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도에서 만들어진 내리막길 : 버려진 자전거는 어떻게 그 자유를 획득하였는가 -파블로 네루다-

김용현展 / KIMYONGHYUN / 金鏞賢 / video   2020_1008 ▶ 2020_1019

김용현_살아진 세계_다채널 영상_00:05:10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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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홈페이지_www.kimyonghyun.or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안산문화재단

관람시간 / 01:00pm~06:00pm

구 아울렛 마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중앙로 100

짧은 자유 낙하 ● 차도에 하얗게 칠해진 글자 '천천히'는 그것을 표시한 의도인 '차를 천천히 모세요'로 보통 읽힌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라는 표시를 보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천천히 뭐? 천천히 어쩌라고? 지금 나보고 천천히 걸으라는 거야 뭐야?'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관점은 당장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해야하는 운전자보다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천천히' 고민해볼 수 있는 산보객에 의해서 얻어질 때가 많을 것이다. 김용현의 「Take a walk 산책」 연작은 작가와 사물이 맺는 관계를 전면적으로 보여주지만 사실은 작가가 언어와 맺는 관계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직접적으로 언어와 맺는 관계가 드러나는 장면도 적지만 있다. 경고문구가 들어 있는 안내판에 작가가 손을 대는 장면이다). 그 이유는 이미 사물들은 언어의 공간 속에 있는 한에서 사물이기 때문이고, 작가는 그 사물들의 배치를 다시 의미의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울타리가 있다고 하면, 울타리가 세워질 때의 의미는 '이곳을 넘어가지 마세요'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울타리가 일정 높이를 갖고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울타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저를 붙잡고 넘어가세요.' 그리고 마침 울타리는 그렇게 붙잡고 넘어가기 좋은 높이이다. 울타리는 직접 영상에서 나오기도 하는 사물이면서 다른 사물들을 대표한다. 사물과 그에 대응하는 작가의 신체는 계속 이런 진행을 따른다. 1. 사물이 원래의 용도 또는 우연적 결과에 따라 배치되어 있음(이 배치는 의미적으로 기능함). 2. 작가가 신체를 이용하여 그것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함(신체든 사물이든 기하적이라는 점에서 동기화 가능함). 3. 사물이 2의 과정으로 얻어진 의미를 위해서 그러한 배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 4. 다른 사물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떠남.

김용현_살아진 세계_다채널 영상_00:05:10_2020
김용현_살아진 세계_다채널 영상_00:06:17_2020
김용현_추락없는낙하_영상설치_2020
김용현_추락없는낙하_영상설치_2020

이런 태도는 '천천히' 표시와 같은 단어들을(또는 문장들을) 얼마든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사물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추락 없는 낙하 A fall without crash」 역시 작가가 같은 입장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높이를 가진 사물들 위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굴러 떨어진다. 원래는 각기 다른 용도에 따라 특정한 높이를 갖고 배치되어 있는 사물들(차도와 보도를 구분하는 연석, 얕은 도랑, 벤치, 그리고 무엇보다 계단)이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저로부터 제 높이에서 떨어지세요' 그 사물들의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은 떨어져 죽지 않을 정도의 높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 비디오이고 그렇기 때문에 떨어져 죽을 정도의 높이의 사물에서 떨어지는 장면 또한 얼마든지 계속해서 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일정한 높이를 가진 요철 그 자체이지 그 정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퍼포먼스 비디오는 다큐멘터리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연극적인데, 작가와 사물, 오직 둘 사이에 암묵적인 대화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연극적이기 때문이다. ("제 높이에서 떨어지세요." "네.") 스크린을 꽉 채우는 사각의 프레임이 아닌 양 옆 끝이 곡선으로 깎인 프레임은 오페라글라스의 시야처럼 보임으로써 그런 연극성을 강조한다.

김용현_버려진 자전거는 어떻게 그 자유를 획득하였는가_영상설치_2020
김용현_내려가는 것은 모두 모한데 모인다_단채널 영상_00:06:17_2019

이 작품의 끝을 이루는 계단 장면은 작가의 태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계단은 단이라는 사물이 같은 높이로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단들이 모인 계단 전체의 높이는 높지만, 하나하나의 단은 그렇지 않다. 김용현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계단의 모습처럼 연쇄적인 낙하를 불러일으키지만 추락하는 것은 막는다. 그 태도는 사물이 완전히 자의적인 의미를 띔으로써 한 인간을 집어삼키게 되는 것을 막으면서 사물이 새로운 언어적 가능성을 여전히 보유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자유를 또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 홍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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