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의 국토서사-DMZ를 걷다

김억展 / KIMEOK / 金億 / printing   2020_1021 ▶ 2020_1103

김억_DMZ를 걷다-백령도에서 독도까지_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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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나무아트 만사作통 프로젝트-4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중략...... 최근 대작 D.M.Z 연작에서 김억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서해 끝 백령도 두무진에서부터- 강화만 - 조강·예성강·한강이 만나는 김포반도 - 중부전선인 철원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역곡천 - 동부 전선인 양구 두타연·해안분지 펀치볼 - 고성 통일전망대(금강산 조망)- 동쪽 끝 독도에 이르는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서동으로 횡단하는 프로젝트다. 특정한 공간과 지역을 집중적으로 탐사하는 기획은 이미 제법 진행했었지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이번 기획은 그 공간적 규모나 발품의 한계로 인해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D.M.Z 전체를 그릴 수는 없는 일, 장소의 축약과 축지를 통한 핵심적 소재만 남기면서도 화면에서 생략된 풍경과의 연결성이 더욱 중요해진 작업이다. 분단현장이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지역마다 서로 다른 지형·생태구조·인문지리·지역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야 하니 그 조형적 맥락과 독자성의 드러냄이 더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DMZ 북쪽 끝 금강산과 같은 풍경과 더불어 건물·교량·참호·초소와 같은 시설물과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병사들의 일상적 모습까지도 그려넣었다. 특히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는 남북한 병사들이 손을 잡고 함께 악수하는 장면이 있다. 2018년 9월 남북군사합의에 의해 6.25전사자의 유해발굴이 공동으로 있었던 팩트를 인용한 작가의 의도적 진술이다. 그리고 철책선을 넘어 남북한 도로를 연결하는 장면도 이 그림에 포함시켰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이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철책선 북쪽을 최대한 남쪽과 같은 공간으로 수용하려는 의도다. 「양구 두타연」에서 작가의 이런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다. 화면엔 대부분 남쪽 풍광과 관광객이 자리한다. 그리고 철책선 위 최상단에는 금강산이 있다. 그림으로선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실제로 두타연에선 금강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가 염원하는 풍경으로 전치 시킨다. 부감법의 장점이다. 시각적인 풍경을 넘어서서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과 통일을 지향하는 주제로 확장시키려는 형상성의 의지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희구가 담긴 형상들은 숨은 그림처럼 화면의 이곳저곳에서 불현듯 몽타쥬되고 배치되면서 작가의 진술을 강화한다. ● 그 결과 국토는 풍경에 대한 서경(敍景)이나 재현적 서사(敍寫)를 넘어서서, 분단현실-한반도 평화-통일에의 의지를 한꺼번에 담는 역사성의 대하적 서사(敍事)공간으로 확장한다. 모든 질곡과 모순과 희망을 버무려서 김억은 국토에 대한 그의 사랑과 희구를 역사적 실체인 한반도의 영구평화와 통일로 주제화한 것이다. 이럴 때 국토는 온갖 사물과 사건과 풍경과 사람과 현상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자, 담긴 것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아카이빙 사고(史庫)이기도 하다. 김억은 그 지점을 안다. 자신의 작업이 미술 너머 궁극적으로 도달해야만 할 역사의 세계임을. 그것은 곧 풍경화란 전래적 장르의 범주에 김억의 작업개념과 조형적 방식이 갇히지 않는 이유다.

김억_강화만_A.p 2 Ed. 7_한지에 목판화_81×366cm_2019
김억_강화만_A.p 2 Ed. 7_한지에 목판화_81×366cm_2019_부분

디지털 정보화 시대. 4차산업.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속도의 문화로 이행하는 시대에, 목판화는 특이한 매체가 되었다. 나무판을 칼로 파내고 새기는 제판과정의 육체성 노동도 그렇지만, 표현의 원초성과 기껏 프레스라는 수백 년 된 수공의 기계와 기술로 인출하는 방식으로 인해 차라리 원시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근대기 첨단 인쇄술에 의한 미디어가 지금은 고전적인 무형문화재의 전승기술이 된 듯하다. 디지털카메라와 손가락만으로 단 몇 초 만에 풍경을 담고 그것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기록-전달-공유해서 프린트로 출력하는 편리한 시대에, 한 작품에 일주일 내지 한 달씩이나 온몸으로 매달리는 작업과정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표본 아닌가.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또 생각해보라. 이 집요하고도 지난한 노동을 동반한 작업과정이 어째서 지금 이 시대에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를. 몸의 체험은 정신의 깊이를 동반한다. 걸으면서 풍경을 체화하고 동시에 숱한 사유와 상상을 통해, 역사적 인식과 미적인 감성이 통일을 이루는 이 작업과정이 창출한 겸허함 내지는 숭고함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풍경을 넘어 새로운 인식의 지점을 조망하게끔 만든다. 수행처럼 진지하고, 사람의 몸과 노동이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 속도의 시대를 거스르는 근원적인 자기성찰이 유효한 방식의 작업이라는 것에 대한.

김억_고성 통일전망대_한지에 목판화_150×56cm_2019
김억_고성 통일전망대_한지에 목판화_150×56cm_2019_부분

근래 한국목판화는 놀라울 정도로 그 제작기술이 발달했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재료·기법·테크닉과 함께, 대형화된 작업 규모와 높은 완성도도 돋보인다. 작가마다 추구하는 형식과 주제에의 밀도가 치밀해졌다는 것. 그런데 문제다. 목판화 장르 내부는 르네상스 같은데, 이상하게도 외부로의 소통은 전혀 녹록하지 않아서다. 현대미술 전반적으로 보자면 목판화는 변방에서 허덕이며 고전하는 중이다. 1970년대의 전통과 형식적 모던함을 아우르던 방법론의 진작 시기와 1980년대의 소통이 극대화되던 황금기 이후, 문화적 가치와 장르로서의 새로운 미학적 담론을 생산치 못해서다. 적당한 기술적·감각적 유희와 소재주의적 패턴 반복, 매체에 대한 성찰 부족, 그리고 문화론적 인식을 결여한 작가적 태도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또 전시 및 여타의 기획들은 일차원적이고도 얕은 변죽만 울리면서 대충 대중추수주의에 물들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대중들과의 소통창구도 협소하게 만들었다. 목판화는 작가들만의 좁은 우물이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근래 김억, 김준권, 류연복, 홍선웅, 손기환 등 60대 중후반 중진들이 각자의 색깔과 활동방식의 개인전을 통해 목판화의 동시대적인 성격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국토의 특정한 장소마다 거기에 맞는 문제의식으로 좀 더 구체적인 서사적 형상성을 구현함으로, 타 장르와는 다른 목판화만의 리얼리즘적 풍경미학을 증명해냈다. ● 그중에서도 김억은 전통적인 시(視)방식인 동양화의 부감법과 대관적인 다시점의 화면구도, 필법과 준법을 수용한 판각법과 대상표현방식, 그러면서도 겸재의 진경, 능호관의 강산무진과 같은 스케일, 고산자의 실측성, 소정의 표현력 등을 두루 참조하며 김억만의 독자성을 확보했다. 거기에 다시 서구 원근법과 시간을 넘나들며 소재를 몽타쥬하는 시(時)방식까지 더하며 우리시대 인문적 풍경화를 창출해낸 것이다.

김억_독도_A.P 2 Ed. 7_한지에 목판화_190×60cm_2019
김억_독도_A.P 2 Ed. 7_한지에 목판화_190×60cm_2019_부분

이런 점은 작품뿐만 아니라 판화에 관계된 여타의 환경이나 제도적 측면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억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 경제와 문화와 정치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하던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노마디즘의 '세계化'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 입장에서 작업을 진행해왔다. 오히려 국토를 통한 한반도化 내지는 한국사化에 더 집중했다. 자본에 의한 문화적 식민성으로부터 독립된 판화를 향해서였다. 그것은 판화의 가치인 타자들과의 일상적 소통을 위한 대안적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판화의 미적·사회적·개념적 통찰을 통해서, 역사와 당대 자신이 서 있는 곳의 현실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거대/미시를 아우른 작가적 태도가 생산한 이런 작업의 결과와 밀도는 그래서 지금 더더욱 중요한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고. ● 미련해 보일 정도의 몸과 노동을 통한 원초적인 조형방식은 그의 이런 진정성을 반증하는 한 단서다. 그런 정직함과 성실성의 바탕에서, 나는 그의 작업이 한반도 횡단에 이은 종단 프로젝트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 남쪽 전체와 요동까지 그의 칼끝에 담았으되, 아직 미답지인 휴전선 북쪽을 관통하는 한반도 종주로 말이다. 기실, DMZ 횡단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라 여겨진다.

김억_한강과 임진강이 어우르다_Ed. 7_한지에 목판화_61×185cm_2018
김억_한강과 임진강이 어우르다_Ed. 7_한지에 목판화_61×185cm_2018_부분
김억_금강산을 바라보다_A.P 2 Ed. 7_한지에 목판화_50×219cm_2019
김억_예성강과 조강이 만나 하나되다_Ed. 7_한지에 목판화_61×278cm_2018

"철책과 장벽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겐 신과 같이 두려운 존재지만 꿰뚫어 보는 자에겐 하나의 우스꽝스런 설치물임을 깨달았다. 곳곳에 검문초소가 있는 250km의 기나긴 휴전선을 따라 횡단한 것도 일종의 분단신에 대한 우상숭배였는지도 모른다. 휴전선의 종단은 고작 4km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을 여는 진정한 분단기행은 철책을 따라가는 휴전선 횡단이 아니라 철책을 뚫고 가는 휴전선 종단 기행이라야 할 것이다" (김하기,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 중에서, 문학동네, 1995) ● 그렇다. 한반도는 바로 이 4km를 관통하는 종단이 필요하다. 거기서부터 한라에서 백두까지 연결되는 김억의 국토대장정 칼질이 "사각사각"거리는 형상음률로 연주되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 액티브한 서정성이야말로 분단국의 판화가가 펼치는 '국토문예학'의 정수이리라. 김억은 지금 그 문턱에서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김억의 국토–역사와 삶의 겹공간」 중에서) ■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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