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그라피

낭만적 상징에서 바이오포비아까지展   2020_1105 ▶ 2020_1115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박지나_조상_노현탁_이한나_조이스 진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기획 / 박유한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녹번동 5-29번지) 서울혁신파크 5동 SeMA창고 A Tel. +82.(0)2.2124.8818 sema.seoul.go.kr

도래할 공동체를 위한 아카이브 ●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면서 우리의 곁을 맴도는 그들이 있다.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번화가에서 혹은 주택가 골목에서도 시시각각 출몰하는 그들을 우리는 무수히 외면하면서도 무수히 마주한다.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우리이면서도 우리에 포괄되지 않는, 그들은 유령일까? 혹은 괴물일까? 그러나 그들은 상상 속의 허구적 존재가 아니다. 현실 속 도시의 혐오 동물인 비둘기다. ●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비둘기가 지저분하고 병균을 옮길 우려가 있는 동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의 그들은 오랫동안 인간과 친밀한 반려종이자 순수와 평화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동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혐오 생명체가 되었을까? 이 물음의 답을 추적하기 위해 「비둘기그라피: 낭만적 상징에서 바이오포비아까지」는 비둘기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변화해온 과정을 연대순으로 낭만기-과도기-혐오기-그리고 미래라는 네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긴 시간 외면되어 온 비둘기의 본연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동물을 타자로 다루어 온 인간중심주의의 문제점을 돌아볼 것이다. ● 2020년, 인류는 현재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점점 가속화되는 기후변화 속에서 그동안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상화해 온 결과가 어떻게 인간 사회로 되돌아오는가를 몸소 경험하고 있다. 브루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에서 자연과 사회를 별개로 구분한 근대적 개념과는 달리 실제 세계는 하이브리드들의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의 지구가 처한 상황은 기존의 개념으로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혼란스럽다. ● 이 혼란을 인간과 동물의 관계로 더 집중하면 인간이 폭력을 가하는 대상이었던 동물들은 이제 각종 바이러스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 비둘기라는 동물 또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예외는 아니다. 과거의 낭만적 상징일 때나 현대의 혐오 동물일 때나 그들은 항상 인간의 편의에 따라 이용되는 도구적 존재였으며, 그 부작용으로 현재 과도한 개체 수로 도시 곳곳을 점유하며 피해를 주는 대상이 된 것이다. ● 이제 기존 인식과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전시를 통하여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래의 공생에 대한 방안들을 구상해야 한다. 개념적인 차원에서 동물론이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조르조 아감벤의 논의를 이어가면 그는 『열림The Open』에서 인간을 동물의 하위적 존재로 바라보는 기존의 구분법에 대한 불합리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어서 그는 윤리적 반성 차원을 넘어 인간과 동물의 확연한 구분 및 인간성의 신화를 생성하는 인류학적 기계anthropological machine를 중지시킬 것을 제안한다. ● 우리와 비둘기의 관계는 미래의 새로운 우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로 배제되거나, 배제된 그들로부터 위협을 되돌려 받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새로운 공동체의 정립은 다소 이상적인 일로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제를 외면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아직은 추상적인, 도래할 공동체를 구상해보는 일 - 과거/미래, 인간/동물, 혐오/환대라는 구분들을 중첩하고 백지화시키며 지금, 비둘기그라피에서 시작한다.

비둘기그라피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4전시실_2020
비둘기그라피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5전시실_2020

섹션1. 낭만기 (The Romantic Period) - 4전시실 ● 낭만기는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서양 미술사에서 비둘기의 흔적을 탐색하며 출발한다. 비서구권 미술사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둘기라는 동물을 타자로 만든 현대 도시화의 과정이 서구화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서양사의 큰 흐름을 참고하였다.

The Dove Returning to the Ark with a Branch of an Olive Tree_ Tempera colors, gold, silver paint, and ink on parchment. About 1400_J. paul Getty Museum A Medalion with a Turtle Dove_Tempera colors, pen and ink, gold leaf, and gold paint on parchment_Fourth quarter of 13th century_J. paul Getty Museum A Medalion with a Dove_Tempera colors, pen and ink, gold leaf, and gold paint on parchment_ Fourth quarter of 13th century_ J. paul Getty Museum
Henry Howard_Venus and Cupid_캔버스에 유채_1809_Yale Center For British Art Jacques François Courtin_A Priestess of Venus with a Dove_캔버스에 유채_1780

비둘기가 등장한 가장 오래된 서양 문헌은 기독교 성서로, 그들은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에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와 홍수가 끝났음을 알려준 이로운 동물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에 이어 중세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으며 당시 활발하게 나타난 종교화들은 성서의 구절들을 시각화하는 아래 비둘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주로 묘사했다.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시대의 주요 장르인 신화화에서도 비둘기는 특히 비너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 백조, 참새, 장미 등과 함께 성스러운 상징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양 문화와 미술사에서 볼 수 있는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었다. ● 다음으로 낭만기의 비둘기를 상상으로 구현한 동시대 두 작가의 작업을 만나본다.

박지나_말없이 without words_단채널 영상_00:02:33_2020
박지나_말없이 without words_종이, 스테인리스 스틸_가변설치_2020

박지나 (Jina Park) ● 박지나의 영상 및 페이퍼 설치 작업 「말없이」,2020는 먼 과거 속 자유로운 동물인 비둘기의 발화를 상상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고심 끝에 동물에게 인공의 산물인 언어를 부여하는 대신 언어가 부재하는 상태에 관해 시를 쓰고, 그 문장들을 영상과 설치에 기록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 영상에 기록된 시의 화자는 바닥에 누워 말없이 다가오는 것들을 본다. 보고 있다. 다가오는 것들이란 말하자면 주체의 반대편에 선 타자로 동물, 인간, 신 등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들 그리고 그들이 속하는 시공간을 모두 포괄한다. 뒤이어 화자는 그들을 삼키며 그들과 한 몸이 된다. 인간으로서 동물을 의식적인 틀에 맞추어 왜곡하거나 소통 자체를 외면하는 방식이 아닌, 비언어적인 행위라는 공통의 매개를 통하여 본연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 시의 문장들은 페이퍼 설치와 벽면을 오가는 동안 비둘기-타자는 '나'라는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며 “맞대고, 포개어지고, 눌려 새겨지고, 서로가 서로의 아래”에서 접촉하며 보다 가까운 우리로 거듭난다.

조상_자폐증 비둘기_미디어, 한지 드로잉, 목재, 3d 프린터물, 스틸_00:03:55, 가변설치_2020
조상_자폐증 비둘기_미디어, 한지 드로잉, 목재, 3d 프린터물, 스틸_00:03:55, 가변설치_2020

조상 (Sang Cho) ● 조상의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자폐증 비둘기」,2020 또한 영상과 설치 오브제들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특히 공간의 측면에서 비교하면 과거 비둘기는 숲 혹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서식하였으나 현대의 도시가 탄생하면서 마땅한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처럼 비인간 개체들을 배려하지 않은 도시화 과정 속에서 혐오 동물이 된 비둘기를 조상은 자폐증 환자에 비유하였다. ● 인간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비둘기의 태도는 도시 속에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연친화적 시기에서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조상은 이에 목재와 비둘기 깃털과 같은 소재를 기반으로 한 오브제들과 비둘기에 관한 드로잉을 영상화함으로써 현대 도시 속에서 불구로 취급 받는 비둘기가 과거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상의 장을 구축하고자 한다.

유엔군총사령부, 유엔소식, 미디어-광고 전단지_종이_한박 296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전쟁 참전국 (미국) 기념우표_3.8×6.7cm_구입 7491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섹션2. 과도기 (The Period of Transition) - 4, 5전시실 ● 과도기는 비둘기가 사회적으로 평화의 상징으로 널리 활용되면서 동시에 방임되는 부정적 현상이 나타난 도시개발 초기의 시기를 말한다. 제 2차세계대전 이후 UN연합이 비둘기를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그들은 평화의 동물로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내의 국가 도시화가 시작되던 1960-80년대, 각종 공익 및 국제 행사에서 비둘기는 포스터에 자주 등장했고 행사 시 하늘에 날리는 퍼포먼스에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평화의 상징인 이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소비했으며 비둘기들은 이 과정에서 도시의 떠돌이로 전락하게 되었다.

노현탁_Korean Holidays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노현탁_문화가 있는 날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20

노현탁 (Hyuntark Roh) ● 노현탁 작가의 「Korean Holidays」,2017는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화려하게 하늘로 날려보냈던 비둘기들이 성화대에 내려앉아 희생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배경에는 새롭게 건축되기 시작한 서울의 아파트들도 보인다. 이 개발은 경제적인 풍요와 동시에 도시가 오늘날 다양한 타자를 양산하는 공간이 된 시초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부당한 차별 및 억압적 구조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 혹은 인간 타자를 함께 바라본다. 역사적으로도 사회에서 배제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아감벤 또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에서 과거 게르만 및 앵글로 색슨 사료에서 인간-타자인 호모 사케르가 늑대 인간으로 규정되었던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 ● 이를 현대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비둘기와 같은 취급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일까?

섹션3. 혐오기 (The Period of Hatefulness) - 5전시실 ● 혐오기는 200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비둘기가 완연한 혐오동물이 된 시기이며 특히 2000년대는 환경부가 법령으로 '집비둘기' 종을 유해 동물로 지정한 상징적인 해다. 앞선 과도기의 맥락을 따라 노현탁의 다음 회화를 연계해서 살펴본다. ● 「문화가 있는 날」,2020에서는 우선 지난 세기 피카소의 회화에서 평화롭던 비둘기가 잔디밭 위에 와해된 채 널려있다. 이어서 화면 중심에는 국내 제3세계 외국인 노동자들의 부당한 죽음에 관한 한 사건이,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신화를 경유하여 암시된다. 앞선 「Korean Holidays」의 배경이 된 80년대에 비해 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이끌고, 문화적 향유 수준 또한 높아진 시기로 인식된다. 그러나 사회의 밝은 면을 지탱하는 아래에는 환경 및 노동자 문제 등의 어두운 면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작가는 비판하고 있다.

이한나_시선_3채널 애니메이션_00:01:28_2020

이한나 (Hanna Lee) ● 다음 작업은 3채널 핸드메이드 드로잉으로 제작된 이한나의 「시선」,2020이다. 비둘기를 비롯한 현대 도심 속 조류는 하늘을 날아다님으로 인해 인간과 다른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가 생겨날수록 조류는 유리창에 종종 부딪히는 윈도우 킬(window kill)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위험에 놓인다. 이한나의 3채널 영상은 이처럼 비둘기의 시선으로 도시 곳곳을 오가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평소 익숙한 건물 및 구조물들을 위험 속에서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이를 통하여 도시란 인간 외의 생명체들에게 어떠한 곳인가를 고민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섹션4. 그리고, 미래 (And Future) - 5전시실 ●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인간과 비둘기의 관계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으로 전시를 마무리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까지 논의를 확장하고자 하는 이유는 올해 초부터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기존 세대는 인류세 논쟁과 더불어 지구의 환경적 위기가 피부로 서서히 체감되고는 있지만 눈에 띄는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서두에서 말했듯 자연은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자연 재해와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간 사회 내부의 소통의 단절 및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이나 생각해보면 이 위기의 해결책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조이스진_김~치~ II Discovery of the world141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20
조이스진_너머로 Discovery of the world140_캔버스에 유채_80.3×100cm

조이스 진 (Joyce Jinn) ● 조이스 진의 회화에는 주로 유년기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성인들과 달리 순수하고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주변 대상들을 바라보며 동물들과도 스스럼없이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이는 사회를 학습하기 이전의 시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한 일이다. ● 아이들은 동물 외에도 다양한 대상과 긍정적 관계를 실현한다. 호모 사케르의 논의에서 말했던 비둘기 인간으로 취급 받을 수 있는 인간-타자의 논의에는 최근의 노인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세대들에 의해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러한 노인들 또한 아이들의 시각으로는 더이상 소통의 벽을 넘을 수 없는 타자가 아니다. ● 생물학적 종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혹은 인간 대 동물로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는 가능성, 미래 세대가 공생을 실현할 수 있는 단서는 어쩌면 의식적 성숙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지녔던 유년기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데에 있을 지도 모른다. ■ 박유한

□ 관객 프로그램 / 「2030 포스트-비둘기그라피」 이우성(시인), 원성은(시인) □ 강연 / 「인간 너머의 도시와 비인간 존재」 강사 김준수(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 11월 8일 (일) 오후 4시

Vol.20201108i | 비둘기그라피-낭만적 상징에서 바이오포비아까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