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샘이 솟다

2020 산지천갤러리 기획展   2020_1127 ▶ 2021_0228 / 월,공휴일 휴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채널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고순철_민병권_박능생_배효정_오민수 유창훈_이수목_이창희_지희장_최창훈

주최,주관 / 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산지천갤러리

코로나19 확산방지 산지천갤러리 입장 시, 마스크 착용은 의무이며 발열증세가 있는 경우 입장이 불가합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05:00pm 입장마감 / 월,공휴일 휴관 코로나19 확산방지 조치에 따라 전시실 관람형태는 '온라인 사전예약제'로 운영

산지천갤러리 SANJICHEON GALLERY 제주도 제주시 중앙로3길 36 2~3층 기획전시실 Tel. +82.(0)64.725.1208

산지천, 생의 가짓수만큼 흐르는 샘물의 이야기 ● 제주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하나로 '사봉낙조(沙峰落照)'라는 이름을 꿰찰 정도로 유명한 사라봉 오름의 일몰은 바로 인근 산지천 주변의 속세, 즉 대로변과 골목, 지붕과 처마를 따라가는 농담(濃淡) 정도는 밋밋하게 만들 정도로 붉고 깊다. 게다가, 설사 10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타워가 빼곡히 산지천에 세워져 있다 한들, 한라산 백록담의 웅장함에는 이르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기획전시 『섬, 샘이 솟다展』은 이러한 웅장함과 일몰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쉬이 옮겨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길을 택하는 대신 '산지천'과 원도심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진하게 배어든 제주의 평범한 풍광을 주제로 삼는 길로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도·내외 10인의 작가들을 길잡이 겸 이야기꾼 삼아 나서는 길이기에, 30명 정원의 전세 관광버스에도 한 명의 관광안내사만 오르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정도가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다만, 관광안내사의 인기라는 것이 본디 오십보백보의 정해진 레퍼토리를 그날그날의 분위기에 잘 섞어내어 어찌 풀어내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또 다르게 볼일이다. 게다가 10인의 작가들이 풀어내고 그려내는 이야기들이 관광안내사의 해설서 교본과는 달리 모두 다른 오리지널 이라면 그 재미는 어느새 두 배, 세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오리지널 스토리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산지천'과 원도심을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족적이 다져온 제주의 평범한 풍광에 관한 이야기들인 만큼, 이들 10인의 작가들의 넓은 작업 스타일들, 평면에서 설치까지의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 사이를 헤매지 않도록 도울 나침반으로 삼을 만한 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고순철_풍화 風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82cm_2019
민병권_우후 산방산_한지에 수묵_89×168cm_2020
박능생_산지천을 거닐다_화선지에 수묵_37×49cm_2020
배효정_기억의 공간의 기억_혼합재료_70×300×200cm, 가변설치_2020

여기서 이번 전시의 제목 『섬, 샘이 솟다展』을 빌려와 보자. 예로부터, 제주는 물이 귀해 물을 찾아 수십 리를 걸어야 하는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을 가득 채운 물 허벅을 물 구덕에 넣어 등에 이고 돌아오는 길 또한 예삿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즉, 샘이 솟는다는 것은 곧 샘물에 의탁하고 있는 제주도민들의 삶 자체가 피어나고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샘물의 역사는 곧 제주도민들의 삶의 기록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샘의 본질은 앞에서 예로 든 한라산 백록담의 웅장함이나, 사라봉에서 바라본 일몰의 처연한 아름다움과는 그 궤를 크게 달리한다. 백록담의 웅장함은 하나다. 인간들의 속세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웅장하며, 그 웅장함으로의 험난한 여정은 어떤 이견도 없는 '하나'의 웅장함만을 받아들일 것을 순례객들에게 요구한다. 일몰의 처연한 아름다움도 인간사 희로애락의 잡스러움으로부터 한껏 떨어져 있기에 오히려 하나의 '처연함'만을 매일의 환송객들에게 허락한다.

오민수_산수유람ㅡ섬속의섬_LED TV_00:01:23_2020
유창훈_한라산과 개오리오름_화선지에 수묵담채_110×300cm_2019
이수목_제주_바라보다_한지탈색에 채색, 혼합재료, LEDON_97×162cm×4_2020

반면, 샘으로부터 솟아난 샘물은 개울이 되고 다른 개울이나 지하수들과 합쳐져 바다로 향할 때까지 수많은 변신을 허락한다. 오직 샘물로 출발하여 바다에서 끝난다는 출발과 끝의 일정표 외에는 어떤 행선지 변경도 마다치 않는 샘물의 여행은 산지천에서도 다르지 않으리라. 흐려지고 탁해지고, 복개천으로 되어 어둠 속에 갇혀 버리더라도 그 바뀌어도 계속 바다로 흘러간다는 원형의 본질은 이어진다. 작가들의 작품들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하나일 수 없다는,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본질적 깨달음과 그 깨달음이 권하는 창조적 충동에 붓과 손을 맡겨 왔을 뿐이다. 이름 모를 샘물에서 출발한 물이 중간에 말라비틀어지고, 식물이나 야생동물은 물론 가축과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다 한들, 결국 언젠가는 땀과 오줌, 눈물이 되어 다시금 산지천을 찾아 흐르고 종국에는 제주 탑동 앞바다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사라봉 공원의 사진 명소나 한라봉 백록담의 전망대에 서서 모두 똑같은 눈높이와 시선으로 바라본 웅장함과 처연함에는 다름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고, 그것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도 더 이상 여유가 없다.

이창희_돌담-숲_장지에 수묵_127×564cm_2019
지희장_제주도의 인상_아크릴판에 패브릭 콜라주_130×226cm_2020
최창훈_너를 만나 바뀌고 있는 생각의 모습_혼합재료_300×300×250cm_2020

반면 산지천을 따라 흐르는 물, 저 멀리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있을 샘물이 이어온 흐름의 이야기의 본질은 바뀜과 다름을 말한다. 그 흐름이 하나가 아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만은 우리 모두가 아직 나누어 갖고 있다. 우리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기에, 또한 발을 담그고 만지고 때로는 더럽힐 수 있기에 산지천 물의 흐름은 갈라지고 나뉘어 바로 우리들의 숫자만큼, 이 산지천 주변의 생의 가짓수만큼 나뉘어서 흘러왔으며, 흘러갈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10명의 작가 – 고순철, 민병권, 박능생, 배효정, 오민수, 유창훈, 이수목, 이창희, 지희장, 최창훈 – 들이 그 생의 가짓수 모두를 일일이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화폭, 그리고 그들의 작업의 세계는 그 가짓수를 각자의 눈과 손으로 어림짐작하여 다음의 답을 낼 만큼은 넓고 단단하고 억세고, 그리고 따스하다. ● 산지천, 그리고 제주를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 찾아오고 떠나가는 이들의 삶의 가짓수가 하나가 아니라는 답.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은 계속 그리고 이야기할 것임을 믿는 것으로 이번 전시를 찾는 관객들의 여정을 배웅하고자 한다. ■ 정필주

Vol.20201128e | 섬, 샘이 솟다-2020 산지천갤러리 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