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길 NIGHT WAY

신혜선展 / SHINHYESUN / 申惠善 / photography   2020_1112 ▶ 2020_1126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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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 홈페이지_www.shinhyesu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반디트라소 GALLERY BANDITRAZOS 서울 종로구 백석동1가길 45(부암동 239-9번지) Tel. +82.(0)2.734.2312 www.banditrazos.com

신혜선의 "Night Way"는 어둠과 두려움, 불안과 공포, 실망과 좌절로 범벅이 된 꿈의 길을 카메라 플래시가 터트리는 인공의 빛으로 밝힌다. 어둠 속에서 침묵의 말들이 빛을 받아 말을 건넨다. 그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지시하지 않고 암시한다. 어떤 외로움, 내밀한 결핍, 은밀한 욕망이 얼굴을 가린 채 소리를 낸다. 침잠하면 볼 수 있고,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밤의 길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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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을 건너 밤을 걷는다. 인적 없는 곳을 찾아, 깊은 정적 속에서 섬광을 터트린다. 낮의 꿈들이 그림자 지어 드러났다. 목적을 가지고 꿀 수 없고, 연이어 꿀 수 없어 흩어지는 밤의 꿈은 되레 평안하다. 알 수 없는 목적에, 끊어내지 못하고 늘어지기만 하는 낮의 꿈이 오히려 악몽이 된다. 어둠과 두려움, 불안과 공포, 실망과 좌절로 범벅이 된 꿈의 길을 밤의 길로 바꿔버렸다. 그 깊은 어둠에서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빛'으로 낮의 꿈들과 대면한다. 신혜선의 "Night Way"는 밤길이 아니다. 침잠하면 볼 수 있고,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밤의 길이다. 하나의 밤은 낮보다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준다. ● 불안으로 불면하는 밤에 신혜선은 길을 나섰다. 멀지 않은 공간, 담으로 구획되어 미로와 같이 선회하는 동네 골목에서 시작해, 끝 모르게 트여 있는 해안가 끝에 섰다. "Night Way"는 그 과정을 추적하는 밤의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난, 아니 만들어낸 낮의 꿈들은 불안으로 요동치는 내면이자,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빛'으로 세상을 대면한 밤의 조각들이다. 그 조각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무엇을 완성하려는 것인지 기획도 없고 계획도 없었다. 한 조각에서 다음 조각을 잇고, 이어서 "Night Way"를 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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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신혜선은 작품 "Night"를 촬영했다. 마음이 갈 곳을 몰라 목적지 없이 무작정 검은 밤을 향해 걸었고, 그곳은 두려움마저 엄습하는 낯설고 막다른 곳이었다. 그곳을 비추는 것은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외진 가로등이었고, 신혜선은 그 텅 빈 빛에 의지해 삭막한 풍경을 흑백사진으로 남겼다. 마음 끝 폐허처럼 남겨진 풍경은 초점을 잃었고, 잘려 나간 나무와 생활에서 버려진 사물들이 사진을 채웠다. "Night Way"는 20여 년 전 "Night"의 공간에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달빛과 별빛마저 드리우지 않는 숲속, 더 깊은 심연이다. 그러나 이곳엔 작가 스스로 비추는 빛이 발광한다. 신혜선 스스로 빛을 발산한다. ● "Night Way"는 자연의 빛이 아닌 카메라 플래시가 터트리는 인공의 빛으로 밝혔다. 같은 인공조명이라 하더라도 가로등이나 자동차의 불빛 하나 없다. 마치 깊고 어두운 길을 손에 작은 촛불 하나 들고 더듬어 가듯, 낮의 의식 너머 밤의 무의식을 더듬거린다. 어둠 속에서 침묵의 말들이 빛을 받아 말을 건넨다. 그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지시하지 않고 암시한다. 어떤 외로움, 내밀한 결핍, 은밀한 욕망이 얼굴을 가린 채 소리를 낸다. 그 비밀스러운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은 그곳이 소리마저 잠재운 밤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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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Way"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은 우연을 가장한, 스냅숏을 위장한 연출 장면이다. 낮에 장소를 물색하고, 장소로부터 떠올린 인물을 밤에 초대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자연의 색을 배경으로 빨갛고, 노랗고, 파란 때로는 너무 하얘서 섬광에 빛날 수 있는 옷을 인물에게 입힌다. 또 표출되길 바라는 분위기에 따라 옷을 거꾸로 입히기도 하고, 신고 있던 양말을 벗겨 자연스러움을 가장하기도 했다. 촬영 전 말아 올린 헤어 롤러를 그대로 남겨두어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을 스냅숏의 우연적인 요소로 보이게끔 만들기도 했다. ●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가리게 해 숨기거나 쓰러트리고 돌려세워 익명의 불안한, 익명의 불온한 장면을 연출했다. 오직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흐드러진 나뭇가지와 시들어 마른 풀, 그리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개와 고양이다. 자연의 것들은 침묵 속에서도 반짝이고, 인간의 것들은 반짝여도 물러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카메라를 응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카메라를 외면한다. 밤의 길은 이성으로부터 돌아서서, 잠재된 욕망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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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얼굴은 장면 속 인물의 포즈와 제스처를 주목하게 한다. 프레임에서 잘려 나가거나 나뭇가지에 가려지지 않은 때, 인물은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감싸 움츠리기도 하는 동시에 과감하게 염탐하고 보란 듯이 손짓한다. 정면을 외면한 시선의 손은 풀어져 있고, 정면을 응시한 시선의 손은 생명체를 움켜 안고 있다. 명쾌하게 표출하지도, 단호하게 잘라내지도 못하는 감정과 욕망이 밤의 길 위에 혼재한다. 그러나 신혜선은 어둠 속으로 숨지 않고, 어둠으로 그것을 덮지도 않고, 빛을 비추어 세상 밖으로 꺼내 대면했다. ● 전시장에서 "Night Way"는 작품을 진행해간 시간의 순으로 펼쳐진다. 막다른 골목을 비추던 카메라 플래시의 빛은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바다로 빠져나온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가며, 침묵의 공간에서 끝없이 파도가 부서져 생명의 소리가 넘치는 공간으로 나선다. 그리고 바다, 그 생명의 모태에 작은 한 점 불빛이 밝게 빛난다. 불안과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하고, 대면해 알고 나면 포용하고 흘려보낼 수 있다. "Night Way"가 '밤길'이 아닌 '밤의 길'인 것은 어둠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하며 밝음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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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 20여 년이 넘는 동안 신혜선이 펼쳐온 작품세계와도 흡사하다. 아는 사람들로부터, 아는 공간으로부터 얻은 밝은 에너지를 「My models, my landscape」(2005)에서 전했고, 나는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르는 다문화 가족의 다르지 않은 행복을 「Family photo」(2009)에서 보여 주었다. 또 「plastic tears」(2016)에서는 화려한 가짜 꽃을 들고 진짜 꽃과 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가서 진짜로 살아보고자 했고, 「Heyday」(2020)에서는 인생의 후반에서 늙어간다는 것에 노년 그 스스로가 당신들에게 눈부신 찬사를 보내게 했다. 가짜로부터 진짜를, 죽어가는 생명으로부터 살아가는 생기를, 그리고 어둠 속에서 밝음을 찾아왔던 신혜선이 이제 스스로 "Night Way"를 통과해 나아간다. ● "Night Way"에서 신혜선은 어둠을 일깨우는 빛으로, 밤의 눈을 눈으로 삼아 밤의 길을 지난다. 한낮의 눈부신 빛에 그늘진 낮의 꿈들을 깨우고, 하나의 밤에서 나뉜 여러 갈래의 길을 꼿꼿이 걸어간다. 낮의 꿈이야말로 꿈이라는 것을 알면 깨어나는 방법은 쉽다. 눈을 뜬다! 다만 그것이다. "Night Way"는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의 꿈들에 작가가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깊은 어둠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리는 순간, 신혜선은 이미 눈을 떴다. 낮의 꿈들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고 다시 꿈꾸고, 아득한 그 꿈들에서 다시 길을 잃을 수 있지만, 길을 찾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Night Way"는 바로 그 방법으로서 길이다. 그래서 밤길이 아닌 밤의 길이다. ■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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