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는 회화

Painting as Performativity展   2021_0114 ▶ 2021_0131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도연_박경률_이우성_최선

기획 / 유은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This is not a church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10길 34-16 (구)명성교회 instagram.com/this_is_not_a_church

우리는 영상매체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생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지는 프레임과 스크롤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소비되고 속도에 반비례하여 의미는 더욱 얇아졌다. 원본의 권위가 약해진 이미지는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회화의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우리 시대의 회화는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기존의 맥락에서 탈락시키고 유희하면서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 이 시대의 회화다움은 이렇듯 이미지의 전유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행하는 회화』는 이미지 중심주의의 회화에서 눈을 돌려 수행성 개념을 바탕으로 회화적 실천을 모색하고자 한다. 수행성 개념은 버틀러로부터 빌려온다. 버틀러는 "정체성이란 언제나 이미 의미화된 것인 동시에 여러 개의 맞물린 담론 안에서 순환하며 지속적으로 의미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체는 행위자로서 내적으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존재론적 위상을 획득하는 과정 중의 존재이다. ● 2차원의 평면성을 주된 특성으로 삼는 매체인 회화는 상대적으로 수행성이라는 개념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회화를 수행성의 개념에 비추어 본다는 것은 작품이라는 물질적 결과물을 작가의 실천적 행위가 '일시적'으로 고정된 결과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하는 회화』는 회화 작품을 작가의 실천적 결과물이자 사회적, 환경적, 시공간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구성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요컨대 작품을 닫힌 표면으로 보지 않고, 회화의 안과 밖을 연결하고 작품과 작가의 행위, 작품이 위치하는 시공간, 사회적 맥락 등이 서로 복합적이고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장으로 본다.

참여작가 김도연, 박경률, 이우성, 최선은 각기 다른 실천을 통해 수행하는 회화를 보여준다. 최선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획득한 재료로 물감을 대신한다. 최선의 작품에서 사건은 형상으로 증언되지 않고 촉각적으로 발화한다. 이우성은 사적인 경험이나 기억을 담은 걸개그림을 야외에 일시적으로 설치하고 철거함으로써 그림의 의미를 장소와 주변 환경에 따라 다층적으로 변화시킨다. 박경률은 회화의 재료를 매작품마다 다르게 활용하면서 회화적 실험을 진행한다. 화면의 요소들은 신체적 행위의 기록이며, 관객은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신체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 김도연은 언어로 발화되기 전의 촉각적인 신체의 감각이나 경험을 투명한 판에 새기거나 긁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요소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 최선이 재료를 통해 작품에 사회적인 맥락이나 외적 조건을 작품에 끌어들인다면 이우성은 작품의 설치 방법을 통해 회화가 외부적 조건에 반응하도록 만든다. 박경률과 김도연은 이미지를 재현하기보다 작가의 신체적 행위의 결과로서 형상을 드러낸다. 박경률이 조각적 회화를 2차원에서 공간적으로 구축하면서 작품을 단위로 계속해서 실험한다면 김도연의 회화는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신체이며, 물리적 장소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변화에 반응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회화 작품은 일종의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일 수 있다. 필립 아우스랜더는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을 '다큐멘터리적인 것'과 '연극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전자가 관객이 있는 상태에서의 실황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기록을 이차적, 부차적 자료로 여긴다면, 후자는 기록이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기록 자체를 퍼포먼스로 본다. 전시에 초대된 작품은 특정한 수행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회화를 실천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 전시공간인 This is not a church(구 명성교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채광의 변화로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시는 일정하게 컨디션을 유지하는 화이트큐브에서 안정적으로 2차원의 평면을 감상하기보다 작품과 시공간의 변화를 함께 느끼면서 시공간과 회화를 함께 보기를 제안한다. 또한 회화를 시각적인 감상의 대상이나 재현의 결과물로만 보기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신체적 행위의 결과로서 형상과 흔적, 작품이 외부적 조건에 반응하여 다층적으로 변화하는 모습 전체를 포괄하며 감상하기를 제안한다. 이를 통해 회화를 시각적으로만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신체와 서로 반응하면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체험하기를 바란다.

최선_부작회화(마르지 않는 그림)_천에 안료와 실리콘오일, 글리세린_각 130×194cm_2021

최선 ● 최선은 물감 대신 특정한 장소에서 획득한 물질이나 신체의 부산물을 재료로 삼아 캔버스나 천에 도포하거나 스며들게 한다. 재료는 일종의 인덱스로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나 재난을 지시한다. 후쿠시마의 소금, 구미의 불산, 태안의 석유 등의 재료를 획득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뒤덮인 정적인 화면과 대조를 이룬다. 재료가 균일하게 표면을 덮은 작품은 언뜻 보기에 모더니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재료의 출처를 알게 되면 외관상의 유사함이 오히려 모더니즘 회화의 순수성, 나아가 예술의 고귀함을 부정하기 위한 작가의 고유한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는 회화를 통해 끔찍한 재난과 부조리함 앞에서 이성적이거나 개념적인 언어로 표출되지 못하는 나머지를 증언하고자 한다. 어떤 것을 재현하기보다 그 자체를 관객 앞에 소환하고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기를 요청한다. 이를 통해 사건은 형상에 의해 증언되지 않고 촉각적으로 경험되며 관객의 신체적인 반응과 상호 작용한다.

이우성_지나치게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_천에 수성페인트, 과슈_210×210cm_2015

이우성 ● 이우성은 2014년부터 틀에 고정되지 않은 커다란 천에 페인트, 과슈와 아크릴을 활용하여 걸개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일상에서의 사소한 경험이나 기억, 가까운 사람들을 기록한 그림은 건물 외벽, 나무, 담벼락 등 그림을 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변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철수되었다. 몇 번이고 접혔다가 펼쳐진 작업들은 비와 눈, 바람 등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물감이 떨어져 나가기도, 청테이프의 강력한 접착력에 의해 헤지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보다도 큰 작품을 야외에 설치하고 떼어내는 과정에서 작품의 외부적 조건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간다. ● 민중미술의 일환이었던 걸개그림이 명쾌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이우성의 걸개그림은 보다 사적이고 개별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그림은 공공의 장소에 설치됨으로써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이번 전시에서 이우성의 작업은 공적 발화의 공간이었던 교회의 단상에 위치한다. 관객은 단상에 올라가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도 하고 맞은편에 위치한 복층에 올라가 멀리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면서 작품의 사적이고 공적인 속성을 체험하게 된다.

박경률_그림8_캔버스에 유채_227×182cm_2020

박경률 ● 박경률은 2017년 『New Paintings』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반응하는 회화-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조각적 회화'라고 이름 붙인 회화적 실험은 빛, 시간, 건축적 요소 등 외부적 요소를 회화에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2020년 두산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 『왼쪽회화전』에서는 조각적 회화를 2차원의 평면에서 실험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 그는 '그리기'라는 신체적 행위에 주목해 왔다. 최근의 작업에서 그는 새로운 회화 작업에 들어갈 때마다 캔버스 천의 종류, 밑칠의 방법, 붓의 두께나 재질, 물감의 재료 등을 다르게 활용하면서 회화적 실험을 수행하였다. 천의 종류, 밑칠의 방법에 따라 천에 스며드는 물감의 정도가 달라지고, 신체의 움직임을 직접 반영하는 붓질은 질감에 운동성을 반영하며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 하나의 작업 안에서도 각각의 요소는 서로 다른 리듬과 촉각적 물성을 가진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는 "화면 속의 붓질 하나하나, 구상적 혹은 추상적 이미지까지 독립된 요소(오브제)가 되며 회화를 작동시키는 기본 단위"가 된다. 따라서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형상이나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를 매개하여 드러나는 질감이나 운동성이다.

김도연_배는 항시 유동하는 바닷물에 떠있기에_연선지에 유채_98.6×68.2cm_2017

김도연 ● 김도연은 선천성 아토피로 인해 오랜 세월에 걸쳐 온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갖고 있다. 작가는 이를 '문신'이라고 표현하는데, 가장 오래된 것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는 것까지 피부의 내외부에 새겨진 문신을 자주 관찰해 왔다. 온도나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의 촉각적 경험을 관찰하면서 김도연은 이를 기억해내고 회화로 기록한다. ● 그는 그동안 장지에 얇은 붓으로 유화를 그려 왔다. 기름이 발린 붓은 표면과 마찰하며 거칠게 그어지고 장지는 기름을 만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색된다. 이는 언어로 발화되기 전에 촉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를 가능한 한 천천히,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한 고유한 방법이었다. 최근에는 판화에 매료되면서 동판화부터 리놀륨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판화로 작업한다. 여러 소재의 판에 조각칼이나 니들을 활용하여 긁거나 새기는 행위는 붓보다 생생하게 신체적 행위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도연은 전시공간에서 발견한 여러 요소들과 개인적 경험을 소재로 투명한 판에 조각칼과 니들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강도를 조절하며 형상을 그린다. 작품은 전시공간에 들어오는 채광의 변화에 따라 빛으로 찍힌 판화를 매시간 다르게 벽과 바닥에 새긴다. ■ 유은순

『수행하는 회화』 연계프로그램 안내 회화의 수행성에 대하여 - 일시: 2021. 1. 17.(일) 오후 3-5시 - 진행방법: 온라인진행(Zoom) - 모더레이터: 남웅(비평가) - 패널: 김도연, 박경률, 유은순, 이우성, 최선 - 신청기간: ~ 1. 16. 자정 - 신청방법: 구글폼 신청 ▶ https://forms.gle/FXRkHS1Ld539ihVk8

Vol.20210114b | 수행하는 회화-Painting as Performativit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