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

정해나展 / JUNGHAENA / 鄭해나 / painting   2020_1111 ▶ 2020_1129 / 월,화요일 휴관

정해나_완전한 밤_한지에 먹_전체 159.2×360cm(화면 90×355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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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나 홈페이지_haenaj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남상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일루와유 달보루 ILWY 서울 은평구 연서로50길 7-9 www.ilwy.kr www.instagram.com/ilwy.kr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옛적 지금의 연신내 일대에는 토끼골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폭포동에서 독바위를 지나 무악재까지 쭉 펼쳐진 토끼골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토끼들은 허구헌 날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 때문에 피해가 막심했고, 호랑이를 달래기 위해 '야들야들 어린 여자'를 바쳐야만 했단다. 어느 날 공물로 차출된 '아이'가 알 수 없는 조화로 두 동강 난 호랑이 가죽을 둘러메고 산을 내려오자, 하나였던 아이는 어느새 구미호로, 요물을 부리는 도사로, 선녀로 ... 여럿이 되어 있었다더라.

정해나_독을 닮은 바위_한지에 먹과 채색_91×60.5cm_2020
정해나_무악재의 밤_한지에 먹_91×60.5cm_2020
정해나_모란괴석도_삼베에 채색, 비단_120×45cm_2020

그간 침묵하거나 사라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오던 정해나는 이 전시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에서 말로써 전해 내려오는 여성 영웅의 이야기 『호생전』을 직접 쓰고 그린다. 『호생전』은 분명 우리가 흔히 접해온 구전 설화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의미의 '영웅'이라고 부르기에 주인공 아이는 너무나 평범하고, 설화 속 영웅을 기다리는 영광의 미래와 달리 산에서 내려온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현실이었다.

정해나_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展_일루와유 달보루_2020
정해나_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展_일루와유 달보루_2020
정해나_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展_일루와유 달보루_2020

정해나는 이 전시에서 마치 한 편의 페이크 다큐처럼, 환상과 현실의 요소들을 능숙하게 버무려 낸다. '토끼골'과 같은 상상 속 마을은 독바위나 연서시장과 같은 전시장 주변의 실제 지명과 어우러져 있고, 번듯하게 걸려있는 고지도는 상상과 실제의 경계를 흐린다. 또한 그가 택하고 있는 구전의 형식은 현실과 비현실뿐만 아니라, 까마득한 과거의 일과 현재를 중첩시키기도 한다. '번개 맞은 호랑이'라고 하면 호랑이 담배 태우는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수많은 말로써 덧칠되고 덧그려지는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는 끈질기게 반복되는 역사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범이 무서운 건 맞지만, 정말로 제일 무서운 것이 범일까? 이 서사에 능한 이야기꾼이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질문은 사실 오늘의 것이기도 하다. ■ 남상영

Vol.20201111g | 정해나展 / JUNGHAENA / 鄭해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