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빛, 어른거림의 바다 - Moire

정아사란展 / JEONGASARAN / 鄭아사란 / mixed media.sculpture   2020_1223 ▶ 2021_0131

정아사란_moire composition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802i | 정아사란展으로 갑니다.

정아사란 홈페이지_www.asaranjeo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성동구

웹디자인&개발 / bpm122

관람시간 / 상시관람가능

온라인 전시 moire.zone

애도와 동시에 인큐베이터로. ● 디지털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기억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정아사란의 작업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피처 폰(Feature Phone)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바이트(byte) 수를 따져가며 문자메시지로 전하던 마음과 1,000만 미만의 화소로 남기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메신저에 접속한 시간 안에서만 오가던 대화, 미니홈피에 남겨둔 그때의 안부들과 일기, 사진들은 어떤가. 이런 경험을 두고 정아사란은 '추억'과 '삶'이라고 일컫는 데 공감한다. 그때 그 소통의 흔적들은 어디에 남았을까. 이에 대한 회의감으로 정아사란은 세 가지 제스처를 취한다. 먼저, 물을 채운 수조에 펼쳐진 피처 폰이나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굳히거나(Lost EV-09~12, 2017, 「11111100010의 유적지」, 2018), 높낮이가 다른 수십 개의 철골 기둥 꼭대기에 USB를 진열한 기념비(Memorial)를 세우는 등(R2018.v1.0.1~35, 2018)의 방식으로 안타까움을 표하며 지나간 디바이스에 대한 장례 의식(葬儀)을 치러주었다. 그렇다면 정아사란은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와 커뮤니케이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인가?

정아사란_hand for moire1_투명레진_15×12×12cm_2020
정아사란_hand for moire2_투명레진_15×12×12cm_2020
정아사란_hand for moire3_투명레진_10×12×8cm_2020

지난 미디어를 기리는 것뿐 아니라 오늘날 일상을 지배하는 뉴 미디어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디바이스 또한 붙잡아 본뜨는 작업을 지속하므로, 그를 관찰자 또는 채집가로도 볼 수 있겠다. 가령 비물질의 디지털 데이터마저 포착해 유물(遺物)화 하려는 그의 습성은 다음과 같이 지속된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출력한 트윗(tweet)을 수조 안에 반복해서 추락, 잠수하게 두기(Moment, Moment, Moment, 2017), 폭포처럼 업데이트되는 무수한 트윗의 흐름을 시각화하기(... ... ..., 2017), 만료된 웹 호스팅이나 서로 다른 플랫폼 사이에 애매하게 떠 있는 데이터의 흔적을 기둥 형태로 구현하기(Interlace, 2020), 아크릴판으로 스마트기기의 액정을 재현하고 그 안에 두터운 물감 덩어리와 PVC 필름을 삽입하여 액정 너머 주고받는 데이터를 촉각화하기(Blinking, 2020, 「액정1」, 2019). 정아사란은 "무의미하게 흐르는 정보를 습관적으로 흘려보내는 식으로 수용한다. (...)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덧없이 휩쓸리며 의미 없이 유실되어 가는 것 같다" 고 고백하면서도, 어떻게든 이 현상을 물성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흐르는 대로 두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끊임없이 지각하고 감각하여 주위를 돌아보려는 태도로 애쓰는 모습이다. 따라서 그가 이러한 고백을 두고 작가노트에서 "녹은 자아"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나는 역설적으로 '얼리는 자아'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오늘날의 데이터가 생성과 동시에 유통되고 소멸하는 궤적을 좇아 '전시'를 통해 맥락화하길 지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현대인의 상실감을 짚어보려는 고고학자의 태도로 그의 앞에 무한히 주어지는 비물질 정보를 응고 시켜 깎고, 적시고, 주무르는 조각적 몸짓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조소를 전공한 작가는 이렇게 장의(匠意), 즉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는 뜨겁던 자아가 무한히 흐르는 데이터에 둘러싸여 녹는 것을 감각화 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녹은 만큼의 사유가 냉각되어 응고가 진행된 것, 결국 '0'으로 수렴해 차갑게 얼어붙은 작가의 의식,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도움받아 "무질서"한 현실을 감각해보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정아사란_device for moire_투명레진, 수조_60×20×20cm_2020
정아사란_device for moire_투명레진, 수조_60×20×20cm_2020_부분

언급한 세 가지 제스처를 따라 『고정된 빛, 어른거림의 바다 - Moire』를 살피자. 손은 우리가 밥 먹듯이 취하는, 무언가를 쥐고 누르는 그 몸짓으로 얼어붙었다. 물컵으로 보이는 오브제는 스마트기기의 액정을 떠내 액체에 보존한 실린더와 닮았다. 껍데기만 남은 디바이스도 보인다. 이번에도 물을 얼리고, 물에 담갔다. 정아사란은 틀 안에 갇혀 있을 때만 가시성을 띄는 물의 성질에 주목하여 지금도 여전히 흘러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납작하고 매끈한 평면을 통해 경험하는 것에 대한 복합적인 감각을 현실 세계로 끌어와 형태와 온도를 부여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투명함이 가시화하는 것은 데이터의 유동성이다. 이를테면 디지털 자본주의 논리에 알맞게 더 가진 자가 더 많은 저장공간과 더 안정적인 서버를 얻게 되는 가상의 세계에서, 데이터는 어디에 머물렀다가 결국 어디에 종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려는 것이 투명함이다. 얼음처럼 보이는 크리스탈 조각은 뜨거운 분만과 동시에 빠르게 식어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상징하기도, 그것을 응고시킨 디바이스의 냉정한 성질 - 딱딱하고 매끈한 액정, 지나친 커뮤니케이션으로 잠식당해버린 정보들의 플랫폼(Cool Media) - 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금의 정아사란에게 흐르는 시간은 이렇게 물과 투명함으로 갈무리되었다. 앞서 말했듯 유동적인 것을 관찰하고 붙잡아두는 데 액체의 성질을 차용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편으로 쉼 없이 물러나는 중이며 어딘지 모를 무덤 같은 곳에 종착하는 비물질의 흔적을 드러내기에는 얼음 같은 투명함이 적절하다. '투명한' '액체'는 당장의 촉각적인 감각을 끄집어내기 좋은 수단이기에 정아사란이 자주 차용해온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과연 촉각이 액정 이면의 세계에 얽힌 복잡한 것을 드러내는 데 가장 가까운 감각인지 탐구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렇게 정아사란은 장의사의 태도로 지난 것을 애도하며, 새로 마주하는 것을 인큐베이터에 붙잡아 관찰하고 감각을 살피는 식으로 순환하는 작업을 지속한다. ■ 김유빈

Vol.20201223e | 정아사란展 / JEONGASARAN / 鄭아사란 / mixed media.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