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 많은 집 A house of glass

염철호展 / YEOMCHULHO / 廉澈鎬 / installation   2020_1010 ▶ 2020_1108 / 월요일 휴관

염철호_저녁마루_아크릴, 특수조명_가변크기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Plan B project space 서울 서대문구 가좌로 108-8(홍은동 377-8번지) B1 Tel. +82.(0)2.308.1088 www.facebook.com/PlanBprojectspace www.planbprojectspace.wordpress.com

'집'을 물리적 체현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에 관여하는 일종의 사건, 인물, 개별적 역사를 내포하는 하나의 사회적 구성체계로 간주하고 작가의 서사에 다가가 보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집'에 관여하는 개인의 서사와 그것을 복기하는 '기억'이다. 물론, 개인적 차원의 기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실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 간에 이루어진 소통과 그들의 관계성이 구축한 문맥 위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의 기억과 경험은 개인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회적 틀이 작용하고, '집'-공간을 복기하는 기억이란 공간을 구성하는 인물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발현된다. 염철호 작가의 첫 개인전 『유리가 많은 집』은 '집'이라는 어떤 작은 단위의 사회적 공간이 구축해 온 시공간의 촘촘한 망을 비집고 들어가, '집'을 구성하는 인물들과 그 공간에 내재한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염철호_하얀자리_커튼, 조명, 아크릴_가변크기_2020
염철호_실눈_실, 영상스크린_가변크기_2020

작가가 살던 집은 동네에서 '유리가 많은 집'으로 불렸다. 집의 전면을 구성하는 건축 소재가 유리였기 때문에 골목 어귀에서도 쉬이 눈에 들어오고, 밖에서도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전시는 작가의 '집'을 기억 속에서 복기하고 재현한다. 이것은 복원(restoration, 復原) 또는 재연(reenactment, 再演)과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재현(representation, 再現)이다. 일체의 부속물이 집합적으로 재현된 집은 그 어떤 증거도 되지 못할 작가의 집이다. 다만, 이 집을 짓기 위하여 작가는 '어머니'로 호명되는 타자와 '집'의 과거에 대면하고,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복잡한 타자들의 '관계'에 대면하기로 한다. 집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로 간주되었던 유리는 다시 작가 개인의 사유체계로 돌아와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이라는 문구로 치환되었다. 이 은유의 방식에는 개인의 서사와 관념적 단어가 상응하여 대치된다. 작가는 집(으로 대치되는 공간)과 어머니(로 대치되는 타자/인물), 나(로 대치되는 주체),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로 대치되는 집과 인물이 구축한 상징적 관계들)이 사유체계와 재현체계에서 불안정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그것이 오랜 시간 스스로를 잠식하는 근원적 문제였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작가는 집과 집의 구성원들이 구축한 관계들의 위계 안에서 느끼는 무력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사유체계와 재현체계의 상징적 관계들을 재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하여, 집 밖의 외부 세계에서 구축된 '작가'로 호명되는 또 다른 주체를 개입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작가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유리가 많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염철호_부조화 1_제스모나이트, UV 프린트_57.5×40.5cm_2020

『유리가 많은 집』은 빛의 얽힘에 의한 감춤과 드러냄, 시선의 충돌, 그리고 전복된 건축적 구조를 드러내면서 작가의 의도를 에둘러 감 없이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관념이 시각적으로 재현될 때, 이미지의 역설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역설은 수천 개의 실 사이로 관통하는 빛이 전시장 벽에 흐릿한 음영의 잔상을 남기는 작품 「실눈」(2020)이나, 감추고 싶은 집의 풍경이 이미지로서 오히려 드러난 작품 「부조화」(2020)에서 시각적 언어로 표현된다. 시선의 강제성을 전제로 할 때, 작가는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떤 합의점을 생각해야 했다'고 상기한다. 이는 작가가 감추어 왔던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거나 혹은, '유리가 많은 집'이라는 문구로 귀결되는 서사, 어머니의 저장 강박증과 가족들 간의 충돌, 소통의 부재에 대한 작가의 양가적 감정에서 촉발된다.

염철호_부조화 2_제스모나이트, UV 프린트_57.5×40.5cm_2020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감정은 기억 속에서 복기한 집의 풍경이나 어떤 특정한 장면을 재현할 때에도 작용한다. 「하얀 자리」(2020)가 재현하는 것은 유리가 많은 집의 한 단편,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어떤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빛이나 소재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당시의 감정이나 분위기는 최대한 절제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하얀 커튼 뒤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아크릴 문은 기억 속에서 복기한 집의 흔적 또는 파편화된 집의 한 조각이면서 동시에, 『유리가 많은 집』 전시의 선행 단계에서 제작된 작품이다.1) 「저녁마루」(2020)에는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더욱 증폭된 애증의 감정이 작용한다. 이 작품은 마루를 천장에 배치하여 건축적 상하 구조가 전복된 형태로서 공간 내부에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적 구조의 전복이나 스며드는 빛과 같은 장치를 통해 작가는 『유리가 많은 집』에서 집과 집 위에 세워진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불안, 두려움, 걱정과 같은 감정들과, 감추고 싶은 개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서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역설적 감정을 드러내고, 복합적인 사유체계와 재현체계를 통해 어딘가 불안정하고 예민한 시각적 요소들, 이미지들을 생성해낸다.

염철호_유리가많은집_단채널 영상_00:19:20_2020
염철호_저녁마루_아크릴, 특수조명_가변크기_2020

푸코식의 사유에서 공간은 개인의 움직임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권력의 장치라고 했던가. 그러나 개인의 욕망과 서사가 투영된 공간은 기억장치를 통해 재구축되고, 스스로 권력의 작동과 어긋나면서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관계망을 구성한다. 공간을 사유한다는 것은 물리적 체현을 넘어 불안정하게 증식하는 공간의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사유를 함의한다. 작가는 이 전시를 준비함에 앞서 '궁극적인 목적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꽤 간결한 한마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술의 언어를 빌어 이 공간을 사유하는 작가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단순히 '유리가 많은 집'을 다시 짓는 것이 아닌, 집과 그 위에 구축된 관계들이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회귀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 임보람

* 각주 1) 『Inner Circle Image』(신유현 염철호 2인전, 2019.10.16.~10.30, 아트랩반)에서 제작했던 작품으로, 이 전시에서 염철호 작가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집의 일부를 오브제로서 복원하고, 빛의 가감을 이용한 장치를 설치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기억 장치에서 생성된 희미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Vol.20201012f | 염철호展 / YEOMCHULHO / 廉澈鎬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