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

ART AND ENERGY: ENERGY EXCHANGER & RESERVOIR IN OUR LIFE   2020_1016 ▶ 2021_0124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윤철_김주현_류한길_백남준_서혜영_송민규 안보미_윤성필_윤지영_이교준_이의성_이형구 장서영_정주하_정진용_정헌조_최우람_한성필_홍범

주최 / 전북도립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전북도립미술관 Jeonbuk Museum of Art 전북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111-6 (원기리 1068-7번지) 본관 2~5전시실 Tel. +82.(0)63.290.6888 www.jma.go.kr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 ●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 는 예술과 에너지의 조응 관계를 살피는 전시이다. 전시는 예술작품이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할 때 그 에너지는 무엇인지 묻는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에너지로 마음이 '동'(動)하였다면, 그 에너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에너지는 파악하기 힘든 말로, 힘(force)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스어 'enérgeia'(에네르게이아)에서 유래한 에너지는 물리학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묘사하며 일과 같은 말이라 하여도 무방하다. 에너지는 물리학 법칙으로만 이야기되지 않는다. 생리학에서 에너지는 모든 종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불가결한 연료이다. 최초의 열역학 사가(史家)이자 물리학자이며 관념론자인 오스트발트(Ostwald)는 "에너지는 정신"이라고 말했다. '물질과 정신'의 대비로 보자면, 물질에는 양적인 속성으로 정신에는 질적인 속성으로 에너지는 운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가는 예술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에 기댈 것이다. 예술가는 세계와 인류라는 계(system)를 이해하기 위해 그 구조를 밝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운동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같은 미적 작용력이나 '감-동'(感動)을 일으키는 미학적 운동은 예술 작업(art work)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물질적 에너지이든 생리적 에너지든 정신적 에너지이든, 에너지는 예술을 이해하는 데 궁극적이다. 이로부터 예술과 에너지의 관계가, 달리 말하면 미학적 에너지론이 요구된다. ● 전시는 예술과 에너지의 관계를 빌려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선, [고흐의] 예술작품을 보고 에너지가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예술작품을 에너지의 저장소로 볼 수 있을까? (저장소는 어디에 있는가? 저장소에 무엇이 있는가?) 그렇다면 [고흐의] 예술작품을 볼 때마다, 결코 고갈되는 법이 없이, 어떻게 에너지를 느끼고 전달받을 수 있는 것일까?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는 체험 가능한 에너지와 재현 가능한 에너지의 간극을 살피며, 미학적 에너지가 창조하는 힘임을, 또한 예술은 쉼 없는 상호 교류를 일으키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자 우리 삶의 에너지 저장소라는 영감을 부른다. 에너지 교류기(交流機)와 저장소는 다양한 미적 기류를 '담아' 서로 교류하도록 '매개'하는 예술의 메커니즘을 은유한다. ● 그 물음은 또한 예술이 교통(交通)이 가능한 열린 구조이기에 열사(熱死)라 불리는 평정상태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달리 말하면 엔트로피가 높아 일로 변환가능한 자유 에너지가 사라지는 불가역적인 자연의 진행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시의 가설을 살핀다. 예술은 미학적 에너지가 운동하는 끊임없는 창의력으로 연출되며, 그 구조는 이성과 감각이 여러 층위로 쌓여가는 열린 것(open system)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예술의 미학적 에너지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무용한 에너지를 사용가능한 에너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벗어나 영구히 에너지를 얻을 무한한 가능성을 제안하게 된다. ● 이번 전시는 문명사와 과학사의 맥락을 따라 인문학(Human Science), 동력학(dynamics), 기하학(Geometry), 기술학(technology), 그리고 대중문화라는 다섯 개의 영역을 참조했다. 전시를 구성하는 예술작품은 에너지와 예술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도록 이끄는 다양한 '실험실 기반'의 미술들로 이뤄져 있다. 예술과 에너지의 관계는 과학과 문명과 정신이 교차하는 행위들 사이에서 밝혀질 수 있다. 물리적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가 섞이며 미학적 에너지가 발생하는 예술의 이미지는 동시대 미술의 정신을 구현하는 장소로, 미술을 일종의 대안 과학의 연구로 이끈다. 섹션의 구성과 흐름은 예술과 에너지의 발생학적 구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몇몇 분절점을 따라간다. 각 섹션은 에너지와 예술의 유대 관계와 예술과 에너지의 교환 관계를 설명하며 소개한다. 오늘의 문명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희망과, 소비사회의 피로와, 유한한 자원의 고갈이 자아내는 불안과, 과도한 에너지 개발이 초래한 생태계의 이상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에너지의 의미를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궁리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초대된 19인의 예술가는 시대의 풍경을 살피며 자신만의 예술 실천으로 고갈되지 않는/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성찰하며 모색하고 있다.

이형구_키암코이섹 Kiamkoysek_혼합매체_가변설치_2018
장서영_이름없는 병 Namless Disease_2채널 영상, 순환재생_2016
장서영_초속 Velocity_3채널 영상_00:04:59_2019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展_전북도립미술관 2전시실_2020

중력과 은총 에너지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힘이자 조건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에너지라는 필연성의 영향 아래 놓인다. 우리는 에너지에 잡아 당겨지는 존재이며, 세계는 에너지가 끌어당기는 시공간체이다. 에너지는 우주를 지배하는 또 다른 중력인 셈이다. 그렇다는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에너지 법칙의 구속 안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는 그 보편 법칙 안에서 에너지를 자유롭게 운용할 힘을 성찰한 바 있다. 그는 현실로 하강하는 운동(중력)과 그 구속에서 벗어나 상승하는 정신의 운동(은총)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힘이 아름다움에 있다고 믿었다. ● "중력과 은총"은 에너지의 구속력과 발생 조건을 분석하고, 이를 전복하는 가능성과 힘을 암시하는 사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형구, 이의성, 장서영, 한성필은 그들이 다루는 것이 풍경화된 체적(volume)이건 에너지의 가치이건 육체와 정신의 간격이건 사회 환경의 유통망이건, 에너지의 발생학적 구조를 은유한다. 에너지는 힘이 작용하는 공간인 역장(力場)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에너지는 대상의 외양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생각과, 내부나 몸의 시스템처럼 표면 이외의 장소에 숨겨져 있다는 사고를 살필 수 있다.

최우람_하나 One(Replay to Dr. Lee)_혼합매체_250×250×180cm_2020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展_전북도립미술관 3전시실_2020

동력 장치와 아방가르드 동력장치는 기계적 성질의 변환으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일으켜 움직임을 만들고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이다. 동력 장치는 에너지를 찬양하는 세계에 속한다. 동력장치가 끌어냈던 기술 시대의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전적인 경의, 새로움에 대한 찬양은, 아방가르드의 형식으로 투영된다.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급진적이며 실험적인 실천으로 사회의 선두에 서서 미적인 혁신을 일구는 것을 일컫는데,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인 프랑스의 사상가 생시몽(Saint‑Simon)이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방가르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무엇보다도 예술이 시대를 앞서 질주하도록 속도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아방가르드의 탄생이 과학 분야에서 대담한 사고가 발전을 이룬 시기와 일치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동역학과 아방가르드"는 에너지와 예술 사이의 역학(力學)을 다룬다. 여기 작가들은 대상의 외부에서 알게 되는 상대적 운동과 대상 안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직관해내는 절대적 운동의 틈에서 동력 장치의 작동을 보도록 한다. 동역학의 기계적 운동은, 톱니바퀴를 매개로 한 '기계적 앙상블'을 통해 미적 에너지의 흐름을 유인한다.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매개하는 것은 속도, 규칙성, 반복성, 그리고 기계적 맥박(ticking)이다. 윤성필, 송민규는 이들을 산출하고 '추상화'하여 표상한다. 최우람은 동력장치로 사물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대상에 기계적 생명을 부여하고는 그 유한할 생기(生氣)에 근심을 보여준다. 여기 배치된 모델링 오브제와 벡터 이미지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장치(apparatus)의 추진력과 속도를 미학적으로 탐구한다.

정헌조_Sky and Earth-circle and square, Fall_모노프린트, 실크스크린_76×56cm_2020
정헌조_Sky and Earth-circle and square, Winter_모노프린트, 실크스크린_76×56cm_2020

기하학에서 디자인까지 공간을 분석하여 표상하는 기하학은 에너지 흐름의 문제이면서 배치의 문제이다. 기하학에서 보자면 미술의 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은 (삼각형, 원, 사각형 같은) 단일한 평면이거나, 곡률을 갖는 다층적인 면으로 이뤄진 입체구조이다. 과학은 그 구조의 차이를 균질한 (유클리드의) 공간과 요동치는 (비유클리드의) 공간으로 말한다. 그 공간에서 미학적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위상차(位相差)를 보도록 하는 힘으로 생겨난다. 에너지 경제에 따라 그 힘을 응용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현대 미술을 대중화한 디자인이다. 가구, 건축물에서 공간, 텍스쳐, 움직임을 상상할 때 디자인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이를 흐르는 에너지의 균형 잡힌 패턴을 지향한다. 디자인은 에너지 생산과 분배의 전략이어서, 그 구조는 에너지의 공급, 배치, 소비, 저장의 전략을 제시한다. ● "기하학에서 디자인까지"는 에너지 경영을 다룬다. 여기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이의 교차와 가치평가가 미술가들의 주제가 된다. 김주현, 서혜영, 홍범, 정헌조, 이교준은 우주의 구조, 무한 확장하거나 축소되는 공간, 기억을 담는 그릇(容器), 부분과 전체의 환원성을 빌어 에너지의 흐름을 관찰하고 표상한다. 이들은 보이게 하는 힘과 보도록 하는 힘을 인식하는 것에서 미학적 에너지가 작동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백남준_삼원소: 사각형_레이저, 거울, 프리즘, 모터, 연기_309×246×122cm_1997~2000 백남준_삼원소: 원_레이저, 거울, 프리즘, 모터, 연기_287×234×122cm_1997~2000 백남준_삼원소: 삼각형_레이저, 거울, 프리즘, 모터, 연기_325×375×122cm_1997~2000

원자, 그 너머 힌두신 샤티(Shakti)는 에너지를 뜻하는데, 신들로 말미암은 매우 강한 빛에서 창조됐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는 궁극적으로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 형태의 에너지를 받는다. 그 창조의 에너지는 물질의 기본 구성단위인 원자에 스민다. 에너지는 식물과 초식동물, 육식동물의 흐름을 따라 순환한다. 광합성을 이끌고, 석탄, 석유, 가스, 식량 등의 형태로 변환된다. 이 같은 에너지 형태 변형은 몇 만 년이 걸리기도 한다. 변형은 역사 그 자체이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를 움직이도록 하는 에너지를 상상하며 심성적으로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 오늘의 시대는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의식 및 무의식인 망탈리테(mentalites)를 "원자, 그 너머"에서 이룬다. ● "원자, 그 너머"에서는 에너지가 자아내는 집단의 감정, '정-동'(情動)을 다룬다. 우리 사회는 원자의 융합이 이끄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약속의 빛이 있다. 그 반대에는, 에너지 고갈과 핵분열이 낳는 변이의 그늘이 드리운다. 핵에너지는 운동과 속도 속에 억제되었던 불안을 표현하는 문명이다. 어쩌면 원자의 힘은 타락한 에너지의 첫 번째 이미지일 것이다. 백남준은 빛의 에너지가 끌어낼 초 전자정보사회의 환희를 제안했다. 정주하가 포착한 우울한 사진이미지는 불안의 에너지를 담아 에너지의 유토피아적 미망(迷妄)을 들춰낸다.

김윤철_플레어 용액(푸른 무희)_Flare solution(blauer tanzer)_혼합매체_160×84×84cm_2020

불의 여정! 유토피아? "불의 여정! 유토피아?"는 인류의 도정(道程)으로 불의 발견과 유토피아의 발명 사이에 있는 예술의 실천을 돌아보며, 가능성으로 미학적 에너지를 다룬다. 과학사에서 에너지는 열역학 법칙에 속한다. 열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등의 순환하는 모든 운동과 이동의 원인이다. 예컨대 대기와 구름, 물과 비, 대지의 현상은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 원인은 불이다. 불은 빛을 발산하며, 열을 생산하고, 부피의 증가를 가져오며, 융합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새로운 종류의 기계장치이다. 불은 사회의 토대를 구축하고 기술적 혁신으로 이어지며, 이상향과 완전한 세계인 '유토피아'의 관념에 섞인다. 성적 에너지인 섹슈얼리티 또한 불의 에너지에 속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물질의 변화, 본질적 변화이다. ● 새로운 형식의 에너지 발생장치인 예술은 미학적 에너지를 저장한다. 예술은 열린 분기점, 다양한 흐름이 서로 만나는 에너지 교류기로서 창조적 에너지를 품는다. 김윤철, 윤지영, 정진용, 안보미는 변화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들은 질료적 상상력과 미학적 에너지의 작용력을 실험하며 '변신' 에너지로 '유토피아'가 꿈꾸는 에너지의 조화를 상상한다. ■ 전북도립미술관

Vol.20201013i | 예술과 에너지: 에너지 교류기와 우리 삶의 저장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