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내밀한 창작 전개도

김호석_배종헌_송동옥_유비호_육근병_이수진_이원호展   2021_0331 ▶ 2021_0419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1_0331_수요일_05:00pm

기획 / 고연수(평론가)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기획자의 내밀한 생각 전개도 ● 컴퓨터에서 새하얗고 말간 빈 문서창을 띄워놓고 첫 줄부터 피아노 치듯 수려하게 키보드 두드리며 거침없이 글자들을 채워 내려가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 작문 과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작가와 인터뷰를 한 뒤 한동안 작업을 정독하고, 작업 분위기를 캐치해 서문 및 평론의 방향과 형식을 정하고 화두들을 모아 개념들을 분할·해체·조합하여 우선순위와 비중을 정하고, 서론·본론·결론을 스케치하듯 뭉뚱그려 글로 그리고 난 후 세밀하게 채우고 다지며 만든다. 쓰이는 단어와 문자들 역시 작업과 글 형식에 맞도록 온도와 결을 조율한다. 이는 글을 짓는 큰 흐름인데 순서나 어디에 더욱 중점을 둘 것인가는 작업의 성향마다 그리고 글을 만드는 필자마다 다를 것이다. ● 한참 작성하다 보면 재미있게 몰입하는 부분이 있어서 비대해져 조화가 깨지는 때도 있는데, 아무리 흥미롭게 작성한 부분일지라도 전반적인 조화를 깨뜨리는 정도라면 과감하게 도려내거나 다른 부분들에 살을 붙여 발란스를 맞춰야 한다. 더욱이 감각적으로 현란하게 잘 쓰여 글 전체의 가치와 품위를 지탱한다고-필자가-생각하는 부분을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통편집하거나 쿨하게 잘라낸다는 것은 쉬운 결단은 아니다. 어떻게든 욱여넣기도 하는데 결국은 여력 없이 사력을 다해 힘겨워 보이나 완성도는 떨어지는 본인에게만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창피한 결과만이 남는다. 그래서 간혹 탈고한 글에 분량을 반으로 줄여 즉시 보내달라거나 어느 특정 단락만을 쏙 빼달라는 요청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필자로서 자존심의 문제라기보다 원고 자체를 다시 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필자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글이란, 모든 문장과 단어와 조사까지도 위치한 분명한 이유가 있고 서로 엮여 있어 분리될 수 없으며 더 욕심내자면 독자와 호흡을 같이 하거나 호흡에 리듬을 넣어 이끄는 좋은 글을 지어서 깊게는 마음과 생각이 깊이 동요되거나 치유도 가능한 지경까지 가는 것이다. 단어·문장·문단 사이가 모두 긴밀하게 서로를 붙들고 있는 훌륭한 글은 글 자체가 생태계처럼 조화를 이루기에 생명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성적인 냉철한 통찰도 중요하지만, 기저는 예술에 대한 깊은 고민과 생각이 진심으로 담겨 있어야 함은 무엇보다 기본이다. 작문에 대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부족한 재능을 빈틈없어 보이도록 열심히 채우려 애쓰는 어느 평론가의 내적 고군분투의 과정일 수 있다. 대부분 그리 즐겁지 않은 고통이 동반된 내밀한 나만의 작업 과정이라 남에게 보여주거나 하소연을 하거나 설득할 당위는 없어도 과정이 기록된 노트를 볼 때는 나만이 아는 숨겨진 진귀한 보물을 들춰보는 기분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작문의 목적과 대상인 시각예술창작자와 그의 작품에도 무척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 다빈치의 암호와 같은 도식과 드로잉이 빼곡히 얽힌 제작(실험) 노트는 작품의 완성도의 여부를 논하기 무색할 정도로 감성과 지성이 응집된 훌륭한 교본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그가 이전 작업의 맥락에서 일탈하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운 작품이었는데, 당대 냉소적인 반응에 둘둘 말려 벽장 안에 박혀 있다가 9년 후 공개된 작업이다. 소위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 채비를 마친 작품과는 다른, 그들의 열정과 열의 그리고 치열했던 자신들의 내밀한 고투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것이다. (예술)창작자야말로 시공간을 자신의 관념과 언어로 해석하고 창출해내는 감각 있는 과학자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또 보이는 것을 감쪽같이 숨겨버려 눈과 마음을 현혹하거나 매료시키는 마술사이기도 하며, 거대하고 묵직한 담론을 유머로 풀어버리거나 소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삶의 통찰을 발굴하며 망각하고 퇴화한 감각마저 일깨워주거나 깨치게 하는 익살스러운?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반짝거리는 생각과 그 전개가 늘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이들을 따라다니는 영감, 창의성, 발상 등의 영원토록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신기루를 차근차근 날것으로 펼쳐내어 보고 싶은 욕망은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할수록 커지며 이번 전시 『그들의 내밀한 창작 전개도』를 기획한 마음이다.

김호석_05_한지에 먹_76×43cm

김호석 작가의 작업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새침한 정물화에서, 비워진 공간의 무게까지 묵직하게 더해진 인물화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가 오히려 작품 속 대상에게 마음을 들켜 버린 듯 수만 가지 감정이 대상의 표정으로 읽혀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업들은 그간 작업해 온 작업들 중 통렬한 날 것을 선정했다.

배종헌_격리구곡일람 隔離九曲一覽_종이에 혼합재료_21×29.7cm_2020

세상에 보이는 사소하거나 익숙한 것들이 진지하게 해체·분석되어 생뚱한 의미로 재생되는 작가 배종헌의 작품들에서 그의 엄중한 연구자적 태도는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벽에 균열에서 자연의 빼어난 경관을 읽어내는 그의 작가적 시선은 신기하고 기발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단순하고 건조하고 거칠어지는지를 회고하게 하는 작업이며 작가의 진중함이 빼곡한 스케치에 보인다.

송동옥_고경_장판지에 먹_2020

작가 자신의 몸을 붓으로 그만의 특유한 퍼포먼스를 구상하며 작업을 진행해 온 송동옥 작가의 작업은 흐르는 시간대로 어느 한순간도 같을 수 없는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같은 단어를 기약 없이 수행하듯 쓴 각기 다른 형상의 작업들은 그래서 오히려 습작이 아닌 시간이 흐르면서 제쳐두었던 작업이 실은 진짜인 것이 있다.

유비호_사라진 인류(가 전하는 말)_단채널 영상_00:11:10_2020

영상 설치 작업을 진행해 온 유비호 작가의 작업 궤도에서 이미지 사유의 흔적과 그 전개를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우리 인식 안에 있는 시공간의 개념이 아닌 경험하지 못한,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작가의 직관으로 스케치된 작업들은 그가 집중하고 있는 작업 관념을 좀 더 가공되지 않은 날것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보인다.

육근병_drawing for survival is history

육근병 작가의 드로잉 작품은 주로 영상설치 작업과 관련해 작업 전후 세밀하게 계산된 제작 노트이자 기록이며 내면에서 치열하게 사고한 흔적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연구해 온 역사와 그 소명에서 발상한 개념이 스케치 된 드로잉 작품은 향후 그의 작업을 풀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수진_동빛컬러 호일판에 음각 드로잉_18×29cm_2019

물리적인 경험적 공간을 작가의 시선으로 유연하게 해체·재배치로 색다른 의미를 창출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온 이수진 작가의 이번 작업은 그가 뻗은 심리적 공간의 거리는 훨씬 더 멀어진 바다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호일 판에 새겨진 음각 드로잉의 바다세계는 초월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긴밀해야 하는 (경험적)거리에 대한 실마리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원호_looking for_부동산 홍보물에 순금 금박_2016

암묵적으로 동의한 우리 안에서 보편적인 가치들을 상충 시켜 작가는 인위적 불일치를 만드는 데 낯선 불편함이 꿈틀댄다. 특유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연출하는 이원호 작가의 영상작업들은 오히려 그 부드러움이 불협의 마음을 무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의 암시적 단어에서도 제시하듯, 이번 전시에서의 작업은 작가의 예민한 불편함이 서정적으로 연출되어 채워져야 하는 간극을 우리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 보이는 거시적 세계에 대한, 보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미시적 세계에 대한, 무한한 창작자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기폭 되어 더욱 확장되어 나가려는 발아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경험되어지길 바란다. 작가들이 내어 준 힌트인 암시-적 단어-들과 노트로 그들의 내밀한 창작 전개의 과정을 쫓는 것도 흥미로운 과정일 것이다. 각기 그들만의 방식으로 창작의 전개도를 그리고 꿰맞추고 만들어 구축하는 이들의 내밀한 창작의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 살포시 들춰볼 기회가 되길, 작가들의 내밀한 그들의 창작의 과정을 엿보고 싶은 욕망에 점잖고 격식 있는 서문으로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필자 역시 글로 기획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개했음을 이번 전시에 응해준 작가들과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 ■ 고연수

Vol.20210331c | 그들의 내밀한 창작 전개도展