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The far side of memory

오세열展 / OHSEYEOL / 吳世烈 / painting   2020_1030 ▶ 2020_1123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25×163cm_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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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 금~일요일_11:0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대구신세계갤러리 DAEGU SHINSEGAE GALLERY 대구시 동구 동부로 149 동대구복합환승센터 대구신세계백화점 8층 Tel. +82.(0)53.661.1508 www.shinsegae.com

누구에게나 삶의 이야기들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고, 또 잊혀지기도 한다. 추억이라는 빛바랜 보따리 속에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들 사이를 부유하는 기억의 갈피들은 세월의 더께를 켜켜이 지고 있다. 그 세월의 흔적 속에는 결코 잊지 못하는, 때론 잊혀져가는, 그리고 잊혀진 유년 시절의 동심이 가득하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60×110cm_1974

작가 오세열은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해방의 기쁨이 함께하는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로 역사의 질곡과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해방, 건국, 전쟁 등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었다. 하지만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서 일흔 중반에 아련히 잊혀져가는 기억 저편의 편린 들을 모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캔버스 매개체로 보여준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98×98cm_1979

그의 작품은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초월하며 더 나아가 서양의 기법과 한국적 기법의 단순한 차이를 넘어선다. 검은 칠판에 하얀 백묵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사물화한 이미지를 그린다. 1 2 3 4 5 6 7 8 9 10 등의 숫자를 비롯해 몽당연필, 숟가락, 밥그릇, 단추, 넥타이, 들꽃, 새 등이 가득하다. 마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칠판과 낙서로 가득한 벽을 캔버스에 옮겨온 듯하다. 거기에는 일련의 조각난 현실들이 공존해 있을 따름이다. 어린 아이가 그린 듯 기교 없는 낙서는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유년 시절의 순진무구하고 순수한 동심에 대한 기억의 흔적이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30×97cm_2017

오세열 회화는 시각화된 기억의 흔적들이자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상상적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품 속 인물은 두상을 강조한 전신상으로 이집트 피라미드 미술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그 대상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모습으로 형상을 왜곡, 해체, 재구성해 그 내용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표피적인 감각을 초월해 근원적인 무언가를 찾으려는 독특한 감성으로,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모습을 채색 화된 도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30.3×194cm_2017~20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80×130cm_2018

앵포르멜 같은 전쟁의 미학은 아니지만 못 끝으로 긁어서 상처를 낸 화면은 우리 속에 생채기 난 무언가를 되살려낸다. 그 작업을 반복한 흔적이 가득한 화면 바탕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우주 속 기운과 풍부한 암시로 뒤덮여 있다. 이처럼 기억은 세월의 켜가 만드는 일정한 층위이다. 또 저 깊은 바닥에서 길어 올리는 샘물처럼 언제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신선하게 만들어 준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00×80cm_2019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정물과 인물, 1970년대 재현적인 구상에서 벗어나 반추상과 추상, 1980년대 낙서하듯 벽면을 거칠게 긁어낸 암시적 추상, 1990년대 이후에는 기호와 숫자를 바탕으로 하는 기호학적 추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16.7×80.3cm_2019

오세열 이름 속에는 그가 현재 추구하는 기호학적 추상 미술세계가 고스란히 내포되어 있다. 그에게 숫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어릴 적 몽당연필로 '1 2 3 4 5...'하며 숫자를 가장 먼저 배웠고, 삶 속에서도 늘 숫자와 함께 했다. 어찌 보면 숫자는 우리 모두에게 숙명일 수 있다. 숫자는 사람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만국의 언어이다. 수많은 시간과 공간, 허상과 실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자 절대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62×130cm_2019

우리 내면에 가려져 있는 무수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려 듯이, 겹겹이 덧칠되어 있는 물감을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한 흔적은 내면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세계를 찾기 위한 작가의 정신이자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는 구도자의 몸짓이다,

오세열_untitled_혼합재료_130.3×97cm_2020

이와 같은 작가 정신은 그의 작품 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쉰다. 어린 시절 동심이 그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한 작품 속 뜨거운 에너지는 결코 식을 수 없다. 이것이 기억의 층위를 뛰어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세열 화폭이 보여주는 기운이자 여운이다. ■ 김수현

Vol.20201030h | 오세열展 / OHSEYEOL / 吳世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