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內在·Immanence

2020_1006 ▶ 2020_1014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려향_박수만_배지민_서길헌 서용인_서정배_송인_유한이_이주리 전형주_지원진_진은정_최만식_한상진

후원 / 아트레온 갤러리 주최 / 순수미술작가회 기획 / 서용인_최만식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 (창천동 20-25번지)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이 전시는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하나의 작품은 그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거울의 투명함 정도에 의해 그 모습은 잘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투명함의 정도는 오롯이 작품의 구체적인 표현에 있을 것이며, 그것이 '순수함'의 의미라 생각해 본다. '순수함'이 표현의 명료함과 구체성이라고 할 때 깊이 있는 해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전시주제 '내재(Immanence)'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규정하는 원인이 외부에 초월해 있지 않고 그 사물자체 속에 있다' 는 말이다. '내재'라는 개념 속에는 관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주체라는 개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호적 작용으로서의 관계 상황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관계 상황의 전개 그 자체가 모여 주체가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기반할 때 개별 관계가 이루는 특이성은 개별주체라는 존재론적 의미로 상징되고 또한, 그것이 현상화되어 질 때 '순수함' 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된다고 하겠다. '순수함'의 정도 즉 관계의 특이성은 미학적으로 '재현과 비 재현', '원본과 복제본', '허상(시뮬라크르)' 등의다양한 해석 속에서 이해되어 오고 있다. 작가에게 이것은 실행되어지는 표현의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현되어지는 것으로서의 작품과 표현의 주체로서의 행위자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순수함'의 정도를 작가와 작품과의 특수한 관계라고 볼 때, 구체적으로 표현된 형상을 통해 그러한 '순수함'의 정도를 접촉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일 것이다. '순수함'의 정도는 작가와 작품과의 특수한 관계설정에 기반하고 있다. 말하자면 행위자로서의 작가와 작품이라는 형상의 상호관계가 하나의 지점으로서 온전히 일치되는 경우엔 원본의 위상이 되겠지만 반면 그렇지 못할 경우엔 복제본으로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작업의 실행과정에서 행위자와 표현된 형상의 관계가 온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즉 행위의 주체와 표현되어지는 형상 사이에 거리가 존재하는 한 그렇게 표현된 작품의 형상 속에는 필연적으로 비 재현적, 복제됨, 허상적 의미가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순수함'의 의미는 원본의 위상이 아니라 비 재현적, 복제됨, 허상의 특이한 정도에 있음을 이 전시의 화두로 제시해 본다. 또한, 작품을 통해 작가들의 서로 다른 관계의 특이성을 시각을 통해 마주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흔쾌히 참여해주신 작가님들과 전시를 후원해주신 아트레온 관계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서용인_최만식

김려향_Stained stuff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20

동시대에 난무하는 다시각적인 왜곡된 현상들을 직시하고자 한다. 사물이나 풍경 등을 비롯한 실재로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각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거듭 변화시켜 왜곡된 현상들을 미술학적 관점에서의 진실로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근거를 고찰한다. 또한 이러한 왜곡 현상들은 현대미술에서 다양하게 적용되어 왔으며, 때로는 마치 실재보다 왜곡된 결과물이 더욱 진실로 받아들여진 결과를 바탕으로 실재와 왜곡된 실제의 경계(정점)에 대한 문제를 해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볼 때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는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실재를 주축으로 하고 있기에 모든 작품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사물 또는 풍경 등과 같은 실체를 가지고 있다. 형과 색 등의 왜곡을 거처 제작된 작품은 실재와 시각적으로 차별되어지나, 결과적인 인지는 실재와 다름없는 실제라 할 수 있다. “바라보는 시각적 실재와 기억의 실제는 다르다.”는 연구자의 의견을 토대로 제작된 허구가 진실로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 김려향

박수만_대일밴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20

올 해들어 세상이 하수상하여 좀처럼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 바이러스 질병의 역사는 요즘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에 대해서 치료약이 없다는 것은 무척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중세에 흑사병이 그러하였고 최근에는 메르스, 신종플루, 코로나19 등등이 사람들을 힘들고 무섭게 한다. 전염병을 이겨내기 위해 의학계에서 피땀을 흘리며 연구하고 있지만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조속히 연구되기를 희망해 본다. 어렸을 때에 다치고 아프면 대일밴드와 빨간약인 아까징끼만 있으면 만병통치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상처에 기본인 두 약품... 밴드 하나에 모든 걸 맡기기엔 부담이 되지만 치료약이 없는 이시기에 부적 같은 믿음을 감히 전해보고 싶다. ■ 박수만

배지민_만선滿船_장지에 수묵, 호분_193×130cm_2020

내가 사는 부산은 치열함과 동시에 풍요가 어우러지는 곳이다. 너울거리는 파도 위 일과를 마친 어선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고된 노동 뒤의 숭고함과 삶에 대한 희열이 느껴진다. 수묵으로 이러한 정취를 담고자 나는 흑백(黑白), 강약(强弱), 건습(乾濕), 동정(動靜) 등의 어우러짐을 표현한다. 곧 현상들을 온전히 그리기보다 생략과 겹침을 통해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형상을 만들고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화면에 공존하게 한다. 이러한 감각들이 관객에게 사유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스며들길 바란다. ■ 배지민

서길헌_신성한 숨결-202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20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화가 난 것도 아니고 화가 나지 않은 것도 아닌, 불만인 것도 아니고 만족한 것도 아닌, 그러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화가 나지 않기도 하는, 그러나 끔직 하고도 살가운 마음, 따스하기도 하고 살 떨리는 마음, 그것은 도개비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스러운 듯 하면서도 심각하기까지 한 신성의 종합적인 표정이다. 그것은 어느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얼굴이며,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풍경이다. 언제나 말없이, 그러나 회오리처럼, 그러한 감각은 오늘도 내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올라 나의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 서길헌

서용인_관념의 감각화 B-3_캔버스에 유채, bee secretions_181×227cm_2020

나에게 감각이란 나의 몸이 외부와 마주치는 상황에서 발생시키는 반응의 형식, 형상이며 환영이다. 이것들은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기계적 반응에 가깝다. 이러한 기계적 반응으로서의 감각이 캔버스에 물질 형태로 옮겨지면서 기계적 반응은 시, 공의 구조적 차원의 감각으로 구체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구조적 차원의 감각이 감각의 범주를 벗어나 물질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구조적 차원의 감각을 담은 캔버스는 벌들이 있는 자연 상태에 노출되고 그 속에서 자연의 부분으로 머문다. 캔버스는 자연의 사태가 부여하는 힘들에 의해 변형을 이루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친 캔버스는 나와 자연의 관념들이 감각화를 이루는 지점들이다. 나의 작업은 나와 자연을 관념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관념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감각화하는 것이다. ■ 서용인

서정배_0시_오늘이면서 내일_캔버스에 유채, 네온_300×143cm, 15×35cm_2020

오랫동안, 나는 습관적으로 수첩에 일기를 섰다. 쓰여진 일기는 대체로 그때의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함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다시 들여다보게 될 때는 부끄러운 생각에 읽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 그때의 일기를 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하였다. 나는 1인칭 시점의 일기를 '그녀'로 고쳐 3인칭으로 써보게 되었고, 그때의 일들에 대한 다른 시점에서 감정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가상의 만들어진 인물, '키키(kiki)'는 이렇게 출발하였다. 키키(kiki)라는 이 가상의 만들어진 인물에 관해 쓰여진 텍스트의 내용은 이 인물이 일상 속에서 매순간 느끼는 감정과 관념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감정의 나열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정배

송인_축적된 단상_장지에 먹, 콘테, 아크릴채색, 수정테이프_162×95cm_2020

관계의 초상 ● 본인은 수년 동안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된 다양한 갈등 구조를 통해 인물의 표정이 녹아 있는 작품을 제작해 왔다. 그로인해 사회에 만연된 의식을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특히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관계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서 깊이 자리하는 불편한 사회적 관계 요인들을 인물의 표정이라는 표피적 현상과 심리적 요소들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몰 인격화되는 사회현상에서 자인되는 간섭과 감시의 유형을 살피고 이로 인해 사회 부적응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리적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한 묵인된 폭력과 강제된 관계가 경계와 심리적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으며, 죽음을 동반한 인간의 허무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본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였다. ■ 송인

유한이_Moving in_장지에 연필, 채색_130×162cm_2020

옛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들에는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묘한 낯설음과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성인이 된 이후의 모든 경험의 배경이 된 성남 도심의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은 항상 새삼스럽다. 성남의 개발 초기 풍경을 담은 기록사진을 토대로 한 단순한 형태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배열의 마을의 풍경을 통해서 성남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의미를 그려보고 싶었다. 조망하는 시점은 아득한 시간만큼의 거리감을 보여준다. 작업을 위해 참고한 기록사진 속 넓은 면적의 개발지를 기록하기 위한 부감시는 중첩하는 건물들로 이루어진 심원의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푸르스름한 색과 황토 빛이 뒤섞인 색감의 무겁고 흐릿한 공간 속에 아득한 시간을 담아보았다. ■ 유한이

이주리_살다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20

안착과 탈피에 대한 꿈-살다 ● '길 위의 사람' 삶의 의미를 찾아 스스로 떠나는 존재를 가리키는 Homo viator의 인간. 삶에는 완벽한 안착도 완벽한 탈피도 없다. 그러나 상반된 그것에 대한 끝없는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간, 정반대의 욕망들은 더함과 덜함의 찾는 길에 따라 욕심과 탐욕으로 또는 진정한 꿈의 길이나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로 다가가기도 한다. 우리 삶의 모순과 이중성 안의 욕망과 희망함을 드러내 우리 삶이 안착과 탈피라는 두 가지 명제 속에서 갈등하고 실현되고 있음을 말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작업들로 표면적 방법들만 난무하는 지금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은 간절함의 표현으로 진정한 행복에 다가가기를 바래본다. ■ 이주리

전형주_사의적 정원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20

나의 세필 행위의 근저에는 좀 더 근원적인 충동도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의 행위는 어떤 이미지가 허상인지 실상인지 알기 위해 뻗어보고 직접 만져보는 행위 같은 것이며, 사진으로만 본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충동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나의 껍데기 같은 세계, 정적과 고유의 세계에 그 스스로 실재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의 세계와 실제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결국 나에게 있어 붓질은 세계와의 실제적 접촉을 회복하고자 하는 존재의 몸부림이자 생(生)의 간절함이다. 나에게 있어 세밀 기법은 대상을 표현하는 한낱 기법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들이 세밀 기법을 위해 선택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 전형주

지원진_침묵의 소리 <씨앗 시리즈>_장지에 수묵_48×64cm×10_2020

나는 수묵의 단순함이 좋다. 번잡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묵만큼 간결한 것을 찾기 어렵다. 앞에 펼쳐진 화려한 바깥 세상의 구경만큼 내 안을 여행하기에 적합한 수묵은 나에게 시와 같은 존재이다. ■ 지원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속에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을 온전히 투사하려 애쓴다. 이 시도의 성취 여부는 늘 불확실 하다. 정신적인 것은 눈에 드러나지 않고 쉽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면 그것은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솔직하고 직접적인 행위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붓을 통해 화면에 투영되는 마음결은 손의 움직임을 타고 드러난다. 그것은 쉬이 식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리 쓸 수 있는 눈속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붓에서 나오는 자취들은 화면의 완고한 침묵 속에서 숨길 수 없는 그대로의 생김새와 그 헐벗은 전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오히려 그림을 침묵의 적막으로 채우는 여백을 통해 화면에 마음의 자리를 비워 놓는다. 너른 화면에 붓으로 간결하고 묵직한 산발성의 묵흔만을 남김으로써 그는 모든 것이 포화 상태인 세계에서 도리어 삶을 온전하게 하는 여백의 터전을 마련한다. 비어있는 화면의 침묵은 무위를 요하는 마음의 공백과 잇닿아있다. ■ 서길헌

진은정_Disclose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0

본인은 작업을 위한 이상적인 관념이 없다. concept, form의 이상적 관습도 어떤 방향으로 끝날지 알 수 없기에 실체를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있음은 단지 표현이고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다. 의미 지어진 것들이 무의미해 지기도 하고 무의미한 것들이 다른 의미가 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술적이지도 재현적 이지도 않는 그 자체의 대상과 마주한 순간의 느낌일 수도, 지나간 기억들일 수도 있다. 낯설고 설레 이고 무겁기도 한 감정을 다스리며 그 마주침에 대한 진동의 흔적을 담는다. 이 흔적들은 그리고 지우다 만 붓질, 잘못 그어진 선, 혹은 손자국들.. 이 자국들은 그어짐의 시발점이 되어 형상이 되고 그 상이 또 다른 형상을 이룬다. 이러한 형상의 리듬은 자숙의 시간이며 규정 되어지기 이전으로서의 되기이다. ■ 진은정

최만식_천년을 살다_캔버스에 유채_193×130cm_2020

살아 천년(千年), 죽어 천년(千年) ● 백두대간의 높은 봉우리마다 기괴한 모양의 주목(朱木)들이 자라고 있다. 자신의 붉은 몸속을 내주어 죽은 자의 관이 되고 활의 재료가 되는 등 온갖 풍파를 겪으며 천년 이상을 살 고 있다. 주목은 서둘러 자라지 않고 천년을 살 생각을 한 것 같다. 백년쯤 버티면 하찮은 것들은 사라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 주목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숙연해질 따름이다. ■ 최만식

한상진_무경계 無經界 no-boundary –양구로부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20

나의 작업은 바깥에서 이뤄진다. 여기에서 밖이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이며 지시적인 언어의 내부가 열리는 자리이다. 산과 물은 상처의 흔적이기도 하다. 뒤틀린 시간과 한 몸이 된 풍경은 계절을 지나 피어나고 지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우리는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경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유한한 인간의 생멸속에서 말 건네는 풍경은 우리의 시간과는 다른 자리에 있다. ■ 한상진

Vol.20201006d | 내재·內在·Immanenc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