 디지털과 같이,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가 만들어 낸 소산물은 의미의 고색(古色)을 분위기에 얹는다. 두드러진 하나의 색채가 회화 시리즈를 관통하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번들거리는 은빛으로, 안락한 공간의 주변 빛과 우리 존재를 슬쩍 잡아낸다. 신경철의 회화 표면에서 우리는 하나의 자연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세계는 모더니티를 통해 한없이 닳고 닳아버렸고, 그런 인간 활동(예술)은 우리 세계에 새겨져 버렸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지적하듯 "예술작품"은 우리를 인식적 관찰자 지위에서 무의식적 공연자로 휙 내던져버린다. 우리의 감정은 별볼일 없는 가장자리에서 잔뜩 겁을 먹은 채 일렁인다.

신경철_T-HERE-20055#2_리넨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20
신경철_T-HERE-19030_리넨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19

신경철 작가의 풍경화는 역설적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이 풍경의 대상이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풍경들이 더 이상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과 감상자에게 반응하는 조각적이고 공연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류세(人類世)에는 인간 활동은 자연의 힘이 되어간다. 그리고 우리의 외부에 있던 자연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자리잡고 있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꿈에서만 볼 수 있는 백 만년 동안의 원형적 풍경이 되어간다. 이는 우리와 지구의 급진적 통합이라는 꿈을 통해, 지각의 제약 없는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2020년 10월) ■ 바루크 고틀립

신경철_T-HERE-2007_리넨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20

Vague indications of forests or lake-lands rising from memory to the surface of the canvas, flat like reflections on the windows of a car or train, Kyungchul Shin's "Paradoxical Landscapes" shimmer in an uncertain state. At first glance they seem the result of abrasion, the surface weathered away to reveal another material beneath. As such the surface of the canvas itself is the terrain and the landscape is sculptural, the regular ridges of the paint strokes like furrows in a field the textures ever more prominent in the otherwise implacable flatness. ● Another early impression is that of photographs such as those taken as a replacement for looking, because the recognition of the eternity of nature is suddenly overwhelming. The camera is pointed out towards the smearing landscape outside the window of a moving vehicle, photos more of a feeling than of a place, photos which reveal how different the camera mechanism is from a human eye. The moist eye is connected to the heart of the observer, while the photographic lens is merely lodged before the film or image sensor. Again, the crushing flatness of the technical image, brings out the dimensionality of our lived lives in gross contrast. The flatness, which has no equivalent in Nature, is able to stand in for, or, increasingly to replace Nature. ● This is the exquisite paradox in the conventional landscape, which emerged, as John Berger long ago observed, with the enclosure of the commons and private ownership of land. Land is reduced to a legal contract, lines scratched on paper. Shin's landscapes seem to refer in this way to an encoded, de-natured domain, the terrain they evoke is the surface of a screen, of a mirror, an image sensor or of celluloid. This is landscape of the hyperindustrial condition where land has become a metaphor, and propietary codes pervade the apparatus which produces every image. ● These are Hegelian landscapes in that they appear as the negative of gently interchangeable and homogenous pastel tones meant to soothe the surfaces of domesticated space. These rectangles of glowing hues bulge from the walls like lamps with nostalgic printed shades. They indicate Nature by its absence or negation. Unlike before, as Vilém Flusser observed, we went outside to exchange and be informed and went home to think and analyse, today we go home to exchange and be informed and go outside to think. Implied here is that the landscape is no longer the subject of contemplation but a context for introspection, for reflection. ● There is an ambivalence about these images, as if the photograph failed to reproduce what was intended and yet stubbornly refuses to be empty. Image technology cares less about what is in the image, than that an image is produced. But this emancipates the image, as was observed in the earliest photographs, to display not only space but time as well. The aleatory became the prize. The moment, faster than anyone could ever paint, the crushing flattening of time which only apparatus can produce, reveals us human beings as slow and heavy with history as planets, biology merging with geology. ● Shin's landscapes truly are like those which resurface from the past, as scenery in dreams, inchoate, with various memories seamlessly associated through the function of the unconscious, or some database analysis. Like an incomplete digitization, emanations of information, just enough to recognize something, produce a patina of meaning on a mood. , Then becomes evident the significance of the single pigment uniting all the paintings of the series, the lustrous silver which picks up ambient light in the room and even indications of our own presence. We appear as nature in the surface of Shin's landscapes. Our world worn through and through, through modernity, so inscribed with human activity that it becomes itself as Marshall McLuhan once claimed "an artwork" flips us out of our cognizant observer status into that of unconscious performers, our sentiments shimmering timorously on the verge of insignificance. ● The landscape paintings are paradoxical not only because it is we who have become the subject, but also that they are no longer static images, but sculptural, performative pieces which respond to the room and to the observer. In the Anthropocene, human activity becomes a force of nature, and that which we used to behold as other is ever more admittedly as inside of us as we are in it. We become the archetypal landscape of a million years before humanity existed, which we can only dream. For it is through the dream that the radical unity of ourselves and the planet becomes communicated uninhibited to our perception. (October 2020) ■ Baruch Gottlieb

* 조언 This is the exquisite paradox in the conventional landscape, which emerged, as John Berger long ago observed, with the enclosure of the commons and private ownership of land. Land is reduced to a legal contract, lines scratched on paper. Shin's landscapes seem to refer in this way to an encoded, de-natured domain, the terrain they evoke is the surface of a screen, of a mirror, an image sensor or of celluloid. This is landscape of the hyperindustrial condition where land has become a metaphor, and proprietary codes pervade the apparatus which produces every image.

Vol.20201003g | 신경철展 / SHINKYUNGCHUL / 申炅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