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 Extinct ones exist as something.

김문기_김윤하_오윤展   2020_1013 ▶ 2020_1031 / 일,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창작산실의 공간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정다운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임시공간 space imsi 인천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Tel. 070.8161.0630 www.spaceimsi.com www.facebook.com/spaceimsi www.instagram.com/spaceimsi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실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생명을 다 하더라도 이전의 형태와 같지 않을 뿐, 그것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는 이러한 물리학적 접근에서 비롯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은 '있음'에 있어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물리학의 언어. 이것이 요란하지 않게 힘이 된다. 여기에 인간적 사유가 만나면서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떤 대상은 그것 자체로 현존한다. 어떤 대상의 생을 추적하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으면서 우리는 그 나름대로의 농밀한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 이번 전시를 통해 김문기, 김윤하, 오윤 작가는 시간이 지나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라 여겼던 존재를 다시 보고 다룬다. 세 작가에 의해 정처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존재의 파편은 새로운 변주곡을 만들어 '있음'을 증명한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임시공간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임시공간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임시공간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임시공간_2020

'있음'을 의미하는 존재가 반드시 커다란 질량을 갖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 김문기가 생각하는 존재도 군더더기 없고 가볍다. 종이와 그 종이를 겨우 세울 수 있는 투명 접착테이프로 만드는 그의 조각을 존재에 대입시키면 알 수 있다. 그는 하루에도 십수 번 떠오르는 기억을 조각으로 남겨왔다. 조각 표면에는 그 조각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가 떠낸 몇 장면이 붙기도 하는데, 그것은 감상자 각각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존재의 파편들이 조각에 옮겨지면서, 속이 텅 빈 그 조각에 또 다른 의미를 채우며 새로운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이라는 영화 장르의 특성과 분위기를 차용한다. 스토리의 빠른 전개는 작가의 작업 방식과 퍽 닮았고,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나 텐갤런 해트ten-gallon hat, 박차拍車, 담배 등의 오브제 역시 크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그 핵심을 제시한다. 「Chapter」(2020)시리즈처럼 어떤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그 안에서 각자의 방향과 속도의 전개 정도면 충분하고, 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나 스스로 바짝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자신만의 투명 접착테이프 정도는 있을 테니 말이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김문기 섹션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김문기 섹션_2020

지금, 여기를 바라보면 물질적이지 않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많다. 김윤하는 비물질처럼 느껴지는 수 겹의 일상을 수집, 분석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구조화한다. 이것은 보통 미시적인 감각의 인식이고,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 그는 그 맥락 안에서 존재를 조금은 다르게 마주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식 이전에 이미 있던 존재에 대해 두 가지 물음을 갖고 예술적 변주로 드러낸다. 하나는 잊었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데 당시의 확실한 기억이 꼭 필요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본다는 것이 반드시 눈을 먼저 통해야하는가이다. 그는 감상자에게 감각의 전이를 제시하며 답을 내린다. ● 「Variation 080318(Little Star)」(2020)은 두 화면에서 반짝이는 별의 장면으로, 대화 소리와 함께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동시에 재생하게 두었다. 감상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자막으로 나타나는 이 대화를 어느 순간 듣기보다 보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 과정에서 감상자에게 인식의 불확실한 상태를 불러와 각각의 경험으로 다시 구성하도록 한다. 「Eyes in the sky with diamonds」(2020)는 감상자가 내는 소리를 즉각적으로 화면에서 보여준다. 소리에 따라 화면에 떠 있는 물체가 퍼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형태가 보이는 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존재가 이미 갖고 있는 영원성은 이 공간 너머로 확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존재는 작가의 방식으로 더 오래 기념된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김윤하 섹션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김윤하 섹션_2020

자주 변화하는 주변 풍경을 만나왔던 오윤은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장면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어떤 존재의 잔상이다. 하나의 잔상을 얇은 종이에 색면을 쌓아 완성하는 그의 수행으로, 대상이 설사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사물, 동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는 역할을 잠시 상실했거나 소진된 상태의 어떤 것을 화면에 표현하면서 대상을 향한 일종의 애도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 「필멸자」(2020), 「엠버」(2020)를 전시장 바닥에 두지 않고 감상자의 시선을 위로 두고 설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 이따금씩 전시장 창으로 들어오는 볕은 잔상의 자취를 섬세하게 알린다. 「허수아비」(2020)의 붓이 지나간 흔적은 종이를 지나 그 다음 잔상 「구원을 위한 믿음의 증명」(2020)에 다시 얹힌다. 이렇게 서로 축적을 반복하고, 마지막에는 처음 비췄던 같은 온도로 감상자를 감싼다. 하나의 잔상은 작가만의 잔상으로 머물지 않고, 감상자에게 다른 사유를 시도하도록 건네는 것이다. 그 의미들은 그렇게 한 공간에서 포개진다. 그리고 다시 다른 어딘가에서 영속하여 무언가로 남아 있는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오윤 섹션_2020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_ 임시공간 오윤 섹션_2020

방법이 다를지라도 세 작가에 의해 흩어진 것은 다시 남아 있는 존재에게 옮겨져 뿌리내리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그래서,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가 존재를 떠올리는 누군가에게 뭉근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존재가 잔 모양으로 오롯하지 않다고 해서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 정다운

Vol.20201012e |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