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

김태환_류재형_조익준展   2021_0119 ▶ 2021_0130 / 일,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관,주최 / 국립인천대학교 조형연구소 기획 / 정다운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인 ART SPACE IN 인천시 연수구 아카데미로 119(송도동 12-1번지)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교수회관(2호관) 1층 Tel. +82.(0)32.835.8560 finearts.inu.ac.kr

알 수 없음, 그러나 당신은 알 수 있음. ● 눈앞에 있는 무엇을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냥 보는 행위와는 분명 다르다. 어떤 대상을 보는 주체의 시각이 스몄다는 것은 여기서 생각보다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더 섬세하게 인지하기 위해서 대상을 향한 시선을 의식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제 그 시선이 의식에 잘 도달하도록 그것으로부터 잠시 거리 두는 것을 제안한다. ● 전시는 김태환, 류재형, 조익준 작가가 인간 외부 세계의 모든 산물 앞에 괄호를 열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없던 현상들은 세 작가의 괄호가 닫히며 더 뚜렷해진다.

알 수 없음展_아트스페이스 인_2021
알 수 없음展_아트스페이스 인_2021
알 수 없음展_아트스페이스 인_2021

무엇이 무엇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정의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리고 정의된 무언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시 무엇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일까. 작가 김태환은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정의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괄호를 치고 관조적 시선으로 작업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결국 주관적 판단에 귀결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객관적 판단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말을 빌려 "한 뼘을 재는 기준은 다르지만, 그 안에 서로가 약속한 한 뼘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내면의 모양이 달라 규칙이 없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 또 다른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 작가는 이것을 물 수평기의 원리로 표현한다. 물은 인간의 내면이고, 수평기는 인간이 마주한 외부 세계, 즉 사회 구조다. 일단, 물은 흐른다. 이 흐르는 성질은 어딘가 담기면서 그 형태로 존속한다. 이것이 다른 곳에 담겼을 때 이전과 다른 모양일지라도 결국 물이라는 성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 수평기 안에 담긴 물의 수면은 수평을 이루며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 최소 2개의 끝이 있어야 하는 관은 관계 속의 인간을 의미하고, 그 안에서 이루는 균형은 인간이 사는 모양을 드러내는 것이다. ● 사진작품에서 확장된 「SUBJECT JUDGEMENT」 설치작품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극대화한다. 감상자는 작품을 가까이 여러 측면에서 관찰하며 또 다른 주관적 판단을 생성한다. 감상자가 작품 사이를 흘러 지나가는 행위가 또 다른 '한 뼘'을 만드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김태환_SUBJECTIVE JUDGMENT Series_피그먼트 프린트, 파이프, 유색 물_가변설치_2021
김태환_SUBJECTIVE JUDGMENT Series_피그먼트 프린트, 파이프, 유색 물_가변설치_2021

물리학적이고 자연적 시간인 객관적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 안에서 각자의 내적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시간 안에서 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작가 류재형은 인간이 느끼는 내면의 감정들은 사회적 시간으로부터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반복되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을 먼저 괄호로 묶는다. 사실 그에게 시간은 '오늘'이나 '내일'로 명명되어 무한한 연속성 안에서 겨우 하나의 픽셀일 뿐인 것이다. ● 이러한 시간에 대한 판단을 삼키면 내면의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작가는 드로잉 작업에서 떠오른 감정들 중 불안을 주로 다룬다. 사회가 주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직접 대면함으로써 의식의 지향성에 더 힘을 싣는 것이다. ● 각기 다른 불안의 파편들과 시간의 순환을 생각할 수 있는 동일한 장면들은 작은 화면으로 있다가 전시장에서 한데 합쳐진다. 그리고 공백과 함께 액자 틀로 구획된, 인간과 사물을 넘나드는 그의 산발적인 불안들은 감상자가 시간을 인식하는 행위를 이전과 다르게 하도록 이끈다. 그는 감상자에게 익숙해져있던 시간에 대해 판단하기를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 여러 모양, 그리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불안한 공백」들은 감상자의 시선이 외부 대상이 아닌, 의식하는 내부 세계로 향하도록 한다. 특히 작가는 불안을 마주하는 의식의 체험이 객관적 시간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소리를 내고 있으며, 감상자에게 각자의 오늘과 내일을 살도록 메시지를 건넨다.

류재형_불안한 공백 Series_종이에 펜_각 30×21cm_2019
류재형_불안한 공백 Series_종이에 펜_각 30×21cm_2019

작가 조익준은 존재자체에 대한 당장의 판단을 괄호 안에 넣는다. 그는 어떤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지어지기 위해서는 존재 안에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존재는 사물뿐만 아니라 인식하는 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포함한다. 그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에 대입해서 눈앞의 실재를 바라본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은 말 그대로 우주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모형일 뿐이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거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서 가상현실을 실제로 오해한다. ● 작가는 전시장 한 편에 감상자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시뮬레이션 우주'를 구현한다.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 빛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 행성 모양의 어떠한 대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보이저호(Voyager)에서 보내온 행성의 사진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동일한 모양으로 제작한 것이다. 일정 시간 이상 「unidentified-23」을 바라보다보면 그것이 진짜 행성인지 아닌지 착각하는 묘한 상태가 된다. ● 이러한 현상을 작가는 인간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찾는다. 동시에 그는 어쩌면 누군가의 눈앞에 주어진 것이, 그 어떤 것이라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인간은 서로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새롭게 의미를 만들고 부여하고, 또 공유하며 눈앞의 것이 실존한다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렇게 관측된 것은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명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유의미하다.

조익준_unidentified-23_피그먼트 프린트, 조명_가변설치_2021
조익준_unidentified-23_피그먼트 프린트, 조명_가변설치_2021

괄호는 보통 계산식에서는 먼저 계산할 부분을 표시하는, 극본에서는 대사를 더 그럴 듯하게 하기 위한 인물의 심리 등을 지시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그래서 괄호 안에 있는 내용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우리는 무엇보다 앞서서 그 내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세 작가가 「알 수 없음」 전시에서 어떤 대상에 괄호를 그린 것도 판단 중지를 하기 전에 그것을 살펴달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그것으로 온전히 관측할 수 있는 옳은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상자*를 열지 않아도 우리의 방식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실험에서 '상자' 개념 발췌) ■ 정다운

Vol.20210109c | 알 수 없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