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걸불과 깜부기불 Ember, Cinder

서민정展 / SEOMINJEONG / 徐民正 / painting   2021_0317 ▶ 2021_0411

서민정_돌아 가는 길_장지에 먹, 주묵, 분채_193.9×390.9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523a | 서민정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갤러리밈 영큐브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세계는 끊임없이 부서지고 구축하기를 반복한다.' ● 나의 최근 작업(2017~)이 이 문장, 혹은 이러한 일종의 믿음을 식민지 삼아 진행되어 왔으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면면에서 어렵지 않게 그 증거들을 포착할 수 있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여전히 유효한 생각이며 부서지고 구축하는 '서로 다른 힘'에 대한 호기심 역시 식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힘', 이를테면 양가적인 것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모순적인 것에 신경 쓰면서, 관여하고 정리하고 이해해보려 하고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노력이 내 삶의 태도에서 숙련되기를 늘 바라왔다. ● 이번 전시에는 서로 다른 두 힘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면서도 특히 두 힘이 전환되는 과정, 그 변화의 시간과 에너지를 담으려 한다. 『잉걸불과 깜부기불』은 하나의 대상을 향해 붙은 열기의 최대치와 그 열기가 식어 남은 에너지의 끄트머리에 대한 이야기다. 잉걸불과 깜부기불은 나무(숯)에 붙은 불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잉걸불(=불잉걸)은 가장 뜨겁고 벌겋게, 이글이글 달아오른 숯의 불덩어리이자 불꽃보다 더 뜨거운 최대치의 온도를 지니는 불의 상태다. 이 불이 다 타고 숯에 남은 마지막 불, 까무룩 아득히 사라질 듯 꺼져가는 불이 깜부기불이다. 불이 붙어 잉걸불이 되기까지, 서서히 식어 깜부기불로 남기까지, 얕은 바람이 불어 다시 잉걸불에 다가서기까지 원을 그리듯 순환하는 에너지의 위치와 다른 온도의 순간들을 조각조각 담았다. 이 둘의 물리적으로 계산된 온도는 자명하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 잉걸불과 깜부기불은 온도의 높낮이를 책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서지는 것, 파편화되는 것이 부정을 표상한다던가, 반대로 구축하는 것이 긍정을 표상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형태를 바꾸게 하는 서로 다른 신호 같은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 어떤 이야기들은 덩어리가 되고 또 어떤 이야기들은 부스러기가 된다. 덩어리가 된 이야기들은 언젠가 부서질 것이고 부스러기가 된 이야기들은 언젠가 한 데 뭉쳐 덩어리가 될 것이다.

서민정_Cover 3_장지에 먹, 주묵, 분채_100×100cm_2020
서민정_깜부기불_장지에 분채_45.5×37.9cm_2021
서민정_구멍_장지에 분채_45.5×37.9cm_2021

2-잉걸불이 된 이야기 덩어리 ● '손이 말을 듣지 않던 그때' 라고 한 시기의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는 명백히 틀린 얘기다. 오히려 그때의 손은 스스로 길을 찾아 내가 무엇을 따라가면 좋을지 주도적으로 알려주었다. 심한 난시가 보는 불빛처럼 포인트가 없는 열망으로 똘똘 뭉친 한 시기에 지고지순 몸과 마음을 어딘가 바쳐야 할 것 같았던 '그 때'들을 떠올려본다.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면서 그 핀잔의 서글픔은 오롯이 내가 느끼던 때를 기억한다. 배에 몸을 싣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는 대신에 말을 듣지 않는 손을 쫓아가며 경험했던 시도와 실패의 공회전을, 환호와 침묵을 기억한다.

서민정_부스러기 2_장지에 분채_45.5×37.9cm_2021
서민정_부스러기 02_장지에 먹, 분채_100×100cm_2020
서민정_다시 불을 붙이세요_장지에 분채_45.5×37.9cm_2021

3-깜부기불이 된 이야기 부스러기 ● 나는 이제 그것들을 바다에 던지고 그 배에서 내리기로 하면서, 그렇다면 내가 손수 바다에 던질 것, 던져질 것들을 하나씩 애정 어리게 배웅할 것 이라는 두 가지 계획을 세워본다. '세이 굿바이'하려니 한 시기의 열망과 절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속도가 붙고 마찰음이 커지고 열이 오르고 굉음이 일기도 하고 낮과 밤이 바뀌어도 무관했던 그 열망은 사실 그 반대의 절망에서 피어났다. 열망이 커져 가던 그 시기는 깊은 절망 속에 있었던 때로 이 둘은 다른 온도의 같은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 자, 그러면 어떻게 '세이 굿바이'할 것인가. 불을 붙인다. 막대를 세우고 반복해서 마찰을 일으켜 구멍을 내며 원시적으로 불을 지핀다. 천을 덮어주거나 수의를 입히기도 한다. 깨뜨릴 수도 있다. 손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손을 타게 하고 굿바이 쪽지를 쓸 수도 있다. 태워 나온 재는 바람에 훅 날려 보내거나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는 대신에 말을 듣지 않는 손을 쫓아가며 항해하던 그 바다에 던지고 나는 그 배에서 내리기만 하면 된다. 배에서 내린다고 똑 부러지게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되겠다'와 '안되겠다', '뜨겁다'와 '식었다', 혹은 손이 말을 잘 듣거나 안 듣는, 아니면 삶과 죽음이나 열망과 절망 같은 그런 온도차와 거리감. 그 사이에서 헛도는 굼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 서민정

Vol.20210317c | 서민정展 / SEOMINJEONG / 徐民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