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四十

이원전 40주년 기념展   2020_1028 ▶ 2020_1103

초대일시 / 2020_102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故김경선_김화현_민재영_박민희_송윤주 심현희_유한이_이윤정_이윤진_이진희 전수연_정희우_조은령_조해리_최혜인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7 본관 Tel. +82.(0)2.737.4678 www.gallerydos.com

1981년 5월 7일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0년 올해 이원전이 '사십(40)'을 맞았습니다. '이원전(二元展)'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선, 후배로 구성되어 각자 치열한 작업 속에서 지칠 때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만나고 작업과 인생 등등 여러 생각을 나누며 소통하는 시간은 막막한 작업에 지속할 힘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전시는 이원전 초창기부터 활동하셨고 선, 후배들에게 늘 아낌없는 애정을 주셨던 故 김경선 님을 추모하여, 김원경 님(전 이원전 회원)의 글과 함께 지난 이원전에 출품하셨던 작품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십'의 한 매듭을 짓고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봅니다. ■ 이원전 일동

김경선_초록을 위한 명상 04_장지에 먹, 채색_ 29×17cm_2013 (이원전 31회 출품)
김경선_일용할 양식_장지에 채색, 요철지_ 98×79cm_2002 (이원전 22회 출품)
김경선_浮游에 관한 暝想_커피필터에 먹_ 22.5×72cm_2019 (이원전 호암 출품)
김경선_浮游에 관한 暝想 15-05_장지에 먹, 채색_ 40×134cm_2015 (이원전 35회 출품)

경선언니를 추억하며 ● 경선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언니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첫 문장도 시작하지 못한 채 서성거리기만 했다. 회고의 글을 써버리면 언니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두려웠다. 또한, 몇 줄의 문장에 담아내기에 언니는 너무 큰 사람이고 우리가 함께 한 긴 시간에 얽힌 수 많은 이야기를 내 짧은 재주로 풀어 낼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언니의 작업실을 정리하며 찍은 그림 자료를 받던 날, 내 기억은 까마득한 과거 언니를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로 흘러갔다. 작지만 반짝이는 눈빛과 힘 있는 목소리에 처음 만나자마자 언니에게 호감을 느꼈다. 호쾌한 웃음 소리는 언니의 호방한 필치와 닮아 있어 됨됨이가 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언니와 이원전 활동을 함께 하면서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깊은 사이가 되었고, 대학 시절 내가 했던 추측이 거의 어긋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언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언니를 좋아했었다. 함께 다녔던 대학원시절 특별히 언니를 아꼈던 이태승, 최병국, 조순호 선배의 모습도 떠오른다. 사람들이 그토록 언니를 좋아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언니는 삶과 예술, 겉과 속이 다 멋진 사람이었다.

김화현_We've Come a Long Way_ 장지에 채색, 순지에 수묵 콜라주_105×90cm_2020
민재영_PM 8:30_한지에 수묵채색_125×170cm_2019
박민희_별유화원_한지에 혼합재료_63×59cm_2020
송윤주_산책 Walk_장지에 먹, 안료, 스크래치_72.9×91cm_2020

큰 일에는 대범하고 덤덤한 태도를 보여 무심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주변 사람의 사소한 사정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세심하게 챙기는 언니의 인품을 나는 흠모했었다. 언니는 남의 이야기, 특히 어려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언니의 제자들은 속 깊은 얘기까지 꺼내 놓고 인생 상담을 할 수 있었던 선생님으로 언니를 기억한다. 포용력이 좋고 그릇이 크다 보니 언니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거미줄 인맥은 닿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언니에게 물어보면, 언니는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을 직접 알거나 적어도 그 사람은 아무개랑 친하니까 거기다 물어봐 줄게 라고 대답할 정도로 인망이 두터웠다. 나한테는 고작 1년 선배였지만 마음으로는 오 년, 십 년 선배처럼 원숙하고 거대한 사람으로 느껴져 언제나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심현희_숲을 들여다본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2.5cm_2020
유한이_98번길_장지에 연필, 채색_84×92cm_2019
이윤정_행복한 나무_한지에 수묵채색_104×92cm_2020
이윤진_Home_순지에 수묵채색_48×48cm_2020

또 언니는 참 부럽도록 용감한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건 누구 앞에서 건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고야 마는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상대방을 거칠게 공격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설득해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법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같은 층의 유별난 환자가 간호사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직접 나서서 그 환자를 진정시켜 간호사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오영숙 언니와 나는 역시 김경선!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병은 그 사람을 닮고 투병하는 모습도 그 사람의 성정과 똑같다는 말이 있다. 절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투병하는 모습은 참으로 김경선다워 십 년에 걸친 긴 투병 생활도 언니의 참모습을 망가뜨리지 못했다. 힘든 치료 과정을 한결같이 씩씩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고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진희_Daily trave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스틱_145.5×89.4cm_2019
전수연_Hybrid Flowers_아크릴지에 펜_30.5×92cm_2020
정희우_전속력으로 천천히_종이에 수묵채색_31×36.5cm_2020

2019년 10월, 나는 그게 마지막 만남인 줄 모른 채 언니를 만났다. 오영숙 언니와 배석빈 형과 넷이서였다. 판교 깐부 치킨의 분위기는 그날 따라 유쾌해서 언니는 그동안 절제했던 튀김과 함께 맥주까지 마셨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니 너무 시원하고 좋다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레너드 코헨이 80세가 되는 생일 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그는 80이라는 나이를, 건강을 염려하며 더 잘 살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나이이니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되는 시작점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하고 겨우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도 괜찮은 때가 언제인지를 우리는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언니를 떠나보낸 지금은 마지막 만났던 그날 더 많은 맥주를 마시지 못한 게 억울한 뿐이다. 맥주집에서 나와 헤어질 때 언니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숙제처럼 부탁했던 전각을 이제야 준다며 씨익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언니에게 전각을 부탁했던 건 언니의 글씨와 단번에 힘 있게 깎인 돌의 느낌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내심 언니가 만든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파서 작업실에 간지 오래고 각을 한 지는 더 오래라 무딘 칼을 겨우 찾아 대충 만들었다는 돌을 넘겨 받으면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조은령_일상적인 희생물_종이에 펜_15×10.5cm×7_2020
조해리_청(淸)하다_한지에 수묵채색_22×22cm_2020
최혜인_연결된 덩어리_장지에 과슈, 백토, 안료_53×45cm_2020

지난 십 년 동안 한국에 가서 언니를 만나고 헤어질 때 마다 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날이 진짜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알았다 해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생자필멸, 회자정리란 말을 아무리 되뇌어도 언니를 잃은 허탈함을 달랠 길이 없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세상의 반대편에서 깜빡이는 신호를 보내는 불빛 같았던 경선 언니.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가 아직도 어렵다. 경선 언니를 아꼈던 선후배들과 나란히 그림을 거는 이번 이원전 전시가 언니의 넋에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2020.9.10) ■ 김원경

Vol.20201028e | 사십 四十-이원전 40주년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