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지 않은 순간들

정진경展 / JUNGJINGYEONG / 鄭晋敬 / painting   2020_1020 ▶ 2020_1030 / 주말 휴관

정진경_멈춰있지 않은 순간들展_가창창작스튜디오 스페이스 가창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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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경 홈페이지_www.jung-j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0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릴래이 개인展

주최,주관 / 대구문화재단_가창창작스튜디오 후원 / 대구광역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가창창작스튜디오 전화/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 가능 가창창작스튜디오 홈페이지에서 VR 전시관람 가능 ▶VR 전시관람 하러가기

가창창작스튜디오_스페이스 가창 Gachang Art Studio_SPACE GACHANG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57길 46(삼산리 795번지) Tel. +82.(0)53.430.1236~8 www.gcartstudio.or.kr

곁의 미학 : 일상과 그리움 사이에서 피어오른 이미지'이름 없는' 정물과 풍경 정진경은 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작가다. 그는 매일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에 관심을 쏟는다. 한 번 사용하고 쉽게 버려지는 일회용품에 애정을 쏟고, 겹겹이 쌓아 끈에 묶여 재활용 신세가 될 종이 쇼핑백과 택배 상자에 마음을 준다. 낡은 슬리퍼나 살이 휘어 배불뚝이가 된 우산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우리의 곁에서 삶의 동반자처럼 함께 지내는 —그 기간이 무척 짧을 수도 있지만— 일상용품을 그 어떤 사람보다 가깝고 친숙한 존재로 여긴다. 이런 작가의 마음은 고스란히 작업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쉽게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물들에 대해 외면하기가 아니라 오히려 정감을 느&꼈고, 그래서 그것을 주의 깊게 오랫동안 바라봤고, 그 과정에서 &그것의 조형미에도 매료되&었다고 말한다(작업노트). 쉽게 소비되는 일상용품은 정진경에 의해 그려지고 만들어지면서 삶 속의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정진경_멈춰있지 않은 순간들展_가창창작스튜디오 스페이스 가창_2020
정진경_멈춰있지 않은 순간들展_가창창작스튜디오 스페이스 가창_2020

반면 정진경은 푸른 잔디나 노을, 들판, 산, 그리고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골 풍경도 그린다. 일상용품을 주로 그리는 작가에게 이러한 작업은 외도(外道)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 일상용품과 자연 이미지는 유사한 지점을 지닌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학업을 위해 15년간의 서울에서 머물렀던 시간과 서울의 비좁고 답답하고 외로웠던 자취방, 성인이 되어버려 다시는 그 감정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등의 시공간적 현실에 둘러싸여 있었다. —작가는 2016년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 왔다.— 이렇게 타지에서 성인으로 살아갔던 작가의 곁에서 위안을 줬던 것은 (일상용품뿐만 아니라) 아련함이 녹아 있는 기억/상상 속 자연 풍경이었던 것 같다. 작가는 서울의 자취방의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푸른 잔디를 상상했다. 이러한 상상은 ⟪너른 데서 핀(pin)하다⟫(2017) 전시가 되었다. 이 전시는 삶의 순간순간 작가의 곁에 자연의 이미지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전시 서문에서 &푸른 잔디는 작가에게 그리운 고향 집, 대자연을 생각나게 하는 달콤한 위안&이라고 오세원은 말한다. 결국 그가 상상한 푸른 잔디는 고향,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곁에는 일상용품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일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무의식적인 자연 이미지, 도시라는 장소성과 현재라는 시간성을 벗어난 아련한 고향, 자연 이미지가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정진경_landscape drawing_판화지에 수채, 과슈_25×35cm_2020

대량 소비문화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는, 쉽게 쓰고 버려지는 일상용품에 작가가 쏟은 애정은 쉽게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이러한 작가의 성향은 잊히는 과거의 시골 풍경과 도시 문화가 창궐하면서 점점 사라져 가는 자연의 풍광에 대한 애잔함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둘을 묶고 있는 것은 '잊힘'이다.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잊히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작업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 작가의 곁을 맴도는 이러한 두 영역, 일상용품과 자연은 정물과 풍경, 다가섬과 거리 둠, 의식과 무의식의 특성을 보인다. 작가는 일상용품을 눈앞에 두고 그리는 듯 아주 가까이에 두고 표현하는 반면, 아련함이 묻어 있는 시골 풍경은 멀리 거리를 둔 원경(遠景)으로 그린다. 이러한 거리감은 대상과 작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의적으로 쉽게 버릴 수 있는 일상용품은 잡히는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비자의적) 잊히고 있는 기억이나 자연 풍광은 먼 곳에 있다. 따라서 일상용품은 의식 안의 대상이고, 기억의 풍경과 자연의 풍광은 무의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지금 보이는 자연 풍경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의식적 대상임은 변함이 없다. 그 풍경이 결국 기억 속 시골 풍경과 중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진경_sp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3×130cm_2020

오래 기억되는 이미지 ● 정진경은 대상을 전혀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상의 실루엣만 색면으로 드러내거나 색선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작가의 사실적이지 않은 표현은 표현 대상의 추상성을 높여 기억에 각인시킨다. 다시 말해서 버려지는 것(잊히는 것)을 추상성이 강한 단순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오랫동안 그 대상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구체적 형상보다 단순한 형상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를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직관적인 어린아이의 표현법과 관계 깊다. 작가는 2008년부터 어린아이들(4~13세)과의 미술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관찰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구체적이지 않은 형상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의 시선은 인간의 원초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대상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그리는데, 이 형상은 대상의 근원적인 형상, 즉 인간의 원초적인 시선이 그려낸 형상으로 볼 수 있다. 디자인에서 익히 알려졌듯이, 단순하고 직접적인 형상은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이들의 방식으로 표현된 작가의 작업은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다.

정진경_남겨진 흔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0

사실 작가가 쉽게 버려지거나 잊힐 수 있는 대상을 오래 기억되도록 의도적으로 아이들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차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각 예술가는 작품이 어떻게 감상자에게 다가갈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다년간 시각 이미지를 다뤄왔던 작가는 단순한 형상으로 추상성을 높여 대상을 표현했을 때, 이미지의 수용에서 발생할 생리적 현상을 이미 감각적으로 예측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감상자가 작품을 보면서 작용할 반응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정진경은 조형적 단순함이 강렬한 인상을 가져올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진경_멈춰있지 않은 순간들 - 가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0

작가는 대상물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드로잉과 페인팅, 판화 기법 등으로 평면 작업을 완성하고, 그것을 다시 입체 조형물로 변환하여 제작한다. 그리고 그 입체 조형물로 마치 공간을 드로잉 하는 것처럼 설치하거나, 그것을 다시 그리는 순환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작은 이미지는 큰 형태의 컬러 시트지로 옮겨져 유리 벽에 부착되기도 하고, 얇은 두께의 납작한 입체물이 되기도 하고, 명주실을 캐스팅한 속이 텅 빈 껍데기 같은 엷은 조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공간에서 조화롭게 구성하여 (작가의 용어로) &공간 드로잉&을 한다. 이렇게 평면과 입체, 설치를 넘나드는 정진경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 중요 요소가 되는 선과 면, 공간을 레이어 층으로 활용하여 [대상의 이미지를] 단계적으로 노출&하는데, 이것은 &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세스&라고 말한다(작업노트). 작가의 전공은 판화로, 이러한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작업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이 판화의 프로세스라는 사실이다. 작가가 선 드로잉과 실크스크린 모노타이프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도 판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정진경_서로에게 필요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46cm×2_2020

근래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상을 더 근접하여 대상의 부분만 색면으로 표현하거나, 대상과 배경의 구분을 모호하게 표현한다. 또한, 대상을 마치 채색을 하지 않은 것처럼 하얗게 남기거나, 유사한 맥락으로 대형 컬러 시트지 작업에서 대상을 오려내고 배경만 남기는 표현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상의 실체를 더욱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더욱 단순해진 색면 표현은 마치 색면 추상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온다. 이전보다 추상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소재도 이전보다 폭넓어지고 있다. ● 정진경의 작업은 현재도 변화 중이다. 그의 표현 형식이나 작업 방식은 점점 더 세련되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주변에 존재하는 '버려지는/잊히는 것'에 닿아 있다. 정진경이 보여주는 것은 '곁의 미학'이다. ■ 안진국

Vol.20201020i | 정진경展 / JUNGJINGYEONG / 鄭晋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