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 쓰기: 언어가 된 북오브제 Figure-graphy: Book-object as Language

김유림展 / KIMYOORIM / 金裕林 / mixed media   2020_1022 ▶ 2020_1030

김유림_언어의 발굴_한지, 모시_120×12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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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비트리 갤러리 B-tree gallery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 홍익대학교 홍문관 1층 Tel. +82.(0)2.6951.0008 www.b-treegallery.com

초월적 읽기, 김유림의 북오브제 ● 김유림의 북오브제는 언어의 납골당에서 부활하는 실존의 형상이다. 언어의 무덤 위에 세운 무언(無言)의 묘비는 현실적인 형태와 언어를 상실했다. 그러한 내적 상실을 애도하기 위해서, 또한 말할 수 없는 언어의 잔해들을 위해서, 읽기 불가능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제의적이며, 초월적인 방식으로 변신한다. ● 북오브제는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며 동시에 넘어서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책은 네모난 책의 모양을 탈피해서 제각각의 모양을 띤 사물과 비(非)의미가 결합된 것이다. 책들은 사물의 분절들로 이루어진 문장 그 자체로서, 언제든지 변화 가능한 '사물 자체'의 언어이다. 이 비(非)언어적 형상들은 전도된 언어의 가치를 창조한다. 그래서 김유림의 북오브제는 일반적인 언어체계 안에서 도저히 읽을 수 없으나 읽기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닌다. ● 초월적인 것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언어와 마음, 물성과 비(非)물성의 틈을 메우는 반복적인 신체의 수행성으로 초월적인 것을 생성한다. 예컨대 책의'갈피'를 잡는 행위는 작가의 주체적 실존과 시간을 증명한다. 갈피는 겹치거나 포갠 것의'사이(in-between)'를 지칭하는 낱말로서, 한지를 포개어 쌓는 행위의 부단함 속에 자리한다. 그 행위는 매 순간 변화하는 정신과 신체를 질료에 투사하며, 시간을 채워나가는 미세한 '변증법적 차이'를 생성하는'반복적 쌓기'이다. 요컨대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동일성을 해체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김유림_행_한지, 실_70×70cm_2020

열림의 형태, 무조(無調)의 변주 ● 한지의 끝에서 만들어지는 미묘하고 어른거리는 형상은 현상학적 열림이다. 아그네스 마틴은 가늘고 여린 연필 선(線)을 모눈 종이 위에 반복적으로 그리는데, 그 선은 손의 힘에 따라 울퉁불퉁하게 그리드와 겹쳐진다. 그리고 그 선들은 관객의 위치와 상호작용에 따라서 매번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낸다.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작품은 열린 형태를 제안한다. 김유림은 한지를 겹치고 엮어 행간(行間)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북오브제에 사용되는 묶음은 외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책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이며, 내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편집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유림에게 묶음은 종결을 의미하는 닫힘이 아니라 연속적인 열림의 구조를 생산하는 엮음(weaving)이다. ● 책의 행간은 사라질 듯 희미하게 이어지는'그림자 선(線)'이다. 그 선들은 다층적인 관계를 만드는 행간들로 수직과 수평으로 횡단하는 데, 탈중심적이면서 어느 부분도 지배적이지 않다. 그 표면은 숨을 쉬는 살갗처럼, 가변적인 율동성이 내재된 무조(無調)의 평면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작품에서 모든 서사를 제거하고자 했다. 가상적이고 허구적인 서사는 본질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70년대 단색화는 그 선례가 된다. 단색화는 매체의 물성과 신체의 수행성에 집중하면서, 일체의 서사를 배제하고, 그 자리에 깃드는 참된 정신성을 추구한다. 다만 단색화는 회화적 평면에 물성적 속성을 얹는 방식이었다면, 김유림은 북오브제 자체의 물성적 표면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오브제의 환경을 작품의 일부로 수용하는 서구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가변적인 시간성과 관객 참여적인 연극성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김유림_행|_한지, 실_70×70cm_2020

공감각적인 형상-쓰기 ● 작업은 먹의 농담에 따라 한지를 염색하는 것과 한지의 결과 올을 고르는 것이 짝이 된다. 책은 먹으로 염색한 한지를 켜켜이 쌓아가면서 부피를 만들거나, 아니면 쌓은 것에 구멍을 뚫거나 뜯어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고정된 형태가 없으며 다만 '형태되기'로서만 존재한다. 즉, 형상은 닫힌 형태를 지양하는 열린 시간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형상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인 것이다. 이것을 '형상-쓰기(figure-graphy)'라 명명해보자. ● 형상-쓰기는 의식적인 지각에 선행하는 공감각적 형상이다. 예컨대 형상은 외부로 발산하고 내부로 수렴되는 청각적인 울림처럼 비(非)가시적인 힘의 파동이다. 또한 그것은 앙고라 털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촉지적 공감각이다. 즉, 형상은 중첩된 공감각적 속성을 지닌 채, '쓰여진다.'그런데 이러한 형상-쓰기를 등가적인 언어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형상이 제작된 후, 사후적으로 작품의 제목을 붙여졌다. 제목은 단지 하나의 음운, 최소의 절제된 낱말, 그리고 비언어적 기호들이다. 이렇게 사후적으로 명명하는 것은 언어와 의미를 생산하는 본질적인 체계이지만, 기존의 체계에 종속되기를 꺼리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요컨대 김유림은 결코 언어의 기표로 표현할 수 없는 불가능한 간극을, 소쉬르의 파롤(parole)처럼 비(非)언어적 요소를, 자신만의'형상-쓰기'로 복원하고 있다.

김유림_波 RV157 I_한지에 먹_50×100cm_2017

따뜻함, 올과 결 내기 ● '따뜻함'은 한지를 통해 전달하고픈 그녀의 욕망이다. 초기 작업에서 사용된 '양모'는 언어에 대한 불신과 차가워진 마음이 지향하는 감각적 페티쉬이다. 이어 2017 전시는 오로지 따뜻함에 대한 주제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학 시절 양모가 그랬듯이, 그녀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지를 선택했는데, 무엇보다 한지가 지닌 따뜻한 물성에서 감각적인 충족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효과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 한지의 섬유질에서 올과 결을 골라서 깃털처럼 뽑아낸다. 한지를 꼼꼼히 뜯어내면서, 손끝의 체온이 한지의 온기로 살아난다. 이러한 수공적인 노력의 결과로 형상은 앙고라 털처럼 포근하게 감싸는 은은한 온기를 머금게 된다. 또한 손 작업은 한지에서 인공적인 차가움을 제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이렇게 탄생한 온기는 형상 전체를 감싸고 주위에 어른거리는데, 윤곽을 흐리기보다는 애초에 뚜렷한 윤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정형적이고 공감각적인 온기의 형상 자체이다.

김유림_잠결_한지에 먹, 다섯 개의 아티스트북_13.5×90cm_2020

무루(無漏)와 유루(有漏) 사이 ● 먹은 본래 재(ashes), 즉 그을음을 모아 아교를 섞어 압착한 물질이다. 그래서 재는 가볍게 날리듯 물을 매개로 한지에 스며든다. 그러나 먹은 때때로 묵직한 바위 같은 무게감을 지닌다. 루(漏)는'틈이 나다', 또는'번뇌'를 의미한다. 불교적 용어로 무루는 깨달음의 상태, 번뇌 없음, 유루는 틈이 있다, 번뇌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번뇌는 어떤 모습일까? 그 번뇌는 언어의 무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고 전달하려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싶어요..."언어의 열반은 집착을 내려놓고 비움으로 가는 무루의 상태일 것이다. ● 재는 타고 남은 흔적, 잉여 등의 타자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의미화의'공백'이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먹이 그 타자성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얼룩은 그러한 타자의 형상이며, 의미가 아닌 존재로서 치열하게 비워도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때때로 폭력적이다. 타자와의 만남이 모두 환대와 사랑으로 규정되는 것이라면 모든 초월성은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 만남은 다른 편의 적대와 증오의 극단 사이를 오간다. 그럼에도 양극단 사이에서 나를 나로부터 극복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것이 된다. 얼룩은 사랑과 고통 사이에 존재하는 초월적 형상이다.

김유림_잠결_한지에 먹, 다섯 개의 아티스트북_13.5×90cm_2020

관계, 새로운 시작 ● 김유림에게 북오브제는 모든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이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는 책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나뭇가지와 책의 거리는 관계의 낯설음과 친밀함 사이에서 수평적 평형을 이루며 멀어지고 가까워진다. 그리고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먹이 스며드는 시간과 농담의 차이로 형상화된다. ● 이렇게 지속적으로 쌓아가고 덧붙이거나 또는 내려놓고 비우는 방식 안에서, 김유림에게 북오브제는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고 자아의 정체성이다. 또한 그것은 반드시 신체의 행위로서 조성되는 체험의 장이다. 김유림의 북오브제는 언어가 중지되면서 동시에 시작되는 자리로서, 참신한 창조적 공간으로 도래할 것이다. ■ 이지현

내가 만든 책에는 글이 적혀있지 않다. 작업하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의 도구로 여러 종류의 선을 그린다. 접고, 썰고, 도려내고, 뜯고, 누른다. 수많은 손짓은 시간의 축적으로 책에 담기고, 나의 마음도 책에 담긴다. 그 마음이 온기를 담고 있길 바란다. 완성된 책을 풀로 붙여 액자에 넣는다. 한번 액자에 들어간 책은 누구에게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업에 들였던 시간과 그렸던 다양한 선들이 한순간으로 압축된다. 오늘 오갔던 수많은 마음 중에 어차피 언어로 남겨진 마음은 한순간일 뿐이니. 흐르는 마음을 책 한 조각에 담은 것으로 충분하다. ■ 김유림

Vol.20201022b | 김유림展 / KIMYOORIM / 金裕林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