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버리고 가 If you can, throw it away

이태정展 / LEETAIJUNG / 李泰貞 / installation.video.painting   2020_1027 ▶ 2020_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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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정 페이스북_www.facebook.com/leetaijung7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전시영상_www.youtube.com/watch?v=WWIMsAHA1wY

관람시간 / 11:00am~06: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B1, 1층 윈도우 갤러리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

웬만하면 버리고 가 ; 웬만한건 버리고 가 ● 삶이 각개인마다 다양화된 모습으로 이미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우리'란 테두리를 경계로 견고한 가치와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나는 변화된 삶의 형태에 적당한 정도의 정서적 거리두기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이 이루어 질 줄 알았다. 행동에 따라 마음도 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으로 온전히 살아가는 감각이 생겨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한데,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은 여전히 우리를 강조하면서 나에 대한 변별을 불편하게 느끼게 한다. 모두가 함께 겪는 큰일이 생기면 생존을 위해 '우리'의 관점이 중요해진다. 우리로 서로 돌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 로의 성장을 나는 기대한다. 그러나 사회는 대부분의 경우는 효율성을 위주로 개인을 뒷전으로 한다.모든 경우 양면성이 있듯, 코로나 상황도 마찬가지 양면성이 있다. 나는 수많은 고난 뒷면에, 전례 없이 각 개인들의 의식 성장과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괜찮아 괜찮아 위로하는 추세다. 그러나, 위로와 더불어 고통스러워도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냉정히 분석해야할 시기가 아닐까. 고통을 직시하는 것의 언급을 피하고, 위로만 하는 사회적 정서는, 각 개인이 고통을 직면하고, 그것을 다루고 극복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습득해야하는 시기를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괴로운 역사에서 개인의 고통이 보듬어지지 않은 채로 치유되지 못하고 남은 상처들이 있듯이, 이번에도 똑같이...이 작업에서는 '나'라고 하는, '우리'에 비해서 익숙치 않은, 하지만 '우리'보다 이전의 각자 고유한 존재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름이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것 그 아주 이전. 추상적 영역에서부터 다름이 시작된다는 것을 내 나름대로 표현해 본 것이다.이번 전시는 이사하며 정리가 힘든 물품과 그림들을 전시한다. 공간은 3군데로 구성된다. 지하에 2개의 공간이 있고, 1층 윈도우 갤러리에 전시한다.

이태정_포장이사-웬만하면 버리고 가

1번째방. 사이스페이스 방제목 : '포장이사-웬만하면 버리고 가' - 전시모습 : 이사하면서 버리기 애매한 흔적들과 그것을 담은 상자2개 + 작업실 이미지 프로젝터로 쏘기+ 큰 그림2개과 개조된 병풍 일부 +한지로 그린 그림들 구석에 쌓아놓을 듯. - 내용 : 포장이사들 한다고 하니까, 다들 똑같이 말한다. 웬만하면 (다) 버리고 가.일리가 있는 듯 들려서 작업실 물건을 정리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사하기 하루 전까지 미루다가 임박해서야 급히 정리하다보니,그림과 관련해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의 구별이 힘들었다.남보기에는 버려야 할 거 같은 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그러고 보니, 웬만하면 버리고 가, 라는 이번에 수시로 들은 표현은 어떤 무의식을 내포하는 거 같았다.1. 남에게 이것이 답이니까 이렇게 해라 쉽게 충고하는 정서.2. 새로운 것으로 나아갈 때, 과거의 것을 쉽게 버리는 정서.그리고 나는 '웬만하면 버리고 가' 충고에 따라 작업실의 짐을 정리하려다가 도리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에 내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공간이, 오직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게 됐다. 모든 예술가들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공간을 각자 갖고 있다. 그것은 그의 예술세계와 아주 긴밀하며 의식적인 것뿐 아니라 무의식에서 나온 흔적들로 가득할 것이다.

이태정_웬만하면 버리고 가3-다시 과정으로

2번째방. 사이도큐먼트 방제목 : '웬만하면 버리고 가3-다시 과정으로' - 전시모습 : 주로 2015년 그림들을 수정하여 전시. 원화의 인쇄물 2015년작(2020년 인쇄)+ 원화를 다시 수정한 그림2020년작(2015년 그림에 덧그리기) 나란히 전시.80호 그림 3세트, 30호 1세트, 소품1세트 + (연작 50호 3점)+ 오래되고 빛바래고 물감 묻어있는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 + (조명나무) - 내용 :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그림들을 다시 과정에 두고, 한 단계 더 나아가기.예전에 완성한 그림들을 다시 과정으로 가져와 좀더 그려봐야겠다고 생각이 든것은, 코로나 상황과 관련이 있을 거 견고한 사회와 문화의 안정된 틀이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전에는 익숙했던 삶의 태도를 고수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다른 형태로 대처해야 했다. 기준이 계속 바뀌었다. 급하게 변하는 기준들을 실천하면서 내 확신들을 포함해서 내부적 외부적으로 견고했던 것들이 아울러 자연히 흔들릴수 있고, 예전에 경험한적 없이 급히 변하는 마음과 행위들은 자연히 의식을 넘어 무의식 영역까지 건드릴 것이다. 정답을 의심하는, 권위를 의심하는, 고정된 것을 의심하는, 비슷한 맥락에서 요즘 많은 예술 작품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공간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나 역시 그와 같은 기저정서가 생겨서인지, 2015년 그림들을 이사를 위해 정리하다보니 이것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에는 완성이라고 여기는 지점에서 마무리한 그림들을 과정에 두고 더 그려 보기로 했다. ● 야외를 연상시키는 낡은 플라스틱 의자들을 전시하는 것에 대해서,나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볼 때 너무 집중하지 않기를 원한다. 좀 더 이완된 상태로 보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에는 이 그림들이 언젠가는 또 변할 수 있는 과정 안에 있는 그림처럼 보여지기를 원한다.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때가 되면 또 변하는 그림... 그리고, 내 스스로도 풍경을 감상할 때처럼 나의 그림을 좀더 객관적 시선으로 보기를 바라는 의도가 있다.그러한 감상태도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실 혹은 야외를 연상시키는 편안한 의자를 마련했다. 몸과 마음이란 주위 환경에 자동적으로 반응해서 어떤 특정 정서로 세팅되기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태정_너와나는달라-자전거 드로잉_영상설치_00:02:27_2020
이태정_웬만하면 버리고 가展_사이아트 스페이스_2020
이태정_웬만하면 버리고 가展_사이아트 스페이스_2020
이태정_웬만하면 버리고 가展_사이아트 스페이스_2020
이태정_웬만하면 버리고 가展_사이아트 스페이스_2020

3번째방, 윈도우 갤러리 사이큐브 웬만하면 버리고 가2-너와 나는 달라-자전거 드로잉 - 전시 모습 :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각자 자전거를 타면서 relive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지도를 나란히 영상으로 전시.(장소, 공주시. relive를 통한 자전거 드로잉. relive앱 회사에 문의해 전시디스플레이 허락을 받은 작업임) - 내용 : 이것은 사이스페이스. 의 웬만하면 버리고 가1-포장이사.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내 방식의 말대답이다. 누군가 내게 충고를 한다. 이렇게 해야지. 이것이 나아. 그것에 대해 일일이 반박했던 적도 있다. 그에 앞서 사실은 내가 타인에게 많은 충고를 했었다. 난 정말 확신했다 내가 옳다고... 옳다는 확신하에, 애정에 의한 것이든, 다름을 이해 못한 채로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바로 잡으려는 것이든.. 어린 시절부터 돌봄을 통해 몸짓과 언어와 행동들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기 시작해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각자 랜덤하게 무수한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은 다른 회로의 뇌를 가지게 된다. 가치 판단도 일종의 뇌에 입력된 경험이다. 사실 우리는 매순간 각자 다르다.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해 매순간 판단, 선택, 의도, 기억, 느낌 등 ... 행여나 비슷한 거 같아도 강도가 다르고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다르다. 순간순간 의식의 흐름과 판단과 기억하는 과거의 부분과, 상상하는 미래의 부분과, 함께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회상과 판단이 다르고, 대화를 하면서 함께 있는 듯 해도 사실은 각자다. 이것은 어찌보면 과학적으로는-모든 숭고함이나 복잡한 철학을 무력하게- 뇌에서의 아주 빠른 변화무쌍한 전기 전달에 의한 것이다. 각자가 '뇌의 길'이 다르다. 이 작업은 순간순간 뇌신경 전기자극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각자의 다름을, 이동 경로를 기록하는 앱을 이용해서 이미지화 해본 것이다. ■ 이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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