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숨결 Breath of Wind

류제비展 / RYOOJAEBEE / 柳제비 / painting   2020_1014 ▶ 2020_1108 / 월요일 휴관

류제비_사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24.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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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반디트라소 GALLERY BANDITRAZOS 서울 종로구 백석동1가길 45(부암동 239-9번지) Tel. +82.(0)2.734.2312 www.banditrazos.com

류제비의 밝고 맑은 '정물화' -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그림 ● "나는 류제비 작가의 작품을 지난 2004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정물 예찬』에서 처음 보았다. 당시 그녀가 출품한 작품은 일명 '정물화'였다. 난 그녀의 '정물화'를 보고 반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정물화'는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맑기도 했기 때문이다. 난 밝은 정물화를 보았지만 맑은 정물화를 처음 보았다. 류제비의 작품은 나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다가왔다. 나는 그의 작품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녀의 그림들은 나의 마음에 물들어 있다. 당시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감흥(感興)이 그대로 살아있다." ● 류제비의 '정물화'에 대한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말이다. 그녀의 '정물화'는 단순한 형태에 밝고 맑은 색조로 그려졌다. 따라서 그녀의 '정물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류제비는 자신의 '정물화'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거의 형태가 없는 그림을 그렸다. 대학입시 준비로 사실적인 표현방법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아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던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야지 하는 생각뿐 아무 대책이 없던 시절... 떠나고 싶고... 불안해 채워지지 않는 젊은 마음에 화실 한구석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놓여 있던 정물이 새롭게 보여지기 시작한 날... 그날은 삶의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자주 보고 식상하다 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 내 곁에서 묵묵히 빛나고 있었지만, 파랑새를 찾아 떠나려고만 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 줄기 바람, 짧은 미소가 주는 위안이 아름답다." 류제비의 「사랑」(2019)은 파랑 바탕에 흰색과 노랑색의 두 송이 칼라(Calla)를 그린 일종의 '정물화'이다. 두 송이 칼라는 마치 서로 의지하듯이 교차 되게 그려져 있다. 칼라는 '천년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신부들이 사랑하는 꽃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 류제비의 '칼라'는 노랑과 백색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화포에 쌓여있는 중앙에 마치 새끼손가락 모양의 붉은 옥수화로 그려져 있다. 물론 칼라의 옥수화 색은 원래 노랑이다. 두 개의 칼라를 마치 서로 포옹하듯이 그려진 작품을 류제비는 '사랑(Love)'으로 명명했다. ●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칼라는 인생의 새로운 시작인 결혼식과 인생의 마지막인 장례식에 사용된다.따라서 칼라는 인생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인생의 시작과 끝 사이야말로 인생이 아닌가? 류제비는 그녀의 '정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30대까지 나는 바깥세상보다는 내 주변의 사물들을 그리며 마음의 기쁨과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은 단순화된 색면 정물로 표현되었고 나의 마음 또한 밝고 맑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치 모든 마음의 문제가 해결된 듯 했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 나의 마음은 매번 변하고 나의 상황은 늘 새로운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물론 나처럼 나의 그림도 그렇다."

류제비_바람의 숨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0

자, 이번에는 류제비의 「바람의 숨결」(2020)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투명한 화병에 심비디움(Cymbidium)을 그린 그림이다. 화려한 컬러의 꽃들이 만발해 있다. 물론 아직 개화하지 못한/않은 꽃봉오리도 하나 있다. 화려한 꽃들의 줄기는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긴 물에서 굴절된다. ● 만약 당신이 류제비의 「바람의 숨결」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꽃들이 담긴 투명한 유리병 좌/우의 수평선이다. 그런데 수평선은 배경인 푸른색과 문맥을 이루는 듯 보인다. 말하자면 푸른색 바탕은 마치 하늘처럼 보이고, 수평선은 마치 누군가 바다에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를 일으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 흥미롭게도 물수제비는 마치 잔잔한 마음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 심정을 표현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단편적인 읽음은 류제비의 「바람의 숨결」이 정물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상상해서 그린 '상상화'임을 알려준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류제비의 '정물화'는 담백하면서도 눈이 부시도록 밝고 맑게 보인다는 점이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말했듯이 밝은 그림은 종종 볼 수 있지만 밝고 맑은 그림을 만나기 쉽지 않다. 어떻게 그녀는 밝고 맑은 '꽃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 점에 관해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류제비의 '정물화'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밝고 맑은 색감 때문이다. 밝고 맑은 색감의 비밀은 캔버스의 '피부'에 있다. 만약 관객이 그녀의 '꽃 그림'에 가까이 더 가까이 접근하여 본다면, 물감이 칠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캔버스의 올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캔버스의 올을 살리면서 저토록 밝고 맑은 색감을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류제비는 수성 아크릴물감의 특성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아크릴물감에 물을 적절하게 사용해 캔버스의 '피부(올)'가 살아있도록 붓으로 곱게(엷게) 먹인다(칠한다). 그녀는 그 방식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밝고 맑은 색감이 느껴질 때까지 말이다. 따라서 그림(캔버스)의 '피부'가 살아있게 되는 셈이다." ● 류제비의 「명상」(2020)은 파랑 도자기 화병에 우아하게 피어있는 흰색과 노랑색의 호접란(Orchid)을 그린 '정물화'이다. '호접란(蝴蝶蘭)'은 꽃잎이 나비의 양 날개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나비 호(蝴)를 쓰는 서양란으로 '행복이 날아옵니다' 혹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 류제비는 호접란의 꽃은 부드럽고 우아하게 표현한 반면, 꽃줄기는 곧으면서 고결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 호접란은 여성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몇 일 동안 물에 꽂아두지 않아도버티는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그녀의 「명상」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속은 곧고 꿋꿋하다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호접란이라고 말이다. ● 그런데 류제비의 「명상」은 「바람의 숨결」이나 「사랑」과 달리 '고운 피부'를 자랑한다. 만약 관객이 그녀의 「명상」으로 한 걸음 가까이 접근해 그림의 '피부'를 본다면, 숨 쉬는 캔버스 올이 아닌 깨알 같은 숨구멍들로 이루어져 있는 도자기 같은 피부를 보게 될 것이다.

류제비_명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0

어떻게 류제비는 도자기 같은 고운 피부를 표현한 것일까? 그녀는 캔버스를 수채화의 와트만지(whatman paper)로 만들고자 캔버스 피부에 모래를 바르고 사포(sandpaper)로 갈아내었다고 한다. 따라서 캔버스 올은 사라지고, 깨알 같은 고운 피부로 변신한다. 그 위에 그녀는 아크릴물감을 붓으로 곱게(엷게) 먹인다(칠한다). 물론 그녀는 그 방식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밝고 맑고 우아한 색감이 탄생할 때까지 말이다. ● 류제비의 '정물화'는 '맑다'는 표현보다 '해맑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정물화'는 환하게 맑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에는 마치 잡스러운 것이 섞이지 않아 티 없이 깨끗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명상」은 그 해맑고 밝은 정물화에 우아함을 더했다. 따라서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류제비의 '정물화'는 담백하다. 그 담백함은 밝은 색조와 형태의 단순함에서 기인한다. 더욱이 그녀의 「명상」은 담백함에 우아함까지 더한다. 따라서 그녀의 꽃을 보는 관객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꽃을 그리는 화가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류제비의 사랑이 가득한 '풍경화' - 꿈속에서 거닐던 평온한 풍경 ● 류제비의 '정물화'는 담백하다. 물론 그녀의 '풍경화' 역시 '정물화'처럼 담백하다. 따라서 관객이 그녀의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말했듯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풍경을 그리는 화가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그 점에 관해 류제비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 "40이 되자 나는 불쑥 하늘을 날아 저 지구 반대편의 바다와 집을 그리고 싶어 졌다. 상상이라고 하지만 아마 내가 사진에서 보아온 아름다운 여행지나 소설 속에서 걸었던 그 골목길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실존하지 않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이 여행에서 또 한 번 나의 마음과 만나 이야기하며 나를 기쁘게 했던 것 같다."

류제비_별이 빛나는 밤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모래_27.6×40.9cm_2018

류제비의 「별이 빛나는 밤」 시리즈나 「바람이 시작되는 곳」 시리즈는 일종의 '풍경화'이다. 그녀의 '풍경화'는 마치 드론을 날려 풍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각처럼 그려져 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녀의 풍경화를 보고 '지중해 풍경'을 연상한다.

류제비_별이 빛나는 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모래_100×100cm_2018

그런데 류제비의 '풍경화'는 그녀의 '정물화'처럼 상상의 풍경화이다. 그녀의 '상상 풍경'에는 푸른 바다와 집 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기타 그리고 의자 또한 선인장 화분도 등장한다. 따라서 파스텔톤의 따스한 그녀의 '풍경화'는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처럼 보인다. 집들은 한결같이 솜사탕 같은 구름처럼 부드럽다. 왜냐하면 류제비가 집들을 곡선들로 '건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직선으로 표현된 집도 있지만 모서리를 보면 날카로운 직각이 아닌 곡선으로 표현했다. ● 류제비의 '풍경화'는 그녀의 정물화 「명상」과 마찬가지로 캔버스를 수채화의 와트만지(whatman paper)로 만들고자 캔버스 피부에 모래를 바르고 사포(sandpaper)로 갈아낸 피부에 작업 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캔버스 올은 사라진 고운 피부에 아크릴 물감을 붓으로 곱게(엷게) 먹인다(칠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그 방식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밝고 맑고 우아한 색감이 탄생할 때까지 말이다.

류제비_바람이 시작되는 곳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모래_53×72.7cm_2018

류제비의 '풍경화'는 '정물화'처럼 밝고 맑고 우아하다. 그리고 그녀의 '풍경화' 등장하는 집들도 '정물화'의 꽃들처럼 단순하게 표현되어져 있다. 아기자기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에는 문과 지붕 그리고 유리창 이외에 별다른 장식도 없다. 와이? 왜 류제비는 단순한 풍경화를 그린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 삶에서도 맑음과 단순함을 추구하던 시절이죠. 문제를 명쾌하게 풀고 싶던 갈망이 그림에도 투영된 거예요." ● 하지만 삶은 단순하지도 않으며 명쾌하지도 않다. 그런 까닭일까? 단순 명쾌하게 그려진 '풍경화'에 사람이 부재한다. 물론 그녀의 풍경화에 사람은 부재하지만 사람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테이블 위에 방금 읽다가 말은 듯 보이는 펼쳐진 책이나 커피잔 그리고 담에 기대어 있는 기타나 자전거 또한 안락의자애 던져져 있는 가디건 등은 자리를 잠시 비운 사람의 흔적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관객은 그림에서 방금 사라진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그림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림의 담장으로 가려진 길모퉁이로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 류제비의 '풍경화'는 마치 꿈속에서 거닐었던 풍경처럼 보인다. 류제비는 작가노트에 "나의 상상 풍경 속의 집들은 소박하지만 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여겨지게 그리고 싶었다"고 적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류제비의 '풍경화'가 "관객들을 어린 시절로 안내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난 류제비의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에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관객이 류제비의 '풍경화' 시리즈를 보면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그려놓은 세계를 관객이 볼 때 그녀의 마음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우리가 친구에게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안아주듯이 말이다. 그렇다! 그녀의 '풍경화' 시리즈는 우리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잊게 해 준다."

어린 여행자 류제비의 '인물화' - 어린 시절로 안내하는 그림 ● "나는 류제비의 '정물화'와 '풍경화'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그림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밀도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녀의 '정물화'와 '풍경화'는 단순하면서도 밝고 맑다. 하지만 그녀의 일명 '소년(인물화)'는 밝고 맑음 속에 알 수 없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밝고 맑지만 마치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담겨있는 듯 보이는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의문은 무엇일까?" ● 류제비의 '인물화'에 대한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말이다. 그는 류제비의 '인물화'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그 묘한 느낌이 무엇인지 그림에서 찾고자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 묘한 느낌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류제비의 작품이 그에게 "인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부(陳腐)하게 간주했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김질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누구나 종종 인생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곤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 중도 하차한다. 물론 우리는 잊을만 하면 다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재시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그러 했듯이 다시금 자신 찾기 여정에서 하차한다. 우리의 '잃어버린 나 찾기'는 그렇게 매번 반복된 중도 하차를 통해 제자리걸음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날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잃어버린 나 찾기'를 그만둔다. 하지만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류제비가 미대 재학시절부터 끈질기게 '타자'를 통해 인생을 탐구해 오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 "류제비의 첫 타자는 '꽃'이었고, 두 번째 타자는 '집'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정물화'와 '풍경화'는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궁금했다. 어떻게 그녀는 타자를 꾸준히 탐구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타자를 통해 깨달은 바는 무엇일까?"

류제비_생각하는 소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20

류제비의 신작 '인물화' 시리즈는 타자를 '꽃'에서 '집'을 거쳐 '소년'으로 전이된 것을 뜻한다. 그녀의 일명 '소년' 시리즈는 「생각하는 소년」, 「소년과 풀잎」, 「새와 소년」, 「물고기와 소년」, 일명 '제비꽃과 소년' 등 소년과 자연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류제비의 '소년' 시리즈에 등장하는 소년을 "르 끌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의 소설 「어린 여행자 몽도(Mondo et autres histoires)」(1978)의 주인공 몽도를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 몽도는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이다. 하지만 몽도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몽도를 만나면 즐겁고 순수해진다. 몽도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주는 아이다. 그런데 맑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몽도는 어른들의 세속적인 삶을 떠난다.

류제비_소년과 풀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3×91cm_2020

류제비는 작가노트에서 "만약 내가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10세의 소년이고 싶다"고 적었다.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꽃을 마치 처음 보는 꽃처럼 신기해 하는 소년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해 하는 소년을, 소라의 소리를 듣고 있는 소년을, 새와 대화하는 소년을 그린다.

류제비_in viole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24.2cm_2019

이번 반디트라소에 전시되는 류제비의 '소년' 시리즈 중 한 작품인 「인 바이올렛(in violet)」(2019)은 마치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인물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보라색 배경 속에 옆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는 보랏빛으로 빛나 보인다. 그는 얼굴도 길고 목도 길다. 그는 밝고 맑을 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을 담은 깊이감마저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인물화'는 이전의 '정물화'나 '풍경화'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 류제비는 그림에 깊이감을 주기 위해 캔버스에 젯소(gesso)를 바르고 사포로 갈았다고 한다. 그녀는 '기초화장' 위에 투명하게 아크릴물감을 바르고 마르면 사포로 갈았다. 그녀의 '인물화'도 이전의 '정물화'와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엷은 아크릴물감으로 수십 차례 반복해 작업한 것이다. 단지 그녀의 '인물화'가 '정물화'와 '풍경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색을 반복해서 바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색을 겹쳐 발라 레이어(layer)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레이어로 만들어진 피부 밑의 색이 표면으로 희미하게나마 우러나와 색감이 밝고 맑지만 깊이감도 드러낸다. ● 류제비의 「인 바이올렛」에 출현한 남자의 표정은 담담하다. 아니다! 그의 표정은 순진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우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왜일까? 혹 그것은 레이어로 만들어진 색의 깊이감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그 묘한 표정의 실마리를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제비꽃(violet)'의 꽃말(pure love)과 관련된 그리스의 신화에서 찾는다. ● "그리스 신화에는 '제비꽃'에 관한 전설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에 양치기 소년 '아티스'와 아름다운 소녀 '이아'의 사랑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티스와 이아는 서로 사랑했지요. 그런데 아름다움의 신인 비너스가 그들의 사랑에 질투해 아들 큐피트에게 미션을 줍니다. 비너스는 큐피트에게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이아에게 쏘게 하는 반면, 사랑을 잊게 하는 납화살을 아티스의 가슴에 쏘게 합니다. 큐피트가 그들에게 각각 화살을 쏩니다. 이후 이아가 아티스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아티스는 이아를 못 알아보고 돌아가 버립니다. 이아는 슬픔에 빠져버립니다. 이아는 점점 야위어 가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비너스는 이아를 작은 꽃이 되게 하였는데, 그 꽃이 바로 '제비꽃'이랍니다." ● 류제비는 양치기 소년 '아티스'를 마치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하게 그려놓았다. 그녀는 사랑했던 이아를 잊어버린 아티스를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표현해 놓았다. 와이? 왜냐하면 아티스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일까? 그녀는 아티스에게 사랑하는 이아를 기다리는 듯한 우수에 젖어 있는 감정을 삽입해 놓았다. 류제비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바람을 밝혔다. "나의 그림은 작지만 환한 밝음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류병학

Vol.20201014h | 류제비展 / RYOOJAEBEE / 柳제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