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김시하展 / KIMSIHA / 金霞 / mixed media   2020_1013 ▶ 2020_1203 / 일,월,공휴일 휴관

김시하_BURN展_씨알콜렉티브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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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하 홈페이지_sihakim.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재단법인 일심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씨알콜렉티브 CR Collective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20 일심빌딩 2층 Tel. +82.(0)2.333.0022 cr-collective.co.kr

회색 공원 A Grey Public Park ● 김시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경험한 심리적 불안과 분열의 간극을 스토리와 함께 시각화한다. 다 타버린 집과 나무로 제시되는 잿빛 폐허의 공간은 진보역사를 상실한 동시대인들이 겪고 있는 무력감과 함께 그들의 내재된 분노가 반영된 "무대-시적 풍경(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이렇게 부른다)"으로 전환된다. 무채색의 풍경,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 중앙에 다 타고 남은 잿빛 철판과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 그루터기, 깨져버린 유리와 잿더미를 뒤집어쓴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가로등이 있는 텅 빈 공원풍경은 회색의 어둡고 쓸쓸하면서도 대립과 혼재의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인간의 온기로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작가의 목소리, 전시의 한 부분이 되는 시 낭송과 텍스트는 폭력적 상황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몽환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그 누구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는 갑자기 조명이 켜진다. 마치 브레히트의 연극처럼 감정적 몰입 및 현실도피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관람자들은 지금, 여기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조명이 꺼지고, 관람자들은 해체된 서사극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김시하_BURN展_씨알콜렉티브_2020

검게 불탄 잔해는 시간을 거슬러 로마 시대 광란의 네로(Nero) 황제가 태워버린 고대도시를 떠올리게도, 영화 '버닝(burning)'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휘몰아친 분노의 감정에 이입하게 할지 모른다. 그리고는 역사적 사건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 속 사건, 제3자의 이야기, 타자의 경험같이 나한테 벌어진 사태가 아님에 가슴을 쓸어 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내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을지라도 나에게 진짜로 일어난 일이라면? 나를 지켜주는 믿음의 마지막 보루가 사라져 억장이 무너져 내린, 허망하여 털썩 주저앉은, 그리고 목놓아 우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슬픔을 경험하였다면? 항상 존재하던 일상이 사라져 마음대로 밖에 나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지도, 외식, 여행, 수다를 떨 수도 없으며,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불씨가 창조한 문명이 의심받고 무조건적 진보가 사라진 이 시대에, 공원에서 거대한 잿더미를 바라보는 일이란 그것의 카타르시스나 경외감이 아닌,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험이자 심리적 균열이 불러오는 파장에 따라 상이한 사적 감정들이 섞이는 특별한 사건이 된다.

김시하_BURN展_씨알콜렉티브_2020

김시하 작가는 특정 공간의 정서를 생산하는 설치작가이다. 모든 정황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는 배경이 되기에 어떤 측면에서는 무대연출가에 가깝다. 작가는 관람자를 공연의 주인공/주연으로 초대하여 빈 공간과 오브제를 누비며 각자의 극을 만들기 원한다. 작가의 비기념비적인 작업은 무대로 전환될 때 기념비적 의미가 발생한다. 작가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경험한 심리적 불안과 분열의 간극을 스토리와 함께 시각화하는, 무대-시적 풍경을 만든다. 집터에 다 탄 나무가 쓰러져 가로로 놓여있고, 깨진 유리와 크리스마스트리는 집 외부에 존재한다. 집이 공원이 되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없다. 풍경 속의 오브제와 함께 보이드(void) 공간은 긴장감, 예민함과 함께 모호하며, 해석의 여지를 주는, 그리고 많은 시의적인 내러티브와 묘한 정서를 생산하는 그런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을 경험하기 전엔 그 무엇도 속단할 수 없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치는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며, 모든 것이 자의적 해석이 된다. 그래서 비평조차 작품 앞에서는 시나 소설처럼 상상력 넘치는, 그러나 다소 공감되지 않을 수 있는, 과도하거나 또는 나약한 해석이 돼버린다.

김시하_BURN展_씨알콜렉티브_2020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자연과 인공물을 대치하여 문명에 저항하는 것들, 예를 들어 근친상간의 텍스트를 가져오거나, 이중적 자아분열을 암시하는 쌍둥이 서사,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열대림 등을 등장시켜 기이하지만 독특한 긴장감을 주는 풍경을 시각화 해왔다. 살아있는/ 시든/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 같은 식물들과 함께 철조망과 스테인리스스틸 같은 차갑고 금속성의 인공물을 대치한다. 특히 곧 시들어버릴 장미꽃 더미들과 보라색 조명은 화려하지만 미심쩍고 우아하지만 슬플 수 있는 여지를 주는데, 이러한 신체성이 강한 오브제들은 '살아있는 배우'와도 같이 관객을 몰입시켜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의 텍스트 작업이 무대와 함께 올려지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 아니 초기작업 「유토피아/시각정원(2014)」으로 돌아간 듯한 - 과감하고 규모 있는 오브제가 등장한다. 또한 정원 「시각정원(2005-2014)」에서 공원으로 전이된 배경에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다 타버린 나무그루터기 즉, 폐허의 풍경이 무대 위에 올려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유토피아/시각정원을 지나 디스토피아/폐허가 된 공원을 제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무대는 일상을 잃어버린 폐허 같은 삶의 풍경이자 억압으로 내재화된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잔재이다.

김시하_BURN展_씨알콜렉티브_2020

"이번 전시에 보일 어두운 회색 풍경은 무엇인가를 다 대놓고, 혹은 까발려서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저 탐미적으로 예쁘기도, 슬프기도, 정제되기도 한 "풍경, 장면, 무대"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저 가려지고 숨겨지고, 지워진 위의 글과 같은, 들어야지만 들리는 소소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런 풍경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천천히 앉아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풍경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닿으면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마치 코너에 몰린 쥐 마냥, 사람들은 내면에서 슬그머니 다 망가뜨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의 복합적인 감정은 응축되고 압축된 조각적인 설치 공간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환경도, 무대도, 영화의 한 장면도, 퍼포먼스를 포괄한 조각적인 것에 대한, 스타일을 너머 조형적 경계가 모호한, 하나의 조각적인 풍경을 시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익숙하지만 낯선 미니멀한(Minimal) 공간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s)의 최소한의 사물은 아닌, 확장[Maximal] 가능한 물성과 함께 클리쉐와 내러티브가 있고, 서사극의 해체적인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성좌(Constellation)를 생성한다.

김시하_Burning house_네온, 스틸_110×95cm_2020

최근 우리는 전대미문의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 노출되었다. 자기를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 자가격리가 된 지금, 집도, 가족도, 마을도, 국가도 더 이상 나의 보호막이 아닌 위태로운 나날이다. 젊은 세대, 소외된 타자의 박탈감과 무기력증은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블루, 블랙, 레드라는 증세가 우리 삶을 덮쳤다. 일상의 파괴는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때론 비정상적인 사건들을 양상하고 있다. "지난 몇 달을 뉴스만 보며 산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온 일들이라 해도 버텨내기란, 살아내기란 누구에게나 녹록하지 않은 법이다. 신기한 일은 난관은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고, 그 공포란 사람의 민 낯, 또는 동물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어도 그 안엔 어떤 것들이 도사리는지 우리는 모른다. 사람 속에는 사자가, 뱀이,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 노트에서) 어느 순간 공포가 만들어내는 균열들은 서서히 커지면서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 김시하가 제안하는 "하나의 풍경"은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헤테로토피안들의 정원으로서 공감을 획득하는 소통의 공원인 것이다. ■ 오세원

Vol.20201013b | 김시하展 / KIMSIHA / 金霞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