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 LEEJUNGSIK

이정식展 / LEEJUNGSIK / 李正植 / video.installation   2020_1013 ▶ 2020_1114 / 일,월요일 휴관

이정식_김무명_단채널 영상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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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유은순 코디네이터 / 권정현 공간디자인 / 최조훈 그래픽디자인 / 이경민 주최 / d/p 주관 / 새서울기획_소환사 후원 / 서울문화재단_우리들의낙원상가_한국메세나협회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d/p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악기상가 417호 www.dslashp.org

이정식의 세 번째 개인전 「이정식」은 전시 제목으로 작가의 이름을 사용한다. 대개 작가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회고전 혹은 전시 제목이 없는 경우 대체 제목으로써 작가 이름을 제목에 사용한다. 이 전시는 2015년부터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때 이른 회고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이정식'에 관한 전시이다. 삶에서 반복되는, 의미 없어(nothing) 보이는 일상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질병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을 담았던 첫 번째 개인전과 '무명'으로 살아가는 감염인의 경험을 공유하였던 두 번째 개인전을 거쳐 세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당사자의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품마다 자기 자신을 변주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 이정식은 사회적 호명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의 이름을 변주한다. 이러한 변주는 이정식의 작업 형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작업의 기반이 되는 텍스트를 쓴 후 이를 출판,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제작한다. 동일한 내용은 작품 형식에 따라 다시 가공되면서 각 형식들이 포착하지 못/않는 내용이 발견되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체의 외부에서 타의적으로 발생하는 호명과 호명에 의한 낙인을 전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명의 실패를 요청한다. 이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가시화되지 않기를 요구하는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차별에 대한 저항처럼 보인다. 결국 「이정식」전은 '이정식'에 대한 전시이지만 '이정식'의 전시이기를 거부한다. 작가는 단일하고 평면적인 정체성의 규정을 거부하고 주체의 타자되기, 타자의 주체되기를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을 흔들고 교차시키며 나아간다. ■ 유은순

이정식_김무명_단채널 영상_2020

이정식은 줄곧 사물과 타인에 페르소나를 부여했다. 이는 대개 의미가 결핍되거나 상처 입고 희생된 것들이다. 가령 그것은 찢어진 종이이고 종이를 찢는 행위이며, 물에 갠 약 가루가 발린 캔버스 또는 복약 행위로 수행되었다. 사물들은 다시금 오래전 타국에서 폭력 속에 희생된 트랜스 여자 사람 친구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수동연세요양병원의 HIV감염인 김무명씨로 연결되었다. 그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HIV/AIDS 운동을 경유하는가 하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접점을 만든다. 그가 엮는 소재들은 결핍과 상처로 약한 고리의 연대를 이룬다. ● 일련의 화두는 d/p에서 열리는 지금의 개인전 「이정식」으로 연결된다. 제 이름을 전면에 내건 호기로움은 다층화된 소재와 언어들로 표상되는 자의식적 공간을 예상케 한다. 하지만 전시가 내놓는 것들은 물성 없는 이름, 물성을 박탈당한 이름의 메타 물성, 안티테제로서 물성의 변주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11개의 스티로폼으로 거칠게 3D프린팅 복제한다. 감염인으로서 이정식의 얼굴은 데이터 회로를 유영하다 물성을 입고 3D프린터로 복제되고 구축되는 포스트휴먼적 존재론을 시각화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텅빈 자의식이 증식하는 표상들에 닿는 동안, 이어지는 영상 「김무명」 (2020)은 예의 정서를 바탕으로 타인들의 이야기를 연결 짓는다. 그것은 2018년의 개인전 「김무명」에서 감염인 인터뷰이들이 제공한 사물과 그에 대한 감각적 정서를 영상으로 연출한 후속 작업이기도 하다. 음성언어와 특정 사물을 통해 정서적 공명을 유도하고 확장하는 작업은, 소재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서사나 인과관계의 틀거리 너머 직관적인 연결성을 보인다.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드러낼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사물로 압축되고 허구의 감각으로 남아서라도 사라지지 않음을 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 남웅

이정식_오, 미키_2채널 영상_2020

「오, 미키」의 영상 안에서, 가족은 마치 행성의 고리처럼 두 힘이 상쇄된 채 구성원이 맴도는 면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상의 중반즈음, '미키'는 가족 공동체에 대한상실감을 되새기며 식사를 하던 도중, 난데없이 식당에 있던 한 여성에 대하여 살의를 느끼고 손에 쥐고 있는 포크와 나이프로 신체를 훼손하는 상상을 한다. 카니발리즘적인 상상은 내몰릴대로 내몰린 '미키'의 자아상이 끓어넘쳐서 근거리에서 적의를 쏟아낼 대상을 찾은 결과이다. 그런데, 임계점을 넘은 환멸이 차갑게 식었을 때 '미키'는 또다른 이상징후를 경험한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멜라닌 색소와 적혈구가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의 경험이다. 육식성의 상상력이 극에 다다른 이후 급속히 스스로를 식물성의 무언가로 위치시키며 자아상은 급속도로 무색무취무미해지고 만다. 「오, 미키」의 서사는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동물의 서식지가 아닌 식물이 뿌리내리는 자리로 체념하며 마무리된다. 가족이라는 정상성의 회전운동이 가속화되다가 결국 색소가 점유하고 있던 면적으로부터 탈색되어 나가듯, 등장인물은 공간감을 상실한 듯보인다. 이는 소수자들이 더러움의 낙인에 대하여 분노할 때 이 분노를 빌미로 다수가 두려워하고 더 적대시하게 만드는 정상사회의 전략에 대하여 이정식이 감각하는 일종의 무기력함이 아닐까. 그리고 그 무기력함을 멈추고 자신의 존재가 안온하게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뿌리내리는 자리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 우리는 이 영상이 남기고 간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되느냐는 것', 즉,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느냐는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문석

Vol.20201012a | 이정식展 / LEEJUNGSIK / 李正植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