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접고 펼치다

판 하 다~! 2부展   2020_1016 ▶ 2020_113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고길천_김봉준_김상구_김준권_김진열_김진하 류연복_손기환_송번수_이윤엽_홍성담

2020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

후원 / 경기도_남양주시

관람료 / 5,000원 / 남양주시민, 군, 경 1,000원 할인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호미술관 SEOHO MUSEUM OF ART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344 Tel. +82.(0)31.592.1865 www.seohoart.com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서호미술관'이 2020년 한 해 동안 특별히 기획한, 판화전, '판, 하다'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전시되었고, 전시된다(6.19-7.30/10.16-11.30). 개관 후 20년 동안 서호 미술관에서는 여러 차례 개인전 또는 그룹전 형식의 판화전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주로 판화작가 개인들의 최근작들이 소개되었던 이전과 달리, 1,2부로 구성된 올해 판화기획전은 판화가 타예술장르에 비해 새로운 기술매체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다양한 판화작업을 통해 '판(版)'의 의미, 인쇄기법의 차이, 복제의 형식이 지닌 개방성과 확장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시에는 신작 뿐만 아니라 판화작가로서의 방법적 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 기존 발표작들을 포함하였다.

1. 판화; 판을 벌리고 판을 뒤집고 판을 섞으며 만들어지는 판의 동적 이미지 ● 판화는 그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계가 판화작업을 독자적인 미술작품으로 수용하고, 판화가들의 갤러리나 미술관에서의 전시, 그리고 판화집 발간을 작품 발표의 당연한 기회로 여기게 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지나야했다. 북미나 유럽의 미술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약한 편이지만, 요즘처럼 판화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적은 없었고, 판화작업을 '예술' 또는 '창작'으로 안착시키려던 많은 판화가들의 바램도 당연해졌다. 판화는 일반적으로 나무, 금속, 돌 등의 표면에 그림이나 문자와 기호, 패턴 등의 형상을 새겨 판(版)을 만들고, 거기에 잉크나 물감을 발라서 종이나 천, 아크릴과 유리 등에 다수를 인쇄(印刷)하는 기법과 그렇게 제작된 작품을 일컫는다. '판'이라는 매체적 특성이 예술적 형식으로 각인된 판화에서는 판의 종류와 재질에 따라 다양한 판법들이 구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판재와 인쇄의 복합적인 결합을 위해 다양한 기술적 개량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표현기법들이 출현하여 표현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판화가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매체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 판화는 회화나 조각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미지(사실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생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화작업의 진취성과 실험성은 매체적 특성으로만 쉽게 환원되어 버리고, 판화 자체의 기법적 언어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판화작가들 자신의 자유로운 발상, 또는 예술적 상상력이 간과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이러한 편견은 판화가 사진의 등장 이전에는 예술작품의 복제 수단으로서 널리 보급되었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여 판화를 회화에 종속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문서 기록이나 문화사적 자료에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 그러나 복제의 역할이 사진에 의해 대체된 상황에서 제작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현대판화는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회화, 디자인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삽화적 ·설명적인 성격이 강했던 종래의 판화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현대판화, '재현' 기능의 탈피 또는 기계적 사실성의 거부를 시대적 당면 과제로 삼게 된 현대예술, 그리고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하는 근대예술의 일반적 동향을 역설적으로 전유함과 동시에, 기존 판화가 때때로 감수해왔던 부차적, 타율적인 성격에 대한 도전으로 평가되는 '오리지널 프린트'(판화작가가 자신이 밑그림과 판에 새기기 등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인쇄에도 입회하여 한정된 인쇄 범위 내에서의 수량에 작가가 서명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개념의 확산 등은 판화작품을 회화의 보급판 정도로 평가 절하하였던 구습과 편견을 넘어선 사례들이다. 새로운 오리지널 프린트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문학서적의 삽화로 제작된 판화에서이다. 여기에서 판화는 문학 텍스트에 구속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텍스트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롭게, 병행적으로 제작됨으로써 텍스트와 이미지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실크 스크린과 다색 에칭의 유행, 동일한 작품에 있어서의 여러 기법의 병용 등을 통해 '새로운 오리지널 프린트'는 종래의 '복제적'인 판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판화의 동향은 예술사에서 늘 강조되고 있는 회화처럼 혁신적이고 다양하다. ● 판화의 제작 과정에는 일반적으로 도안을 디자인하는 일, 그것을 판으로 새기는 일, 그리고 인쇄하는 일의 단계가 있고, 그것에 대응하여 판화 제작에는 회화(繪畵), 조각(彫刻), 인쇄(印刷)의 여러 영역이 밀접하게 통합적 관계를 맺게 된다. 회화술, 조각술, 인쇄술의 기술적 측면이 한 날개를 구성하고, 그와 연계된 예술적 상상력이 또 다른 날개를 구성하여 상징적 표현이나 사실적 표현, 묘사적 표현, 암시적 표현 등으로 날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 상상력이 판화의 확장성(외부와의 확대된 연결)을 구성한다면, 예술적 상상력은 판화의 내화된 비물질적 성격을 구성하게 된다. 판화가 타 미술 장르에 비해 디지털모던 시대에 가능해진 융·복합적 특성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예술과 과학,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순수(예술)와 실용(기술),개인과 집단의 분리와 위계를 고집하지 않는 판화의 본질 때문일 것이다. ●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 '판, 깔다' '판, 엎다','판 물리다', '판, 깨다', '판, 벌리다', '판, 접다','새 판 짜다', '판판이 이기다' 속에서 '판'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해석해 본다. 시작과 끝이 같은 선분 위 이 쪽 점과 저 쪽 점에 위치하는 이미지는 판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선형의 이미지에 기대어 중첩과 반복, 확산과 수렴, 감다-풀다가 공존하는 실 뭉치의 두께가 길고 길게 풀린 실 가닥의 길이보다는 '판'의 이미지에 어울릴 것 같다. 디지털모던의 시대에 판화의 '판'이 지닌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특성이 새롭게 다가온다.

2. 판화가 지닌 복제성과 복수성을 다시 살피며 ● 판화를 둘러싼 격렬한 논의 중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이 판화의 복제성(複製性)과 복수성(複數性)이다. 일찍이 예술작품이 복제되는 현실과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 출현에 주목하였던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복제기술의 변화가 인간의 경험 구조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라 했다(「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이 갖는 일회성, 유일성, 원본성은 작품이 지닌 '지금-여기'의 고유한 물리적, 객관적 특징을 의미하고, 복제품과 상반되는 원본의 진품성 개념을 구성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예술작품이 지닌 '지금-여기'의 현존적 가치와 권위)를 보장하고 유지해 왔다. 그러나 복제기술의 변화에 따라 사진, 음반, 영화, 라디오와 TV 등의 매체를 통해 원본의 무한 복제가 가능해졌고, 원본은 본래의 장소와 시간의 제한을 벗어나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수용자-대중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매체환경의 변화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일까? 벤야민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일회성과 유일성을 지키는 전통적 수용 방식을 고수함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 출현을 통해 예술 수용의 새로운 길을 마련하는 데에서, 즉 수용자들의 예술 경험의 확대와 능동적 참여로, 시각적 관조가 아니라 촉각적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유지될 수 있다. 벤야민은 매체기술의 발달로 예술작품이 대량 복제되는 양적 변화를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부정적 현상으로 보지 않고, 예술작품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질적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파악한다. ● 그와 전적으로 대립된 견해를 편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음악에서의 물신적 성격과 청취의 퇴행」이라는 논문을 통해 복제기술의 발달이 가져 온 대중의 수용적 접근을 '퇴행'이라 규정하면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아도르노는 기술복제가 오히려 예술작품의 물신적 성격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수용의 깊이와 진정성을 무화시키게 되었음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예술이 집중과 몰두, 침잠의 대상이 되지못하고 진지한 소통통로가 되지 못한 채 가벼운 잡담과 사교적 수사, 오락, 향유와 허위 욕구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복제기술이 가져 온 매체환경은 작가와 수용자 모두에게 비판의 힘과 부정의 능동성을 소진시키고 순응성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질타하였다. 이 외에도 아도르노는 '문화산업론'을 통하여 대중소비가 조장되는 문화산업의 상품들은 대량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한 기계적 생산과 밀접히 관련되어 표준화, 규격화, 상업화를 피할 수 없고 이를 수용하는 대중문화, 상품문화에서 문화적 의미는 변질된다고 비판한다. 문화산업의 상품들은 광고 등을 동원하여 대중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예술의 자율성과 진지함, 도전적 특성을 약화시키면서 시장 논리에 입각한 문화산업의 목적, 즉 경제적 이윤추구를 멈추지 않고 대중문화에 대한 자본구속력을 더욱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아도르노는 대중매체의 수용자들이 기만당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면서 예술의 위기를 지적한다. ● 벤야민과 아도르노, 두 사람의 대립적 견해는 사진의 발명과 영화의 등장과 더불어 인간 경험의 변화를 예측함으로써 뜨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여기에서 제기된 쟁점들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지내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판화와 관련된 논의(판, 인쇄, 복제, 재료와 기법 등의 논의 범주가 있을 수 있다)의 지평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절대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예술의 편협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고 열린 마음으로 판화의 다양한 방법적 시도들(판법과 인쇄기법, 복제형식에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인지, 판화가 처음 출현할 때의 근본 정신을 되살리며 전통적 판론과 판법에 내포된 인간 존재와 세계의 이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 마련에 힘쓸 것인지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수용자들, 예술계를 구성하는 모든 인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일 것이다.

3. 전시 참여 작가와 작품들 ● 한국 판화의 전통은 고려시대까지 소급해서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문화적 전통이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계승 발전되지 못한 채 단절되었다. 겨우 각(刻)의 전통이 석각(石刻)과 목각(木刻)의 분야에서 그 맥을 이어왔을 뿐, 미술의 한 장르로서의 전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판화도 서양화의 도입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인식이나 기술도 서구적 방법을 따르고 있다. ● 8·15광복 전후 일부 화가들에 의해 판화가 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장르로서의 활동은 6·25전쟁 후 1957∼1959년을 현대판화의 기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시기에 이르러 판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인식되고 판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판화전문가가 나타나고, 국제판화전의 참여도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판화가 정식과목으로 채택된 것은 미국에서 판화수업을 하고 돌아온 유강열이 홍익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부터이고 뒤이어 서울대학교에서도 미국에서 돌아온 김정자에 의해 판화 수업이 개설됨으로써 판화가 양성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역사가 짧은 한국 현대판화는 여러 국제판화전에서의 수상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도 이루었으나, 전통 판화와 관련된 조사,연구 작업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요구받고 있다. ● '2020 판화 기획전'은 현대판화의 주요 작가들의 명단을 많이 나열하기 보다는, 판화 영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작업 동기들과 다양한 표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목적을 두었다. 1부에서는 권민호, 나광호, 신수진, 정상곤, 유희경, 이혜영, 정인지, 실크스크린 협업공방SAA (이산하와 정성훈)의 작업들이, 2부에서는 고길천, 김봉준, 김상구, 김준권, 김진엽, 김진하, 류연복, 손기환, 송번수, 이윤엽, 홍성담의 작업들이 전시된다. 특히 2부에서는 목판화 작가들의 전통 판화와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한국 판화의 역사적 폭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하였다.

대부분 목판화 작업을 보여주는 2부 전시고길천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많은 양의 학술 보고서와 함께 위기 대응에 관한 다양한 실천 방안들이 여러 분야,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되는 요즘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맺기가 상호적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참혹하고 절망적인 상황들을 거의 매일, 매 시간 접하고 있다. 바다에서, 하늘에서, 공기에서, 땅에서, 물에서, 숲에서, 동물에서, 식물에서, 광물에서, 도시에서 접하는 기이하고 낯선 현상들은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자만과 위선, 무지와 폭력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다. 고길천의 '멸종위기' 시리즈 판화작업은 한계와 가능 사이에서 균형잡기를 지속해 온 인간 문명에 대한 고발이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숭고미는 우리의 미감이 인위적인 미적 범주에 갇혀 창작의 한계를 짐짓 도외시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세밀한 묘사와 강렬한 색채, 빈 공간의 긴장적 배치가 두려움과 공포, 불안과 혼란이 열어주는 감각의 세계에 진입을 유도한다.

김봉준 ● 판화의 시작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경과 성서의 이야기, 구전 설화와 신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삽도(揷圖)에서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문자에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었던 민중들에게는 도상이 문자보다도 전달과 공유에 한층 유효한 문화적 통로였다는 이유에서다. 김봉준의 목판화에 담긴 민중적 시선은 '일상적 삶'이 지닌 유구함과 공동성의 의미를 정서와 감각으로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삶 자체에 대한 긍정과 지속적 삶을 위한 배려의 미덕을 일깨운다. 포용과 각성의 미덕이 기법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다.

김상구 ● 작가는 그래픽 이미지의 본질이 되는 요소인 독특한 평면적 패턴과 간결한 디자인을 구사함으로써 조형적 효과와 장식적 효과, 두 측면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지속해 온 그의 목판화작업은 일관되게 감각과 정서의 확장된 공명을 주제로 삼고 있다.

김진엽 ● 양식적으로는 입체주의적 디자인의 간략화 수법을 통하여 사실적 개념을 제시하는 작가 김진엽은 한편으로는 빛과 음영의 대조를 강조하며 평면에 부조(浮彫)같은 효과를 내고-음영의 대조는 실제로는 바탕면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타일 패턴을 묘사하여 이를 평면화함으로써 작품의 이미지는 정적이면서 동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가상과 실제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닌 현실감으로 전달되는데, 입체주의 꼴라주와 질감 효과, 시점의 다차원성이 그의 판화 세계에 도입되고 있다고 보인다.

김진하 ● 이제는 기획자, 평론가, 화랑 대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8,90년대까지도 김진하는 류연복, 최병수 등과 더불어 치열한 현실 인식과 비판적 현실 참여를 바탕으로 목판화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류연복 ● 그의 판화작품 이미지들은 서술적인 동시에 양식화되어있고, 추상적인 동시에 사실적이다. 깊지만 짓눌리듯 무겁지 않고, 밝지만 정처없이 부유하듯 가볍지 않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거주지를 안성으로 옮기고 전문적인 목판화가로서 작업에 전념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그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미학적 태도다. '중심 잡기' 위하여 늘 움직이는 까닭은, 주변과 더불어서야 비로서 자리 잡히는 것이 중심이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주변의 구성을 미리 예측하거나 고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중심 잡기'는 언제나 열린 과정이고, 현재진형형이며, 명사(名辭)로 개념화될 수 없는 동사형(動詞型) 술어다. 작가 류연복의 작품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움을 간직하는 이유는 그의 쉼 없는 움직임, 변화에 반응하는 열린 감각 때문이다. 「청구영언」에 있는 김천택의 바램,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는 작가 류연복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 즉 현재성 또는 삶의 현장성을 뜨지 않도록, 회고에 빠지지 않고, 앞날을 선취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배려하는 다짐으로 들린다. 강직한 판각 기법으로 출현하는 글과 이미지는 판각의 강하고 직선적 느낌과 달리 유연하고 포용적이다. 기술과 표현 내용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

손기환 ● 격렬하고 감정적인 형태와 선명한 색채를 보여주는 손기환의 판화는 명료하고 간결한 효과를 낳는다. 그는 메시지 전달과 인쇄 조건에 구속되지 않고, 단순한 형태와 대담한 색채로써 표현하는데 필요한 제작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 장인의 숙련도(노동 강도)와 예술가의 자기의식, 작품에 담긴 물질성과 비물질성이 표현주의적 특징에 담겨있다.

홍성담 ●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목판화에서 새로운 표현가능성을 찾았으며, 초기의 피카소·브라크·비용 등도 큐비즘적인 시점을 그대로 판화의 세계에 도입 격렬하고 감정적인 예술표현이 담겨있다. ■ 임정희

고길천_Fossilization (화석화 되다)_A/P_에칭_100×71cm_2001
고길천_Blind bird-Crows (앞 못 보는 새-까마귀)_A/P_에칭_91.5×63cm_2004
김봉준_추수_채색목판_28×37cm_1983
김봉준_오래된 마당_채색목판_37×28cm_1983

김봉준, 40년 미술 업의 삶. 그러나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삶에 의한 살림의 예술을 추구함. 서울을 떠나 39세에 강원도 산골로 들어와 지금 것 23년 화실에서 살며 회화 조각 판화를 하며 신화미술관을 운영한다. ■ 김봉준

김상구_No. 1252_목판화(비자나무 4점 set)_30×30cm_2020
김상구_No. 1253_목판화(비자나무 4점 set)_30×30cm_2020

자연을 소재로 한 풍경들이다. 그중 소품 4점은 비자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꽤 여러 해 작업해 오던 차 최근에 완성한 작품 4점이다. 목판화의 판각미를 살려 현대화의 접근을 시도한 작품이다. ■ 김상구

김준권_지리산-2_Ed.20+2AP_화선지에 채묵목판_35×55cm_2020
김준권_섬진청류2_Ed.20+AP_화선지에 채묵목판_34.8×55cm_2020

김준권의 2007~2010년 수묵목판화 ● 1991년의 「설곡」 「지리산 이야기」 「노고단에서」 「사북에서」등 다색목판화에는 수묵선묘와 어울린 미묘한 담채톤의 우키요에 화법이 엿보인다. 또한 김준권은 수성 판화와 다색목판화 기법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1994년 중국에 갔다. 심양의 노신미술학원 연구원으로 유학한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명 청시대부터 수성 다색판화가 발달하였다. 1995년 12월 노신미술학원 미술관에서 김준권 목판화전을 갖기도 했다. 이때 다색목판화의 실력을 인정한 노신미술학원은 김준권을 1996년부터 명예 부교수로 임명했을 정도이다. ● 이처럼 김준권은 한국의 선각 목판화와 일본의 다색목판화 우키요에, 그리고 중국의 수인 판화를 배웠다. 동아시아의 목판화 기술을 다각도로 섭렵했다. 형상새김과 다색판 제작은 물론이려니와, 종이에 수성안료를 찍어내는 인화의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터득했다. 김준권의 판화작업이 물올라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흑백 목판화의 한계를 딛고 회화적인 맛을 한껏 살려내게 된 것이다. 맑고 서늘하다. 목판에 새겨 먹으로 찍은, 종이에 스민 물맛이 담아하게 다가온다. 최근 김준권이 다색판으로 인화한 수성 목판화의 첫인상이다. 수묵 농담변화의 담백함이 소쇄한 풍경들과 어울려, 차라리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우려낸 듯하다. 산과 섬에 관련된 연작으로 수묵이나 채묵의 수성 목판화가 각별히 그런 느낌이다. 산과 섬은 텅 빈 하늘에 낮게 내려앉은 자태이다. 그 풍경에는 적막함이 감돌고, 허정한 공간과 단순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화면은 고요하고 넓어 요활하다. 간혹 풍경속에 등장하는 큰새나 새떼조차 소리없이 움직이는 듯하다. 묵음의 선미가 물씬하다. 김준권의 수성 다색목판화는 한국 현대산수화의 방향을 제시할 만큼 독보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조선후기 전경산수화의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를 계승한 조형미를 떠오르게 하여 반갑기 짝이 없다. 현실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국토사랑, 부지런한 발품, 생거진천의 땅에서 받은 에너지, 50대를 넘어선 판화기술과 예술적 완숙, 한 작품에 대여섯판 이상 파고 찍는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하는 장인정신 등 여전히 건강하다. 김준권이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생동하는 기운을 유지할 것 같다. 우리 시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목판화의 대표작가로 평가되리라 확신한다. ■ 이태호

김진열_눈맞춤_A.P 1 Ed7_다색 목판_55×86cm_2018
김진열_사래긴밭_A.P 1 Ed7_다색 목판_55×86cm_2018
김진하_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 까지_목판화_35×35cm_1988
김진하_가시밭_종이에 목판화_18×23cm_1988
류연복_날아오르다-나비_소멸다색_65×185cm_2019
류연복_꽃길을 거닐다_다색목판_100×185cm_2018
손기환_화조_한지에 우드컷, Relief_85×68cm_2020

내 판화에 대한 소견 ● 판화를 처음 시작한 1981년부터 최근의 릴리프 판화까지 모아 화집으로 출판하면서, 그간 작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생각을 짧게 피력해 본다. 여러 판화 기법 중 목판화를 하게 된 이유는 목판화가 다른 기법에 비해 묘하게도 몸(?)에 잘 맞는 다는 점이다. 밑그림에서 제판, 인쇄라는 제작 과정은 모든 판화의 공통적인 프로세스지만, 목판화는 재료 준비에서부터 다른 판화 장르와 달랐고, 그런 점에서 자연스레 내 마음을 끄는 장르였다. 목판은 규격화된 기성 제품도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나무를 자르고 말린 이후 적당 한 크기로 자르고 대패질을 하게 되는, 기초적인 목공의 기술과 노동의 수반부터가 좋았다. 이런 몸과 노동이 결합된 작업 실행 과정은 목공예나 도자 공예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다시 판면에 그리고 판각하고 찍어냄으로 회화적 이미지를 얻는 과정이 더해져서 목판화 특유의 특성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나는 노동과 표현을 통해서 좀 더 종합적인 장인적·예술적 미디어로 진화 가능한 장르적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판화에서 밑그림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 밑그림에 의해서 작가의 개성과 작품의 조형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보는 편이다. 내 작업을 보면, 우선 그리려는 대상을 여러 관점과 생각으로 밑그림(스케치)을 하게 된다.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밑그림 스케치를 한 작품에 대략 10장 내외를 하게 된다. 그려진 스케치는 선택되고 다시 편집 및 수정되며 목판 크기에 맞게 조정된다. 이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목판에 맞는 이미지는 내가 의도한 조형적 본질에는 접근되나, 애초 대상의 관찰에 의한 사실성은 사라지게 된다. 즉 재현이나 묘사의 거부이자 작업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여러 효과와 표현성으로 작업의 궁극적 주제를 최대한 확장 시키는 결과를 얻는 것이라 하겠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판에 뒤집어 옮기거나 밑그림을 바로 판위에 먹으로 스케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후 다양한 칼과 각법으로 제판을 하게 된다. 그려진 밑그림은 손의 움직임과 순간적인 감각적 판단에 따른 칼의 운용으로 판면에 전혀 다르게 새겨지기도 한다. 제판은 결국, 칼들이 갖는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까. 제판이 끝나면 가능하면 프레스보다는 손으로 인쇄를 한다(물론 대작은 프레스를 사용한다). 릴리프의 경우에도 손과 솔로 직접 여러 층이 쌓아 두들겨 완성하게 된다.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이 투여된다. 보통의 경우에 인쇄는 손으로 찍든 프레스로 찍든 큰 시간이 들지 않지만, 릴리프 경우 한 장을 완성하는데 대략 7배접 정도로 그 건조까지 대략 한달 정도가 걸린다. 때문에 작품의 모든 에디션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인내와 기다림은 필수다. ● 작품에 있어 대상이 되기도 하는 주제와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목판화를 처음 시작할 때 관심은 그 소통의 힘이었다. 특히 독일의 표현주의 목판화나 중국의 혁명기 판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흑백의 강한 대비와 복수성, 거친 칼 맛 등에 매력을 느꼈으며, 당시 사회적 상황에 그림이 뭔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할 때였기에 더욱더 판화를 하게 되었다. 회화에서 강한 메시지를 표현하며 운동성을 강조했다면, 목판화로는 민중 정서가 깃든 쉬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또한 민족양식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소재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전통이었다. 민화와 같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전통회화나 판화에서 보여 지는 소재와 기법을 참고했으며, 목판화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목판모임 활동부터 점차 분단과 고향 상실이라는 주제를 더해갔다. 또한 회화에서 주로 관심을 가졌던 분단의 정서를 담은 일상 풍경도 그리고 새기게 되었다. 초기 「강 건너 고향」에서 실향민의 감성을, 「물의 노래」에서 고향 상실을, 「우리 동네」에서 작업실이 있었던 화전 부근의 분단 풍경을 그렸으며, 1990년 넘어서는 「희망」이라는 주제로 일하는 사람들과 주변 일상 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렸다. 2000년 이후부터는 「산수」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화조나 어해도 같은 민화에서 보여 지는 소재들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찾아 그리고 있다. 판화는 성격상 직접적인 붓질로 그리는 회화와 달리 제판과 인쇄라는 노동의 과정이 개입된다. 특히 인쇄의 과정이 끝나야 작품의 완성을 볼 수 있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이미지의 완성 사이에 구체적인 몸의 노동-일이라는 단계를 통해 작품의 완성을 향하는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 이러한 다소 전통적인 방법과 노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제작되는 목판화를 지속하는 이유는 작업 특성에서 오는 몰입도와 판화가 갖는 이미지의 힘, 그리고 다수의 작품이 만들어져 수용과 확산이라는 복수성, 흑백 판화가 갖는 강한 대비, 그리고 또 하나는 밑그림부터 시작되는 대상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간접적인 방법을 넘어 다듬고 편집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 손기환

송번수_백합_목판화_86×60cm_1984

작가란 본질적으로 시대의 기록자요, 감시자이고, 나아가 비판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 송번수

이윤엽_콩심는 할머니_목판화_76×56cm_2009
이윤엽_눈오는날 겨울산_56×76cm_2015
홍성담_칼춤_목판화_56×43cm_1984
홍성담_낫춤_목판화_56×43cm_1984

칼춤 ● 하늘에 둥 떠있는 태양보다 더 그 빛줄기보다 더 아름다운 것 위태로운 손 칼날을 잡은 손

낫춤 ● 눈썹 같은 낮달이 비켜 선 뒷산 강은 제 깊은 속을 보여주지 않고 흐르다가 낮 달을 베어 물고 나서야 하얀 거품으로 뒤척인다 강은 낮 달의 살점을 씹으며 길게 누워있다 ■ 홍성담

Vol.20201018i | 판, 접고 펼치다-판 하 다~! 2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