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Above the Road

정희우展 / JEONGHEEWOO / 鄭希宇 / painting   2020_1111 ▶ 2020_1130 / 월요일 휴관

정희우_길위에서1_수묵채색_72×109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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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우 홈페이지_www.jeongheewo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13 Seoul13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79-3 Tel. +82.(0)10.5296.5382

사라졌을 때 보이는 것들 ● 정희우 작가의 그림이 오랜만에 분주하고 활기차다. 강남대로의 풍경을 담은 2011년의 『시간을 담은 지도』 이후 작가는 세밀한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도로의 기호나 거리의 간판 등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주목하여 탁본 작업으로 재현해왔다. 이번 전시 『길 위에서 Above the Road』는 다시 도시 풍경을 세밀하게 담기로 하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곳, 서울역을 주제로 택했다. ●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 b.1931)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건축물이나 거리들은 일종의 기념비로서 개별 도시의 고유한 성격을 이룬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광화문이나 경복궁, 국회의사당이나 63빌딩, 한강 위에 놓인 다리들이 그런 기념비적 건축물이 될 테다. 강남대로와 서울역 또한 서울의 다양한 기억을 간직한 기념비적 공간이다. ● 작가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강남대로를 그리는 동안 거리의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았는데, 이번 서울역 풍경에도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흐른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는 거리와 건축물의 세부적인 부분이나, 뒤쪽의 먼 풍경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서울역을 방문해 자료사진을 촬영했다. 『시간을 담은 지도』에서는 여러 폭의 캔버스가 이어지며 시간의 변화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한 화면 안에서 시간대가 뒤죽박죽 교차하며 일종의 콜라주를 이룬다. 일정한 시점에 포착한 풍경이 아니라, 서울역이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모든 시간과 기억을 담은 기념비적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희우_길위에서2_수묵채색_57×77cm_2020
정희우_먼사람들_수묵채색_37×50cm_2020

익숙하지만 낯선 ● 작가가 이렇게 도시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담는 것은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지금은 눈앞에 있어 아쉬운 것 없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우리가 가졌던 과거의 도시 공간들처럼 이것 역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과거의 도시의 풍경이나 건축물, 삶의 흔적을 자료를 통해 보면 매우 새롭게 느껴지듯이, 정희우 작가의 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풍경을 바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풍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드러내고 삶과 기억들을 꺼낸다. ● 작가는 『시간을 담은 지도』에서 풍경을 수직적으로 그리며 화면 전체를 납작하게 표현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역 풍경들을 매우 입체적인 구조로 그려냈다. 서울역 구역사나 플랫폼의 구조, 복잡한 도로의 형태가 수직이나 수평 구조로만 그려내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시의 제목 『길 위에서 Above the Road』는 그렇게 위에서 바라본 시선을 의미한다. 전시장에서는 이렇게 입체적인 도시 풍경과 도로 위의 커다란 화살표 탁본이 더해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내부에 쌓인 기억들을 발굴한다. 작품 내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바깥을 향한 화살표의 강한 에너지는, 사각형의 작품 안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뻗어나간다. 이것은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거대한 도시와도 닮았다. ● 한편, 이렇게 도시 고유의 성격을 형성할 만큼 오래된 공간에는 개개인의 기억이 담겨 있고, 이 개별적인 기억들은 사회 구성원 간의 집단적 의사소통, 법이나 정치, 종교, 경제와 같은 관계 활동이 더해지며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된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 b.1877)는 이것을 '집단기억'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도시를 이러한 집단기억의 공간으로 보았다. 구성원들은 이러한 물질적 공간에서 자신의 개별적인 기억을, 나아가 정체성을 안정화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통일되고, 평온에 대한 욕망을 채운다. 김성도, 『도시 인간학』 ,안그라픽스, 2014, pp.554-555 ● 정희우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서울역 앞 광장의 풍경을 기존에 도시 풍경을 재현하던 방식으로 가까이 들여다보며 세밀하게 재현한 뒤, 다음 장면에서 오히려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만든다. 바로 승객 없이 텅 빈 서울역의 플랫폼이다. 알박스의 견해처럼 도시공간을 개개인의 기억이 안정화를 이룬 집단기억의 공간으로 본다면, 그러한 공간이 사라질 때 평온은 깨진다. 늘 그 자리를 지켰던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전소하게 만든 2008년의 숭례문 방화 사건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시각적으로 확연히 달라진 인근의 풍경은 낯선 불안을 자아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것보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 것에서 무언가 결핍이 생길 때 더 비현실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에 새로운 레이어를 더한다. 서울역이라는 건축물을 제거하지는 않지만, 북적이는 역사 내부와 분주한 기차 플랫폼을 텅 비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익숙한 풍경을 단번에 낯설게 만든다. 우리가 서울역이라는 공간에 가졌던 기억과 인상들은 희미해지고, 대신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정희우_전속력으로 천천히_31×36.5cm_2020

화살표를 따라온 곳 ● 존재하던 것과 사라진 것 사이에는 화살표가 있다. 여느 때처럼 북적이는 서울역 광장과 텅 비어 버린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통과하는 거대한 직진 화살표다. 실제 도로 위의 화살표를 탁본으로 떠낸 이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다양한 도시 내부의 질서를 상징한다. 지금이야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기호지만, 사실 화살표는 18세기에 화살 모양을 단순화한 도형에서 시작된 것으로, 화살이라는 물건과 방향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된 유래 등 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화살표를 표시하는 위치, 크기와 모양 등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결정된 다층적이고 견고한 사회적 합의이며, 그렇기에 더욱 거대하고 강렬한 지시다. ● 우리가 속한 사회와 조직, 도시 공간도 이 화살표처럼 수많은 합의와 약속, 여러 사람의 흔적이 오랫동안 쌓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견고한 질서는 쉽게 바꾸기 어렵지만, 반대로 안주한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거대한 화살표를 따른다. 더불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철로 위의 기차는 도로 위의 자동차보다 더 정확한 지시를 따라야 하는 존재다. 길을 잘못 들어도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자동차와 달리, 기차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는 즉시 '탈선'이라는 사고가 발생한다. 기차가 아닌 사람의 일탈, 정상 궤도를 벗어난 삶에도 '탈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정해진 화살표를 따르며 사는지 반증한다. ●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호들의 지시는 개인에게 큰 피로감을 안겨 준다. 서울역 광장의 무료 급식소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노숙자들처럼, 삶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피로를 견디지 못해 화살표를 따르길 거부하고 궤도를 이탈한 자들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포기하지 않고 화살표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렇지만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목적지라고 알려진 곳에 멋진 신세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 텅 빈 플랫폼에서 바로 연상되는 코로나 19라는 재난도 어쩌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성을 따라서 계속해서 화살표를, 그 거대하고 견고한 지시를 따른다. 화살표 사이에 '천천히'라는 단어가 가끔 보이지만 그것조차도 지시다. 『전속력으로 천천히』와 같은 작품 제목처럼, 우리는 '천천히'라는 지시에 따르기 위해 또 전속력으로 노력한다. 개인의 휴식이나 여가, 타인에 대한 여유와 사회적 관용처럼 천천히 가는 것조차 거대한 지시의 흐름 속에 욱여넣고 속도를 낸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그렇게 경로 수정이나 탈선을 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더라도 빈 플랫폼에 도착할지 모른다. ● 사람이 붐비는 서울역 광장과 대조적으로 텅 빈 플랫폼은 철로와 기둥들이 교차하며 차갑고 기계적인 인상을 풍긴다. 마치 살과 근육을 덜어내고 피골이 상접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플랫폼을 메우던 사람들을 덜어내자 공간의 거친 뼈대가 드러난다. 마스크를 낀 채 서로 멀리 서 있는 사람들을 작게 그려낸 작품 『먼 사람들』은 서로에게 느끼는 거리를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우리가 알던 서울역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 풍경은 낯섦으로 주의를 환기하는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근미래에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정희우_화살표 방향으로_48×30cm_2020

희망의 틈 ● 이것을 디스토피아적 경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비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다. 도로와 기차역, 플랫폼이라는 공간은 모두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다.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재난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었지만, 무언가 종말하고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너무나 거대한 화살표와 수많은 도로의 기호들, 즉 사회적 지시와 질서가 너무도 견고해 작은 힘으로 쉽게 바꿀 수 없어서 그저 따라야만 했다면, 이렇게 텅 비어 버린 공간에서는 작은 것 하나를 더해도 이전과 다른 풍경이 형성되며 모든 것이 재편된다. ● 물론 무언가를 더하고 바꾸는 일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익숙한 도시 풍경과 그 안의 기호들을 재배열하여 낯설게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을 끌어내는 정희우 작가의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덜어낸 풍경 위에 작은 변화가 더해질 때, 풍경은 눈에 띄게 바뀌고 방향은 새로이 설정된다. 거대한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며 익숙함 속에 안주하기보다, 화살표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매 순간 낯선 시선으로 살피면서 마침내 향하는 목적지가 사라짐이 아닐 수 있도록 경계해야 한다. ● 이때 『길 위에서 Above the Road』라는 제목은 단지 위에서 길을 내려다보고 그린 시선의 의미를 넘어선다. 즉, 한 치 앞밖에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기호와 지시만 따라 헤매다가 마침내 시선을 옮겨 그 모든 지시와 기호의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본다는 의미가 된다. 사방을 옥죄던 것들을 벗어나 위에서 전체를 조망할 때 원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보인다. 텅 빈 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영원히 지속할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유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온 우리가 잠시 멈추고 더 나은 목적지로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희망일 테다. ■ 김지연

Vol.20201110d | 정희우展 / JEONGHEEWOO / 鄭希宇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