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의집 창작스튜디오 제4기 입주작가 개인전

민택기_정직성_김제원展   2020_1007 ▶ 2020_1115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민택기 『Passing through』展 / 2020_1007 ▶ 2020_1018 정직성 『기계 The Mechanic』展 / 2020_1021 ▶ 2020_1101 김제원 『The Third Spaces』展 / 2020_1104 ▶ 2020_1115

관람료 / 성인 1,000원 / 청소년,군인 500원 장애인,유공자,65세 이상,5세 미만 무료

관람시간 / 10월_09:00am~06:00pm 11월_09: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이응노의 집 Maison d' Ungno Lee 충남 홍성군 홍북읍 이응노로 61-7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기획전시실 Tel. +82.(0)41.630.9220 leeungno.hongseong.go.kr

민택기 『Passing through』展 숲은 / 나에게 마음의 안식처 따위의 것만은 아니었다. 빽빽한 나무와 숨 막히는 초록은 폐쇄 병동의 초점 없는 흰 벽과 같았다. 거기다 파드득, 하고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면 순간적인 두려움에 압도당해 몸은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다행히도 그게 들짐승이 아닌 새 같은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나의 모든 감각은 날아가는 그것을 끊임없이 뒤쫓았다. 나를 데려가 줘, 하든 지 나도 날고 싶어,라는 유아적 언어를 마구 내 뱉으며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민택기_숲속의 파이터는 #1_아카이벌 피그먼트 지클리 프린트_80×55cm_2020

땅은 / 흙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시의 땅에 있던 흙은 본래의 흙이 아닌 붉은 먼지일 뿐 이곳의 그것은 생명 그 자체다. 풀, 들, 꽃과 같은 사람이 지은 이름 같은 고루한 것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바다와 같이 넓고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생명들. 나처럼 비루한 존재가 함부로 밟고 넘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이미 발밑에 있던 이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내 시선은 아래로 향해 가장 낮은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엔 그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우주를 보았다.

민택기_침묵의 숲을 #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9

새는 / 자기가 떠났던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 위에 살포시 앉은 그 순간을 나는 목격했다. 나무는 머리 숙여 존경의 표시를 하듯 가지를 아래로 내렸고 동시에 그도 감사의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긴 여정에 피곤한 듯 나무에 몸을 맡겨 머리를 날개에 파묻었다. 나무는 그냥 가만히 옆에 서 있었고 아무 조건 없이 과거가 아닌 지금의 그로 받아주었다.

민택기_바다와 같은 숲으로_#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6

나는 / 지나간다. 나에게 스민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8년간 내 에포케 상태를 존중하면서 선험적 경험을 방패 삼아 차가운 시공간에서 싸웠던 여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파이터의 직무를 등에 단단히 동여매고 동굴 같던 숲을 터널 삼아 세상 반대편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자유롭게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소금기 많은 바닷물에 온몸을 던질 것이다. ● 숲속의 파이터는 / 침묵의 숲을 지나 / 바다와 같은 숲으로 ■ 민택기

정직성_201747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259cm_2017

정직성 『기계 The Mechanic』展 공간은 그곳을 형성하고 있는 형상의 모양새와 배치만으로도 그 자체로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책상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듯이,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공간을 꽉 채운다. 사는 사람이 없으면 집이 상한다는 말은, 공간에 부여되는 리듬이 사라지면 공간의 생명력이 사라진다는 뜻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정직성은 공간에 형성된 이런 리듬과 동선, 움직임, 기세에 관심이 많다. 정직성이 다루었던 서민 주거지, 연립주택, 작업장, 공사장, 교외 지역과 자연물 등 연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양한 소재를 관통하는 공간의 운동과 리듬에의 각별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심사는 결국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의 관심일 것이다.

정직성_201761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259cm_2017

정직성의 24회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기계 The Mechanic』이라는 동명의 시리즈 전시 중 세 번째 전시로, 자동차 정비사의 '작업장'이라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작업장은 일에 대한 작업자의 해석이나 숙련도, 필요와 효율성 등 많은 요소에서 비롯된 도구의 배치, 작업 대상과의 거리에 따라 공간을 채우는 리듬이 달라진다. 작업장은 일의 성격에 따라, 혹은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펼쳐지는 양상이 매우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작업장 속에서도 차이가 있는 리듬이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부딪히고 섞인다. 비교하자면, 공사장은 또 다르다. 주로 몸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육체노동과 손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장의 움직임에 더해, 스펙터클한 규모의 장비들이 형성하는 속도와 규모가 다른 리듬의 결을 형성해 기존의 움직임과 섞여 화음과 소음 혹은 불협화음 같은 공간 속 기세의 조합을 형성한다.

정직성_201770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259cm_2017

정직성은 공간의 움직임, 리듬, 속도와 기세, 생명력, 화음과 불협화음을 그림의 표면 이미지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림은 단순히 대상의 외양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서 그 공간을 표현한다. 화면을 채운 작업장의 기계들은 멈춰있지만 멈춰있지 않다. 기계를 형성하는 흐르는 붓질이 꺾이고 다시 흐르고 튀어 올랐다가 멈추고 다시 흐르기 때문이다. 채도 높은 색이 바닥에서부터 튀어 올라 전진하고, 앞뒤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붓질이 그림 속 공간에 긴장감과 리듬을 형성한다. 그것은 작업장 정비공의 일하는 속도와 리듬, 노동의 고통과 기쁨, 희열과 보람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정직성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의 성격과 공간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특성을 압축적으로 짚어내 그림에 담고자 한다. 금속성 고체인 기계는 그림의 표면에서 액체적 성격을 지닌 생동감 있는 유기체로 재구성되어 구조화된 이성적 세계를 넘어서는 역동적 직관의 세계, 자율적 노동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 정직성

김제원_Traveler Recollect within the Mind_ 일본 교토 빈 집에 설치, 종이, 녹나무, 소나무, 대나무발, 나무 프레임, 발견된 오브제, 영상 프로젝션_가변설치_2018
김제원_The Third Space 9_폴란드 스우프스크의 젬스타 코샬리나에 설치, 피란카_가변설치_2018

김제원 『The Third Spaces』展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호남평야의 곡식을 일본으로 운반하던 한국의 주요 항구 도시 중 하나였다. 많은 일본인들은 이 소도시로 이주하여 일본식 가옥과 당시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건축 양식으로 건물을 지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막을 내리며 일본인들은 군산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건물들은 그들의 잔상처럼 도시에 남겨졌다. 그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군산에는 미군 기지가 설립되어 1950년대의 미국 양식의 건물들을 지어졌는데, 1990년대 초 미군 기지가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이 도시에는 다시 그들의 지었던 건물만이 남겨졌다. 나의 오래된 기억의 대부분은 사람이 떠나가고 남겨진 일본식 가옥과 미국의 1950년대 양식의 건물 그리고 1960-1980년대 한국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공존하는 곳에서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연원의 것들이 순서와 규칙에 상관없이 마구 뒤섞이고 엉켜있는 공간이었다. 이 도시공간은 오래된 이야기를 축적한 낯설지만 새로운 제 3의 공간이었으며 이 장면은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나는 미국, 일본, 폴란드 그리고 한국의 레시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오랫동안 도외시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축과 공간을 리서치하고 특정한 장소를 선정해 그 공간성(Spatiality)을 기반으로 장소 특정적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물의 양식이나 장식과 같은 외적인 구조의 표면 아래 깊이 스며들어 있는 개인의 기억과 역사로부터 출발하는 나의 작업은 그 공간 안에서 여러 겹의 시간과 이야기가 뒤섞인 새로운 제 3의 공간을 구축한다.

김제원_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_노부부의 집에 설치, 세라믹 타일, 전사지_253×176.5×0.5cm_2020

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 ● 홍성의 지역 발전을 위해 이응노 기념관이 생기면서 이곳에 있던 하나의 마을은 두개의 마을로 쪼개져 기념관을 가운데 두고 서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홍성군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받아 새로운 마을로, 예쁘게 지어진 새 집으로 이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응노 기념관이 생기기 이전의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마을이 존재했던 시간은 침전물처럼 깊은 바다 속 저 아래 쌓여있어 누구도 들춰 보지 않는 듯하다. 모든 이야기는 이응노 기념관이 태초가 되어 그 이후의 이야기만 들려올 뿐이다. 그 사라져버린 마을이 지녔을 긴 역사는 "예전에 여기 한 마을이 있었는데 이응노 기념관이 생기면서.."로 요약될 뿐이다. 그 마을이 있던 이 장소와 긴 시간은 여기선 그렇게 여겨지곤 한다. ● 새로 지어진 두 마을에는 도로가 바둑판형으로 만들어져 그 위로 서양식 주택을 닮았지만 무엇인가 상실된 듯한 조립식 주택들이 지어졌다. 우리는 이 집을 보고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둑판형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아스팔트길을 운전하며 그 마을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다. ● 우리는 이삼랑씨 노부부의 집으로 향하는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길에서 차의 범퍼 아래가 쿵하고 땅에 닿는 그 소리를 듣고 이 곳이 오래된 시간을 지닌 장소라는 것을 문득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노부부의 집 앞에 섰을 때, 이응노 기념관이 생기기 이전에 이 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다시금 기억한다. 이 오래된 집은 마을이 두개로 나누어질 때 철거가 되지 않은 집으로, 아직도 이 곳에 50년 전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무형의 장소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그 형상이 없어진 마을을 회상하게 한다. 상상하게 한다. 부엌의 아궁이 주위로 붙여진 6cm의 하얀 정사각형 타일은 키리코의 회화 속 조각처럼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그 공간에서 부유하고 있다. 마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이야기들이 작은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 홍성에서 지난 8개월간, 시간의 남겨진 파편들을 찾아다닌 여정과 그 기억의 단편들이 노부부의 집 마루 위에 겹쳐지고 또 다시 중첩되어 펼쳐져 있다. 켜켜이 쌓인 이 축적물은 바다의 썰물에 흩어지고 집 안 구석구석 곳곳에 스며들어 깊은 공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물처럼, 이미 사라져버린 마을에 서 있는 이삼랑씨 노부부의 집은 변함이 없는 현실 세계와 나의 지난 8개월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작용하게 된다. 희미해진 경계 위로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 포털로 변화되는 이 집은 서로 다른 공간과 다양한 시간의 흔적들이 뒤섞여 현실에서 멀어져 조금은 이상하고 뒤틀린 그러나 더 선명해진 "또 다른 세계"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항해한다. ■ 김제원

Vol.20201007d | 이응노의집 창작스튜디오 제4기 입주작가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