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도(城市圖)

민재영_박능생_박지은_유한이展   2021_0201 ▶ 2021_022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나형민

정부서울청사 입주기관 공무원 및 청사 방문객 대상 전시로 관람대상이 한정되어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문화갤러리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209(세종로 77-6번지) Tel. +82.(0)2.2100.4538 www.chungsa.go.kr

태평한 성시도(城市圖) ● '성시(城市)'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의 시장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도시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통회화에서 '성시도(城市圖)'는 성읍 내의 분주한 시장의 일상을 그린 그림으로 작금의 도시풍경화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성시도의 소재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절경(絶景)을 토대로 그린 사례도 있지만 보통은 정치적, 역사적 중심지인 도시의 일상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성시도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중국 북송시대의 국도인 변경(汴京)을 묘사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와 조선시대의「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이다. 동양화의 대표적 화목(畵目)인 산수도(山水圖)가 농업 기반의 전형적인 산수자연을 묘사한 그림이라면, 성시도는 성(城)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활기찬 모습이 주된 배경이다. 특히,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수레와 인파가 가득하고 화려한 상점과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상업경제의 발달로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의 면모를 표현한 것으로 태평성대(太平盛代)에 대한 기대감이 회화작품을 통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성시도」는 산수풍경 중심의 욕망 절제형 공간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욕망 충족형 공간으로의 미의식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 전통적인 성시의 경계가 성곽이라면 오늘날 도시의 경계는 차량이 가득한 거리와 분주한 인파, 높고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네온사인 등등일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 성시도로서 서울을 표현한 그림들은 상기의 도시적 특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초대된 네 명의 작가들은 공통으로 서울을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갖는 규모감이나 위압감을 감상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도리어 거대한 빌딩 숲에서 분주한 현대인에게 도시의 생활이 태평한가? 물음을 던지듯이 서정적인 풍취마저 느껴진다. 이들이 해석한 도시 풍경으로서의 「성시도」는 지금의 서울에 대한 모습의 재현이면서도 도시에 대한 향수마저 보이며 다양한 도시의 양태를 구현하고 있다.

민재영_먼지 낀 날 Dusty Day_한지에 수묵담채_125×170_2018
민재영_오늘 Today_한지에 수묵채색_182×150cm_2015
민재영_좁은 통로 Narrow Passage_한지에 수묵채색_100×118cm_2017

민재영 작가의 작품은 서울 또는 도시의 평범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 모습은 특별한 사건이나 공간이라기보다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일상을 민재영 작가는 도시민의 '행동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동선(動線)에 조응하는 동시대의 내재적 체험풍경'이라 하였다. 이러한 풍경을 재현함에 있어서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법인 수묵과 색채가 '중첩된 가로획선'은 한편으론 예전 브라운관 TV의 주사선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초고선명의 UHD TV에서는 볼 수 없는 파스텔 톤의 정경은 지금(now), 여기(here)의 체험풍경이면서도 예전의 브라운관 TV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소환하는 듯하다. 그래서 중첩된 가로선에 재현된 도시의 일상은 매우 동시대적이면서도 과거와 현재의 도시 풍경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다. TV의 등장으로 전쟁의 참상도 마치 게임의 한 화면 같이 뉴스로 접하는 미디어의 현실을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사실이자 허상(simulacra)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허상'이란 실재하지 않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더욱 생생하게 인식되는 공통의 환영이라면, 민재영 작가의 화면은 실재하는 사실의 공통분모가 개인의 추억과 기억에 따라 개별화된 내재적 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심히 가로선에 중첩된 입자와 색감이 만들어낸 형상을 보다 보면 우리 모두의 일상과 같이 느껴졌던 평범함,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익명의 교집합적 일반성'이 나만의 일상으로 환원되는 자기화 또는 내면화의 경험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현재를 맞이하는 공감일수도, 과거를 반추하는 각성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브라운관 TV 화면을 통해 관조하듯이 한 발짝 물러서서 도시의 일상을 부감했다면 어느덧 타자가 자아가 되듯이 그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고 나의 주변임을 자각하게 한다. 그래서 주사선과 같았던 가로선이 점차 각자의 기억과 체험에 따른 나름의 '결'로서 사이와 사이를 메꿔간다. 그 결을 통해 느낀 민재영 작가의 작품에 대한 작자만의 감상은 도시에 대한 무관심이나 비평적 냉소라기보다 왠지 모르지만 노스탤지어와 같은 애틋함 마저 느꼈다. 더욱이 민재영 작가의 작품은 복잡한 도시의 실상에 대한 반영임에도 LP판과 같은 온기가 있다. 아마 대한민국의 성장기에 온 가족이 모여 시청했던 브라운관 TV에 투영된 희망과 설렘의 인상이 오늘날의 고단한 대도시의 일상에도 여전히 투영된 작가의 서정적인 시선에 연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세대 공감을 해본다.

박능생_남산에서다(야경)_화선지에 수묵_208×75cm_2006
박능생_Potsdamer Night View_화선지에 수묵_94×70cm_2016
박능생_붉은산 (경북궁) 화선지에 홍묵_212×148cm×2_2016~7

박능생 작가의 작품 「붉은산」은 광화문 근처의 높은 빌딩에 올라 현장 모필 사생을 토대로 재현한 풍경이다. 도시 중심가의 높은 빌딩에서 경복궁을 관조하였기에 북한산 산세에 둘러싸인 궁궐의 모습이 비친다. 표현기법에서 민재영 작가의 도시적 일상이 객관적 서정성의 표현이라면 박능생 작가는 사생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서정성이 더욱 드러난다. 특히 작품 「붉은산」은 강렬한 홍묵(紅墨)의 산세에 흘러내린 물감 자국이 빗줄기 같기도 하면서 하얀 채색의 운무에 쌓인 경복궁의 풍광을 아스라이 펼친다. 작가는 현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경복궁을 표현한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박능생 작가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생을 하고 몸으로 체험된 감각을 통해 대상을 표현하는 작화태도를 중요시한다. 서울 전경을 그리기 위해 인왕산, 남산 또는 높은 빌딩 등을 유랑하듯 오르내리면서 도시를 느끼고 그 사생을 일기와 같이 하나하나 기록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개된 서울 풍경은 산수화의 이동시점에 따른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현되어 간다. 그래서 일명 '도시산수'라고 이름하였다. 마치 정선이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금강산의 면모를 '진경산수'라는 이름으로 전개하였듯이, 박능생 작가는 서울뿐만 아니라 대전, 부산 등 국내외 다양한 도시를 유람하며 사생함으로써 도시라는 대상을 나름대로 해석한 '도시산수'라는 독특한 회화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서울에 대해 '과거의 전설이나 신화가 오늘날 도시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고, 예전서부터 이 도시를 가꾸고 손때를 묻혀왔던 선조들의 숨결이 생생히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 서울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신화와 숨결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자 모필로 성시도를 그려나간다. 그래서 정돈된 필치보다 즉흥성이 잘 나타난 필치를 보여주며, 공 드린 붓질보다 생동감 있는 붓질을 통해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옛 선인들이 산수자연을 유람하며 내면화된 눈(物我一體)으로 바라보고 재현하였던 전형적인 산수화의 관조를 도시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가의 사생과 더불어 산보하듯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안내받게 되는데, 아마 그곳에 직접 가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화면을 통해 누워서 즐겨도 될 법한 도시의 풍광을 선보이고 있다.

박지은_A little talk-Florence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 금박_80×80cm_2020
박지은_A little talk-Rome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 금박_60×60cm_2021
박지은_A little talk-Seoul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60×45cm_2018

박지은 작가 작품의 첫인상은 마치 명나라 시대의 강렬한 필치의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와 같은 거칠고 파괴적인 필선이 인상적이다. 민재영 작가의 도시표현이 구축적인 필선이고 박능생 작가의 필선은 사생적이라면 박지은 작가의 필선은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역동적인 필치이다. 강렬하게 터져버린 필묵의 운동성을 보게 되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페인팅 액션은 도리어 얌전해 보인다. 이토록 역동적인 필선이 도시의 야경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도시의 풍경 특히, 야경을 그리게 된 계기는 홀로 여행하면서 프라하의 시청 탑에서 접하게 된 밤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지은의 성시도에는 도시의 일원이면서도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여행자로서의 시선이 느껴진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빼곡하게 줄지어 선 도시 속에서 문득 낯선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만나듯이 거친 필묵은 대상에 대한 감정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검은 묵면(墨面)에는 도시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여행을 통해 보았던 모습, 분위기, 날씨 등등을 자신만의 여행기로 기록한다. 그래서 박지은 작가의 작품은 여행 중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 아름다운 도시의 면모를 본 듯한 설렘과 낯선 고독 같은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하얀 한지 위에 검은 먹을 드리워 극단의 대비적 배치로 구상하고, 다소 거친 붓선과 두터운 묵면 사이로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표현함으로써 고전성과 현대성의 대비를 강조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인 성시도가 그 대상이 도시라 꽉 찬 화면 구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박지은 작가의 작품은 파격적으로 여백이 압도적이다. 강렬한 먹색과 흰 여백이 극단적으로 대비된 화면에는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흥분감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농묵에 표현된 야경은 아름답다 못해 고요하다. 그래서 극적이다.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를 보듯이 질서와 무질서, 균형과 불균형, 현대와 고전 등이 공존하는 도시적 양면성의 긴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도시는 현대인에게 어쩌면 가혹하고 거친 일상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짙은 밤의 어둠이라도 희미한 불빛에 의해 소멸한다. 그래서 불빛은 이정표이자 희망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세속적인 도시라도 그래서 도시의 밤은 유혹적이고 아름답다.

유한이_미궁_장지에 채색_264×195cm_2015
유한이_98번길_장지에 연필, 채색_84×92cm_2019

유한이 작가의 작품은 사뭇 구조적이다. 민재영 작가의 선이 수평적, 일률적이라면 박지은 작가의 선은 역동적이고 투박하다. 반면 유한이 작가의 직선은 구조적이라 네모를 그려 바둑판과 같은 격자를 그리기도 하고 입방체를 만들어 공간을 구축하기도 한다. 특히, 성(城) 안의 성인 경복궁을 모티브로 한 작품「미궁」은 낯익은 궁궐의 공간이면서도 마치 레고 블록과 같은 놀이동산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미궁」은 고전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기하학성을 내포하고 있다. 격자무늬 위에 블록을 쌓아가듯이 구축된 박스형의 건물은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처마와 같은 곡선형 구조를 직선적 모더니즘으로 환원하고 있다. 똑같이 경복궁을 모티브로 하였음에도 박능생 작가의 경복궁이 보다 감정적이라면 유한이 작가의 경복궁은 모던하다. 그래서 현대적이면서도 내면에 고풍스러운 특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것이 아마 오백 년의 고도(古都)이자 현대화된 도시로서의 서울의 대표적 일면일 것이다. 또한 격자무늬 위에 블록처럼 쌓아 올리듯이 구축된 도시의 모습은 오랜 시간 문명화의 기반을 쌓아온 서울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완전하게 갖추어진 모습이라기보다 나무 하나 없이 기본적인 축대만 쌓아 올린 터전 같기도 하여 미완성, 미결정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래서 다소 유동적이면서 불안정하기도 하다. 궁궐의 배치도인 조선시대 「동궐도」가 건축도감이자 '지도'와 같은 성격이라면 유한이 작가의 궁궐 그림은 마치 '미로'와 같다. 그래서인지 작품명이「미궁」이다. '미로와 같은 궁궐'이라는 작품명에는 영화 「메이즈러너(Maze Runner)」와 같이 해방구를 못 찾아 당혹게 하는 폐쇄적 공간으로서의 함의도 내재한다. 더 나아가 도시에 살고 도시를 즐기면서도 그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마치 미로를 헤매고 있는 듯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은유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닐고 싶고 탐험해 보고 싶은 아즈텍 문명의 유적지와 같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를 간직한 미지의 공간으로도 다가온다. ● 우리의 도시는 태평한가? 끝으로 다시금 묻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의 일상에 대해 반추해 본다. 전통적인 성시도에 표현된 도시의 모습이 일종의 이상향으로서 발전적인 시대상의 반영이라면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의 성시도에는 서울을 넘어 도시 자체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작가들이 각자의 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시도는 먼지 하나 없는 새것의 느낌보다 오랜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듯한 서정성이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도시적 실상을 목도하면서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하여 위축되고 제한되었던 도시의 삶은 과거와 다른 도시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코로나19를 지나게 되면 다시금 예전의 도시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이전과 다른 도시의 일상이 펼쳐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오늘의 성시도를 감상하면서 내일의 성시도를 기대해 본다. ■ 나형민

Vol.20210203a | 성시도(城市圖)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