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Whistle

정유미展 / CHUNGYUMI / 鄭唯美 / drawing.painting   2021_0113 ▶ 2021_0202 / 월요일 휴관

정유미_Soft whistle 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5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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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홈페이지_www.yumich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상상풍경(想像 風景)', 사유 이미지의 구현 _정유미의 Soft Whistle풍경, 자연과의 교감으로 형성된 서사(敍事) ● 자연은 인류의 삶이 시작된 이래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온 대상이자 보편의 삶을 가능케 한 환경이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혹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 배경과 생활 반경이 천차만별인 개개인이 체험하는 자연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자연을 관조하는 방법, 바라보는 시각, 표현 방식이 변화하는 이유다. 동양 문화권에서 자연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아우르는 인문 교양의 총체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가 언제나 마주하는 하늘과 땅, 산과 물을 보이지 않은 순환과 질서가 내재된 삼라만상으로 본 것이다. 노자의 관점에서는 천연(天然), 천진(天眞)한 모습으로 도(道)를 드러낸 창조물이었고, 성리학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본성을 찾아 즐거움을 맛보며 군자의 도리를 수행하는 인격수양의 대상이었다. ●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 자연은 물질적 세계이자 주관과 대립되는 객관적 영역으로, 혹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리적, 지질적 환경으로 인식되었다.1) 자연이 창작 범주에 영입되면서 풍경(風景, landscape)이라는 용어가 생성되었다.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풍경은 그 정의가 간단하면서도 복합적이다. 단순하게는 산과 계곡, 나무와 강이라 명명되는 자연 그자체로 풀이되지만, 인간의 일상이 담긴 도시의 모든 공간들, 나아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바람, 빛, 숨결까지 모두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늘과 땅 아래에 펼쳐진 모든 존재가 풍경인 셈이다. ● 17세기 회화에서 풍경은 대기의 움직임과 시간의 변화를 담아낸, 보이는 자연 경관의 객관적인 재현(representation)이었다. 그러나 동시대 창작에서 풍경은 그것을 마주하는 주체, 즉 예술가 개인의 시선, 감성, 경험이 조합된 표출(expression)이다. 보고 느낀 대로 형성되는 것이 풍경이라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예술화된 풍경은 한 인간이 선별적으로 구성한 기억의 세계이자, 경험에서 파생된 또 다른 자아나 다름없다.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수집, 편성된 구성물이며, 감성적, 지적 인식의 집적체인 것이다.2)

정유미_Soft whistle 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90cm_2020
정유미_Soft Whistle展_아트비트 갤러리_2021
정유미_The breathing ston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75cm_2020
정유미_Silent monologu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60cm_2020
정유미_Soft Whistle展_아트비트 갤러리_2021

정유미의 '상상 풍경(想像 風景)' ● 정유미의 회화에서도 풍경은 핵심 소재다. 정유미의 풍경은 축적된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기억에, 상상력이 더해져 형성된 '추상적' 풍경이다. 작가는 이를 '상상풍경(想像風景)'이라 명명하였다. 단순히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을 수동적으로 전사한 것이 아닌, 주체적 시점과 관점을 능동적으로 시각화한 자연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유미가 정의한 상상풍경이다. ● 정유미가 상상풍경을 그리게 된 가장 중요한 동인은 유럽에서의 창작 활동이다. 작가는 런던(2012~2014)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아이슬란드(2015)와 노르웨이(2016)에서 각각 3개월과 2개월씩 진행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낯선 지역에서의 체류는 낯선 자아의 발견을 초래하였다. 언어,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 완전한 타인으로 홀로서기를 체험하는 순간, 나의 정체성, 그동안 쌓아온 고정관념이 전복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16년 5월부터 2개월 동안 노르웨이 서쪽 지역에 위치한 올빅(Ålvik)이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 이전에 알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하였다. 베르겐이라는 도시에서 끝없이 연결된 협곡을 거쳐 겨우 도착한 올빅은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키드'의 상상을 초월한 대자연 그 자체였다. 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대상과 마주하며 모든 계획을 내려놓았다는 작가는 노르웨이의 자연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그저 온 몸으로 체험하고자 '걷기'와 '보기'를 반복하였다. ● 정유미의 사유 전환을 들으면 『장자』의 여러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자는 어느 날 여량이라는 곳을 여행하다가 물길이 깊고 급류가 세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폭포에서 한 사나이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물에서 나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노래를 부르며 쉬고 있는 사나이에게 자유로이 헤엄치는 특별한 방법을 묻는다. 그러나 사나이는 “단지 본성에 따라 물의 흐름에 맡기고 내 힘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온 몸에 힘을 뺀 채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면,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동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또한 『장자』에서는 손발과 몸을 잊고, 귀나 눈의 작용을 물리치며, 지식을 버리고, 사물과 하나가 된 상태를 '좌망(坐忘)'이라고 알려준다. 변화 유전하는 도와 하나가 되어 한군데 얽매이는 일이 없고, 자유로우며, 걸림이 없는 경지가 바로 좌망이다. 좌망을 체험하려면 마음의 활동을 멈추고 일체의 잡념을 떨쳐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심재(心齋)의 단계다.3) ● 정유미도 몸과 마음에 짊어진 인위적인 힘을 빼버리니 속도와 숫자로 평가받는 도시의 각박하고 상투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로지 '나'와 '자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감각적 판단의 경로인 눈과 귀, 지각의 주체인 마음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집(心齋)을 지으니, 오롯이 나의 내면을 읽게 되었고, 그 고요함의 상태에서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물화(物化)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순환을 거쳐 창출된 이미지가 바로 상상풍경이다. 걷기와 보기를 반복하여 획득한 대자연에서 이런 저런 에피소드와 만났고, 이 여정에서 획득된 감각적 경험이 또 다른 감정을 파생하였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를 '일화기억(逸話記憶, episodic memory)'이라고 한다. 결국 일화기억이 켜켜이 쌓여 추상적 경관인 '상상 풍경'이 구축된 것이다.

정유미_Little whispers_장지에 혼합채색_194×260cm_2020
정유미_Soft Whistle展_아트비트 갤러리_2021
정유미_White whistle 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19
정유미_Bree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9

심상(心像), 사유의 이미지를 표출하다. ● 상상풍경을 제작하기 전, 정유미는 주변 사람의 반신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화 작가였다. 평소 혼자 있을 때는 감정을 드러내지만, 막상 누군가와 만나거나 사진기 앞에서는 인위적인 웃음으로 포장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초상화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인의 이중적 표정을 그린 인물화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낯선 사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작가의 성향도 반영되었다.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서울에 위치한 아파트 1층에서 줄곧 살아왔다. 아파트 경비 초소와 정면으로 마주한 거실을 가리기 위해 창문에는 늘 블라인드, 커튼, 시트지가 드리워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나의 집을 엿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 결과 정유미는 타인에 대한 이중적 심리, 즉 관심(關心, interest)'과 '경계심(警戒心, wariness)'에 몰두하였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막(幕, screen)'을 생각하게 되었다. ● '막(幕, screen)'이 지닌 다층적 의미는 정유미의 회화에서 세필로 묘사한 하늘하늘한 레이스 커튼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파티션으로, 전시장 천장에 매달아 아래로 드리운 버티컬 블라인드로 시각화되었다. 특히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제작된 「The wall in the mind」 시리즈에서는 마시멜로나 스티로폼 형태의 흰색 사각 도형을 연결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화이트 큐브는 독립된 각각의 유닛이 얼핏 한 개의 덩어리로 보이고, 매우 견고하고 탄탄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녹아내릴 듯 연약하다. 면과 선의 경계, 직선과 곡선의 경계, 구상과 추상의 경계,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여전히 남아있는, '마음의 벽'이 드러난 시각물인 셈이다. ● 그러나 노르웨이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후에 제작된 「Whispering Mind」(2016~2018) 시리즈에서 관심과 경계심에 위치한 막을 걷어 올릴 수 있었다. 그 막 너머로 시선을 확장하니 내면에서 들려오는 미묘한 속삭임이 들려 왔다. 삼라만상을 보고, 듣고, 밟으며 작가의 오감이 반응한 것이다. 사각형 마시멜로의 화이트 큐브는 사라지고, 부드럽고 따스한 뭉게구름과 새 깃털 형상이 연이어 생성되었다. 세상에서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버린 자아가 자연 풍경 앞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 것이다. 바로 '안중지산(眼中之山)'이 '심중지산(心中之山)'으로의 전환이다. 이렇듯 「Whispering Mind」 시리즈에서는 자연의 감각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다. 산, 나무, 바다, 폭포를 눈에 보이는 대로 형사(形似)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전달하는 속삭임을 차경(借景)하여, 아름답고 신비로운 '심상(心像)'을 창출한 것이다. ● 2021년 전시에서는 「부드러운 휘파람 Soft Whistle」(2019~2020)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전 작품에서 일부 목격되었던 형상성이나 설명적 요소가 더욱 생략되었고, 부드러운 선과 산뜻한 색이 강조되었다. 붓질 하나 하나가 웅대한 숲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처럼 화면에 겹겹이 쌓여 예상치 못한 형상성을 드러내었다. 정유미의 창작 의도는 작품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Soft Whistle, Whispering Mind, The breathing stones, White echo, Breeze 등을 보면, 작가가 청각적 요소를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명쾌하고 분명하며 성량이 큰 '외침'이 아닌, 부드럽고, 은은하며, 조용한 '속삭임'과 미묘한 '호흡'을 그림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속삭임과 호흡은 상대방에게 여운과 감응을 선사한다. 그리고 정유미 풍경의 상상성을 배가시킨다. 마치 동양화의 중요한 조형요소인 여백처럼, 구체적인 묘사 없이 완벽한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유미의 상상풍경은 기하학적이고 균질적이며 양화된 물리적 공간(space)이 아니라 그 하부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면서 감각과 감정의 원초적 활력을 환기시키는 질적 공간, 즉 장소성(place)에 주목하고 있다.4) ● 정유미 풍경의 상상성은 주요 색상인 파랑색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작가는 색채를 인식할 때, 지각뿐만 아니라 의식, 정서, 체험 등의 영역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색상도 언어처럼 소통의 기능과 목적을 지닌 기호(sign)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유미의 파랑은 외연화 된 자연의 빛이자, 고요한 마음의 상태이며, 순수한 대기의 속삭임이다. 시야에 들어온 외적 경관을 '차경'하고 내적으로 승화하여 파란 공간으로 마감하였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가 적극 사용한 '사유의 이미지(Image de la pensée)', 즉 심상(心像)의 발현이자 의경(意境)의 확립, 이것이 정유미가 파랑으로 표출한 상상풍경이 아닐까 한다. ■ 송희경

* 각주 1) 이유미, 손연아, 「동아시아·서양의 자연의 의미와 자연관 비교 분석」, 『한국과학교육학회지』 Vol.36 No.3, 한국과학교육학회, 2016, 485쪽. 2) 안소연, 「(불)가능한 풍경」, 『(불)가능한 풍경』, 플라토, 2012, 9쪽. 3) 서복관, 『중국예술정신』, 동문선, 1990, 129-158쪽. 4) 김홍중, 「문화사회학과 풍경(風景)의 문제-풍경 개념의 구성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탐색」, 『사회와 이론』 6, 한국이론사회학회, 2005, 129-16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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